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소재로 한 독특한 형식의 전쟁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피터 버그의 <론 서바이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한 네이빌 씰 대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형적인 '미국 만세'(Viva America) 영화다. 미군의 영웅적 전투활동을 찬양하는 뻔한 목적의 상투적인 할리우드 전쟁영화이지만 다소 독특한 접근법이 눈길을 끈다.

 <론 서바이버>는 4월2일 개봉했다.

<론 서바이버>는 4월2일 개봉했다. ⓒ 드림웨스트 픽쳐스


패션 오브 네이비 씰

2005년 6월 28일,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 중인 네이빌 씰 대원 마커스 러트렐(마크 월버그 분), 마이클 머피(테일러 키취 분), 대니 디에츠(에밀 허쉬 분), 매튜 액슬슨(벤 포스터 분)은 탈레반 부사령관 '샤'를 체포하기 위한 '레드 윙'작전에 투입된다.

탈레반 거점에 침투한 네 명의 네이비 씰 대원들은 목표물을 확인하고 산 속에 은신한 채 본부와의 교신을 기다리던 중 양떼를 몰고 산길을 지나던 민간인들에게 우연히 발각된다.

10대 소년이 포함된 민간인들을 억류한 네이비 씰 대원들은 이들의 처리방법을 놓고 논쟁을 벌인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사살하자는 의견과 교전지침에 따라 풀어주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다소 긴 논쟁 끝에 지휘관 마이클은 민간인들을 모두 풀어 주기로 결정하고 철수를 위해 고지대로 이동하여 본부와의 교신을 시도한다.

한편 풀려난 양치기 일행은 산에서 내려가 미군의 존재를 탈레반에 알리고 샤가 이끄는 탈레반 무장세력은 네이비 씰 대원들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네이비 씰 대원들은 결국 탈레반 전사들에게 포위되고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가 벌어진다.

<론 서바이버>는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지만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떠오르게 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십자가 처형 직전 12시간 동안 예수의 수난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해 개봉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지나치게 잔혹한 표현과 반유대주의적 설정이 다소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북미에서만 3억7천만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하며 대중적 성공을 거뒀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엄밀하게 말하면 종교영화라기보다는 고어 영화(잔혹 영화)에 가깝다. 일반적인 종교영화와는 달리 영적 메시지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멜 깁슨은 살점이 찢기고 피범벅이 된 예수의 수난을 묘사하는 데 상영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했다. 예수의 고문과 처형 과정은 어지간한 고어 영화보다 끔찍하다.

특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은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관객들마저 죄의식에 빠지도록 만든다. 그리고 잔혹한 극사실주의적 연출기법은 관객들에게 의심의 여지가 없는 종교적 신념을 불어넣는다.

 <론 서바이버>의 잔혹한 극사실주의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떠오르게 한다

<론 서바이버>의 잔혹한 극사실주의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떠오르게 한다 ⓒ 20세기 폭스 코리아/드림웨스트 픽쳐스


이는 기존의 기독교 영화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접근법이지만 정치적, 윤리적으로 다소 위험할 수 있다. 멜 깁슨은 예수의 잔혹한 수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뿐 만 아니라 고대 유대인들이 사용한 '아람어'와 '구전 라틴어'를 사용하는 등 극사실적인 연출기법으로 관객들을 실제와 같은 영적인 체험으로 끌어들인다.

이 같은 연출기법은 관객들에게 허구(성경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화와 역사는 명백히 다르다)를 사실로 믿게 만든다. 물론 잔혹한 극사실주의적 연출기법,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허구를 사실로 믿게 만드는 자극적 연출방식으로 그릇된 정치적 신념을 불어넣는다면 그것은 매우 선동적인 영화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마치 예수의 수난이 전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설정은 다분히 선동적이며 극사실적 연출기법은 관객들이 그 선동에 쉽게 빠져들도록 만든다.

상업적으로는 볼 만하지만, 윤리적으로는...

<론 서바이버>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유사한 작법을 활용한다. 탈레반에 쫓기는 네이빌 대원들의 수난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대부분의 상영시간을 소비한다. 오직 총격으로 온몸이 누더기가 되고, 벼랑에서 떨어져 살갗이 찢겨 나가고, 피범벅이 되고 만신창이가 된 네이비 씰 대원들의 수난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 카메라를 집중 시킨다. <론 서바이버>는 한마디로 '고어 전쟁영화'라고 할 수 있다.

거의 두시간 내내 지속되는 잔혹한 영상들은 자극적 약물처럼 관객들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 시킨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끔찍한 영상들은 관객들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박탈한다. 그리고 관객들을 이성적으로 무장 해제시킨 후 지극히 위험한 선동적 메시지가 주입된다.

민간인들의 처리방법을 놓고 네이빌 씰 대원들이 논쟁을 벌이는 설정에서 <론 서바이버>의 불편한 정치적 의도가 공공연하게 드러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부도덕한 행위이며 명백한 전쟁범죄다. 하지만 네이비 씰 대원들의 잔혹한 수난극에 빠져들수록 관객들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과연 민간인들을 풀어주는 것이 합리적 행동이었을까? 민간인들을 풀어주자고 강력히 주장했던 마커스도 결국 그들을 풀어준 것을 후회한다.

 네이비 씰 대원들을 민간인들의 처리방법을 놓고 논쟁을 벌인다

네이비 씰 대원들을 민간인들의 처리방법을 놓고 논쟁을 벌인다 ⓒ 드림웨스트 픽쳐스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범죄다'라는 도덕적, 법률적으로 지극히 명백한 명제조차 관객들이 회의하게 되는 것은 극사실적인 잔혹영상들이 이성적인 사고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동적인 기법으로 왜곡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정치적, 윤리적으로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등장하는 실존인물들의 사진 위로 흐르는 애국주의적 가사의 주제가는 <론 서바이버>의 정치적 혹은 상업적 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론 서바이버>는 북미시장에서 1억 달러가 넘는 깜짝 흥행을 기록했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다. 네이비 씰의 수난은 예수의 수난만큼 보편적이지 않으며 노골적인 미국식 애국주의를 해외 관객들이 공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론 서바이버>는 상업적으로는 꽤 볼만한 영화지만 정치적, 윤리적으로 매우 불편한 영화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일까?

<론 서바이버>에서 네이빌 씰 대원들은 극악무도한 탈레반에게 수난을 당하는 순교자들처럼 묘사된다. 영화에서 네이빌 씰 대원들은 선량한 약자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의 전투력은 근대적 수준을 조금 벗어난 탈레반의 전투력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 서바이버>의 네이비 씰 대원들처럼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미국은 2001년 10월 7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전쟁 목적은 아프가니스탄 북부 산악지역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빈 라덴을 체포하고 알 카에다를 소탕하며 알 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하는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탈레반과 빈 라덴의 연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당시 탈레반의 수장이었던 모하메드 오마르가 빈 라덴과 사돈지간이었다는 것 외에 양측의 직접적인 연계를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는 없었다. 빈 라덴이 아프카니스탄에 은신하고 있었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은 빈 라덴이 사살된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때문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장악하기 위해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자마자 천연가스 송유관 사업에 착수했다.

1995년 미국의 석유기업 '유노칼'은 '제2의 중동'으로 일컫는 카스피해의 원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거쳐 아라비아 해까지 천연가스 송유관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공교롭게도 빈 라덴의 이동경로는 유노칼의 송유관 계획과 일치했다.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은신하다가 파키스탄에서 사살됐고 미군은 빈 라덴을 체포한다는 구실로 두 지역에 군대를 파견했다.

아무튼 10년이 넘게 전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인 카불 인근 지역을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지역을 탈레반과 반군이 통치하고 있다. 심지어 나토연합군이 주둔하고 있는 헬만드 주에서조차 탈레반은 주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범죄자들을 체포해 자체 운영하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하며, 교도소까지 운영하고 있다. 탈레반이 운영하는 교도소는 헬만드 주에만 5곳에 이른다. 2012년 현재 미군 사망자는 2천여 명이 넘었다.

미국은 정치, 군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패배하고 있다. <론 서바이버>에서 네이비 씰 대원들은 인도주의적 행동 때문에 수난을 겪는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활동은 '론 서바이버'처럼 인도적이지 않았다.

2012년 11월 미국 군사법원은 '캘빈 깁스' 하사에게 종신형을 선언했다. 깁스를 비롯해 미국 육군 제5스트라이커 부대 소속 병사 5명은 2011년 초 순찰 도중 민간인을 살해하고 희생자의 시신 옆에서 찍은 사진과 희생자들의 손가락, 치아 등 신체 일부를 기념품으로 가지고 귀국했다.

깁스는 부하 '제레미 불록'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15세 소년 '굴 무딘'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도록 명령했다. 깁스는 법정에서 소년의 시신을 "마치 인형처럼" 가지고 놀았다고 진술했다. 그들은 굴 무딘의 머리칼을 잡아 머리를 들어 올린 후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또한 깁스는 길을 가고 있있던 '마라크 아그하'를 사살하고 반군 전사처럼 보이기 위해 시신 옆에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두기도 했다. 그리고 두개골의 일부를 잘라내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그는 이슬람 성직자 '물라 아다흐다드'도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했다.

깁스와 근무했던 '윈필드'는 "죽이는 걸 좋아한다. 깁스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에 가깝다. 1분간 농담을 주고받다가 별 이유 없이 살인을 하는 남자는 처음 봤다"고 증언했다. 깁스는 카리스마가 있었으며 부대에서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2012년 3월 11일 새벽 미군 제2보병사단 제3보병연대 소속 '로버트 베일스' 하사는 M203 유탄발사기를 장착한 M4 카빈 소총과 M9 권총에 야간 투시경과 방탄조끼까지 착용하고 중무장상태로 부대를 빠져 나왔다. 그는 전투복 위에 아프가니스탄 전통 의상을 걸쳐 위장까지 했다.

베일스는 부대에서 약 1.6㎞ 가량 떨어져 있는 발란디와 알코자이 마을의 농가 세 곳을 습격해 잠을 자고 있던 마을 주민 16명을 학살했다. 그 중에는 어린이 9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베일스는 농가에 사살한 시체를 몰아넣고 불을 지르는 등 용의주도하게 증거인멸을 시도했지만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주민의 신고로 체포되었다. 베일스는 살인 16건, 살인미수 6건, 폭행 7건 등의 혐의로 군사법원에서 사형 판결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유죄를 인정하는 '플리바겐'으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간 동안 희생된 민간인은 수십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미국은 민간인 희생자들의 통계를 내는 것조차 포기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은 더 이상 교전 중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다. 미군은 재미와 취미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미군들(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미군의 상당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다)은 살인들을 통해 전쟁의 압박감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베일스도 동료가 반군의 폭탄 공격으로 사망한 후 범죄를 계획했다고 한다.

<론 서바이버>는 또 다른 형태의 '미국 만세' 영화다. 하지만 1980~1990년대 '람보' 류의 전쟁영웅과는 다르다. 과거 미국의 영웅들은 람보처럼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 버리며 미국인들을 열광 시켰다. 하지만 더 이상 미국의 전쟁영웅들은 승리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일 뿐이다. 최근 할리우드의 전쟁영화에서 미군은 영웅이 아니라 순교자나 희생자처럼 묘사된다. 이 같은 '미국 만세' 영웅의 변화는 현재 미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에 중복 게재됩니다.
론 서바이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네이비 씰 레드윙 아프가니스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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