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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시민들이 직접 쓴 '부치지 못한 편지' 50여 통이 서울 청계광장에 설치된 농성장 게시판에 걸려 있다. 노란 편지지에 펜을 꾹꾹 눌러쓴 편지가 눈에 띄었다.
 14일 오전, 시민들이 직접 쓴 '부치지 못한 편지' 50여 통이 서울 청계광장에 설치된 농성장 게시판에 걸려 있다. 노란 편지지에 펜을 꾹꾹 눌러쓴 편지가 눈에 띄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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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0대 할머니가 두 손자에게

60대 할머니는 두 손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할머니는 손자가 무럭무럭 자라 '개념 충만 시민'이 되길 기원했다. 또 돌아오는 '4·19혁명기념일'에 거리의 함성이 청와대까지 전해지기를 바랐다.

"지금은 어려서 잘 이해할 수 없겠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무려 60여 년이 넘게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려 온 역사가 있단다. 할머니 같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한 머지않아 실현되리라 믿는다. 너희들도 어서 자라 개념 충만한 시민이 되어다오."

#2. 서울에 사는 김은희씨가 친구에게

김은희씨는 24년 전, '4·19혁명기념일'을 떠올렸다. 당시 대학생이던 그는 학생행진에 참가했었다. "혁명 정신을 계승하자", "김주열 열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며 구호를 외쳤다. 그는 당시 함께 했던 친구에게 편지를 남겼다.

"아버지가 집회 나가는 것을 알고 못 나가게 하실 때, 항상 속으로 항변했어. '아버지께서 좀 좋은 세상을 물려주시지, 왜 이런 세상을 물려주셨어요?' 그런데 벌써 내가 나이를 먹어 얼마 후면 우리 자식에게 그런 소리를 듣게 됐어.

친구야,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지금 이 순간에 누구에게나, 그리고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내 몫이 있는 것 같아. 우리의 가슴에 살며시 촛불을 들자. 4월 19일 함께 촛불을 들고 희망을 꽃을 다시 피워보자."

4·19 앞두고, 민주주의 회복 편지글 50여 편 보내져

부치지 못한 편지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꾹꾹' 누른 펜 자국이 노란 편지지에 남기기도 했고, 출력해온 편지지도 눈에 띄었다. 보낸 곳도 전국 각지다. 서울, 부산, 대구에서부터 섬나라 제주도도 있다. 대상도 다양하다. 60대 할머니가 두 손자에게 편지를 쓰기도, 의인화한 촛불에게도, 미래의 후손에게도 편지를 남겼다.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아래 국정원 시국회의)는 지난 8일부터 시민들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받고 있다. 매일 진행되는 촛불 집회 참석자들도 편지를 남겼다. 14일 오전까지 50여 통의 편지가 서울 청계광장 국정원 시국회의 농성장에 게시판에 붙었다. 이 캠페인은 19일, 4·19혁명 54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AGAIN 4.19' 행사의 일환이다. 오는 19일에는 '10만 국민 촛불 대행진'이 이어질 예정이다.

편지 내용과 형식에는 제한이 없다. 4·19혁명기념일에 맞아, 가슴 속에묻어 두었던 솔직한 마음을 담으면 된다. 편지를 보낼 사람은 오는 19일까지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1가 1번지 박석운·백은종' 앞으로 보내면 된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와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지난달 29일부터 농성장에서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단식은 19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관련기사 : 선거조작, 이번 지방선거도 다르지 않습니다)

30대 직장인 "다른 날은 다 쉬고, 19일만은 나오시라"

국정원시국회의는 오는 19일까지 '부치지 못한 편지'를 받는다. 편지를 보낼 사람은 보내는 곳에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1가 1번지 박석운, 백은종'으로 쓰면 된다.
 국정원시국회의는 오는 19일까지 '부치지 못한 편지'를 받는다. 편지를 보낼 사람은 보내는 곳에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1가 1번지 박석운, 백은종'으로 쓰면 된다.
ⓒ 국정원시국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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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편지에는 훼손된 민주주의에 걱정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경기도 양주에 사는 장아무개씨는 100일을 앞둔 딸에게 편지를 썼다. 장씨는 "대통령이라는 어른은 원칙을 어기고 온갖 더러운 짓을 통해 당선됐다"며 "할아버지, 할머니같이 착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만들어온 정의를 악당들에게 빼앗길 수 없다"고 썼다.

또 장씨는 "이런 세상을 두고 볼 수 없어 4월 19일에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목소리를 높일 것"며 "너도 좀 더 커서 세상을 배우면, 힘을 합쳐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남겼다

한 30대 직장인은 집회 참가를 독려하는 편지를 남겼다. 자신을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30대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그는 지난 12일, 촛불집회에 나왔다가 편지를 썼다. '5일 중 3일 야근, 주말에는 실신한다'는 그는 19일 국민행진에 참가를 호소했다.

"누군가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직장인들에겐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살 때 가장 환영하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미소를 짓는 이들은 바로 저 귀 닫고 눈먼, 썩은 정권입니다.

부정선거로 당선돼도, 그 사실이 낱낱이 밝혀져도 당당합니다. 직장인, 서민 삶을 대변할 정권 꼼꼼히 살펴보고 투표 했는데도 제 소중한 한 표는 어디로 갔는지 이제 알 수가 없습니다."

이어 그는 "해야 할 일이 바쁘고, '나 하나 참가한다고 뭐가 바뀌겠냐'고 생각하기도 했다"며 "4월 19일 이곳에 다시 오겠다, 여러분도 다른 날은 다 쉬고, 이날만은 오시라"고 글을 남겼다.


태그:#국정원시국회의, #부치지 못한 편지, #AGAIN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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