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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C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연매출 300억 원이 넘는, 구미지역 공단에 있는 반도체 회사다. KEC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700명 정도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복수노조 시행 이후, 전국 최초로 회사에서 주도하는 어용노조가 득세했다. 지금은 173명의 노동자들만이 남아 민주노조를 지키고 있는 사업장이다.

쌍용차 해고자인 내가 쌍용차 문제가 아닌 KEC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지난 5년 동안 민주노조를 지켜왔던 그들이 이번 주 목요일 4월 17일 정리해고를 당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2012년 정리해고의 이은 두 번째 정리해고다.

기숙사에서 자던 여성노동자를 오밤중에 쫓아냈다

2012년 5월 22일 오전 경북 구미 KEC 공장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2012 경북지역 도보순회투쟁'2일차 행진에 앞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
 2012년 5월 22일 오전 경북 구미 KEC 공장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2012 경북지역 도보순회투쟁'2일차 행진에 앞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
ⓒ 노동과세계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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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C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지 23년이 되었다. 하지만 금속노조 전체 사업장에서 봤을 때 매년 파업을 이어가는 속칭 '강성노조'가 아닌, 회사가 어렵다고 하면 임금을 동결하자고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로 온건(?) 성향의 노동조합이었다고 한다. 2010년, 몇 년간의 임금동결을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이 임금교섭을 요구하고 파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회사는 임금동결을 권유하던 안면을 바꾸고 파업 첫날 바로 '직장폐쇄'라는 강수로 응대했다.

늘 어렵다던 회사는 용역깡패를 고용할 돈은 남겨둔 것일까. 일당 몇 십만 원이나 되는 400명의 용역깡패를 고용하고 기숙사에서 자고 있던 여성 노동자들을 오밤중에 쫓아냈다. 영문도 모른 채 용역깡패들이 저지르는 폭력에 떨었을 누군가의 누이와 딸들은 사측의 일방적인 폭력에 굴하지 않고 공장점거파업 등 싸움을 이어갔다. 늘 가족이라고 하던 회사의 잔악한 태도가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금속노조 구미지부 김준일 지부장은 KEC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점거파업 중이었다. 그런데 회사가 교섭하자고 불러낸 장소에는 경찰이 잠복해 있었다. 경찰은 연행을 시도했고 결국 김 지부장이 항의해 분신하는 억장 무너지는 일도 일어났다. 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측과 경찰의 교활함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문제가 확산되자 정치권이 중재에 나섰다.

정치권의 중재는 국회의원 몇 명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선 자본과 노동자 모두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정치권의 중재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늘 노동자에게만 양보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자본은 한 뼘도 양보하지 않았고, 노동자들만이 파업을 철회하고 공장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정치권이 나서는 사회적 합의란 그랬다. 자본은 언제든 파기할 수 있고, 노동자들만이 꼭 지켜야 하는 약속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합의 이후 그 사회적 합의를 이행한 자본은 어디 있으며, 또 그걸 강제한 정치는 어디 있었는가? 내 기억엔 없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철회하고 복귀한 후로 회사의 악랄함은 더해갔다. 어떻게 하든 노동조합을 없애려고 노조사무실 주위에 펜스를 치고, 노조간부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정문을 봉쇄했다. 복귀한 노동자들에겐 '창조', '개혁', '실천'반이라는 이름으로 나눠 각기 다른 색깔의 옷을 입히고, 묵언수행을 강요하고, 명심보감을 외우게 하고, 반성문을 쓰게 했다. 또한 시험 문제의 답을 <다나가라>로 출제하는 웃지도 못할 작태로 노동자들에게 반인권적인 모멸감을 주었다.

그렇게 갖은 수를 다 쓰던 자본은 어용노조를 세우는 것으로 화룡정점을 찍었다.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에게만 공장점거파업을 이유로 15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금속노조 탈퇴를 강요했다. 손해배상 재판 때문에 하나 둘 회사를 그만두기도 하고, 어용노조로 넘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파업에 나선 김준일 지부장과 노조간부 몇 명은 감옥에 갇혔다. 결국 자본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게 완벽해져 갔다.

미친 자본에 맞설 때는, 스스로 미쳐야 한다

2012년 5월 22일 오전 경북 구미 KEC 공장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2012 경북지역 도보순회투쟁'2일차 행진에 앞서 KEC지회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2년 5월 22일 오전 경북 구미 KEC 공장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2012 경북지역 도보순회투쟁'2일차 행진에 앞서 KEC지회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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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50억 손해배상 가압류에 어용노조를 만들고, 노동조합 간부 몇몇을 감옥에 보내면 고분고분해질 거라 생각했던 노동자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노동조합 사무실을 경조사 때만 방문했던 노동자들이 부지기수였던 KEC 노동자들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노동조합이 우선인 노동자들로 변해갔다. 또한 회사의 말도 안 되는 탄압에 맞선 싸움을 질기게 이어나갔다. 아주 격렬하게 싸움을 이어가지는 않았단다.

여성 조합원이 많은 이유도 있었지만 심각한 투쟁보다 즐겁게 투쟁하는 것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조합원 전체가 율동을 배워 칼 군무를 한다던지, 공장 정문 앞에서 노래방 기계를 가져다 놓고 신나게 노래를 불러 제끼기 일쑤였단다.

이렇게도 안 되고 저렇게도 안 되자 2012년 2월, KEC 자본은 결국 정리해고의 칼날을 빼어들었다. 매년 흑자였던 회사가 경영상의 위기라고 선언하면서부터 갑자기 정리해고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회생할 수 없는 가짜위기가 생겨났다. 갑자기 생겨난 그 위기에 민주노조에 속한 노동자 75명만 정리해고를 예고했다. 그리고 그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생기는 돈으로 회사 임원과 관리자들의 임금을 매년 7%씩 인상하겠다는 내부문건이 발견됨으로써 사람들을 또 한 번 경악게 했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회사는 뻔뻔하게도 임금삭감에 동의해 주면 정리해고를 철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짜맞춘 듯 어용노조는 무급휴직과 상여금 300% 임금삭감이 포함된 노사합의에 동의해주고 만다. 그러나 회사는 곧이어 2012년 2월 24일, 민주노조 75명의 노동자들만 보란 듯이 정리해고 한다. KEC노동자들은 공장 안팎으로 정리해고싸움에 물러서지 않았고 미친 회사에 맞서 더 미치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미친 자본에 맞서 싸울 때 노동자들 스스로도 미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임금도 삭감하고 정리해고도 자행한 KEC 자본은 2012년 5월, 노동자들의 물러섬 없는 투쟁에 놀라고, 불법적인 정리해고로 인해 법적으로도 궁지에 몰리자 돌연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애당초 계획했던 임금삭감에 만족한다. 그렇게 자본에게는 무조건 양날의 보검이고, 노동자들에게는 삶의 모든 것을 빼앗는 정리해고가 철회되었다.

그리고 2014년 3월 다시 148명의 정리해고를 예고했다.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임금삭감만 한다면 정리해고를 철회하겠다고 으름장을 먼저 놨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용노조도 선뜻 동의해주지 않는다. 회사의 주장대로 임금을 삭감한다면 그 임금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KEC 노동자들은 어용노조 조합원에게 임금삭감을 받아들이지 말라 호소했고 어용노조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통한 파업권을 확보했다. 그리고 회사는 2014년 4월 17일 어용노조를 포함한 148명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강행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KEC노동자들의 눈빛에는 해고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 쌍용차 해고자인 나에게 해고란 늘 관계의 단절과 죽음으로 향하는 출입구 같은 것이었는데 그들에게 해고란 마냥 말도 안 되는 것이었고 질기게 싸우면 넘을 수 있는 문제인 듯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해고당하는 날, 가당치 않게도 결의대회가 아닌 '봄 소풍'을 제안했다. 절박하게 싸우고 싶지 않더란다.

해고가 공포스럽고 두려운 것으로 계속 존재한다면 해고에 맞선 우리들의 싸움은 앞으로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나 같은 해고자들 그리고 해고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이들이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이 땅의 정리해고를 없애자는 취지의 봄 소풍을 함께 하자고 이야기했다. 정리해고, 이게 원래 말도 되지 않는 거 아니냐고, 이참에 확 없애버려야 하지 않겠냐고. 참 발칙하지만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봄이다. 산과 들에서 품어내는 꽃들의 자태에서 '완연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봄내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나는 희망이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라 확신하는 KEC노동자들을 통해서 진짜 봄을 느꼈다. 노동자들의 봄은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4월 17일 대한문 오전 9시에 노동자의 봄을 함께 만들 당신을 기다리겠다.  

KEC정리해고에 맞선 봄소풍, 동변상련
 KEC정리해고에 맞선 봄소풍, 동변상련
ⓒ 유성희망버스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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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고동민님은 쌍용자동차 해고자입니다. KEC정리해고를 막기위한 동변상련 행사는 4월 17일(목) 오전 9시에 대한문에서 출발합니다.



태그:#정리해고, #KEC, #봄소풍, #동변상련, #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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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복직자. 현재 쌍용차지부 조합원. 훌륭한 옆지기와 살고 있는 세아이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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