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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2번'이 부활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당원과 국민여론조사를 통해 기초선거에서 공천을 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지방선거를 불과 55일 앞둔 시점에서야 비로소 '선거의 룰'이 확정됐다. 최근 골목마다 빨간색 옷을 입은 '예비후보 1번'의 새누리당 기초선거 후보들 모습만 보였었는데 이제는 '예비후보 2번'의 바다파랑 옷을 입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 모습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뮬레이션까지 했었는데... 충격의 7시간 보낸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론조사+권리당원 투표'를 통해 6.4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0일 오후 안철수 공동대표가 국회에서 입장을 밝힌 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생각에 잠긴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론조사+권리당원 투표'를 통해 6.4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0일 오후 안철수 공동대표가 국회에서 입장을 밝힌 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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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공동대표의 충격이 컸다. 공천인지 무공천인지 결정이 나면 곧바로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었던 안 대표와 김한길 대표는 그로부터 7시간이 지난 오후 4시에야 TV화면에 얼굴을 보였다. 회견이 지연된 것은 안 대표의 '두문불출'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10일 오후 한때 안 대표 '사퇴설'이 나돌기도 했다.

안 대표는 '공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싶다. 오전에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받은 뒤 굳은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오던 안 대표는 "대표직은 위임받은 권한일 뿐"이라며 "이것이 국민과 당원의 뜻이라면 따르겠다"고 짧게 밝히고는 점심도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등 7시간 동안 장고의 시간을 보냈다.

제1야당의 대표이자 유력한 대선주자인 안 대표는 끝까지 '무공천'을 고집했다. '당원 + 여론조사'를 결정하고 시행하는 9일 안 대표는 "(여론조사 실시는) 제 소신을 접고 후퇴하겠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다시 한 번 당원동지들과 국민 여러분의 확인을 받아 더 굳세게 나가자고 하는 게 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생각과 당원, 국민들의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내부투쟁'의 성격이 짙었던 것이다.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안 대표에게는 '새정치'의 성과물이 시급했다. 201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그 때부터 상징문구로 사용하고 있는 '새정치'의 정의가 끊임없이 시험 받고 조롱 당하던 상황에서 안철수는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새정치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고 깔끔하게 정의했다. 차기 대선을 노리는 그에게는 '새정치'의 성과를 보여주는 게 당면과제였다.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지난 대선 당시 공약을 지킴으로써 박근혜 대통령과 대비되는 그림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당원+여론조사'를 실시해도 '무공천' 결과가 나올 것으로 확신했던 분위기다. 민병두 의원이 한 라디오프로에 나와서 언급했던 '지난 주말 실시한 2회 시뮬레이션' 결과 발언도 안 대표가 '정면돌파'를 선택한 든든한 배경으로 해석된다. 시뮬레이션까지 하는 치밀한 준비를 하고 '거사'를 도모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53.44% vs. 46.55%, '공천'이었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문재인 후보의 득표율과 유사한 초박빙의 결과로 새정치연합 창당 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오랜 논란은 일단락이 됐다.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안 대표는 7시간 동안의 긴 생각을 마무리하고 나와 "오늘 이후 당원의 뜻을 받들어 선거 승리를 위해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모두 흘리겠다"고 다짐했다.

당원 투표와 국민여론조사의 '다른 항목', '잘 모름'의 의미

공천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당원 + 국민여론조사'의 결과였다. 응답한 당원의 57.14%가 '공천', 42.86%가 '무공천'을 택했다. 국민여론조사 결과는 공천 49.75%, 무공천 50.25%로 거의 동일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무공천'이 어쨌든 높았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분위기다. <조선> 등에서는 '민심 누른 당심'으로 나름 빈틈을 포착해 보도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소위 '민심'으로 해석되는 국민여론조사 결과에는 의미심장한 수치가 공개됐다. 두 곳의 여론조사기관에서 각 1000명씩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했는데 권리당원 투표와는 달리 '잘 모름' 항목을 포함시켰다. '잘 모름'을 선택해도 표본은 유효한 것이다. 마지막에 단계에서 '잘 모름'이라는 부분을 빼고, '공천해야 한다'와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를 다시 백분율로 환산하는 룰이었다.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표본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연스레 비 새누리 성향 유권자들이 응답한 것이다. A기관의 경우 '잘 모름'이 25.5%였고, B기관의 경우 '잘 모름'이 17.5%였다. 산술평균해 보면 '국민여론조사'에 참여한 비 새누리 성향의 유권자 중에서 안철수 대표가 청와대를 방문하는 등 여론을 최고치로 환기시킨 후 실시한 '공천, 무공천' 질문에 무려 21.5%가 '잘 모름'을 택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10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석현 관리위원장은 '잘 모름' 문항을 넣었던 것에 대해 "여론조사 항목에 '잘 모름'이 안 들어가면 정확한 결과가 안 나온다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해서 '잘 모름' 항목을 넣었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잘 모름'으로 응답한 21.5%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이번 지방선거 승패를 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비 새누리 유권자 중에서 '공천, 무공천'으로 응답한 약 80%의 유권자들은 적극적 정치행위를 한 것이다. '공천'을 선택한 유권자들은 1:1로 맞붙어서 승리할 것을 기대했을 것이고, '무공천'을 택한 유권자들은 대선공약으로 내걸어놓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나름의 '응징' 행위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잘 모름'을 택한 비 새누리당 성향의 21.5%의 의미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론조사+권리당원 투표'를 통해 6.4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0일 오후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국회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론조사+권리당원 투표'를 통해 6.4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0일 오후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국회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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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새누리 유권자 중 21.5%, 도대체 이 수치의 의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공천'과 '무공천'이 0.5% 차이 밖에 나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이 수치는 막대하다. 투표기권자일 뿐이니까 무의미한 수치에 해당하는 것일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선거에 관심 없는 무당파일 뿐이라면 응답률 10%에 불과한 전화면접조사에 답할 유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석을 하자면 '잘 모름'으로 응답한 유권자는 크게 두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먼저, 정말 잘 모르겠어서 '잘 모름'을 택한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공천을 해서 이겼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무공천을 해서 안 대표가 새정치를 이어나갔으면 하는 마음도 갖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하고 싶었던 유형들인데 '소극적 안 대표 지지'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다음이 중요한데 성향상으로는 비 새누리당인데 야당지지에서도 한발 물러선 '시니컬한 잘 모름' 유권자들로 분석된다. 이들은 지난 대선 당시 양당 후보만큼 안철수가 빅3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고 최근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진 성향으로 해석된다. 성향은 중도 무당파이고 전에는 안철수에 호의적인 세력, 즉 집나간 토끼에 해당된다. 그리고 안철수 간판으로 치러지는 6·4 지방선거에서 안철수의 성패는 이들 뛰쳐나간 집토끼들에 달려 있다고 분석된다.

10일 오전 '공천'으로 확정되는 보고를 받던 안철수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번 여론조사를 통해 안철수는 잃은 것도 크지만 반면에 얻은 것도 존재한다. '무공천' 소신에 동의했던 새정치연합 내부의 구민주당 의원들을 자파세력군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또 '시뮬레이션' 등 사전 철저한 준비를 했어도 민심이란 것은 예측이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 지지율 하락과 관련하여 '떠난 집토끼'를 확인할 수 있는 조사결과를 받아들었다는 점도 성과에 해당한다.

안철수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새정치라고 했다. 10일 자신의 '무공천' 약속이 파기됨을 사과하는 자리에서 안철수는 다시금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위해 한 방울의 땀까지 다 쏟겠다고 약속했다. 굳은 표정,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가 그런 각오로 골목을 누비면 다시 울림을 받을 수 있는 '잘 모름'이 상당수 존재할 것이다. 이번에는 그가 약속을 지키는 새정치를 할 수 있을까? 선거는 본격적인 국면으로 들어섰다.


태그:#국민여론조사, #잘모름,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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