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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의 역습이 심각하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입자가 10마이크로미터 이하)는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가 타면서 발생한 유해물질이다. 공장 매연이나 자동차의 배기가스 등에서 나오는 황산염, 질산염 등이 주성분이다. 지난해 10월 세계보건기구(WHO)가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바 있다. 인간 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먼지가 인간을 괴롭히는 셈이다.

사람들은 먼지 농도에 민감해졌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먼지는 대기 중에 떠다니다가 건물과 자동차, 그리고 도로 등에 내려앉는다. 특히 터널 벽이나 바닥에 쌓이고 쌓인 먼지는 단단하게 굳어져 떨어져나갈 줄 모른다. 터널 안에서 잠자고 있는 먼지들과 사투를 벌이는 이들이 있다. 터널 먼지 제거에 나선 청소노동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지상] 서울 내부순환도로 홍지문·정릉터널

서울시공단 도로관리처 시설팀 직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부순환도로 정릉터널에서 노면살수차를 동원해 터널 내부에 비산된 먼지와 잔해를 고압수로 세척하고 있다.
 서울시공단 도로관리처 시설팀 직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부순환도로 정릉터널에서 노면살수차를 동원해 터널 내부에 비산된 먼지와 잔해를 고압수로 세척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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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공단 도로관리처 시설팀 직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부순환도로 정릉터널에서 터널램프의 이물질 제거와 불량 등을 점검하고 있다.
 서울시공단 도로관리처 시설팀 직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부순환도로 정릉터널에서 터널램프의 이물질 제거와 불량 등을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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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안으로 달려드는 자동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70km 제한속도를 비웃는 듯 자동차들은 '쌩쌩' 달렸다. 터널을 통과하는 시내버스 안에서는 '잠시 후 터널을 통과하오니 여러분들의 건강을 위해 창문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자동차가 뿜어내는 매연으로 생긴 먼지가 터널 안에 잔뜩 쌓여 있기 때문이다.

9일 오후 11시 35분부터 서울 내부순환도로 정릉터널의 성산 방면 좌측 1개 차로가 통제됐다. 터널 입구에서 300m 떨어진 지점에 안전신호차가 배치됐다. 터널 청소와 시설물 보수를 위해서다. 청소는 자정부터 오전 4~5시까지 진행된다. 이날은 홍지문·정릉터널 총길이 3540m의 벽면을 닦게 된다. 두 터널은 두 달에 한 번 몸을 씻는다.

작업 장소로 출발하기에 앞서 서울시설공단 도로관리처 시설팀 소속 직원 10여 명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방진복을 입고 분진 마스크도 꼈다. 그 위에 안전모와 야광조끼를 입었다. 조끼 등부분에는 '시설관리 내집처럼, 시민고객 가족처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중 박순열(46), 이태선(37), 윤영훈(54)씨는 세척전담팀이다. 공단이 관리하는 올림픽도로, 내부순환도로, 강변북로 등 자동차전용도로 내 가드레일, 가로등, 방호벽 등의 세척을 맡고 있다. 이날은 두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야간 작업이다.

청소 행렬은 다목적세척차-진공흡입차-노면살수차-사다리차 순이다. 세척차가 시속 3km로 이동하면서 터널 왼쪽 벽면을 닦기 시작했다. 이어 진공흡입차가 도로면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그 뒤에 있던 노면살수차가 도로 위에 물을 뿌렸다. 물은 배수로로 곧장 빠져나갔다. 이태선씨가 행렬 끝에서 벽면의 전등, 소화전, 긴급전화기 등을 닦았다. 30m에 달하는 청소 행렬이었다. 이 행렬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이어졌다.

선두에 선 다목적세척차는 지난 2005년, 박윤용 시설팀장이 고안해 만든 것이다. 차 앞면에는 가드레일 세척기가 양쪽 옆면에는 12개의 분사기가 물을 뿜는다. 지붕에는 도로 방호벽과 방음벽을 청소할 수 있는 세척기도 달렸다. 현재까지는 한국에서 유일한 존재다. 세척차가 없던 시절에는 20~30명의 공단 직원이 일일이 호스로 물을 뿌리면서 터널 내부를 닦아냈다. 말그대로 막노동이었다.

"먼지 닦는데, 길 막는다고... 침 뱉고, 기저귀 던졌다"

서울시공단 도로관리처 시설팀 직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부순환도로 정릉터널에서 터널배부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분주히 청소하고 있다.
 서울시공단 도로관리처 시설팀 직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부순환도로 정릉터널에서 터널배부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분주히 청소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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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공단 도로관리처 시설팀 직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부순환도로 정릉터널에서  다목적세척차 동원해 터널 내부에 비산된 먼지와 잔해를 고압수로 세척하고 있다.
 서울시공단 도로관리처 시설팀 직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부순환도로 정릉터널에서 다목적세척차 동원해 터널 내부에 비산된 먼지와 잔해를 고압수로 세척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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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박순열씨가 운전하는 다목적세척차에 올랐다. 운전대 옆으로 제어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운전대를 잡으랴, 제어 장치 신경쓰랴 박씨의 두 손은 바빴다. 무전기로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세척차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박씨의 가장 큰 고충은 작업차량을 고속으로 스쳐지나가는 터널 내 다른 자동차들의 위협이다. 이날처럼 세척차 안에서 작업할 때도 있지만 보호 장치 없이 맨몸으로 세척차에 메달릴 때가 많다. 터널 안을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때문에 박씨는 바짝 긴장한다.

"자동차전용도로는 밤이 되면 '아우토반'이 돼요. 경쟁하듯 규정 속도를 무시하는 차들이 많아요. 저희끼리는 (그런 차들을 두고) 날아다닌다고 하죠. 그런 차들 옆에서 작업하면 간담이 서늘하죠."

오히려 박씨에게 터널 안 먼지는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는 "먼지를 많이 먹은 날에는 꼭 집에서 삼겹살을 챙겨 먹는다"며 "먹고 한 숨 자고 나면 숨 쉬는 게 조금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년에 한 차례 건강검진을 받는데, 몸에는 큰 문제가 없다"면서도 "터널 청소는 장비가 움직이고 차가 달리니까 소음이 좀 심하긴 하다"고 토로했다.

안전신호차 운전자인 윤씨는 늘 다른 자동차 운전자들의 불만이 걱정된다. 윤씨는 '왜 도로를 막았냐'는 그들의 분노와 짜증을 온전히 받아내야 한다. 차선 통제가 교통 정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는 터널 먼지를 청소하다가 다른 자동차 운전자가 던진 음료수 캔에 맞기도했다. 어떤 운전자는 윤씨를 향해 침을 뱉기도 했다.

"무슨 폭탄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지나가던 자동차 운전자가) '길 막아 놓고 뭐하냐'며 음료수 캔을 던진 거예요. 예전에는 (아기) 기저귀를 던져서 세척차량 유리에 오물이 묻기도 했었어요. (그 사람들로부터) 별의 별 욕을 듣는 것은 예사죠."

윤씨는 "운전대를 잡으면 성격이 이상해지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터널 내 도로를 막은 이유는 바로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아니겠냐"며 "(시민들이) 도로에서 청소를 하는 저희들을 조금만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하]서울 지하철 4호선 남태령-동작 지하 터널


청소용역업체 직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지하철 터널에서 고압살수차를 동원해 지하철 터널 내부에 붙은 먼지와 부유분진을 초고압으로 제거하고 있다.
 청소용역업체 직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지하철 터널에서 고압살수차를 동원해 지하철 터널 내부에 붙은 먼지와 부유분진을 초고압으로 제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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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만 서울 시민 450만여 명(평일 기준)이 이용하는 지하철. 이 지하철이 다니는 터널부에는 전동차 바퀴와 선로의 마찰로 쇳가루 먼지가 발생한다. 지하 터널의 환경은 곧 시민 건강과 연결된다. 터널 청소는 누가, 어떻게 진행할까.

9일 오전 1시, 지하철4호선 남태령역을 찾았다. 30분 뒤 남태령역부터 동작역 사이, 5km 지하 터널 구간에 전기 공급이 차단됐다. 그제서야 청소노동자들은 남태령역 승강장 차단문을 열고 선로로 내려갈 수 있었다. 터널 내 몇몇 점등이 어둠에 희미한 빛을 밝혔다. 그 불빛에 비친 터널 벽에는 먼지 덩어리가 뭉쳐 있었다. 기자가 손가락으로 벽을 그었더니 시커먼 먼지가 묻어나왔다.

200미터를 넘게 걷다가 '웅'하는 엔진 소리가 들렸다. 터널 한 쪽에 대기 중이던 고압살수차1호였다. 이 육중한 기계 위, 아래, 양 옆에 달린 76개 분사기가 매일 밤 2만 여 톤의 물을 쏟아 낸다. 수압은 소방차 소방 호스의 5배에서 20배에 달한다. 물은 터널 내 벽과 천정, 레일을 씻는다. 여름철에는 물에 소독약을 섞어 지하에 서식하는 해충을 잡는다. 이 살수차는 지하철 3, 4호선을 책임지고 있다. 지하철 1, 2호선을 책임지는 살수차는 따로 있다.

76개 분사기의 2만톤 물, 터널을 닦다

청소용역업체 직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지하철 터널에서 고객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물 세척작업과 각종 시설물 점검을 하고 있다.
 청소용역업체 직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지하철 터널에서 고객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물 세척작업과 각종 시설물 점검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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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용역업체 직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지하철 터널에서 고객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고압살수차를 운전하며 세척작업을 하고 있다.
 청소용역업체 직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남태령 지하철 터널에서 고객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고압살수차를 운전하며 세척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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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

"저 앞에 토목 작업자들 있습니다. 천천히 가세요."

경적이 울렸다. 살수차 책임자 김태영(54)씨가 저속 운전을 주문했다. 살수차는 시속 5km에서 속도를 더 낮췄다. 어둠 속에 몇몇 인부들이 몸을 피했다. 물은 왼쪽 분사기를 통해 여전히 터널 내부로 쏟아졌다. 콘크리트 벽에 붙어 있던 시커먼 먼지가 물의 공격을 받고 바닥에 떨어졌다. 이 물은 수로를 통해 외부로 빠져나간다.

김태영씨는 25년째 '지하 생활자'다. 막차가 끊기고 나서야 일을 시작하는 열차 정비 일을 계속해 왔고, 올해부터 이 살수차 운영을 맡게 됐다. 그는 베테랑 기관사들과 일을 하고 있다. 전직 기관사들인 박재수(60), 김인환(62), 송기수(60), 윤종범(60)씨가 앞뒤 운전석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기관사를 퇴직한 이후 용역업체 직원으로 재취업해 터널 청소를 하고 있다. 서울메트로 직원인 김태영씨가 이들을 감독하고 있다.

지하철 터널 청소를 위한 살수차가 도입된 것은 지난 2005년이다.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된 것은 1974년이다. 30년 넘게 승강장을 제외하고는 선로 내부 청소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30년이나 묵은 때를 처음으로 씻어내던 그 날에 대해 김씨는 이렇게 전했다.

"벽에 물을 뿌렸더니, 30년 묵은 '땟국물'이 살수차에 다 튀었대요. 그래서 차를 닦는 데에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직원들은 모두 분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는 먼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건강에 이상이 없냐는 질문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박재수씨는 마스크를 잠깐 들어 "내 직업이니까 감수하고 한다"며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운전 시스템 모니터를 보고 있던 김인환씨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몇 번을 재차 물어서야 김씨는 "평생 지하에서 살았지만 몸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짧게 말했다. 기계가 쏟아내는 물과 엔진음이 터널을 지배하고 있었다.

작업을 잠시 쉬는 시간, 살수차가 지나온 구간을 되돌아갔다. 촉촉해진 벽면은 이전보다 선명했다. 약지로 벽을 그어보니 여전히 먼지가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보다 농도가 약했다. 김씨는 "살수차 운행으로 연간 8~28.5%의 미세먼지 저감 효과를 얻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민들의 쾌적한 지하철 이용을 위해 야간에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지하철 먼지는 저희가 책임지겠다"고 큰소리로 말했다. 이날 청소 작업은 새벽 4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태그:#터널 청소부, #미세먼지, #황사, #서울시설공단, #서울메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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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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