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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의 안전에서부터 에너지 대안까지 방사능 시대에 알아야 할 모든 것
▲ '탈핵학교' 책 표지 방사능의 안전에서부터 에너지 대안까지 방사능 시대에 알아야 할 모든 것
ⓒ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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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남 영광군에 살고 있다. 잦은 고장과 부실 부품 납품 비리 문제로 바람 잘 날 없는 영광 한빛원전으로부터 불과 30여km 떨어진 곳이다.

6년 전 이곳으로 귀촌했는데, 그동안은 집 근처에 원전이 있다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살았다. 간혹 영광원전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뉴스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보면서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만큼 무지했고 무감각했다.

무식한 아줌마에게도 각성의 순간은 왔다.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는 원전에 대한 무지와 방관자적 태도를 반성케 해준 계기였다.

이제 인류 문명은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했던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핵에 기대어 화석연료 고갈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시도가 얼마나 끔찍하고 되돌이킬 수 없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방사능 공포에 참치 끊고 이틀에 한 번은 미역국

당장 밥상부터 달라졌다. 일본산 수산물이 추방됨은 물론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 방사능에 오염될 가능성이 있는 생선들도 밥상에서 사라졌다. 덕분에 즐겨 먹던 참치를 끊었다.

일본에서부터 해류를 타고 태평양을 순환한 방사능 물질이 한반도 근처로 돌아오려면 5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5년 후에는 한반도 인근 해에서 잡히는 생선들도 위험하다. 자주 먹는 것도 생겼다. 방사능 물질 해독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는 미역, 김과 같은 해조류는 밥상의 붙박이 반찬이 됐다.

방사능에 피폭되면 암, 유전병, 심장병 등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방사능 피폭 경로 중에 가장 많은 양이 한꺼번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음식을 통한 피폭이다. 피폭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먹거리 안전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과는 동떨어져 높게 설정된 방사능 기준치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슘만으로 피폭량을 계산하는 엉터리 계산법도 바로 잡아야 한다.

핵반응이 일어나면 세슘뿐만 아니라 100여 가지의 방사능 물질이 나온다. 전체 방사능 중에서 1%가 채 안 되는 세슘만으로 피폭량을 계산하는 것은 방사능 위험을 축소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방사능 위험을 통제하고 먹거리 안전을 확보해야 할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면 현실로 닥친 방사능의 공포 앞에서 국민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고작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잘 구별해 먹는 것뿐이다. 방사능 위험이 확산할수록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도 줄어들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 안전은 알아서 지키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핵 위험,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벗어날 수 있나

그래서다.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핵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적어도 핵 앞에서는 내 이웃이 위험한데 나만 안전할 수는 없다. 핵 위험과 방사능 공포는 그만큼 광범위하고 치명적이다. '탈핵'을 실현하기 위해 공부와 연대가 필요한 이유다.

<탈핵 학교>는 의학적, 공학적, 역사적, 사회적, 윤리적, 종교적 차원에서 종합적인 관점으로 핵발전과 방사능 문제에 대해 조명한다. 핵발전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분야의 전문가 목소리를 담았다는 이 책은 밥상의 안전을 걱정하는 주부에서부터 후쿠시마 사고를 보며 핵 발전에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은 사람이라면 읽고 공부할 만한 '탈핵 개론서' 정도 되겠다.

"현재 이른바 선진국들은 핵발전에서 서서히 손을 떼고 있습니다. 유럽이 이렇게 줄이는데 전체 개수가 동일하다면 누군가 채우고 있는 것이겠지요? 바로 아시아의 세 나라, 즉 한국, 중국, 인도가 그것을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핵 발전소 산업 자체는 성장하지 않고 있어요. 핵 발전소 산업은 지금 사양 산업의 초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후기 모습은 어떻게 될까요? 2058년이 되면 지구상에서 핵 발전소 수는 0이 될 겁니다. 이건 제 통계가 아니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통계입니다." (70쪽)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은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지만, 유독 한국만은 역주행하고 있다. 있는 것을 폐기해도 그 오염물 처리를 후대가 감당해야 할 판에 오히려 새로운 핵 발전소 짓기에 나서고 있다. 핵 발전 시스템은 중앙집중적인 통제를 필요로 하고 관련된 정보와 자료는 철저히 차단 당한다.

핵 발전소가 테러를 당할 경우 그 자체로 핵무기를 능가하는 파괴력을 가지기 때문에 국가 권력의 통제력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핵 마피아가 득세하고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당하는 것도 용인된다. 핵발전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탈핵 프로세스의 추진력은 지역 자치의 힘

다시 내가 사는 영광으로 돌아와 보자. 곧 지방선거가 있지만, 영광군수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들 중 누구에도 '탈핵'의 비전을 찾아볼 수 없다. 지역발전이라는 미명하에 그렇고 그런 개발 공약만이 난무할 뿐이다. 잦은 고장과 말썽으로 가동 중단과 재가동을 반복하고 있는 영광 한빛원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수력원자력이나 정부 내부 지침에 따르면 핵 발전소를 세우기에 적당한 입지조건으로 교육 수준이 낮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인구 과소지역이라고 규정(250쪽)"하고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시골 사람들이니 핵 발전소를 세우든 말든 아무상관없다는 식의 발상인 셈이다. 내부 식민지로 전락한 시골 농촌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광의 미래를 생각하는 군수라면 어떠해야 할까. 지역사회가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녹색으로의 방향 전환을 비전으로 세우고 추진하는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하다.

탈핵 프로세스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독일도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반핵 운동이 그 시작이었다. 중앙집중적인 핵발전에 제동을 걸고 국가적인 차원의 탈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지역의 각성과 지방자치 역량이 발동되어야 한다. 원전이 자리 잡고 있는 가난한 시골 영광이야말로 '탈핵'의 소신을 갖춘 정치 지도자가 절실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탈핵학교>(김정욱 외 11명/반비/2014년/18,000원)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탈핵 학교 - 밥상의 안전부터 에너지 대안까지 방사능 시대에 알아야 할 모든 것

김익중 외 지음, 반비(2014)


태그:#후쿠시마, #탈핵, #방사능, #에너지, #핵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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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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