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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외갓집의 제품을 담는 쇼핑백.
 무릉외갓집의 제품을 담는 쇼핑백.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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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11코스 종점에 있는 무릉2리. 160가구 540여 명이 사는 제주 서귀포시의 작은 마을이다. 제주도민에게조차 존재감이 없던 이곳이 마을기업으로 들썩이고 있다. 기업과 결연을 맺고 농부들이 자신들만의 농산물 직거래 브랜드 '무릉외갓집'을 만든 것. 딸과 외손자들을 위해 음식을 싸서 뭍으로 보내는 친정 부모의 마음을 담았다. 이들의 4년간의 노력을 담은 상설 전시회가 4일 무릉2리에서 열렸다.

제주공항에서 노령로를 타고 차로 1시간가량 가다 보면 무릉곶자왈(용암이 굳은 땅 위에 형성된 독특한 숲)을 품은 무릉2리가 나온다. 키 큰 벚나무들이 늘어서 터트린 꽃들 사이에 무릉외갓집 마켓&오피스가 서 있다.

흰색으로 외관을 꾸민 이 건물은 60평(198㎡)정도 크기로 꽤 넉넉했다. 원래 농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창고를 개조했다. 이 공간은 다양한 제철 농산물을 사는 마켓이자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들이 전시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소비자와 농부들이 직접 만나는 소통의 공간인 셈이다. 지난 2일 이곳에서 고희창 무릉외갓집 대표와 김정언 무릉2리 이장을 만났다.

무릉2리의 자존심 "무릉외갓집은 신뢰가 전부다"

고희창 무릉외갓집 대표(오른쪽)와 김정언 무릉2리 이장.
 고희창 무릉외갓집 대표(오른쪽)와 김정언 무릉2리 이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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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외갓집에는 아무 거나 못 내놔요. 그럼 망해요. 소비자들이 신뢰를 갖고 사 먹는 건데…."

김 이장은 "무릉외갓집은 신뢰가 전부"라고 말했다. 농사를 30년 넘게 한 김 이장에게 브랜드라는 개념은 생소했다. 그간 지자체에서 몇 천개씩 찍어낸 똑같은 박스를 가져다가 자신의 상품을 담아 판매했기 때문이다. 무릉외갓집이란 자신의 브랜드를 달고 나가는 농산물에 자부심과 책임감이 크다고 말했다.

"솔직히 지자체 박스에다가 담아서 팔 때는 맛 없으면 고객이 안 사 먹으면 끝나요. 근데 무릉외갓집 이름을 달고 나갔는데 맛 없으면 이건 전체에게 막대한 피해죠. 그래서 당도가 높은 최고의 상품을 엄선해요. 소비자들이 신뢰를 갖고 우리 것을 찾는 거잖아요. 우리 브랜드라는 자존심이 걸렸어요. 이렇게 안 하면 무릉외갓집은 사라질 겁니다."

또한 무릉외갓집 상품에는 편지가 함께 온다. 김 이장은 "요즘 시장 가면 중국산이 80%이상이라 도시민들이 농산물을 믿고 사 먹지 못한다"며 "우리는 한라봉이 누구네 조합원 것인지 어느 계절에 재배하는지, 요리 방법 등 소식을 함께 보낸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농산물을 도시에 알리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무릉외갓집은 무릉리 주민들이 모여 만든 영농조합법인으로 2009년 12월 첫 꾸러미 발송을 시작으로 현재 56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무릉2리 농부 28명이 조합원으로 60만 원에서 200만 원씩 출자해 만들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올레길에 있는 마을과 기업을 짝 지어주는 1사1올레 결연 사업이 기회였다. 공기청정기 회사인 벤타코리아와 무릉2리 주민들이 만나 힘을 합칠 수 있었다.

60여 가지 제철 농산물들이 꾸러미 형태로 매달 회원의 집으로 간다. 꾸러미는 계절에 따라 매달 다르게 꾸려지고 1회에 대여섯 종류의 농산물로 구성된다. 한라봉·천혜향·레드향· 콜라비·마늘 등이 제철에 맞게 발송된다.

고 대표는 "예전엔 무릉2리하면 제주도 내에서도 잘 몰랐지만 지금은 무릉외갓집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며 마을 활성화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또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모두 이익인 직거래 시스템은 결국 농가가 가야할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농업 대책에 대한 속내도 털어놓았다. 농민을 도와줄 실질 대책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중 FTA가 협상중이고 여타 개도국에서도 협상이 자꾸 들어오고 있잖아요. 농민들은 진짜 불안해요. 농업 특별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 안 나오고 있잖아요. 마을기업 활성화도 말로만 떠들지 말고 자문단을 실제로 만들어서 1차 산업 연구를 하고 대안을 마을기업 운영자들에게 얘기 해줬으면 좋겠어요."

"땅부터 시작하는 농산물의 스토리 보여줄 것"

무릉외갓집 전시장 내부에는 'MURUNG'이라는 글씨가 생산-판매 중인 감귤 색으로 쓰여 있다.
 무릉외갓집 전시장 내부에는 'MURUNG'이라는 글씨가 생산-판매 중인 감귤 색으로 쓰여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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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외갓집이 기업과 결연을 맺고 농부들이 자신들만의 농산물 직거래를 한 4년간의 노력을 담은 상설 전시회.
 무릉외갓집이 기업과 결연을 맺고 농부들이 자신들만의 농산물 직거래를 한 4년간의 노력을 담은 상설 전시회.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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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을 둘러보면서 눈에 띄는 것은 감귤색으로 쓰인 'MURUNG'이란 글씨다. 또한 무릉이라고 쓰인 단순하지만 세련된 박스도 눈에 띄었다. 지자체에서 쓰는 천편일률적인 박스와는 달랐다. 참기름병, 과일바구니 하나도 시중에서 파는 것과 달랐다. 모두 기획자 집단인 '리어'의 손길이 닿은 것들이다.

리어는 무릉외갓집 브랜드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도 그들의 작품이다. 현재 BI(브랜드 아이덴티티), 웹사이트, 패키지를 포함한 브랜드 전반에 걸친 리뉴얼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송주환 리어 디렉터는 "무릉외갓집 간판의 폰트는 마을 어르신들의 손글씨를 받아서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며 "화려하게 꾸미는 것보다 제주도란 지역과 농산물 그리고 농부들의 진정성을 담는 것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 주제는 '제주로부터 식탁까지'다. 리어측은 "땅에서 농부들을 거쳐 우리 식탁까지 올라오는 음식의 스토리를 A부터 Z까지 보여주고 싶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자생적으로 꽃 틔운 마을기업에 정부지원 향해야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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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외갓집'의 성공에 무엇보다도 사단법인 제주올레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무릉 2리와 벤타코리아가 결연하도록 중매를 선 곳이기 때문.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은 "이 모든 게 사회적 괸당 때문"이라고 말한다.

"제주도에서 먼 일가친척들을 괸당이라고 해요. 무릉외갓집 성공에는 사회적 괸당들 역할이 컸다고 봐요. 피로 섞이진 않았지만 서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보태주고 끌어줬죠. 벤타코리아와 리어, 그리고 무릉 2리 분들이 서로 똘똘 뭉쳐서 이뤄낸 거예요."

현재 제주올레는 14개 기업을 제주올레 마을과 연결해줬다. 제 2의 무릉외갓집을 만들기 위해서다. 기업 선택은 엄격하다고 한다.

"올해도 두어 개 기업과 협의중에 있어요. 그런데 홍보효과만을 노리고 접근하는 곳이 많죠. 신청 기업들에게 올레길 마을과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봐요. 꼭 필요한 마을과 중매를 잘 서야 하잖아요. 제주올레는 마을과 기업 모두 지속적으로 잘 하도록 채찍질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안 사무국장은 우후죽순 생겨나는 마을기업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부예산을 타려는 유령 마을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제주 마을기업과 사회적기업 리스트를 봤더니 태반이 영업을 안 하더라고요. 무릉외갓집이 작년에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어 지금 안철수재단에서 자문 등 도움을 받고 있어요. 이렇듯 이미 자생적으로 싹을 틔운 곳에만 정부의 도움이 가야해요. 예산을 받으려고 시작하는 곳은 안 됩니다."

또한 농가에서 안정된 유통망을 갖도록 직거래 시스템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농산물 가격 책정 구조가 많이 왜곡되어 있어요. 농작물을 제값에 못 파는 이유는 유통구조가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죠. 직거래 시스템으로 간다면 농부들에게 돌아가는 이익도 많아지고 소비자들도 더 값싼 가격으로 살 수 있으니 '윈윈'이죠. 제주 농부들이 안정된 유통망을 갖고 농업을 하는데 행복을 느끼길 바랍니다."

고희창 무릉외갓집 대표(왼쪽 세번째), 김정언 무릉2리 이장(오른쪽 세번째)이 무릉외갓집 브랜드 디자인을 총괄 기획자 집단 '리어'의 아티스트들과 한 자리에 모였다.
 고희창 무릉외갓집 대표(왼쪽 세번째), 김정언 무릉2리 이장(오른쪽 세번째)이 무릉외갓집 브랜드 디자인을 총괄 기획자 집단 '리어'의 아티스트들과 한 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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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무릉외갓집, #벤타, 에어워셔, 보네이도코리아, 공기순환기, #리어, #제주올레, #벤타코리아, #대원판지,공기청정기,가습기,보네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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