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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낯설다, 요물 같은 수제비

이미 버너 위에는 두껍게 제 멋대로 썰어 넣은 감자, 닭다리 한 조각, 닭의 비린내를 죽이기 위한 마늘 여러 쪽이 30분 넘게 끓고 있다. 최선의 재료를 넣어 한국도 아닌 스페인 하고도 바르셀로나 외곽의 캠핑장에서 수제비를 위한 육수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뽀얀 육수가 그럴듯하게 우러났을 때 닭다리 조각을 꺼내어 찬물로 식혔다. 그리고 살코기를 쪽쪽 찢어 그릇에 모았다 한꺼번에 투척.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이 맛에 캠핑하지!"

아침 나절에 밀가루를 반죽해서 숙성시켰던 것을 꺼내 남편이 밤새 다 먹어 비운, 목이 기다란 와인 병으로 얇게 밀었다. 한국을 떠나 여행한 지 3개월이 되어 처음 시도하는 메뉴라 마음이 심하게 들떴다. 내가 힘을 주어 와인 병을 굴릴 때마다 부실한 알루미늄 캠핑 식탁도 들썩들썩 한다. 지나다니는 다국적 캠퍼들이 힐끗댄다.

'용용~ 맛있겠지? 먹고 싶지?'

피자의 도우를 만들 듯이 얇게 폈다. 그리고는 다시 마음 가는 대로, 마음에 그려지는 대로 가족의 입 크기에 맞게 알맞게 미리 찢어 놓았다. 수제비들이 지들끼리 너무 좋아 끌어안고 뽀뽀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간간이 밀가루를 흩뿌려 주는 센스. 이것은 밀가루 음식 마니아만이 할 수 있는 테크닉이라 생각하니 어깨와 눈빛에 과도한 힘이 실린다. 내가 무슨 대한민국 밀가루요리 대표선수도 아닌데 쓸데없이 진지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잠시 딴짓을 하다 뚜껑을 여니 몇몇 수제비는 엉겨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하아~ 한국 우리 집의 다용도실에 있는 커다란, 노란 냄비 그것이 있었더라면 거의 엉겨 붙지 않고 끓일 수 있었을 텐데...'

소금 간을 하고 닭 비린내를 싫어하는 나는 후추를 조금 뿌렸다. 아이들이 맵다고 할까 싶어 동작 그만. 작은 절구통이 없어 마늘과 생강을 거의 나의 체중으로 짓이기다시피 하여 만든 적색양배추 김치와 함께 먹으니 그런대로 맛있는 점심 식사다.

보는 바와 같이 맛도 그럴 듯 했다는.
▲ 해외에서의 수제비. 그야말로 가능한 모든 것의 총집합이다. 보는 바와 같이 맛도 그럴 듯 했다는.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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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유명 관광지라도 굵직한 일정은 하루에 한 가지만 소화하기로 했다. 이런 우리의 결정에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그러나 맞벌이 리씨네 가족의 여행 목적은 일차적으로 여행을 통해 가족과의 친밀감을 돈독히 하고 추억을 쌓는 것과 부수적으로는 세계 여러 사람을 만나 생각과 마음의 교류를 갖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말하는 미래 인재상을 말할  때 흔히 말하는 '글로벌 인재'라 말하는 것의 실체를 느껴보고 싶었다. 직업상 미래 인재상이니 뭐니 말할 때가 많은데 이건 뭐 나도 모르겠고 내 마음에 딱히 느껴지지도 않는 말인데 계속 영혼 없이 '글로벌 인재' 소리 하는 것도 지겹고. 나도 부모고 애를 키워야 하니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겸사겸사 알고 싶었다.

문화유적을 감상하며 그것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겠으나 우린 유럽이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를 알고 싶었고 관찰하고 싶었다. 그러나 출신 국가와 언어가 다른, 낯선 누군가에게 다가가야 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가장 큰 도전이었다. 외적으로 자동차를 리스하여 캠핑장을 사용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도전이겠으나 이것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들어가는 것에 비하면 도전도 아니다. 물론 5살, 7살 어린 두 딸이 없었다면 여행의 목표와 내용이 달라졌겠지.

그렇기에 세계문화유산이 넘쳐나는 바르셀로나를 지척에 두고도 캠핑장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여유 시간의 대부분은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거나 아니면 살림을 했다. 솔직하게 일의 순서를 말하자면 먼저 후식 겸 차를 마시며 각자 책을 읽는다. 그러다 주로 남편이 토론거리를 던지고 그때부터 우린 밑도 끝도 없는 빈약한 근거, 편협한 판단에 비난까지 섞어가며 치열하게 토론을 한다. 결과는 서로 기분이 상해 등을 돌리고 청소나 빨래를 하며 정서를 순화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때는 그게 참 짜증나고 싫었는데 거의 매일 되풀이 되는 이 과정을 몇 달 동안 하니 어느덧 1년이 지난 후에야 '이런 일들로 인해 서로를 더 이해하고 알아가게 됐구나!' 싶긴 하다. 서로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 이 과정은 사실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릴 일이 많았다. 그잖아도 정신적, 신체적으로 에너지를 소진할 일이 많은 여행 중에 남편이 주장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그를 고스란히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게 어려웠었다.

'참  21살 대학생 때 만나 15년을 알아왔지만 직장 다닌다 뭐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구나. 여행 중엔 멀쩡하게 잘 있는 나에게 말을 걸며 결국 말싸움하다 감정을 상하게 할 때는 원망스럽고 그렇게 사디스트 같아 보일수가 없더니만...'

만약 이 모든 결과가 여행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그냥 서른 중반이란 내 나이가 누군가를 보다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도 저도 아니면 말고!

#2. 거리 예술가, 익숙해서 반갑고 색 달라서 고맙고

오늘은 웬일인지 아이들이 붕붕이를 씻기고 싶다고 한다. 필요한 도구를 챙겨주었더니 제법 야무지게 닦아 놓았다. 종종 시켜야겠다. 그래도 우리는 수준 있는 부모니 세차를 하면 돈을 주겠다는 조건은 걸지 않겠다. 그러니 세차는 영영 우리가 해야겠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나갈 것이니 깨끗이 세수한 붕붕이는 집을 지키고 있으면 되겠다.

붕붕아, 오늘은 버스를 타고 나갈 것이니 집을 잘 지키고 있거라.
▲ 낮이 넘도록 잠옷 바람이다. 붕붕아, 오늘은 버스를 타고 나갈 것이니 집을 잘 지키고 있거라.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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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바르셀로나 시내로 나가봅시다. 각자 채비를 하시오." 

혹시 람블라스로드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을 위한 정보다. 람블라스로드는 서울로 따지면 명동이란다. 같은 캠핑장에 있던 한국인 캠퍼의 말에 의하면 거리예술가들이 씨에스타(낮잠 자는 풍습으로 대략 2시~5시 상점 문을 닫음)를 넘기고 나오는지 어쩐지 람블라스로드에 늦게 나온단다. 그래서 우린 간식거리를 약간 준비해서 시내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 시내로 들어왔다. 30분 정도 걸렸다. 5시가 조금 안되었는데도 햇볕이 여전히 좋다. 모계 유전자를 받아 톡 튀어나온 나와 아이들의 이마가 타다 못해 껍질이 벗겨지겠다.

람블라스로드가 시작되는 지점의 공원에서 준비해 온 달걀, 감자, 잼 바른 빵을 먹었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만 이렇게 단란하게 모든 가족 구성원이 먹는 모습은 거의 없다. 작은 향나무 그늘에 어떻게든 비집고 앉아 먹으려고 하니 자꾸 남들의 시선이 의식된다. 이런 상황에선 남들 시선을 잘 의식하지 않는 남편, 아직 남의 시선이 뭔지 사회화 과정으로 학습하지 않은 아이들이 부럽다. 나도 이들과 같고자 속으로 나의 멋없음을 인정하며 음식에 집중한다.

"앞으론 마카로니라도 삶아 와서 비벼 먹도록 해요."

미래 우리가 먹게 될 도시락에 대해 남편과 아이디어 회의를 한 후 람블라스로드에 발을 디딘 시간은 좀 늦었다. 람블라스로드의 행위예술가 및 화가들은 이것이 직업인 사람들이라 대부분 3년 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내용이 비슷하다. 내가 이미 보았던 내용이라 가족들에게 얘기해줄 수 있는 점에선 좋았지만 똑같은 내용을 3년 내내 우려먹는 다는 생각에 김이 샜다.

박쥐를 연상케 하는 큰 날개를 가진  흉측한 분장의 그 남자, 여신 분장으로 연신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우아한 손놀림으로 자신의 입냄새를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그 여자. 모든 것이 거의 같다. 시간이 조금 일렀는지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아직 분장을 하는 중이다. 거리 끝까지 걸어갔다 되돌아오는 길에 보면 되겠다 싶어 일단 해안가 방향을 향해 걷는다.

이 거리에서 행인들의 시선과 관람료를 가장 많이 받았던 남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다른 예술가들은 별 변화가 없는 것에 비해 이 사람은 복장, 헤어 스타일, 연출 방법을 모두 살짝 바꾸었다. 나에겐 기분 좋고도 고마운 변화다. 덩치가 작은 아이들이 있기에 앞 쪽으로 나아갔다. 아이들도 신기해한다. 두 손에 관람료를 쥐어주니 현은 얼른 뛰어가 돈만 넣고 숫기가 없어 악수를 거부했다.

쭈는 돈을 넣다가 예술가의 눈에 들어 악수를 함은 물론 잠시 공연 소품으로 활용됐다. 언니와 다른 반응에 당황한 다섯 살 쭈는 엄마인 나도 처음 보는 복잡한 표정이다. 볼이 검붉어진다. 세계 각국 여행자들은 쭈의 행동과 표정 변화를 유쾌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쭈가 울지 않은 것이 참 대견하게 여겨지는 순간이다.

우리 쭈도 순간 정지!
▲ 전혀 움직임이 없던 예술가가 동양의 귀여운 꼬마를 보고 정지동작으로 다양한 포즈를 잡는다. 우리 쭈도 순간 정지!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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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월 말의 람블라스로드, 그 아름다운 색감이란...

스페인이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은 확 트인 직사각형의 광장과 아름드리나무가 잘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건축을 예술로 승화시킨 가우디의 모범을 따라 공원 벤치들의 색감, 모양, 배치 하나 하나를 보는 것 자체로 머릿속이 시원해진다. 이런 소재 하나만으로도 평범한 생활공간이 고상해지는 느낌이다. 구석구석 숨겨진 가우디의 작품과 숨결. 어찌 그가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적으로 인물을 그려내는 화가, 특징을 잡아 재미있게 캐리커처를 그리는 화가, 스프레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 등 람블라스로드엔 길거리 화가가 많다. 발랄한 10대 소녀가 좀 지루한 듯, 어떤 표정을 지어야겠단 별다른 의지 없이 화가 맞은편에 앉아 있다. 

화가는 명암을 넣느라 손가락과 손바닥을 더럽혀가며 그림을 문지르더니 작업의 종료를 알리는 듯 픽서티브를 뿌린다. 그리고 돌돌 말아 건네준다. 그림은 유쾌하고 소녀는 웃는다. 함께 기다려준 친구들은 '이제야 끝났다'란 표정을 지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다시 걷는다.

톡 쏘는 개성이 살아있는 그림이 거리의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 람블라스 거리의 화가들이다. 톡 쏘는 개성이 살아있는 그림이 거리의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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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솜씨 때문인지, 소녀들의 발랄한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람블라스로드의 숨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생각보다 저렴한 그림 값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현과 쭈를 화가 앞에 앉혀 본다. 한국에서도 안 해 봤던 일이다. 이 그림은 이 아이들에겐 생애 최초의 캐리커처가 되겠지.

그때 아직 여행이 많이 남았음이 떠올랐다. 순간 멈췄던 이성이 작동한 것이다. 여행자에겐 그림을  보관하는 것 또한 하나의 짐이 될 것이 뻔하여 화가에겐 이유를 들어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웠다. 평균적인 그 또래보다 유순하지 않은 나의 자녀들이 의외로 순순히 일어선다. 희한하네.

저기 저 자리였던 것 같다. 3년 전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출산 종료를 기념하는 나만의 여행'을 왔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이 '헉' 할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모성애란 것이란 것이 없지는 않아 비교적 짧게 1주일을 왔었다. 그때도 이곳은 아름다웠다. 밝은 햇살은 사람들의 옷을 더욱 발랄한 색상으로 입혀주고 다국적 여행자들의 다양한 표정, 여행 방식, 생김새를 돌아보는 것만도 재미있고 설렜다. 길 위엔 꽃 가게도 많고 이 쪽 저 쪽 골목길을 들여다보면 엄청나게 많은 인파의 머리들이 골목골목 동동 떠다니는 것 또한 경이로웠었지.

그래, 계속 걷다보니 다리가 아팠어. 그래서 좀 만만해 보이는 레스토랑에 앉아 언니와 함께 빠에야와 음료를 먹었지. 양이 많았기에 빠에야 1인분에 탄산음료를 시켰었어. 정말 여유롭게 눈알과 머리를 굴리며 길거리를 관람하다 계산을 하려고 도로 건너편 식당의 카운터에서 영수증을 받고 나서야 남들은 다 걸어 다니는 이 거리에 앉아서 유유자적 거리를 관람하며 밥을 먹는 대가가 원래 식당 건물 실내에서 먹는 가격 보다 좀 많이 비싸다는 것을 알았더랬지.

여행경비가 넉넉지 않아 많이 황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 그냥 모든 게 다 좋았으니까. 이성은 들락날락하고 오감이란 감각이 충만한 람블라스로드의 공기를 마셔서 그랬을까?

아이들을 위해 잠시라도 어딘가에 앉아 쉬기로 했다. 너무 많은 인파에 앉을 곳도 마땅찮다. 3년 전 기억을  더듬어 그 광장을  찾아냈다. 분수대 난간에 기대 있는데 남편이 앞에 보이는 가로등이 바로 가우디의 첫 작품인 것 같단다. 정말 자세히 보니 독창적이고 범상치 않은 것이 가우디의 작품이 맞았다. 3년 전 난 이곳에 앉아 무얼 보았던 것인지 부끄러웠다. 지금 딱 이 자리였었는데. 가우디를 좋아하는 사람들, 유명 장소를 골라 다니는 여행자들이 알면 온갖 욕과 비난을 다 듣겠다. 눈썰미는 됐고 그냥 나의 무식, 게으름이 죄다.

그러나 굳이 변명하자만 그땐 두 돌이 갓 지난 큰 아이와 갓난쟁이를 키우며 숨만 쉬고 살던 때였다. 예술품을 알아보는 미적 감수성, 여행지식, 바지런함 그건 것들은 사치였다.

우린 그곳에 앉아 보케리아 시장에서 사온 체리를 씻지도 않은 채 쪽쪽 빨아 먹었다. 농약의 양이 적당한지 어쩐지 맛이 참 좋다. 방금 전 보케리아 시장에서 어떤 남미 사람의 생김새를 가진 현지인이 나에게 가방이 열려 있다고 말해주었다. '어떤 놈이야!'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웃음이 났다. 왜냐하면 돈은 그 곳에 없었으니까. 그곳엔 빈 점심 도시락만 달그락거리고 있었으니까. 바보 메롱.

"녀석, 뒤지고서도 짜증났겠구나."

보케리아 시장의 하몽, 현란한 색상의 과일들, 앉고 싶지만 자리가 쉬 나지 않는 타파스집을 구경하느라 누가 스치는지도 몰랐는데. 아주 솜씨가 좋다. 그(그녀) 또한 이곳을 평생 직장으로, 그 짓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족속인가보다.

람블라스로드는 눈과 마음을 미혹케 하는 것들이 참 많다. 돌아가는 길 하늘로 '쀠위익' 소리를 내며 형광 물체가 날아오른다. 어둑해진 밤하늘로 날아오르니 참 보기 좋다. 3년 전엔 없던 것인데 호기심이 인다. 만약 어제 저녁 똑똑한 한국인 캠퍼가 주의를 주지 않았더라면 리씨네 가족 모두는 그것에 넋을 팔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 녀석들이 또 내 빈 반찬통을 확인했었겠지? 그렇다. 그것은 소매치기를 수월하게 하려고 그 녀석들이 관광객의 주의를 흩트리는 용도이기도 하단다.

이젠 더 없겠지 생각하며 거리의 시작 지점으로 거의 왔을 때 한 젊은 여자 애가 겉옷을 팔목에 걸치고는 딴 데 정신을 파는 내 남편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다가가도 너무 다가갔다. 느낌이 좀 이상해서 가만히 봤다. 알고 보니 팔목에 걸친 겉옷은 자신의 손이 남의 가방, 지갑을 자유롭게 뒤지도록 커튼을 치는 용도였던 것이다. 어쩜 거리예술가들의 공연 창작 속도에 비하면 과히 소매치기 범들의 기술 개발 및 적용 속도는 LTE급이다. 초록색 겉옷의 용도의 참신함에 놀라울 뿐이다.

이곳은 나도 모르게 입이 헤~ ,가방이 헤~ ,지갑이 헤~ 벌어져 있지는 않은지 이성을 10분에 한 번씩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아니다. LTE급 그네들의 속도를 생각하면 10분도 많다. 그러자면 아예 관광을 하지 말라는 뜻인데 어쩔까? 방법이 있다. 나처럼 빈 반찬통이나 넣고 다니자. 저절로 한국산 반찬통 홍보도 된다. 물론 실없는 말이다.

괜히 웃음이 새며 눈이 호사하는 사이 마음과 지갑을 빼앗기기에 가장 적합한 곳, 그곳은 단연 람블라스로드다.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정신 줄을 놓기에 딱 좋다.
▲ 보케리아 시장의 모습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정신 줄을 놓기에 딱 좋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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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태그:#리씨네 여행기, #유럽 캠핑, #스페인, #람블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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