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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쇠어 본 주부들은 명절의 고된 노동을 누구보다 잘 안다. 모처럼의 연휴가 때로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는 불편한 마음을 이끌고 연일 일해야 하는 명절 환경에 있다. 특히 제사나 차례 상 준비에 드는 품은 나이를 먹을수록 무거워져 가지만 명절은 해를 넘기는 법 없이 꼬박 꼬박 두 차례씩 찾아온다.

그런 명절의 노동을 가볍게 받아 넘기는 한 여자가 있다. '당고머리(일명 똥머리)'에 팔 토시, 앞치마를 두른 그는 인상 좋은 예순의 빈대떡집 주인이다. 서울 강서구 우장산역 부근 송화시장에서 자신의 성씨를 간판으로 걸어놓고 전을 부치는 그는 송화시장을 '맛집'으로 유명하게 만든 주역 중 한 명이다.

"명절 때는 (집의 것만 만들면 되니까) 오히려 쉬는 편이죠. 그 전까지 꼬박 하고 명절 때는 한 5일 쉬어요."

여자가 웃는다.

'권가네' 세 식구

'치이이익~' 숙성된 반죽이 철판에 살짝 데이면서 김치색 마찰음을 낸다. 달궈진 사각 틀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조금씩 색을 입어간다. 고소한 냄새가 꽃샘추위 틈으로 하얀 김이 되어 피어오른다. 시각을 자극하는 주황빛 식감은 '김치전'으로 명명된다. 지난 4일, '권가네 빈대떡'의 하루는 이로부터 시작됐다.

 철판 위의 김치전이 익어가자 권씨가 뒤집을 준비를 하고 있다.
 철판 위의 김치전이 익어가자 권씨가 뒤집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임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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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가네'의 주인 권옥희(60)씨는 하루 같이 분주하다. 오전 6시 시장에 나와 전을 부칠 재료를 준비한다. 지난 밤 씻거나 잘라 놓은 재료들과 오전에 손질한 재료들은 아침 10시가 지나면 불판 위에 올라간다. 직사각 형태의 평평한 철판에 노란 주전자로 기름을 두른다. 철판이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하면 전(煎) 전(前)의 전(煎)들이 전(煎)이 되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3년째 일하는 박순자(58)씨도 또 다른 철판 앞에 선다. 권씨의 철판보다 다소 작은 철판에 메밀전병을 굽는다. 일단 희멀건 반죽을 철판 위에 얇게 두른다. 둥그런 형태로 바닥에 깔린 반죽은 이내 조금 더 짙은 색으로 온기를 입는다. 반죽이 전병의 피(皮)가 되어 준비를 마치면 그 위에 다진 김치와 당면 등을 올리고 돌돌돌 말아준다. 메밀전병이다.

 '권가네 빈대떡'의 박순자씨가 메밀전병 피 위에 김치와 당면 등 내용물을 올리고 있다.
 '권가네 빈대떡'의 박순자씨가 메밀전병 피 위에 김치와 당면 등 내용물을 올리고 있다.
ⓒ 임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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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5~6미터 길이의 일자형 가게에는 둘 외에도 한 명이 더 있다. 권씨의 남편 박철신(65)씨가 바로 그다. 하던 사업을 접고 5년 전부터 권씨를 도와 가게에 나온 박씨는 팥죽을 휘젓거나 수수부꾸미를 만들고 포장을 하는 등 두 사람의 공백을 메운다. 작지만 알찬 '권가네'의 하루는 세 사람이 만들어 나간다.

맛집 '권가네'

봄 날씨 치고는 다소 쌀쌀하다. 권씨는 오늘따라 콧물도 훌쩍 거린다. 몸에 걸친 반팔 티셔츠가 어색하다. "이번 감기는 좀 오래 가네요"라며 멋쩍게 웃는 그는 별다른 외투를 입지 않는다. 종일 불판 앞에서 일해야 하는 그에게 외투는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오전 6시부터 일을 시작한 그는 본격적으로 전을 부치기 시작하는 10시가 지나면 전이 바닥을 드러내는 오후 7시까지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마흔 다섯 때부터 음식장사를 하려고 준비했어요. (음식장사는) 손이 많이 가요. 앉아서 쉴 시간이 있으면 장사가 잘 안 된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남의 집 가게 앞에 세를 주고 시작한 장사가 지금은 쉴 틈 없이 부쳐야만 하는 빈대떡 집이 됐다. 10년째 각종 전으로 '맛집' 소리를 듣고 있는 '권가네'다. 5년 전 남편 박씨의 도움 없이도 유지하던 가게가 지금은 누구 하나 빠질 수 없을 정도로 일감이 많다. 명절 등 대목에는 일손이 필요해 사람을 고용하기도 한다. 3명이서 하던 일을 15명이 소화해야 할 만큼 손님이 늘어난다. 늦어서 못 사는 사람도 있다고.

 '권가네 빈대떡'의 세 식구가 나란히 서서 전을 팔고 있다.
 '권가네 빈대떡'의 세 식구가 나란히 서서 전을 팔고 있다.
ⓒ 임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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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혼자 할 수 있었어요. 감당이 됐는데 일이 늘고 하니까…. 명절에는 임시 전집이 생길 정도로 손님이 많은데 줄서기 싫어서 다른 데서 샀다가 명절을 망쳤다는 손님도 있었어요. 음식은 맛을 인정받으면 계속 해나갈 수 있는데 어느 정도 인정받은 것 같아요."

말 속에 묻어나는 자신감은 거짓이 아니다. 쉴 새 없이 전을 뒤집으며 간간이 맛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치던 그에게 연출한 장면처럼 손님이 찾아든다. "하나 먹어봐도 되냐"며 동그랑땡을 입에 넣던 주부는 모듬전과 김치전 등 3팩을 구입했다. 메밀전병은 굽자마자 "전병이네?"라며 기다리는 손님이 생겼다.

"뽕잎이랑 쑥 등 제철에 나는 재료를 바꿔가며 부치기도 해요. 반응이 좋으면 또 하고. 음식은 개발이 아니라 응용이거든요. 다른 데서 먹어보고 덧붙이거나 맛을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전병이 인기가 좋아요. 파는 데가 잘 없으니까."

권씨 옆에서 보조를 맞추던 순자씨도 '권가네'의 인기를 증언한다. 권씨가 부치는 전은 희소성이 있는 데다 50~60대 중장년층에게 추억의 음식으로 자리 잡은 메밀전병, 수수부꾸미 등은 어려운 시절 간식으로 먹던 맛이 그리워 찾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음식은 추억을 타고

권씨는 팔리는 족족 전을 부쳐 빈 곳을 메운다. 점심 먹을 틈도 없이 2시가 되어서야 10~20분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돌아온다. 주변 동네 주민이나 소문을 듣고 가양, 김포공항 등 한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장을 보러 오는 덕분에 꾸준히 손님이 있는 편이다.

사람의 입맛을 끄는 그의 전은 어릴 적 기억에서 비롯된다. 경상도와 강원도의 경계에 살던 그는 강원도 출신의 어머니가 해준 수수부꾸미 등을 먹곤 했다. 간식 같은 것이 마땅히 없던 시절 수수부꾸미는 그에게 좋은 추억이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강원도를 직접 찾아 전병이나 부꾸미를 먹어보고 이곳 송화시장으로 추억을 끌어왔다.

 납작한 피에 팥을 올려 반으로 접어주면 수수부꾸미가 된다. 수수부꾸미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이 난다.
 납작한 피에 팥을 올려 반으로 접어주면 수수부꾸미가 된다. 수수부꾸미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이 난다.
ⓒ 임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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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에 밀가루를 입혀서 만들어 먹고 그랬어요. 어려울 때 먹던 음식들이거든요. 보릿고개나 먹을 게 없을 때 만들어 먹곤 했는데 그땐 라면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에게 먹거리에 대한 기억은 다소 특별하다. 8남매 중 일곱째인 그는 첫 라면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어머니가 라면을 끓여놓고 행여 라면이 식을까 아궁이에 불을 떼놓아 학교를 다녀와서 불어터진 라면을 먹었다. 그 맛을 아직도 기억하는 그다. 음식에 소홀할 수 없는 이유다.

"아직까지 맛없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어요. 음식 장사는 그런 거 같아요. 질 낮은 걸 쓰면 많이 남길 수도 있지만 대번에 아니까 조금 남더라도 좋은 거 쓰고 인정받아야 팔려요."

"건강할 때까지 해야죠"

하루 12시간에서 15시간 가량 일하는 '권가네' 식구들의 평균 나이는 예순 하나. 일반 직장에서 퇴직하고 손주를 돌볼 수도 있는 나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 데 할애한다. 협소한 공간과 쉴 수 없는 일의 특성상 피곤할 법도 한데 그들은 불평 한마디 없다.

 권옥희씨가 동그랑땡을 굽는 것을 지켜보던 남편 박철신씨가 하품을 하고 있다.
 권옥희씨가 동그랑땡을 굽는 것을 지켜보던 남편 박철신씨가 하품을 하고 있다.
ⓒ 임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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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으니까 아무래도 피곤하기도 하고 (그걸) 참고하는 것도 맞아요. 그래도 손님들이 사가니까 일하는 재미가 있죠."

환갑을 앞둔 순자씨도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곡에서 식당을 하다가 한 3년 쉬었는데 치매나 우울증이 올 것 같아 다시 일을 시작했다. 몸이 버틸 때까지 일을 하겠다는 그는 그 흔한 '똥배'마저 없다. 등산으로 다진 몸과 걸어서 하는 출퇴근으로 건강에 자신 있는 그다.

"3년 동안 아픈 적도 없어요. 워낙 건강을 챙기는 데다 몸에 투자해야 일을 하니까."

권씨의 '피앙새' 박철신씨도 일요일마다 산을 타는 등산 마니아다. 10년간 산을 타며 백두대간을 두 번이나 종주했다. 가게 일을 하며 한 번쯤 몸살이 날 법한데 아직도 어디 한 곳 아픈 적이 없다. 무릎이나 관절도 거뜬하다고. 이런 그의 옆에서 권씨는 웃으며 말문을 튼다.

"한 5년? 건강이 허락하면 계속 해야죠. 다른 것 안 바라고 이대로만 하면 좋겠어요. 자식들도 다 벌이하고 하니까."

권씨의 말에는 부모의 책무를 끝낸 깊은 소회가 담겨 있다. 딸은 시집보내고 아들은 제 벌이에 나섰으니 농사에 빗대면 수확까지 마친 셈이다. 그래서 더 이상의 욕심보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말한다.

오후 일곱 시 좁은 골목길 찬거리를 사러 나온 손님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한 켠에 자리한 '권가네'의 철판은 여전히 뜨겁고, 단정하게 말아 올린 당고머리 위로 저녁 빛을 발하는 전등이 환하다. 어떤 이는 녹두전을, 어떤 이는 전병을, 긴 대화 없이 주고받는 전(煎)과 전(錢)의 교환이 고된 하루만큼 아련하다. 날이 저문다.

덧붙이는 글 | 이 연재는 김진석 사진작가가 기획하고, 안형준(30), 임경호(30) 2명이 취재를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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