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4일, 한국예술종합학교(아래 한예종) 무용원 교수였던 정아무개씨가 뇌물 공여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정씨는 1년 전 학생들에게 성희롱 막말을 해 논란이 된 인물이다. 검찰 수사 결과, 성희롱 이전에 채용 비리를 저질렀다는 것이 드러났다 '뇌물로 들어와서 성희롱으로 퇴출'된 정씨. 학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지 않을까. 무용원 학생의 의견을 물었다.

"돈을 주고 교수가 됐으니까 말을 함부로 하고 저희들을 괴롭혔던 것 같아요. 채용 절차가 제대로 진행됐다면 교수가 되지 못했을 테고 제가 상처받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이 학생의 말처럼, '돈으로 쉽게 스승의 자리를 얻은 탓에 제자들을 가볍게 여겨 일어난 일'로 이 사건을 풀어 볼 수 있을까?

스승 고발한 학생들... 정씨, 결국 재임용 탈락

지난해 5월, 여교수가 학생들에게 성희롱 막말을 했다는 첩보를 접수하고 한예종 서초동 캠퍼스를 찾았다.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취재를 극도로 꺼렸다. 그런 일이 전혀 없다는 듯 행동했다. 학교가 쉬쉬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느꼈다. 전화 번호를 받아 몇몇 학생을 접촉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학생들의 감정은 복잡했다. 제자로서 스승의 문제를 고발할 수 있을까, 이번 일로 좁은 문화예술계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또다른 피해 학생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몇이 용기를 냈다.

학생들이 전한 여교수의 발언은 믿기 힘들었다.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정씨가 "너희 남자들은 구멍만 보면 환장하지" "섹스할 때 조준 잘해라"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여학생들에게는 "너희들이 뜨고 있는 눈은 술집 창녀들의 눈"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석도 아닌 학교 연습실 등 학생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였다. 이 발언에 20대 초반의 학생들은 성적 수치심을 넘어 큰 상처를 받았다(관련기사 : 여교수의 성희롱 "남자들은 ○○만 보면 환장").

믿기지 않기는 다른 교수와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학생들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이 문제라고 다그쳤다. 문제가 풀리지 않자 학생들은 답답한 마음에 대자보를 붙였다. 또 학교 양성평등상담실에 제보했다. 제보가 들어온 뒤, 학교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만나고 싶었다.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해명을 듣기 위해 이틀을 꼬박, 캠퍼스에서 기다렸다. 수업이 예정된 실습실에도, 자신의 연구실에도 정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는 물론 문자를 넣어도 답장이 없었다. 조교가 대신 전화를 걸었다. "(인터뷰)하기 싫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교 복귀 여부에 촉각... 결국에는 채용 비리 혐의로 기소돼

얼마 뒤 학교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정씨에 대해 정직 1개월 처분을 결정했다. 이후 치러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성희롱 발언이 문제가 됐다. 정씨는 학교 결정에 반발해 교육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의뢰했다. 학생들은 정씨가 학교에 돌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했다. 소름 돋는 일이라고 했다(관련기사: '성희롱 막말' 해임 여교수, 학교 복귀 논란).

그 두려움은 기우였다. 정씨는 다시는 학교로 돌아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3부(문홍성 부장검사)는 뇌물 공여 혐의로 정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성희롱 막말 이전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김현자 전 무용원장에게 2억 원의 뇌물을 건넸다. 김 전 원장은 전공심사위원장으로 심사위원을 추천하는 등 채용을 총괄했다. 정씨는 교수 지원자 38명 가운데 유일하게 면접심사 대상자로 뽑혀 2011년 8월, 교수로 임용됐다. 정씨 남편도 로비에 동원했다. 남편 김아무개씨는 같은 대학 동료였던 조희문 전 영화진흥위원장에게 찾아가 두 차례에 걸쳐 1억 2천만 원을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발표를 종합하면 정씨는 돈으로 교수직을 산 뒤, 성희롱 막말로 학교를 소란스럽게 했다. 정씨에 대한 처벌과는 별개로,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참스승'에게 교육 받지 못하고 성희롱에 상처 받고 한숨 지은 시간이 그들의 피해였을 것이다.

'자성과 쇄신'? 학생들, "이제라도 집중하고 싶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자리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 캠퍼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자리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 캠퍼스.
ⓒ 강민수

관련사진보기


한예종은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3월 25일 김봉열 한예종 총장은 '자성과 쇄신'이라는 이름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리 문제가 애꿎은 학생들에게 피해로 돌아가자 내놓은 수습책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 총장은 내·외부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학교비상쇄신위원회'를 통해 교수채용 비리, 입시부정 등에 대해 근본적인 쇄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현재 운영 중인 클린신고센터의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학생은 "처음 문제가 됐을 때 다른 선생님들이 '거짓말하지 말라' '어디 교수님을 그렇게 말하냐'며 뭐라 했다"라면서 착잡해했다. 이어 이 학생은 "이제라도 학교 수업과 무용 연습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예종은 2년 전에도 입시 비리가 불거졌다. 이번에 터진 교수 채용 비리, 지난해 성희롱 사건으로 한국 최고 예술인 양성 기관 이름에 얼룩이 졌다. 예술인 지망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립대학, 한예종. 지금이라도 그 얼룩을 닦기 위해, 학교 구성원들은 한 학생의 말을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온전히 예술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태그:#한국예술종합학교, #성희롱 막말 여교수, #채용 비리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