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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위한 고사상 카뮈의 <이방인>을 새로 출간하면서 차린 새움출판사의 고사용 상차림
▲ 카뮈를 위한 고사상 카뮈의 <이방인>을 새로 출간하면서 차린 새움출판사의 고사용 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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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뮈를 위한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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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출판계에 새로운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카뮈의 <이방인>을 둘러싼 번역 논란이 그것이다. 최근 출간된 새움출판사의 <이방인>은 김화영의 <이방인> 번역에 수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제기하며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인터넷에서는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이처럼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이방인>의 출간 기념식 현장 분위기를 전한다.

지난 3월 27일 저녁, 서울 평창동의 새움출판사 직원들은 하나의 의식(儀式)을 치렀다. 제단에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웠다. 산천초목, 하늘과 땅의 모든 신명(神明)을 불러 놓고 술을 따르고 절을 하고 축문을 읽었다.

거기에는 낯선 '이방인'도 한 사람 끼어 있는 분위기였다. 알베르 까뮈다. 그들은 천지신명뿐 아니라 먼 타국에 누워 있는 작가의 혼령도 불러 들였던 것이다. 제단 앞과 위에는 그의 출세작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이방인>이 놓여 있었다. 까뮈의 '이방인'이 새롭게 출간돼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낸 날이었다.

 새로 출간된 새움출판사의 <이방인>
 새로 출간된 새움출판사의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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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세차 갑오 정묘 정유… 눈 밝은 번역자와 편집자들이 왜곡과 난삽으로 얼룩진 옛 '이방인'을 폐기하고자 날카로운 붓을 들어… 오늘 새 책을 이 자리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몽매한 과거에 대한 지식 전달자의 자기반성이자, 견강부회로 일관하는 기존 번역 문학 체제에 대한 경고이며, 올바른 번역과 출판을 향한 젊은 번역자와 출판인들의 결의입니다."

의식은 간소하고 조촐했으나 엄숙하고 비장했다. 비록 액운을 막고 복을 기원하는 고사의 형식을 빌리긴 해도 내용은 매우 복합적이었다. 힘든 번역과 출판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준 데 대한 감사와 축원을 밑절미로, 그간의 잘못에 대한 깊은 사죄와 반성, 그리고 낡고 오랜 기존의 관행과 권위의 습속에서 떨쳐 일어나 바르고 정의로운 출판의 길을 가겠다는 각오와 결기가 한데 서려 있었다.

<이방인>이 어려웠던 이유, 이것 때문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판된 <이방인> 번역본은 60여 종(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기준)에 달한다. 역자는 같되 출판사가 다른 경우를 망라했다 치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기존의 번역이 그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뚜렷한 증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합의할 만한 수준의 번역본이 나왔는가? 이 질문에 곧장 답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는 이상한 힘이 작동하고 있는 까닭이다.

국내 번역본 중 독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책은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번역이다. 온라인 서점의 판매지수를 비교해보면 이 사실이 돌올해진다. 그는 국내 까뮈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그 논문은 <문학 상상력의 연구>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체로 그의 번역을 최고로 꼽는다.

주목할 사항은, 1976년 김화영 교수의 번역(고려대출판부) 뒤에도 새로운 번역본이 꾸준히 나왔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독자들의 합의는커녕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심지어 김 교수의 번역본마저 출판사를 달리하면서 재역을 거듭했다. 역자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했다는 방증일 터이다.

이번 새로운 번역이 '사건'인 이유는 바로 국내 최고의 번역으로 꼽히는 김화영 교수의 번역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새로운 번역자는 <이방인>은 서너 시간이면 다 읽고 감탄할 만한 재밌는 소설인데도 여간해서 잘 읽히지 않는다며 부록인 '역자노트'를 통해 소설의 첫 단락부터 시작해 기존 번역의 문제를 조목조목 날카롭게 비판한다.

기존의 번역 곳곳에서, 문장은 요령부득이며 본래의 뉘앙스는 온데간데없고 이야기의 흐름은 아귀가 딱딱 들어맞지 않는다고 평가하고, 인물은 평면적이고 묘사는 뜬금없으며 대화는 겉돈다고 비판한다. 공감을 자아내지 못하니 감동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재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대표적인 사례 하나만 보자.

(1)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김화영 역, 민음사, 135쪽)

(2) "그때, 한밤의 경계선에서 사이렌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이제 영원히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이정서 역, 새움, 165쪽)

사형을 앞두고, 밤 12시에 자정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야 하는 주인공의 심리적 상황을 묘사한 부분이다. 새로운 역자의 주장에 따르면 기존 번역(1)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는 "한밤의 경계선"(자정)을 살리지도 못했을뿐더러 '죽을 날이 다가왔다'는 "사이렌" 소리의 은유도 전혀 건져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 문장이 각기 따로 논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불과 몇 시간 뒤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할 상황에서 어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절박한 비애와 처연함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고 연민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자들은 여기서 왜 갑자기 어머니를 떠올렸을까, 하고 반문하게 된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라는 번역문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오래간만이면 오래간만이고 처음이면 처음이지, '오래간만에 처음으로'라는 구절은 생겨날 수 없는 비문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을 위한 또하나의 장례식

사정이 이러한데도 독자들은 번역자의 권위에 눌려 번역이 잘못됐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본인 탓만 해왔다는 것이 책을 낸 출판사의 판단이다. 실제로 <이방인>을 읽긴 읽었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에다 부조리 문학이라니까 원래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왠지 그게 더 부조리해 보이고 그럴듯해 보이기까지 한다. 새 번역자는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번역 오류 때문에 우리에겐 부조리 개념 자체가 황당하게 돼버렸다. 주인공이 왜 살인을 했는지 이유가 분명한데 태양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한다. 뫼르소가 죽인 아랍인 사내는 레몽을 농락한 여자(무어인)의 오빠가 아니라 기둥서방이었다.

까뮈는 무어인과 아랍인을 분명히 구분했고 실제로도 그렇다. 무어인은 스페인계 아랍인이다. 때문에 여자와 사내는 결코 남매가 될 수 없다. 그러니까 뫼르소의 살인에는 이래저래 정상참작의 여지가 많았는데도, 기존의 도덕과 종교, 법체계에 의해 그는 사형당하고 만다는 게 부조리의 실체다. 프랑스인들은 알았지만 우리는 몰랐다. 기존 역자가 쳐놓은 관념의 그물에 독자들은 무방비로 끌려갔던 것이다."

이 부분의 이해를 둘러싼 논쟁도 가열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서울대 불어교육과의 장승일 교수는 "문학작품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까뮈 안에 살다가 나오지 않은 이상 정확한 의미를 알기는 힘들지만, 가능한 한 의미에 가까이 다가가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번역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번역은 하나의 문화가 또 다른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다. 이번 새움출판사의 새 <이방인> 번역은 우리의 문화가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타 문화를 대등하게 수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준거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오역 논란은 척박했던 우리의 번역 문화에 대한 애도의 형식, 즉 <이방인>을 위한 또 하나의 장례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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