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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도 안 돼 사랑의 의미를 수정하며 변심한 국립국어원
 2년도 안 돼 사랑의 의미를 수정하며 변심한 국어국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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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변했다. 국립국어원이 변심하고 돌아섰다.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아래 '어떤 상대')이 '사랑'이라더니 고무신을 꺾어 신었다.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아래 '남녀 간')이 '사랑'이라고 돌아선 것이다. 손가락 걸고 영원불변을 맹세한 것은 아니라지만 어쩌면 이토록 쉽게 사랑이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 참 쉽다.

국립국어원이 '어떤 상대'가 '사랑'이라고 당당히 고백한 것은 지난 2012년이다. 그보다 앞서 2010년 7월 국립국어원은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 '사랑'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이를 고쳐 '이성의 상대'를 '어떤 상대'로 바꾼 것이 2012년 11월이다. 그로부터 불과 2년도 못 채우고 다시 '남녀 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동시에 '사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애("연인 관계인 두 사람이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와 '애정(애인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도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과 "남녀 간에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로 각각 갈라서고 말았다.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서 '사랑'을 검색하면,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는 설명이 뜬다.
 국립국어연구원 표준대사전에서 '사랑'을 검색하면,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는 설명이 뜬다.
ⓒ 국립국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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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2012년 '연인' '애인'이라는 단어의 사전 속 정의가 남녀 관계에만 한정돼 성소수자의 인권을 무시한다면서 개정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었다. 국립국어원은 당시 이를 검토하면서 포괄적으로 '사랑'이라는 단어의 뜻까지 '이성의 상대'에서 '어떤 상대'로 바꾸었다. 그러자 '어떤 상대'가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기독교계 등의 항의와 1인 시위가 이어졌고 국립국어원은 결국 '남녀 간'의 '사랑'으로 타협했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만도 못한 사랑의 무단 역주행이다.

현실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국립국어원의 판단

신기한 것은 국립국어원의 해명이다. 기독교계에서 동성애 옹호 운운하며 '어떤 상대'를 문제 삼았을 때 그들이 공문으로 내놓은 대답은 "동성애를 옹호하기 위해 수정한 것이 아니고, 현실 쓰임을 고려한 결과"였다. 기독교계의 항의에 '남녀 간'으로 돌아간 지금 국립국어원은 "기독교계의 문제제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뜻이 포괄적이어서 이전부터 일반 시민과 전문가들의 문제제기가 계속 있어 수정한 것"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어떤 상대'는 "현실성을 고려한 것"이고, '남녀 간'으로 돌아간 것은 "'어떤 상대'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문제가 된 것을 수정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고 보면 국립국어원의 대답이 매우 옹색하다. 현실성을 고려했다던 자신들의 과거 행위를 너무 포괄적이라며 스스로 제한하는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떤 상대'라고 한 것이 현실성을 고려하고 받아들여 수정한 것이었다면 마땅히 일관되게 현실성의 원칙을 지켜야했다. 그 때의 현실과 지금의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어떤 상대'에 대한 현실성은 지금에 이르러 더욱 확장되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사랑'을 남녀 간의 일로 제한하여 가두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표준어가 아니던 '짜장면'이 현실성을 고려하여 표준어의 자리에 오른 것처럼 '사랑' 역시 현실성을 생각했다면 '남녀 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대'에게 마음을 더 주는 것이 옳았다.

사랑에 대해 좀 더 사람다운 '표준'을 마련하길

김조광수-김승환 '동성부부' 탄생 7일 오후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동성커플인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의 결혼식이 열릴 가운데, 결혼식 직전 기자회견에서 김 감독과 김 대표가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 김조광수-김승환 '동성부부' 탄생 지난해 9월 7일 오후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동성커플인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의 결혼식이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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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색한 핑계를 대며 사전 속 말뜻을 고치거나 바꾼다고 해서 엄연히 살아 숨 쉬고 있는 '남녀 간'이 아닌 사랑의 주체들이 없어지고 실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남녀 간'이 아닌 관계에서 불꽃처럼 일렁이는 사랑의 감정도 고스란히 그대로 살아있다.

'어떤 상대'를 두고 동성애 옹호 운운하는 것을 떠나 있는 것은 있다고 하며 시대상을 제대로 드러내는 게 언어의 '표준'이 돼야 한다. 그래야 표준국어대사전의 자격이 있다. '어떤 상대'여서 동성애 옹호이고, '남녀 간'이어서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세 치 혀와 한 획 붓질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다.

그 역시 생각해보면 사랑에 대한 폭력이고 사람을 향한 횡포다. 국립국어원은 '표준'의 이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사랑의 여러 주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횡포를 부린 꼴이 되었다. 오래도록 사랑을 원망할 테고, 두고두고 아파할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정일근 시 ' 어머니의 그륵' 중에서)는 것이라고 했다. 말 하나를 갈고 다듬어 사전에 올리는 일에도 사랑이 필요하다. 마땅히 그 사랑은 사람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 사랑의 힘으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일을 글자 몇 개로 함부로 나누고 가두며 구분지어서는 안 된다. 국립국어원이 사랑에 대해 좀 더 사람다운 '표준'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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