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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방송은 신문과 달리 희소성을 지닌 전파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개인이 독점할 수 없다. 대부분 국가들이 방송채널을 공공재로 취급하며 국민을 대신하여 공정하고 엄격하게 통제하고 관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 방송 규제의 정당성은 크게 두 가지 원칙을 적용한다. 하나는 전파의 희소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방송미디어가 갖고 있는 영향력이다.

그 중에서도 방송의 자유와 책임에 관한 법적 다툼이 있을 때마다 미국 법원은 전파의 희소성을 매우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선거기간에 방송사들이 모든 후보들에게 똑같은 방송 이용 기회를 보장하는 '동등시간 원칙'도 이러한 규제를 기반으로 한다.

프랑스 방송사들의 '3등분 원칙'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 원칙에 따라 선거기간이 아닌 시기에도 정부와 집권당, 그리고 야당이 똑같은 방송시간을 갖는다. 지상파 방송들은 전체 보도시간뿐만 아니라 각 정당 관계자의 공식적 기자회견, 뉴스 시간에 삽입되는 인터뷰, 시사프로그램 출연 등 방송에서 이루어진 모든 정치 방송 시간을 3등분하여 정부, 여당, 야당에 균등하게 할애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주인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 눈치 보기에 급급

종편국민감시단 소속 단체 회원들이 17일 오전 동아일보 종편 <채널A> 광화문 사옥앞에서 '종편 재승인 면죄부·졸속 심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 전 방통위 전체회의에서는 JTBC, 채널A, TV조선 등 종편 3곳과 보도전문채널인 뉴스Y의 재승인 안건을 논의해 사실상 재승인했다.
▲ "조중동 종편 생명연장 절대 안돼" 종편국민감시단 소속 단체 회원들이 17일 오전 동아일보 종편 <채널A> 광화문 사옥앞에서 '종편 재승인 면죄부·졸속 심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 전 방통위 전체회의에서는 JTBC, 채널A, TV조선 등 종편 3곳과 보도전문채널인 뉴스Y의 재승인 안건을 논의해 사실상 재승인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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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희소성을 띤 전파,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방송 주파수 관리가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뤄진다면 결과는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권력에 대한 언론의 비판과 감시기능이 무뎌지고 국민의 눈과 귀는 진실에서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 자명하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게 처한 방송 현실의 바로미터다. 

양대 공영방송사는 물론 지상파 방송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전파의 주인인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시절 5년 내내 우리나라 공영방송이 권력의 시녀 또는 애완견이란 소릴 들어온 것도 모자라 정권이 바뀐 지금도 권력 앞에만 서면 왜소해지고 만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한국 언론 환경이 겪고 있는 위기의 핵심에는 비합리적이고 편향된 의제 설정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사들이 그 중심을 지키려는 모양새가 사납다.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현상이다. 희소성과 공공성을 감안해 국민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론장 형성에 봉사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형성에 기여하겠노라고 틈만 나면 다짐하던 방송사들이 정치적 독립은 고사하고 권력의 프레임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지상파 방송사들만으로도 부족하였던지 거대 보수신문들에게 종합편성채널(종편)이라는 주파수까지 안겨줌으로써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세력을 되레 감시하며 그들에게 '종북'딱지를 붙이거나 '이단세력'으로 매도하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전파의 관리와 운영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방송과 통신에 관한 규제와 이용자 보호,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필요한 사항 등 제반 업무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출발에서부터 문제가 잘못됐다. 방통위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첫 단추를 끼우다보니 주요 결정과정들에서 민주적 절차나 정당성을 찾기 힘들다. 제왕적 또는 초법적 행세를 휘두르기 일쑤다.   

방통위, 대통령 직속기구서 독립기구로 환골탈태해야

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7월 1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선 뒤 자리에 앉고 있다.
 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7월 1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선 뒤 자리에 앉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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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 대신 '독립된 합의제 기구'라야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보장과 보도의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모든 결정과정에서 최고 권력, 즉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거나 매번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다면 악순환은 거듭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방통위가 담당하는 주요 기능은 지상파방송 외에도 종편·보도PP 정책, 방송통신사업자의 금지행위 위반시 조사·제재, 방송통신 이용자 보호정책 수립·시행, 개인정보보호정책 수립·시행 및 불법유해정보 유통방지, 방송광고, 편성 및 평가정책 수립·시행, 미디어 다양성정책 등 실로 다양하다. 이 같은 정책들을 민주적으로 공정하게 집행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독립과 공공성 확보가 최우선적으로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방통위 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현재의 구도 하에서는 방송사 임원구성에서부터 의제설정에 이르기까지 언제든지 영향력을 행세할 수 있다. 구조만 들여다보아도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기는커녕 정권을 홍보하는 기능에 우선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언제부턴가 대통령 주례연설이나 대통령 주재회의를 앞 다투어 생중계하는가 하면 선거과정에서도 편향적인 보도를 일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 사장도 이사회가 임명 제청하지만 결국은 대통령이 임명권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KBS 이사회는 정부·여당 추천인 7명, 야당 추천인 4명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친정부·여당 편향적 인사를 대통령이 사장에 임명할 수 있다. '국민의 방송'은 제쳐두고, 공영방송 정상화와 공정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MBC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장의 임명권과 해임권을 갖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들의 임명권을 방통위가 갖고 있는 한 공정성 회복은 어렵다. MBC의 대주주로써 경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방문진 이사는 9명 중 여당 추천인 6명, 야당 추천인 3명으로 구성돼 대통령과 방통위원장의 입김이 얼마든지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 방통위가 국민을 대신해 엄정하고 중립적인 전파 관리와 방송정책을 펼칠 수 있겠는가? 또 공영방송사들이 정치적 중립지대에서 과연 얼마나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며 국민을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한낱 구두선에 불과한 '방송의 정치적 중립'은 방통위의 정치적 독립과 민주적 의사결정 확보가 관건이다.    

대통령은 방통위에 얼마든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방송사 사장에 낙하산을 언제든지 내려 보낼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정치적 독립과 공정성 확보가 생명인 국내 방송사들이 권력유지에 십분 활용되는 이유도 결국 이러한 모순 때문이다.

방송채널, 권력 친화적·보수일색 분칠...채널 선택권 좁아져

판사 출신 최성준 방송통신 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일 오전 국회 미방위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청문회 출석한 최성준 방통위원장 후보 판사 출신 최성준 방송통신 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일 오전 국회 미방위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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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제도적 모순을 바로잡지 못해 지난 대선 과정에서 편향된 의제설정과 불공정 선거보도로도 모자라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수미일관되게 친절한 애완견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까닭도 이러한 모순 때문이다. 비단 공영방송뿐만이 아니다. 종편까지 가세해 방송채널은 그야말로 권력 친화적, 보수일색으로 변했다.

더 이상 '땡박 뉴스', '정권 나팔수'란 소리가 낯설지 않다. 뉴스시간만 되면 대통령 보도 일색이란 말이 자자할 정도다. 보수채널만 어지럽게 난립해 국민의 눈과 귀, 영혼까지도 온통 보수색으로 분칠할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가 무려 7시간 동안 진행됐는데 KBS·MBC·SBS 지상파 3사는 물론이고 네이버·다음 등 인터넷 포털에서까지 충성 경쟁하듯 생중계했다. 대통령이 국내건 외국이건 마이크만 잡으면 방송사들은 생방송 경쟁을 벌일 정도다. 전파의 주인인 국민들의 채널 선택권이 점점 비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

방송이 일방적으로 정부와 집권여당의 입장만을 방송하는 행위로, 시청자들의 균형감 있는 정보습득에 침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종편은 이 같은 경쟁을 더욱 부추기며 보수 이데올로기를 한층 강화하고 있으니 가히 점입가경이다.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종편을 승인한 정부와 여당 등은 재승인 과정에서도 무리수를 뒀다. 종편들이 사업계획 불이행에 따른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는데도 재심 과정에서 모두 통과시켜주는 등 봐주기 심사란 따가운 비판이 일고 있는데도 방통위와 해당 방송사 또는 신문사들은 해명과 자화자찬만 늘어놓기 바쁘다.   

심지어 종편채널 내부위원회에서 활동한 인사가 종편 재승인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종편 재승인 심사가 얼마나 불공정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막말·편파 방송'이라는 구설수에 올랐던 '조중동' 종편들에게 재승인 기준을 웃도는 점수를 준 재승인심사위원회의 채점 결과를 그대로 최종 의결했다. '편파·밀실 심사'라는 비난과 함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언론자유 탄압 일조한 자를 방통위 수장에 내정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통령은 방송통신분야에 문외한인 현직 부장판사를 새 방통위원장에 내정했다. 공정성 확보를 위한 확고한 의지와 도덕성, 전문성대신 흠집투성이로 얼룩진 인물들이 그동안 방통위 수장자리에 앉아 얼마나 많은 고통을 국민들에게 안겨 주었는지 벌써 잊은 모양이다.

지난 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최성준 방통위원장 후보자에 대해 부동산 투기 등 각종 의혹이 쏟아졌다. 더욱이 그는 언론자유 탄압에 일조한 전력도 지니고 있어서 그에게 방통위 수장 자리가 적격하지 않다는 비판은 당연지사다. 땅에 떨어진 방송의 공공성을 지켜내고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수호해 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도덕성과 언론관까지 의심을 사고 있는 자가 방통위 수장이 된다면 방통위는 물론 방송사의 앞날은 안 봐도 뻔하다. 그동안 보아 왔지 않은가. 방송의 편향된 의제설정이 도를 넘어 권력의 시녀 또는 권력의 나팔수로 영영 전락할 공산이 크다. 지금도 방송사들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가기관의 특정후보 편들기 등 선거개입 사실들을 내보내기 꺼려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선거보도가 함량미달이라는 시민사회단체의 모니터 보고서까지 나왔다.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전국언론노조가 구성해 운영하는 공정선거보도감시단이 지방선거 100일 전부터 30일 동안 지상파방송사들의 메인뉴스를 분석한 결과, 선거보도의 양과 질 모두 부실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제라도 제왕적·위헌적 방통위 시스템부터 수술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거짓이 진실로, 불의가 불편부당으로 둔갑해 전파를 더욱 어지럽게 할 것이 분명하다.


태그:#방통위, #종편, #방송사, #공정성, #독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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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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