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아메리카 : 윈터솔저>(이하 <윈터숄져>). 전작에서 감히 사용하지 못했던 이름인 <캡틴 아메리카>를 과감히 가지고 온 배짱에 개봉 전부터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캡틴 아메리카의 데뷔작인 전작에서 본명을 숨긴 채 <퍼스트 어벤져>라는 이름으로 개봉했을 만큼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상징성이 매우 조심스러웠던 작품이었는데, 확실히 <어벤져스>, 그리고 마블의 힘이 대중문화의 흐름을 바꿔놨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이 지고 중국이 뜬다며 팍스아메리카의 위기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적어도 영화계 내에선 여전히 지구와 우주의 평화는 미국이 지켜줄 거 같다는 믿음이 절대적입니다. 역대 외화 흥행 10편 중 6편이 지구 평화를 위해 (배트맨은 고담시만 지키지만)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즉 아무리 부정적인 시선을 가져도 미국에 사는 박쥐인간이 도시를 지키다 실패하면 지구방위대가, 지구방위대도 실패하면 우주로봇이 지켜줄 거란 메시아를 받아들여야만 대중문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론 오락영화를 오락 이상으로 확장시키면 이젠 구닥다리 인간이 된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런 전제 하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윈터솔져>의 위치는 전작 <퍼스트 어벤져>와 같으면서 좀 더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혹평 속에, 아니 그 마저도 <7광구> 때문에 욕도 못 먹어본 전작이 <어벤져스>의 포석이었다면 이번 <윈터솔져> 역시 근시안적으론 <어벤져스2>의 연장선이고 더 나아가 마블 히어로 내전인 <시빌 워>까지 기대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윈터솔져>의 목적은 캡틴 아메리카에게 아이언맨을 견제할 힘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벤져스의 리더임에도 아이언맨에게 끌려다는 안쓰러운 모습은 코믹스의 캡틴 아메리카를 제대로 이식하지 못한 부분 때문에 일어났다고 봅니다. 애국심, 제국주의도 이젠 시장 자유주의 도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이 시대에 여전히 2차 세계대전에 머물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의 언행에 뜨거워 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대중이 원하는 것은 기계 오타쿠인 재벌 토니 스타크의 쿨하고 화려한 삶이었습니다.

미국 내에서야 코믹스의 뿌리가 튼튼히 박혀있기에 캡틴 아메리카가 자신들의 애국영웅 일 수 있지만 영화를 통해 처음 접한, 사실상 <어벤져스>로 처음 접한 이들에겐 캡틴 아메리카를 향한 미국인들의 반응이 다소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영화 한편을 이해하기 위해 코믹스를 사 봐야하는 의무도 없고요. 때문에 <윈터솔져>는 기필코 캡틴 아메리카를 리더로 올려놔야할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윈터솔져>의 흥행이 자명하게 설명하듯 영화는 상당한 수작입니다. <토르>, <아이언맨>, <X-맨>, <스파이더맨>, <고스트라이더>, <판타스틱4>, <헐크>등 영화화된 마블라인업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힘은 정말 보잘 것 없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퍼스트 어벤져>의 실패가 보여주듯 방패차고 달리기만 하는 근육남에게 무슨 매력을 느끼겠습니다. 그런 <캡틴 아메리카>의 우회전은 정말 너무나 훌륭한 신의 한수였습니다.

돈지랄할 맛나게 파괴하는 마블 특유의 액션이 아니라, 정치스릴러로서 현재 미국을 물어보는 영화의 새로운 방향은 마블이 심지어 장르변용도 가능하며 때문에 앞으로도 마블의 영향력이 더욱 더 강해지겠다는 가능성마저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캡틴 아메리카가 단순히 미국을 대변하는 영웅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이상향이며 나아가 진정한 정의의 가치를 상징하는 범지구방위대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자격마저 부여해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캡틴 아메리카의 완벽한 부활이라고 보기엔 한계점도 보이는 작품입니다. 아무리 스릴러적인 요소가 더 강한 작품이더라도 기본적으로 슈퍼 히어로이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우상화된 액션이 부족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이야기더라도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영상언어가 가지고 있어야할 미학은 떨어집니다. 이미 헬리케리어는 전작 <어벤져스>에서 감탄한지라 이번에 3대나 나와도 싱숭생숭하고 캡틴 아메리카와 끝까지 치열하게 싸워야할 적이 부재인 것도 문제가 됩니다. (솔직히 왜 부제가 윈터솔져인지 모르겠습니다.)

액션의 강점을 못 살린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오히려 나름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블랙 위도우입니다. 캡틴 아메리카를 중심사건에 두고 그의 주변에서 이야기의 호흡을 쥐락펴락하는 블랙위도우라는 팔색조가 관객의 마음마저도 밀고 당깁니다.

확실히 <윈터솔져>는 캡틴 아메리카를 <어벤져스>의 당당한 일원으로 격상 시킨 성공한 작품이지만 작품 내부에서 블랙 위도우에 밀려 주인공이 강렬하게 각인되지는 못한 작품입니다.

마블이 앞으로 이야기를 계속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히어로들이 캡틴 아메리카 앞에서 존경을 표하고, 마블 세계관의 인류가 캡틴 아메리카에게 열광하는 정서를 영화 외부의 관객들도 느끼게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 후반부 "캡틴의 명령입니다"라는 대사가 붕 떠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오히려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처럼 강력한 적의 묵직한 공격을 견뎌내는 열혈물이나 근성물로 후반부를 풀어내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아 보입니다. 확실히 <어벤져스2>로 여전히 아이언맨의 들러리가 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윈터솔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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