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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오키나와에 속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오키나와 노트>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오늘날 희생과 차별의 총량에서 오키나와는 일본 전체, 아니 그보다도 더 크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전후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오에 겐자부로의 명제. 나는 이 명제를 증명하는 것을 이번 오키나와 여행의 목적으로 삼게 되었다.

'0.6, 74, 20'

다음 숫자는 위 명제를 증명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풀어보면, 오키나와는 일본 국토의 0.6%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 기지의 74%가 오키나와에 있다. 오키나와 섬 면적의 20%를 미군 기지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지켜주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미군 주둔은 필요하다고 일부는 말한다. 이런 이유가 정당하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일본 전체 미군 기지의 74%, 오키나와 면적의 20%라는 사실은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키나와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미군 기지를 쉽게 볼 수 있다. 미군 기지 안에는 일장기와 성조기가 나부끼고 있다.
 오키나와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미군 기지를 쉽게 볼 수 있다. 미군 기지 안에는 일장기와 성조기가 나부끼고 있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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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를 '악마의 섬'으로 만든 카데나 기지

우리 일행은 카데나 미 공군기지, 후텐마 기지, 헤노코 기지를 갔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보이는 창밖 풍경은 쪽빛 바다 대신 끝없이 이어지는 미군 기지의 철조망이었다. 지나는 기지 입구에는 굳건한  미일 동맹을 상징하는 듯 일장기와 성조기가 함께 나부끼고 있다.

미군 기지 그리고 또 미군 기지를 지나 우리의 목적지인 카데나 미 공군 비행장에 도착했다. 기지 건너편에는 4층 건물의 카데나 휴게소가 있다. 휴게소 옥상에서는 기지 안을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오키나와 평화단체 사람들이 기지 맞은편에 있는 작은 언덕에서 감시활동을 했다. 언덕에 올라가면 미군들의 활동 즉, '안보'(미일 안보조약)가 보인다고 해서 '안보가 보이는 언덕'으로 불린다.

카데나 휴게소는 이 언덕 앞 기지에 좀 더 가까운 곳에 지은 것이다. 우리는 카데나 휴게소 옥상 전망대로 올라갔다. 눈앞에는 드넓은 기지가 펼쳐졌다. 동아시아 최대급 비행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3700m의 활주로는 쭉 뻗어 있었다. 한눈에 담기도 어려웠다. 일요일은 훈련이 없는 날이라 기지는 멈춰 있었다.

카데나 휴게소 전망대에서 보이는 카데나 기지 내부(위). 전망대에는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다.
 카데나 휴게소 전망대에서 보이는 카데나 기지 내부(위). 전망대에는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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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전망대에는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100엔(약 10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미군 기지 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미군 기지를 단돈 100엔으로 구경할 수 있다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주머니를 뒤져 100엔을 찾아 망원경에 넣었다. 안을 들여다 보았다. 활주로가 코앞에 있고, 격납고에 얌전히 모셔진 비행기가 바로 눈앞에 있다. 우리는 돌아가며 망원경을 들여다봤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전망대 3층에는 전시관이 있다. 카데나 기지에 주둔한 각종 비행기 모형과 기지를 소개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전시관에는 4개의 CCTV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줌인, 줌 아웃 기능까지 있어 기지 안을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CCTV는 기지 안을 감시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제야 왜 이곳이 '안보가 보이는 언덕'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카데나 시의 82.6%를 미 공군 비행장과 카데나 탄약고나 차지하고 있다.
 카데나 시의 82.6%를 미 공군 비행장과 카데나 탄약고나 차지하고 있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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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데나 미 공군 기지는 카데나 시 면적의 82.6%를 차지한다. 면적으로는 일본 최대 공항인 도쿄 하네다 공항의 약 두 배 크기이다. 카데나 시 주민들이 사는 마을은 기지 옆 한 귀퉁이에 붙어 있었다. '카데나 시'보다 '카데나 미군기지 시'라는 지명이 더 어울릴 듯했다.

활주로 역시 그 규모를 자랑한다. 3700m 길이의 활주로 두 개는 나리타 국제공항(4000m와 2500m 2개), 간사이 국제공항(3500m와 4000m 2개)에 비해 손색이 없는 일본 최대의 비행장 가운데 하나이다.

이 활주로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공습에 투입된 B-29 폭격기가 드나들었다. 그리고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전략폭격기 B-52가 수시로 뜨고 내리며 베트남에 엄청난 융단폭격을 가하기도 했다. 즉, 카데나 미 공군 기지는 미군의 아시아 전장의 가장 핵심기지였던 것이다.

이런 역할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05년 폐쇄된 경기도 화성의 매향리 미군 사격장은 카데나 기지 미 공군의 연습장이었다. 미 공군은 한 시간 남짓 날아와 우리 땅에서 폭탄 투하 연습을 하고 오키나와로 돌아간다. 우리나라와 오키나와는 미군에게 '일일 훈련권'에 속하는 셈이다.

오키나와 평화인권운동가 야마요시 마유미씨를 만났다. 그녀는 오키나와에 방문한 이라크 평화운동가들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라크 사람들은 오키나와를 '악마의 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공격과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에 맹폭격을 가했던 미 전투기들의 주요 기지가 오키나와 미군 기지였기 때문이다.

미군 기지 반대 투쟁이 활발한 오키나와를 본 이라크 사람들의 오해는 풀렸지만, 오키나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안타깝다고 그녀는 말했다.

온갖 민폐를 끼치고 있는 후텐마 기지

'후텐마 기지'와 '헤노코 기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하다. 기지 이전 문제로 한국 언론에도 자주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후텐마 기지와 슈리 방어 진지가 보이는 카카즈 공원.
 후텐마 기지와 슈리 방어 진지가 보이는 카카즈 공원.
ⓒ 겨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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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텐마 기지가 잘 내려다 보이는 카카즈 공원(고지)을 찾았다. 후텐마 기지와 카카즈 공원은 오키나와 기노완시 소속이다. 카카즈 공원은 오키나와 전쟁 당시 미군 상륙 작전에서 최초로 치열한 지상전이 있었던 곳이다. 엄청난 병력과 화력으로 몰아붙인 미군에게 점령되어 오키나와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은 전투였다.

카카즈 공원 전망대에서 오키나와 전쟁 당시 슈리(당시 수도)의 방어 진지가 보인다.
 카카즈 공원 전망대에서 오키나와 전쟁 당시 슈리(당시 수도)의 방어 진지가 보인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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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완 시의 26%를 차지하는 후텐마기지. 시의 한가운데 위치한 기지로 기노완 시는 도넛모양을 하고 있다.
 기노완 시의 26%를 차지하는 후텐마기지. 시의 한가운데 위치한 기지로 기노완 시는 도넛모양을 하고 있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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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위로 올라갔다. 전망대에서는 슈리(당시 수도) 방어 진지와 후텐마 기지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후텐마 기지에는 미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다. 미 해병대의 헬기 부대로 현재 70여 기의 헬기가 배치돼 있다. 그 중 24기는 '오스프리'라는 비행기이다. '오스프리'는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개조한 최신형 비행기이다.

기동성 면에서는 높은 성능을 자랑하지만, 안전성 면에서는 문제가 많다. 원인도 명확하지 않은 잦은 사고로 '과부 제조기'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이 비행기가 이곳에 배치되기까지 치열한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지난해 8월 새벽 시간을 이용해 24기의 배치를 완료했다. 일요일이라 훈련하는 모습과 헬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2800m 활주로 위에는 많은 헬기가 서 있었다.

후텐마 기지는 2006년 이전이 결정됐다. 이전의 결정적인 이유는 주민들의 치열한 투쟁의 결과였다. 끊이지 않는 미군 범죄와 비행기 추락사고로 주민들의 불만은 쌓일 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2004년 기지 인근의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미군 헬기 한 대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한낮에 일어난 날벼락 같은 사고였다. 이후 주민들의 기지 폐쇄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고, 그 결과 기지 이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후텐마 기지의 위치는 무척 신기했다. 기노완시 면적의 26%를 차지하는 기지는 시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것이다. 카가즈 공원에서 내려다 본 기노완시는 도넛 모양을 하고 있었다. 기지 사방에는 주택이 밀집해 있다. 기지로 인해 교통은 차단되어 있다. 그리고 매일 같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 소음으로 주민들의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암 덩어리 같은 기지가 이전하게 됐다. 그러나 이 결정을 반기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오키나와 북부 지역의 헤노코 바다를 매립해 그곳으로 옮기기로 한 탓이다. 결국 도로 오키나와 안이다. 후텐마 기지 옆에서 18년째 미군 기지 반대 투쟁을 해온 사키마 미술관 관장의 부인은 "오키나와 현 내로 옮긴다면 어차피 같은 거다. 현외로 가져가든지, 기지를 철수하든지 하라"며 "절대 반대, 죽어도 반대다"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미군의 동아시아 전략에 밥상 차려주는 정부... 주민들은 '결사 반대'

헤노코 기지는 오키나와 북부지역의 나고시 소속으로 헤노코 연안에 위치해 있다. 1시간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헤노코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 에메랄드빛 해변이 나타났다. 일행은 일제히 환호성을 쳤다. 이번 기행에서 오키나와의 백사장을 밟은 것은 처음이었다.

헤노코 연안에서 연좌 농성을 하는 농성장. 18년째 미군 반대 투쟁을 해오고 있다.
 헤노코 연안에서 연좌 농성을 하는 농성장. 18년째 미군 반대 투쟁을 해오고 있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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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도 잠시. 에메랄드빛 해변에는 누렇게 빛바랜 흰 천막이 한 동 놓여 있다. 바로 농성장이다. 농성 천막 앞에는 기지 이전 반대 농성 시작일로부터 세어 온 날 수가 적혀 있었다. 3571일. 10년이 다 되는 시간이다. 농성은 그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1997년 1월 27일, '생명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신기지 건설 반대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6210일. 미군 기지 반대 투쟁을 오롯이 18년을 해 오고 있다.  

우리 일행에게 헤노코 신기지 반대 투쟁에 대해 설명하는 다나카씨. 10년째 투쟁을 해오고 있다.
 우리 일행에게 헤노코 신기지 반대 투쟁에 대해 설명하는 다나카씨. 10년째 투쟁을 해오고 있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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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노코 주민으로 10여 년 전부터 농성에 참여하고 있다는 다나카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줬다.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 헤노코 기지 건설 반대 투쟁에 대해 설명했다.

"후텐마 기지 이전 결정에 생업이 바다에 걸려 있는 우리는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헤노코 바다 매립 공사를 막기 위해 어민들은 카누와 어선을 동원해 1년 넘게 해상 투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3571일 동안 농성을 하며 헤노코 앞 바다를 지키고 있습니다."

헤노코 해안은 산호 군락지이다. 이 산호 속에는 세계적 멸종 위기 종으로 '인어'라고도 불리는 '듀공'이 살고 있다. 세계에 100마리밖에 남지 않은 보호의 대상이다. 헤노코 연안을 매립해 미군 기지를 건설한다면 산호는 물론이고 듀공의 서식지까지 위태롭게 된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미군 기지를 건설해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다나카씨는 힘주어 말했다. 농성장과 철조망에 걸린 듀공의 그림은 미군과 일본 정부를 막아내는 수문장과도 같아 보였다.

농성장에 걸려있는 '듀공'의 그림.
 농성장에 걸려있는 '듀공'의 그림.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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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안에 있던 또 다른 주민은 "절대로 모래를 퍼 나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매립을 시작하려 한다면 우리는 즉각 바다로 나가 온몸으로 저지하겠다"라며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주민들은 끈질기고 악착 같은 투쟁으로 공사를 기지 공사를 막아내고 있었다.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막무가내로 해군기지 공사를 밀어붙인 제주 강정마을이 떠올랐다.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 저지가 가능한 것에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더불어 미군 기지 건설 반대 투쟁이 꼭 승리해 산호와 듀공, 그리고 헤노코 주민들의 터전이 지켜지길 마음 깊이 바랬다.

헤노코 앞 바다를 매립한 곳에는 3000m 길이의 활주로 두 개를 만들 계획이다. 과학적인 설계로 바람의 영향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군용 부두, 탄약 저장고, 연료 시설 등이 들어온다. 가장 공격적이고 신속한 기동성을 펼칠 수 있는 미 해병대의 신기지로 업그레이드된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장 중심에 자리 잡은 최신의 강력한 신기지. 이 사업은 일본을 넘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데 기지 이전에 드는 모든 비용을 일본에서 부담한다. 바다 매립 비용만 2조3000억 원 이상, 그 외 시설까지 합하면 3조 원은 넘는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예산이 드는 혁신적인 해외 주둔 기지를 주둔국에서 전부 부담한다니 미국으로서는 너무도 깔끔하고 완벽한 사업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제 국민들의 혈세를 털어 용에게 날개를 달아주려고 한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말한다. "미군 기지 건설에 돈 쓰지 말고, 후쿠시마 원전 복구에 쓰라"고.

미군에게는 이렇게 알토란 같은 사업이 주민들의 반대로 7년째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미국은 아베 정권을 압박한다. 아베 총리는 오키나와 현 지사를 달래려 돈다발을 쥐여준다. 오키나와에 10년에 걸쳐 연 3000억 엔(약 3조 원)씩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결국, 작년 12월 후텐마 기지 '현 외 이전'을 공약했던 나카이마 현 지사는 헤노코 연안 매립을 승인해 버렸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배신이라며 분노하고 하고 있다. 이 배신감은 올해 1월에 있었던 나고 시장 선거의 결과로 나타났다. '후텐마 기지 이전 반대'를 들고 나온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주민들의 기지 이전 반대 의사가 재확인되었다. 오키나와 현 지사는 매립 승인을, 나고 시장은 이전 반대를. 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싼 매우 복잡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응원의 의미로 십시일반 돈을 모아 농성장에 전달했다. 아베 총리가 내놓기로 한 연 3000억 엔에는 댈 수 없는 금액이다. 하지만 오키나와 주민들의 터전을 지키고 평화를 위한 진심만큼은 아베 총리가 내민 돈다발과는 비할 바가 못될 것이다.

아름다운 헤노코 백사장. 매립 공사가 진행되면 이곳에는 미 해병대의 활주로가 들어선다.
 아름다운 헤노코 백사장. 매립 공사가 진행되면 이곳에는 미 해병대의 활주로가 들어선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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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백사장으로 나갔다. 부드러운 모래가 기분 좋게 서걱서걱 밟힌다. 반쯤 걸었을까. 중간에서 우리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기부터는 미군의 영역이다. 철조망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철조망에는 지지 방문을 온 사람들이 쓴 '듀공을 지켜라', '후텐마 기지 이전 반대', '미군은 나가라' 등의 구호가 걸개에 수놓아져 있었다.

우리는 미처 걸개를 준비하지 못 했다. 누군가가 입고 있던 셔츠를 벗었다. 땀 냄새난다며 놀려대는 이도 있었지만, "함께 땀 흘리는 연대가 진짜 연대지"라는 누군가의 말에 웃음으로 공감하며 모두들 한마디씩 남겼다. 급조된 걸개였지만 마음을 다해 메시지를 남겼다.

헤노코 미군 기지 철조망에 걸려있는 다양한 걸개들. 우리 일행도 '미군 기지 반대'의 메시지를 남겼다.
 헤노코 미군 기지 철조망에 걸려있는 다양한 걸개들. 우리 일행도 '미군 기지 반대'의 메시지를 남겼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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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면적의 0.6%에 불과한 작은 섬에 일본 내 미군 기지의 74%가 몰려있는 오키나와. 총  34개의 미군 기지 중 3곳밖에 보지 못했지만, 미군기지로 인해 고통받는 오키나와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일본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강요된 희생이라는 논리에는 누구도 반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머릿속을 맴돌던 '일본이 오키나와에 속한다'는 오에 겐자부로의 명제가 '참'으로 증명되는 시간들이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키나와의 하늘은 구름마저 비행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키나와 기행은 1월 25일~28일까지 겨레하나 여행사업단 '더하기 휴'의 '서승 교수와 떠나는 오키나와 평화감성여행'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태그:#오키나와 미군 기지, #카데나 미 공군기지, #후텐마 기지, #헤노코 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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