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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위에 방치된 장애물은 철도 운행에 치명적 위험을 야기한다. 그것은 열차의 탈선사고와 직결된다. 그래서 정해진 선로를 달리기 때문에 별다른 주의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기관사는 항상 전방을 예의주시하면서 열차를 운행하는 것이다.

만약 철로에 확인되지 못한 이물질이 있는 것이 발견될 경우 기관사는 안전을 위해 열차를 세우고 이물질을 확인하고 때로는 그것을 치워야 한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우리가 작업중에 뒤엽쟁이에서 실제로 열차가 멈춘 적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놀랐던가.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곤 한다.

물론 못 몇 개로 열차가 전복 될 리도 없고, 기관사의 눈에 그 먼 거리에서 철길 위에 놓여진 대못이 보였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 그 때는 아이들이 철길에 모여 있다 도망치듯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멈췄을 것이다.

실제로 작업을 하다보면, 멀리서 기적 소리는 울리고 마음은 급한데 못은 단단히 고정되지 않고 자꾸만 레일에서 떨어져 내린다. 어서 빨리 작업을 마치고 철수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할수록 더더욱 일이 안된다. 만약 철로에 장애물을 설치하다가 공안이나, 기관사에게 잡히면 '철도운행방해'죄인가 하는 어마어마한 죄명으로 곧바로 징역행임을 어른들로부터 들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소년들은 열차가 속도를 늦추는 기미만 보여도 줄행랑을 놓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부상당하는 상황은 대개 그런 때 발생한다. 급히 도망치다가 돌부리나 나무등걸에 결려 넘어져서 다치는 것이다. 실로 긴장되고 살 떨리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기관사에게 들통나지 않고 열차가 무사히 통과한 후 기적을 울리며 고척리쪽으로 사라지면 아이들은 매복 장소를 박차고 일제히 달려 내려간다. 전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실망스러운 결과다. 당초 설치한 곳에 그대로 묶여 있는 못은 몇 개 안 되었다. 못들은 대부분 철길 주변 이곳저곳에 튕겨져 있었다. 우리들은 못의 모양과 끈을 보고 자기 소유를 골라 찾아야 한다. 한 번에 보통 20여 개를 갈리는데, 대부분 실패하지만 어쩌다 재수가 좋을 경우 그 중 서너 개는 아주 멋진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뒤엽쟁이 대장간 출장'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상당히 전문적이고도 복잡하다. 재료로 쓸 대못을 구하고, 바쁜 농사철을 피해야 하는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날짜를 정하여야 한다.

좋은 대못을 구하기란 또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집안의 창고나 헛간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못이라고는 녹이 슬고 구부러진 것들뿐이다, 주머니칼을 만들 정도로 미끈하고 반듯한 대못을 구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새것을 살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은 녹이 슬고 약간 구부러진 못 중에서 그런대로 쓸 만한 것을 찾아내어 반듯하게 펴고 사포로 닦아 기름칠을 해 두어야 한다. 이렇게 시작에서 마무리까지 워낙 복잡하고도 지난한 작업이라 일사분란하고도 치밀한 준비가 수반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주머니 칼 제작 공정은 적어도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어야 멤버로 참여할 수 있다. 주머니 칼 제작에 필수 코스인 '뒤엽쟁이 철길' 그 위험한 곳에 아직 어려서 상황 파악이 늦고 동작이 꿈뜬 동생들을 데리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누가 동생의 막무가내를 견디지 못하고 데려갔다가 동생이 다치거나 하는 변수가 생길 경우에 부모로부터 당하는 핍박과 횡액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뒤엽쟁이에 가는 날은 동생을 떼어 놓기 위해 아침부터 세심하게 준비해야 했다.
 
거사 당일, 내 친구들은 대개 동생이 평소 욕심내던 것을 내주며 주의를 분산시키기는 작전을 쓴다. 글도 모르는 어린 동생들이 뒤적거리다가 찢어 먹기 일쑤인 알룩달룩한 그림이 들어있는 역사책이나 지리부도를 몇 장 찢길 각오를 하고 내주는 것이다.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엄마에게 부탁해서 밭에 가거나, 이웃집에 마실갈 때 데리고 나가도록 조처해야 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한 번도 따라가 보지 못한 칼 제작 현장을 따라가 보려고 진작부터 잔뜩 벼르고 있는 찰거머리 같은 애들을 떼어 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그곳만은 절대 데려갈 수 없다.  

나에게는 떼어내야 할 찰거머리가 두 마리다. 친동생 유덕이와 사촌 동생 유창이가 그들이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동생들 때문에 골치가 아플 때 나의 경우는 오히려 홀가분하다. 친동생 유덕이는 나보다 외할머니가 긁어 주는 누룽지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외갓집에만 데려다 주면 되었다.

유덕이를 데려다 주고 나면 이제 죽으나 사나 나만 따라다니는 사촌 동생 유창이가 남는데 유창이도 이날만은 사실 별 문제가 안 되었다. 유창이 형 중에 나와 동갑내기 성우가 있는데, 만약 동생을 뒤엽쟁이에 데려가다 들키는 날에는 성우는 작은 어머니께 경을 치는 날이다. 따라가기는 나를 따라 가는데 유창이로 인해 혼나는 것은 언제나 성우다. 약간 미안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우는 가지 말라는 철길에 갔다고 열대 맞는다면, 동생 데려갔다는 이유로는 그 세배 쯤 더 맞기 때문에 내가 말하지 않아도 지가 먼저 알아서 챙겼다.
 
성우가 작은어머니에게 유석이랑 산에 새집 뒤지러 갈테니 유창이를 잡아두라고 살짝 귀띔만 하면 유창이는 당장 감금상태에 들어간다. 유창이가 산에 가서 다칠 것을 염려한 작은 어머니는 우리가 장거리 원정을 마치고 마을로 개선할 때까지 집밖으로는 꼼짝도 하지 못하게 했다. 물론 이런 유창이도 몇 년 후에는 용맹한 대원으로 성장한다. 유창이는 뒤엽쟁이 원정이나, 새집 뒤지기 등에서 마을 소년 누구보다도 혁혁한 전공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뒤엽쟁이 출장 원정대'에 포함될 나이는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을 겪은 것이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문득 돌이켜 보니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다. 이제 모두가 아득한 옛 일이고 추억이 되어 버렸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그 시절 나를 품어 주던 건장산의 산태나무 숲, 내가 헤집고 다니던 산과 계곡들이 여전히 나를 반긴다. 언제 보아도 나직하고 보잘것 없이 밋밋한, 그래서 더 정겨운 건장산 봉우리가 오랜만이라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느냐고… 얼마나 재미있게 사느냐고… 그 시절보다는 지금이 사는게 심심하지는 않느냐고 묻는 듯하다.
 
성석이 형네 절 집 본당과 한증막이 있던 자리는 무너져 흔적도 찾을 수 없고, 이제는 잡초만 무성하다. 나 어릴 때보다 훨씬 더 키가 커진 나무들로 가득한 건장산 능선길은 마을 사람들 걷기 좋게 나무 데크로 산책길도 만들어져 산책하기도 좋아졌다. 뒤엽쟁이 철길도 아직은 그대로 있어 지금도 '철크덩 철크덩' 열차가 다니고 있다. 당시에는 꽤 먼 것 같던 뒤엽쟁이 가는 거리도 지금 보면 바로 지척이다. 그 산과 언덕, 소롯길, 작은 시내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다.

다만 그곳에 뛰놀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거의가 고향을 떠났고, 그 중에 몇몇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벌써 유명을 달리한 친구도 있다. 한참 어린 것 같았던 사촌동생 유창이도 어느덧 50대에 들어섰다. 이제 유덕이도, 유창이도 이제는 나와 같이 늙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하루 세끼 꽁보리밥만 먹고도 기운이 남아 펄펄 날아다니던 그 시절로 이제 정녕 돌아갈 수는 없는가? 대책없이 용감했던 그때 그 패기와 열정이 마냥 그리워진다.(끝)


태그:#건장산, #뒤엽쟁이, #어린시절, #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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