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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부조리극'이라는 게 있다. 연극의 한 장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연극'이라는 이름조차 생뚱맞게 들린다. 연극의 '알짜배기'라 할 것들이 모두 빠져 있거나 뒤집혀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도 없고, 논리 또한 존재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드는 갈등상황도 등장하지 않는다.

갈등이 없으니 당연히 해소될 것도 없다. 그러니 막이 내려도 극은 끝나지 않는다. 부조리극에는 시작도 끝도 존재하지 않으며, 시종 답답한 상황이 계속될 뿐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제목 이상의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도를 기다리고, 그는 오지 않는다. 하지만 상관없다. 기다리는 이들이 고도가 누구인지, 그가 정말 존재하는 사람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이오네스코의 <대머리여가수>에서는 등장인물이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말하고 퇴장한 후 여전히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난다.

부조리극에서 등장인물은 쉼 없이 말하지만, 대화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 떠들 뿐이다. 맥락도, 내용도 없는 헛소리를 되뇔 뿐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초현실적 상황을 깨닫지 못한다. 관객들 눈에는 뻔히 보이는 부조리를 등장인물들만 모른다는 아이러니가 부조리극의 핵심이 된다. 삶과 사회의 '어처구니없음(absurdity)'을 보여주는 것이 부조리극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상관의 성추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오 대위는 지난해 10월 부대 인근 화천군 청소년야영장 주차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상관의 성추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오 대위는 지난해 10월 부대 인근 화천군 청소년야영장 주차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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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사회는 거대한 무대에서 벌어지는 부조리극처럼 보인다. 이 부조리극의 '어처구니없음'은 베케트와 이오네스코의 뺨을 여러 대 치고도 남는다. 이 부조리한 사회에서는 군대 상관이 부하를 성희롱해 죽음으로 몰고 가도 별 탈 없이 빠져나간다. 해당 부대는 가해자에게 불리한 증거를 감추거나 조작하고, 부사단장은 유족에게 선처를 종용한다.

이런 일이 현 정부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다. '4대 사회악'을 근절하겠다며 '성폭력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 정부 아닌가. 군대용어처럼 '사회'를 '군대'의 반대말로 쓴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해당 부대의 '가해자 편들기'는 초현실적 수준을 넘어 초자연적 차원에 이른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가해자가 속했던 부대의 부사단장은 희생자 가족을 찾아가, 천도제를 지내는 중에 희생자 영혼이 무속인에게 나타나 '나는 잘 있으니 (가해자) 노소령을 풀어주라'고 말했다 한다. 군대는 왜 존재하며, 첩보·감시·정찰에 쏟아 붓는 막대한 국방예산은 무엇 때문에 필요할까? 무속인 몇 명만 데려다 놓으면 귀신을 동원해 적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알아낼 텐데 말이다. 당장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 밥줄부터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말이다.

'막장사회'에서 벌어지는 부조리극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조작과 관련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던 국가정보원 권모 과장이 자살을 기도해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송된 가운데, 지난 달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중환자실 앞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국정원 직원 자살기도, 삼엄한 통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조작과 관련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던 국가정보원 권모 과장이 자살을 기도해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송된 가운데, 지난 달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중환자실 앞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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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간첩 증거를 조작하다가 들통이 나자, 연루된 직원은 자살소동을 벌였다. 그는 최근 의식을 회복했으나, "뇌의 최근 기억력을 관장하는 부분이 손상돼 앞으로 지각 능력에 장애가 나타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3월 28일자 <파이낸셜타임스>는 국정원의 증거 조작사건을 대선개입 혐의와 관련지어 보도했다. 대선 여론조작 사건으로 인해 국정원의 존재이유를 의심받게 되자, 무리하게 간첩사건을 밀어붙여 증거조작까지 하게 됐다는 것이다. 들통 난 조작 사건을 덮기 위해 꾸민 조작 사건이 다시 들통 난 셈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26일 검사 2명을 증거위조에 가담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조작된 문서들을 정식 외교경로로 받은 것처럼 속였다는 이유다. 이들은 중국 당국에 자료 요청을 했다가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안국으로부터 받았다'며 거짓 서류를 법원에 제출했었다.

물론 그 검사들은 '(국정원의 활동에 관해)기밀이 필요했을 뿐 속이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럴 때는 얼마 전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한 주옥같은 말이 떠오른다.

"선진국이 안 된 국가들에서는 (...)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 의원은 이후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국정원이 오히려 당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행자가 '정보당국에서 몰랐다면 무능하고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맞다'고 답한다. 우리는 '부도덕해도 유능한 게 낫다'며 현 정부를 탄생시켰지만, 스스로 인정하듯, 이들은 무능하다.

어찌 그리 뻔뻔한가...

3월 24일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는 자신의 위장전입과 농지법 위반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대단히 죄송하다"면서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고 구구하게 변명할 생각은 없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업무추진비 유용 의혹에 대해서도 "적절성 여부에 대한 지적을 부인하지는 않겠다"라고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가장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다가온 것은, 주민등록법을 주관하는 부처의 장관 후보가 주민등록법을 위반했다는 사실도, 공직자 윤리를 확립할 목적으로 세워진 기관의 수장 후보가 공금 수천만 원을 지인들 경조사비로 썼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구구하게 변명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장관만은 하겠다며 꿋꿋이 버티는 모습이 가장 경이로웠다.

그러나 더 부조리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야당 의원이 공정한 선거관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법과 원칙에 따라서 나름대로 선거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앞으로 그렇게 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장관 자리는 이제까지 잘못해 온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과정인 모양이다.

권력이 '법과 질서'를 내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힘 있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반면, 힘이 없는 자들에게는 추상같은 게 법이요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한국 역대의 정권을 봐도 알 수 있다. 정통성 없고 부도덕한 권력일수록 '법', '정의', '윤리'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정치권력만이 아니다. 한국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말하자면, 언론을 빼놓을 수 없다. 예컨대 한국신문협회는 지난 달 25일 <조선일보>의 '채동욱 혼외아들' 보도에 '한국 신문상'을 주기로 하면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언론이 권력자의 탈선된 사생활을 보도하려 할 때 필요한 덕목인 용기를 잘 보여주었다."

언론학자로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권력자의 탈선"을 드러내기는커녕, '선거부정'이라는 권력의 추악한 탈선을 은폐하는 보도였기 때문이다. 권력을 등에 업은 채 권력의 치부를 숨기는데 동원된 언론에 무슨 "용기"가 필요한가. 나는 이 부조리한 상황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부조리한 현실, 무엇을 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달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달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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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유럽에 등장한 부조리극은 인간존재에 대한 비관과 환멸을 담고 있다. 세계대전이 가져 온 끔찍한 파괴와 죽음, 나치의 대량학살은 인간의 이성이나 신의 자비라는 생각을 비웃게 만들었다. 부조리극에 '교훈'이라는 게 있다면, 인간은 어떤 목적도, 의미도 없이 태어나 떠돌다 사라지는 가련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2014년 '한국판 부조리극'을 연출하는 권력은 어떠한가. 이들이 '아무 목적이나 이유도 없이 태어나 떠돌다 사라지는' 존재라면 차라리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득권의 재생산'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정치권력이 끊임없이 되뇌는, 소통 불가능한 언어들은 권력의 목적에 충실히 기여한다.

4대강을 파괴하면서 '4대강 살리기'라고 말하고, '언론의 다양성'을 추구하겠다면서 획일적 목소리의 종편 방송을 허가하고, '통일은 대박'이라면서 경제협력도 포기한 채 끝없는 남북대결로 나아가고,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면서 복지혜택을 축소해가는 것은 권력에게 이익을 준다. 공동체가 파괴되고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지지만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보드리야르는 미국사회에 대해 통찰력 있는 말을 남겼다. "디즈니랜드가 존재하는 이유는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막장드라마'가 존재하는 이유는 한국사회 전체가 '막장드라마'라는 사실을 숨기기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부조리극은 개인과 사회에 대한 우울한 전망으로 가득하지만, 변화의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다. 삶의 모순을 관객에게 드러내려고 애쓴다는 사실은, 인식의 변화가 (비록 작고 느리더라도)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동하는 관객'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등장인물들의 부조리함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만으로 족하다. 부조리를 부조리로 느낄 만큼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한, 변화의 희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태그:#국정원, #성추행, #남북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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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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