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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에는 네가 던져 봐."

40대 초반의 P씨는 연년생으로 초등학생인 두 아들과 휴일이면 야구공 주고받기를 즐긴다. 큰 아들은 오른손, 작은 아들은 왼손잡이이다. 그는 두 아들이 던지는 공의 궤적이 다른 걸 당연하게 여긴다. 평소 가족과 야구경기를 자주 시청하는 그는 오른손 투수와 왼손 투수의 구질이 다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P씨가 전혀 모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던져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들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그 것이다. 오른손잡이인 큰 아들은 아빠의 말을 왼쪽 두뇌로, 왼손잡이인 작은 아들은 오른쪽 두뇌로 인식하는 등 서로 양상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그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던져 봐" 외에, "잡아라", "문질러 봐" 등 손동작이 따라야 하는 단어를 들었을 때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두뇌 반응은 십중팔구 다르다. "평소 주로 사용하는 손이 다르니, 뇌 반응 부위도 다를 수 있지, 뭐"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사고방식이 다른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화성인' 남자, '금성인' 여자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헌데 최근 들어 태생적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두뇌 특성 또한 그 차이가 상당하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흑인, 황인, 백인을 가릴 것 없이 공통적인 현상이다. 여자와 남자처럼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또한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선수의 비율은 20% 안팎으로 일반인구의 5~10%(추정치)에 비해 훨씬 높다.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왼손잡이가 25%로 더 많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야구 경기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운동선수 가운데는 일반적으로 왼손잡이가 많다. 특히 테니스, 복싱 등 일대일로 맞서는 스포츠 종목에서 더 그렇다. 이 때문에 왼손잡이들이 평균적으로 운동신경이 더 좋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L은 좌반구를 R은 우반구를 나타낸다. 똑같은 자극에 나타나는 반응 부위가 왼손잡이(노란색)와 오른손잡이(푸른색)에서 전적으로 다르다.
▲ 왼손잡이 오른손잡이 차이 L은 좌반구를 R은 우반구를 나타낸다. 똑같은 자극에 나타나는 반응 부위가 왼손잡이(노란색)와 오른손잡이(푸른색)에서 전적으로 다르다.
ⓒ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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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가운데는 또 예체능 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두뇌의 우반구가 발달된 사람의 비율이 오른손잡이에 비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이뤄진 한 조사는 왼손잡이의 지능지수가 오른손잡이보다 평균 1점 정도 높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정신분열증이나 각종 신경증에는 왼손잡이가 더 취약하다는 사실이 의학통계를 통해 확인되는 실정이다. 

올해 25세인 K씨는 오른손잡이지만 왼손도 잘 쓴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왼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를 썼다. 그런데 엄마와 누나가 그 즈음 왼손을 쓰는 걸 자주 놀렸다. 주변 친구들도 거의 다 오른손잡이이고, 놀림을 받는 게 싫어 오른손으로 바꿨다"고 털어 놓았다.

그의 뇌는 평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까. 전문가들은 타고난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중간쯤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추정일 뿐이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태아 때 산모의 뱃속환경은 물론 후천적인 강요나 학습에 의해 정해질 수도 있다. 뇌가 우리 몸을 움직이는 중추지만, 역으로 신체의 어떤 부위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느냐가 뇌 기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영어 단어, 'right'에는10가지 이상의 뜻이 있다. 이 가운데 '오른쪽'과 '옳은' 이라는 뜻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다. 왼손잡이들로서는 곰곰이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 수도 있는 일이다. 헌데 영어만 오른쪽을 우대하는 건 아니다. 최근에는 좀 달라진 듯 하지만, 예전에는 우리 사회에서도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흔히 지칭하곤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른손을 더 쳐주는 현상은 공통적이었다.

하지만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에 대한 최신 연구들은 양손의 우열을 함부로 속단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수렴된다. 흥미롭게도 버락 오바마를 포함한 미국의 최근 역대 대통령 7명 가운데 5명은 왼손잡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왼손잡이가 더 뛰어난 셈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짜맞춰야 할 퍼즐 가운데 일부분일 뿐이다. 확실한 것은 우열이 아니라 차이이다. 왼손이냐, 오른손이냐 하는 겉으로 드러난 차이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뇌의 구조와 기능 차이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팀은 최근 유명 학술지(<네이처 리뷰스 뉴로사이언스>)에 기고한 논문에서 뇌 과학자들 사이의 '공공연한 비밀'을 까발려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 논문의 요지는 "왼손잡이들도 연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뇌신경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통계에서 변수를 줄이기 위해 왼손잡이를 배제하는 일이 잦은데, 이를 정면에서 꼬집은 것이다. 왼손잡이를 연구에 포함시키면, 데이터가 들쭉날쭉해진다는 건 학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연구자로서는 당연히 명쾌한 결론을 끌어내기 어렵다.

뇌의 작동 방식이 다르다는 말은 곧 사람이 다르다는 얘기와도 통한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팀은 "왼손잡이의 비율이 인간 가운데 상당하고, 그들 또한 정상적인 사람의 한 부류"라고 지적했다. 오른손잡이에 대한 뇌 연구 결과를 인간 전체의 그 것인 마냥 포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왼손잡이에 대한 부지불식간의 차별이 학계에서조차 엄존하는 게 현실이다. 왼손잡이에 대한 공정한 배려가 가능한 날은 언제쯤일까.

덧붙이는 글 | 위클리 공감(http://www.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 주간지입니다



태그:#왼손잡이, #오른손잡이, #뇌 구조, #소수,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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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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