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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조합원들이 28일 서울 마포구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창립대회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조합원들이 28일 서울 마포구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창립대회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황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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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내는 월세를 따져봤더니 약 10조 원 정도 된다는 통계가 있더군요. 그중 10분의 1, 20분의 1만 모아도 충분히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요?" (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장)

집 없는 청년 '민달팽이'들이 자신들의 주거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뭉쳤다. 그동안 집주인이 달라는 월세 다 주며 살았지만, 이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 주택 수요자 중심의 대안적인 주거공간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다. 이름은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이다.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은 28일 서울 마포구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창립대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주택을 짓거나 임차해 최소한의 운영비만 임대료로 내면 살 수 있는 비영리 공공주택을 만들겠다는 게 이들의 포부다.

대안 주거공간을 향한 청년들의 도전

민달팽이 협동조합은 지난 2010년부터 청년 주거문제에 주력해왔던 시민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의 작품이다. 집이 없는 청년들이 주체가 되어 지난해 9월에 본격적인 준비작업을 시작해 5개월만에 출자금 355만 원, 조합원 43명의 협동조합을 만들어냈다. 민달팽이 유니온의 임경지 활동가는 이날 창립대회 설명에서 "처음 하다보니 협동조합 설립신고 과정에서도 서류 미비 등으로 두 차례 반려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이 생소한 과정을 거쳐 직접 조합 설립에 나선 이유는 그만큼 청년 주거문제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민달팽이 유니온이 발표한 '청년 주거빈곤 보고서'를 보면 20~34세 청년의 14.7%(139만 명) 정도가 최거 주거기준(14㎡)보다 작은 방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 문제는 결국 자산 여부와 밀접하게 이어진다. 권지웅 민달팽이 협동조합 이사장은 "한국사회에서 주거권은 돈을 가진 자의 권리이고, 그러다보니 사회적으로 청년세대의 주거 불안이 심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사회 불평등의 상징인 집이라는 공간을 함께 사는 곳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게 우리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찾은 돌파책 중 하나는 같은 처지에 있는 세입자를 모으는 것이다. 조합원들끼리 모여 수요가 충분한 원룸 건물을 통째로 빌린 후, 장기 계약을 해서 임대료를 시세의 75% 정도로 낮추겠다는 계산이다.

우선 오는 5월에 권 이사장과 협동조합 실무자들이 조합 명의로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한 원룸으로 사전 입주한다. 올해 10월에는 14명의 조합원이 거주할 만한 곳을 물색해 '민달팽이 주택 1호'를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실질적인 주거환경 개선이 시급한 조합원들에게는 공정 중개 서비스를 제공한다. 청년 세입자는 주택 계약 시 부동산 업자와 집주인에게 집에 대한 법률 및 생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일이 많은데, 이 점을 조합 소속 공인중개사가 보완해준다는 내용이다.

"미래 나에게도 닥칠 주거불안... 연대하겠다는 마음"

이날 행사는 조합 관계자 8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축제 분위기로 진행됐다. 조합 내 선출을 통해 뽑힌 김기태 이사는 기타 연주를 곁들인 공연으로 청중들의 호응을 받았다. 집이 없어 연인과 헤어진 사람의 무력한 심경을 담은 노래였다.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모두 '청년은 주거비 때문에 서울에서 살아가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조합에 출자금을 내고 가입한 이유도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줄여보자는 취지라는 대답이 많았다.

강서구에 거주하는 이수나(29)씨는 현재 동생과 함께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인 방에 살고 있다. 이씨는 "보증금 3000만 원도 대출이기 때문에 이자로 치면 한달에 40만 원 이상이 주거비로 나간다"면서 "그렇게 주고 사는 방이 쾌적한 환경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남식(23)씨는 "미래에 나에게도 닥칠 문제이기 때문에 우선 연대하자는 차원에서 조합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현재 경기도 일산에 있는 부모님 집에 거주하고 있지만, 항상 독립을 꿈꾼다. 그는 "취업 등을 생각하면 30대는 서울에서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주거비 부담이 너무 크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주면 7~8년 후에는 조합원으로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조합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는데 필요한 기간을 대략 10년 정도로 내다봤다. 친구와 함께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30만 원짜리 방에 살고 있는 김창수(29)씨는 "대학 때문에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살때는 뭘 잘 몰라서 주거비용이 비싸도 별 불만이 없었지만, 지금은 이 문제가 청년에게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당사자인 청년들이 뭉치면 10년 안에 나도 혜택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10년 앞을 내다보다

청년 중심의 협동조합 설립식이었지만 청년들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최고령은 올해 55세인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이었다. 협동조합 설립과정에서 자문을 맡았던 그도 이날 마이크를 잡고 응원을 보냈다.

정 원장은 "우리 세대가 집과 땅을 가질려고 적극적으로 경쟁을 하는 바람에 뒷 세대인 여러분들이 집을 못 가지게 된 것 같아 미안하다"면서 "사회가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보유세를 물리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52세인 조정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연대 차원에서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조 의원은 "엄청 많은 청년들이 최저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환경에 놓여있고 이런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면서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주택협동조합을 이끌어가는 조합원들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했던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주택 협동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도시 같은 경우는 슬럼화된 변두리나 공유지 등 땅값이 저렴한 지역을 통해 주택 협동조합이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있지만, 서울 같은 경우는 대부분 개발이 진행되어 관의 도움 없이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변 교수는 "서울시의 경우 전세임대주택이나 매입임대주택 등의 제도를 시행중인데 정치적 결단을 통해 이중 일부를 청년 주택협동조합에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면서 "그런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자신들의 주거문제를 계속 사회적으로 이슈화, 공론화하려는 노력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주택협동조합, #민달팽이, #민달팽이 유니온, #청년주거, #주거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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