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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털남 3 -14회 [취중진담] '누나는 성폭행, 아버지는... '살아남은 아이'의 충격증언' 극단적 구타, 인신매매, 감금, 성폭행, 강제노역, 암매장 등 잔혹한 인권유린이 벌어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인 한종선씨의 증언을 통해 직접 들어봅니다.
ⓒ 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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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0월부터 1987년 1월까지 형제복지원에 있었던 한종선 씨가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한 고시원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1984년 입소할 당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은 사건 실체를 숨길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1984년 10월부터 1987년 1월까지 형제복지원에 있었던 한종선 씨가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한 고시원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1984년 입소할 당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은 사건 실체를 숨길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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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선 씨는 "저희는 당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에 근거해 잡혀갔다"며 "이건 엄연한 역사의 한 부분이자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국가 폭력이다. 전직 대통령이 저지른 문제에 대해 진상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외치는데 이게 비정상 아니냐"고 말했다.
 한종선 씨는 "저희는 당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에 근거해 잡혀갔다"며 "이건 엄연한 역사의 한 부분이자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국가 폭력이다. 전직 대통령이 저지른 문제에 대해 진상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외치는데 이게 비정상 아니냐"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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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장의 오래된 사진이 있다. 무심한 듯 정면을 바라보는 흑백 사진 속 아홉 살 소년. 아래에는 1984년 10월을 의미하는 '84-10-3618'이란 숫자가 크게 박혀 있다.

지난 2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소개되면서 큰 공분을 불러일으킨 부산 '형제복지원'에 한종선(39)씨가 입소할 당시 찍은 사진이다. 감금과 구타, 강제노역 등으로 사망한 사람만 541명에 달하는 복지원. 한씨는 그 곳에서 꼬박 4년을 보내야했다.

26일 오후, 그가 살고 있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원을 찾았다. 작은 침대 하나와 화장실이 전부인 공간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그가 풀고 있던 수학 문제지다. '2013년 제2회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 모의고사에서 한씨는 20문제 중 7문제를 맞았다. "언제까지 피해자 코스프레만 할 수는 없잖아요." '피해자들도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그는 초등학교 과정도 검정고시를 통해 마쳤다.

여전히 계속되는 그날의 기억... '사회정화' 앞세운 한국판 아우슈비츠


한종선 씨가 직접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정말 이유없이 맞았다"며 "그들은 개를 잡을 때 개를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때려 죽이는 것에 비유하며 지옥보다 더한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종선 씨가 직접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정말 이유없이 맞았다"며 "그들은 개를 잡을 때 개를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때려 죽이는 것에 비유하며 지옥보다 더한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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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선 씨는 "원래 그림 작업에는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책을 내는 걸 도와준 교수가 기억나는 대로 그려보라고 해서 그린 그림이다"며 "파출소에서 작은 누나와 함께 검은색 지프 같은 차에 실여 형제복지원에 가는 그림이다"고 설명했다.
 한종선 씨는 "원래 그림 작업에는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책을 내는 걸 도와준 교수가 기억나는 대로 그려보라고 해서 그린 그림이다"며 "파출소에서 작은 누나와 함께 검은색 지프 같은 차에 실여 형제복지원에 가는 그림이다"고 설명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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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악몽을 꿔요. 불 끄고 자면 꼭 가위에 눌려서 불도 다 켜놓고 자고, 한 번 깨면 다시 못 자니까 아예 낮에 많이 자 놓고... 잘 자다가도 굵직한 남자목소리가 '한종선!!!' 하고 부르는 환청이 들려 벌떡벌떡 깨기도 합니다. 복지원에서 제 번호가 1번이어서, 소대장이 이름을 부를 때 즉시 대답을 못하면 죽도록 맞았거든요."

1975년 설립된 복지원(원장 박인근)에서는 구타와 성폭행, 강제노역이 일상적인 일이었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당시 '사회정화프로그램'이라며 부산 형제복지원 사업을 앞장서서 독려했다. 명분은 사회 부적응자들에 대한 '선도'였지만 실상은 어린아이들과 공원·지하철역 등에서 끌려온 시민들이 다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복지원은 깊은 산 속에 위치한 데다 담장이 4미터나 돼, 한 번 끌려 들어가면 나올 길이 없었다. 

당시 참상을 풀어낸 글과 직접 그린 그림을 엮어 <살아남은 아이>(문주출판사)를 펴내기도 한 한씨는 아직도 그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한씨 말대로 "눈을 마주쳐도 맞고 눈을 피해도 맞는, 정말 이유가 없이 맞아야 했던" 당시 복지원을, 피해생존자들은 '지옥보다 더한' 곳으로 기억한다. 구타와 성폭행이 늘상 자행되다보니 아예 미쳐버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같이 끌려온) 누나는 저와 다른 여자소대에 있었는데, 저만 보면 '종선아 괜찮니' 하고 줄을 이탈해서 뛰어나와 죽도록 맞았어요. 맞아도 볼 때마다 뛰쳐나오고, 아무리 때려도 말을 듣지 않으니 나중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을 받았대요. 옷을 다 벗기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나무 막대기에 비닐을 씌워 아래(성기)에 찔렀다 빼는..."

결국 한씨의 누나도, 뒤늦게 끌려온 한씨 아버지도 정신이상자가 됐다.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그간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온 여준민 복지원 대책위원회 활동가는 "피해자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정신장애나 알콜 중독, 수면 장애 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연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부산시는 뒤늦게 사태수습에 나선다. 지난 25일 복지원의 후신인 사회복지법인 '느헤미야'의 법인허가를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뒤늦게 수습 나선 부산시... "법인 해체는 꼬리자르기, 진상규명 있어야"

한종선 씨가 전화기에 입력한 복지원 피해생존자 연락처를 보여주며 "피해자들 누구에게나 잊고 싶고 숨기고 싶은 기억일 텐데, 용기를 내서 전화를 준 것이 고맙다"고 말했다.
 한종선 씨가 전화기에 입력한 복지원 피해생존자 연락처를 보여주며 "피해자들 누구에게나 잊고 싶고 숨기고 싶은 기억일 텐데, 용기를 내서 전화를 준 것이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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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에) 피해자들이 몇 번이나 찾아갔을 때는 '(박인근 원장을) 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했어요. 이제 와서 여론이 들끓으니까 법인을 해체하는 수준으로 '꼬리자르기' 하겠다는 건데, 그러면 이건 오히려 그 사람들을 풀어주는 꼴이 되는 거예요. 박 원장이 구속된 것도 아닌데 법인만 해체하면 무슨 소용이냐고요. 그 사람이 우리에게 사과할 여지를 없애는 거란 말입니다."

복지원 실상이 알려지자 지난 25일에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복지원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 특별법 제정에 나서고, 사건 조사를 요구하는 온라인 시민청원이 시작되기도 했다. 이렇듯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 한씨는 "시민들께 많이 감사하면서도, (이런 분위기가) 언제 식을지 몰라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라도 속전속결로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면서 "그게 대통령이 말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꼬집기도 했다. 

"저희는 당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에 근거해 잡혀갔습니다. 이건 엄연한 역사의 한 부분이자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국가 폭력이에요. 전직 대통령이 저지른 문제에 대해서 진상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내놔야죠.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그렇게 외치는데, 이게 비정상 아니면 뭡니까? 

한씨는 "당시 국가 정책에 의해 잡혀갔던 모든 사람에 대해서 사과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후 진상규명 및 피해보상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박인근 원장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사회정화사업을 지시한 것은 전두환 대통령이지만, 실제 이행한 사람은 박 원장이므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대책위에 따르면 박 원장은 1000억대 자산가로, 현재도 부산시에서 요양병원 등을 운영 중이다.

두시간 가량 인터뷰를 하는 내내 한씨에게는 쉴 새 없이 전화가 왔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던 복지원 피해자들이 방송을 본 후 연락을 해온 것이다. 한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노트에는 '복지원 피해생존자'라는 이름으로 이름과 연락처가 빼곡히 적혀있기도 했다. 그는 "피해자들 누구에게나 잊고 싶고 숨기고 싶은 기억일 텐데, 용기를 내서 전화를 준 것이 고맙다"고 말했다. 그가 피해자들 모임을 위해 따로 만든 온라인 카페도 있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사과를 받을 때까지 피해자 모임과 함께 싸우겠다는 한씨. 그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누나, 아버지와 함께 조용한 시골 마을에 내려가 살 생각이다. 닭이나 강아지, 고양이 등 동물을 기르며 살고 싶다고 했다. '따로 생각해둔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한씨의 대답에서, 30년째 계속되는 아픈 기억을 엿볼 수 있었다. 

"전라도나 충청도 같은 따뜻한 지역에 가서 살고 싶어요. 부산요? 거긴 싫어요. 어릴 때 맞던 기억이 나서..."     

1980년대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가 거주하고 있는 고시원에 그가 풀고 있던 수학 문제지가 책상 위에 놓여있다.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언제까지 피해자 코스프레만 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도 스스로 힘을 길러야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가 거주하고 있는 고시원에 그가 풀고 있던 수학 문제지가 책상 위에 놓여있다.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언제까지 피해자 코스프레만 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도 스스로 힘을 길러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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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살아남은 아이, #형제복지원, #한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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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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