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두산 산 비탈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들.
 우두산 산 비탈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봄기운이 완연하다. 춘천에도 봄빛이 무르익고 있다. 봄이 당도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봄비가 한두 차례 더 내리고 나면, 곧 이어서 세상이 온통 푸른색으로 뒤덮일 게 분명하다. 춘천의 호숫가는 물론이고, '공지천'처럼 춘천 시내를 가로지르는 하천변에도 푸른빛이 점점 더 짙어지는 걸 볼 수 있다.

황사와 미세먼지 탓에 늘 뿌옇기만 하던 하늘이 오래간만에 밝은 빛을 띠고 있다. 한동안 기세 좋게 휘몰아치던 꽃샘추위도 지금은 그 기운이 한풀 꺾인 듯하다. 이런 날 춘곤증에 시달리며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봄맞이 여행으로, 춘천의 '진산'으로 불리고 있는 산들인 '우두산'과 '봉의산'에 올랐다. 어느 산이 '진산'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우두산은 이 지역에 존재했던 고대부족국가인 '맥국'의 도읍지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산이다. 지금은 소양강 변의 작고 낮은 산으로 남아 옛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춘천에 살면서 춘천이 연면히 이어온 역사를 오래도록 탐색해온 사람들에겐 그 어느 산보다도 중요한 산 중에 하나다. 지금도 맥국의 존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종종 이 산을 찾곤 한다. 역사 속 고대부족국가는 이미 오랜 전에 사라졌지만, '빛나던 과거'는 좀처럼 잊히지 않고 있다.

봉의산은 춘천 시내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마치 세상의 중심처럼 군림하는 산이다. 춘천 시내 동서남북 어디에서든 고개를 조금만 올려다봐도 금방 눈에 들어오는 산이 이 산이다. 산은 결코 높지 않다. 그렇지만 평지에 우뚝 솟아 있는 까닭에, 때로 춘천시 외곽에 포진해 있는 산들보다 더 높아 보일 때도 있다.

한 도시의 중심이라고 해서, 봉의산이 마냥 왕 노릇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봉의산처럼 친숙해지기 쉬운 산도 없기 때문이다. 점심나절, 산책 삼아 잠깐 걸어 올랐다가 다시 내려올 수 있는 산이 또 봉의산이다.

봉의산을 수놓은 생강나무.
 봉의산을 수놓은 생강나무.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우두산] '천제'를 지내던 과거는 사라지고, 전쟁의 상흔만 남아

점심 시간, 우두산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점심 시간, 우두산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우두산은 겉보기에 매우 평범해 보이는 산이다. 이름만 그런 게 아니다. 산 형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산은 한때 꽤 큰 영광을 누렸던 고대부족국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산이다. 하지만 겉만 봐선, 그런 과거를 알 수 없다. 산이 꼭 '동네 뒷산'이라고 해야 어울릴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산이 낮고 작다. 한눈에 봐도 산 높이가 길가 도로가 있는 위치에서 100여 미터를 넘지 않은 걸 알 수 있다(해발 133미터). 높이만 놓고 봤을 땐 산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주위를 조금만 더 둘러보면 어딘가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두산의 한쪽 사면은 절벽에 가깝다. 그 아래로 소양강이 소리 없이 흐른다. 그리고 그 반대편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강원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넓은 우두평야가 펼쳐져 있다. 강과 평야가 있고, 그 한가운데 우두산이 서 있는 형태다.

우두평야에서 바라다본 우두산. 산 정상 가운데 하얀 점이 충렬탑.
 우두평야에서 바라다본 우두산. 산 정상 가운데 하얀 점이 충렬탑.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우두산에서는 강과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우두산은 어딘가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는 산임에 틀림이 없다. 우두산은 또 군사적으로도 꽤 유리한 곳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우두산이 상당히 중요한 산이었다는 사실은 정작 그 이름에 숨어 있다.

우두산이라는 이름은 상당히 깊은 속뜻을 지녔다. 우두산 곧 '소머리산'이라는 이름 속에, 이 산이 왜 중요한 산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지를 말해주는 숨은 뜻이 있다. 우두산은 옛날에는 '소슬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소슬뫼는 가축의 하나인 '소'와 '신성하다'는 뜻의 '슬'자가 모여서 된 말이다.

그러니까 소슬뫼인 우두산은 오래 전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신성한 동물인 소를 희생물로 삼아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매우 신성한 곳이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춘천의 향토사학자들은 '소슬뫼'를 두고, 소양강의 옛말인 '원아리'와 함께, 이곳에 고대 부족국가인 맥국의 도읍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지명으로 추측하고 있다.

우두산 정상, 충렬탑.
 우두산 정상, 충렬탑.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그 옛날 고대부족국가들의 도읍지에는 모두 원아리와 같이 '근본이 되는 강'과 소슬뫼 같이 천제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가 있었다. 향토사학자들이 원아리와 소슬뫼를 예사롭게 보지 않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소슬뫼가 나중에는 그 이름이 간직한 의미가 잊히면서 생뚱맞게 소머리산으로 변했다가, 지금은 한자어인 우두산으로 굳어지는 험한 과정을 거쳤다.

이곳은 또 한국전쟁 당시 아군과 적군이 매우 치열한 격전을 벌인 끝에 '한국전쟁 초기 전선에서 유일하게 승전보를 울렸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국군과 연합군이 이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 당시 국군이 세운 공적이 우두산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다.

우두산 정상에는 그때 이곳에서 산화한 사람들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충렬탑'을 세웠다. 한국전쟁을 치른 탓에 이 산이 간직하고 있던 과거의 영광은 더욱 더 빠르게 사라졌을 것이다. 고대국가가 존재했던 역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전쟁이 남긴 상처뿐인 역사가 몇 개의 기념비로 남아 있다.

[봉의산] 선정비들 사이에 함께 서 있는 '친일파 이범익' 불망비

소양정.
 소양정.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우두산이 춘천에서 비교적 먼 과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면, 봉의산은 그보다는 훨씬 더 가까운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봉의산은 또 최근의 역사부터 현재 춘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까지를 모두 기록하고 있는 산이라고 할 수도 있다. 봉의산은 그만큼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춘천 시민들에게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산이다.

봉의산을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다. 크게는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소양강변에 있는 비석군에서 시작해 소양정 쪽으로 오르는 길이고, 또 하나는 한림대 쪽에서 오르는 길이다. 소양정 쪽에서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한 편이고, 한림대 쪽에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등산을 하는 기분을 맛보고 싶다면 소양정 쪽에서, 단순히 산책을 즐기고 싶은 생각이라면 한림대 쪽에서 오르는 것이 적절하다. 물론 개중에는 두 가지 경험을 한꺼번에 맛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소양정 쪽에서 시작해, 한림대 쪽으로 내려오는 것이 적당하다.

춘천, 소양강변 봉의산 자락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비석군.
 춘천, 소양강변 봉의산 자락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비석군.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강원도지사 이범익 불망비와 친일파 이범익 단죄 안내판.
 강원도지사 이범익 불망비와 친일파 이범익 단죄 안내판.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소양정을 오르기 전에 등산로 입구에 비석거리에서나 볼 수 있는 낡고 오래된 비석들이 줄맞춰 서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비석들은 춘천시 내 곳곳에 산재해 있던 공덕비나 불망비 같은 선정비들로, 도시 개발에 밀려나면서 이곳으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그저 그런 공덕비들이려니 해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이 비석들 중에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비석이 하나 있다.

두 줄로 서 있는 비석들 맨 뒤에 '강원도지사 이범익 불망비'와 함께 '친일파 이범익 단죄문'이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범익은 일제강점기에 도지사와 만주국 젠다오성 성장을 지낸 인물이다. 젠다오성 성장으로 있을 때, 간도특설대를 창설해 항일 무장 세력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 뜻있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불망비 옆에 단죄문이 적힌 안내판을 세웠다.

춘천 관기 전계심 묘비.
 춘천 관기 전계심 묘비.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소양정으로 오르는 길, 절벽 위에 앞서 본 선정비들만큼이나 낡은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춘천절기 전계심 묘비'이다. 전계심은 춘천의 관기로서, 한 남자를 향해 끝까지 절개를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묘비는 전계심의 절개를 가상히 여긴 춘천의 선비들이 세웠다. 사연이 애틋하다. 묘비는 원래 봉의산 산자락 소양간변에 있었다. 그곳에 도로가 생기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봉의산 정상을 오르는 동안, 틈틈이 뒤를 돌아다본다. 산 아래로 소양강이 보이고 그 너머로 멀리 우두산도 보인다. 소양강을 사이에 두고, 두 산이 영욕을 달리 하고 있다. 봉의산 정상에서는 소양강과 북한강을 비롯해, 춘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오밀조밀한 집과 도로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춘천을 흔히 호반의 도시라고 부른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춘천하면 먼저 호수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춘천은 호수가 전부인 도시는 아니다. 봉의산 정상에 올라서면, 춘천이 '산'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시라는 걸 알 수 있다. 봉의산은 그만큼 깊은 역사와 많은 사람들의 삶을 품어 안은 산이다.

우두산과 봉의산은 지금, '산동백나무'로도 불리는 '생강나무'들이 앞다퉈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노랗게 꽃을 피운 생강나무들이 산비탈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 산 밑에서는 봄꽃을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우두산과 봉의산을 오르고 나서야 봄꽃을 보게 됐다. 춘천에서는 생강나무 꽃이 봄의 전령사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래는 3월 17일 낮에 본, 춘천의 봄 풍경이다.

봉의산 중턱에서 내려다 본 소양강.
 봉의산 중턱에서 내려다 본 소양강.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태그:#봉의산, #우두산, #춘천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