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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지난해 10월 직속 상관의 지속적인 가혹행위와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육군 제15사단 여군 고 오혜란 대위의 일기 전문과 유서 전문, 공판기록 등을 최근 입수했다.

이들 자료에는 오 대위가 부대 전입 직후부터 자살 사망하기까지 10여 개월 동안 직속상관 노아무개 소령으로부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을 입증하는 여러 증거들이 있었다.

다음은 오 대위가 남긴 유서와 일기, PC 메모, 주변인들의 진술을 통해 오 대위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오 대위 일기장과 업무용 PC에 담긴 고민의 기록

고 오혜란 대위 유서.
 고 오혜란 대위 유서.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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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소령은 부하들을 '소'라고 불렀다. 얼굴이 검은 병사는 검은 소, 키가 작은 병사는 작은 소, 여군은 여자 소라고 불렀다. 이런 부하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을 그는 '소 우리'라고 했다.

그는 부하들이 꺼리는 상관이었다. 한 병사는 그에 대해 "말을 막 하고 '어려운 스타일이다' 그래서 참모실에 들어가는 것을 모두 어려워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부대행사용 봉 관리를 소홀하게 했다며 한 남성병사에게 "자위를 하려고 봉을 가져왔냐? 너는 구멍이 없어서 자위를 못하는데 봉이 왜 필요하냐?"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 장교·부사관은 그의 가장 만만한 상대였다.

그는 산부인과 질환이 있는 한 여군 하사를 지칭하면서 "성관계를 문란하게 하면 저런 병이 생긴다, 여자는 자고로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또 다른 여군 하사에게는 "너는 여자가 짧은 반바지를 입느냐, 너는 못 생겨서 괜찮겠다"고 모욕했다. 여군 중위 한 명에게는 면전에서 "넌 얼굴에 색기가 있다, 누구처럼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마라"는 말을 했다.

사단 부관참모였던 그를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던 이가 바로 인사행정장교 오 대위였다. 그만큼 오 대위의 마음고생은 남보다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12월 부대에 전입한 오 대위의 일기장과 업무용 PC에는 그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은 여군은 일 못해도 티 안 나고 말하고 후방에서 놀다온 애는 대위 달아도 적응 못하고 멍 때리고 있다고 하셨다. 2포병 부관장교 앞에서 날 지칭하지 않아도 날 빗대서 하는 이야기겠지." (2013.1.11)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극으로 치닫는 모욕... 병사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고, 그러면서...하나를 넘어가질 않는다. 말투, 자세, 업무, 지식, 태도 다 맘에 안 드시나 보다. 진짜 미래가 없다." (2013.1.17)

그는 오 대위가 기안한 문서를 면전에서 찢어버리거나, 검토를 미루기도 했다.

그렇다고 오 대위의 업무능력이 남보다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 동료들은 "항상 10~11시까지 근무하고, 주말도 근무하고 사수나 병사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회식도 하는 좋은 사람"(한OO 일병), "사단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분으로 알고 있다. 성실한 장교로 칭찬을 많이 듣는 좋은 분"(박OO 중위)으로 오 대위를 기억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모욕과 성적 수치심

시간이 갈수록 오 대위의 절망감과 괴로움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복명속도가 늦는 건 보고문서를 가져가도 검토 안하시거나 맘에 들지 않는다고 빽하시거나 찢어버리시니까..."(2013.2.15)

"보고서를 안 올렸다라. 난 이미 10번 넘게 올렸지만 결제 안하고 계속 수정만 하다가 못한 거잖아. 그걸 보고 내가 안 한 거라. 그래 결과는 내가 안한 게 되어 버린 거겠지. 진짜 슬프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2013.2.18)

"일을 사서 만들고 트집 잡는... 점검 애써서 해놨더니 제대로 본인의 의도와는 안맞게 했다고 난리 난리" (2013.7.18)

오 대위가 날이 갈수록 산더미 같이 쌓여 가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선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주말에도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도 온전히 오 대위의 휴식을 보장해 주지는 못 했다. 그는 불교 신자인 오 대위에게 그는 매주 교회에 나올 것을 종용했고, 예배 시간에 오 대위가 보이지 않으면 교회에서 봤으면 좋겠다는 카카오톡을 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오 대위를 괴롭혔던 것은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그의 모욕과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언행이었다.

그는 병사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오 대위에게 "너는 일 처리가 왜 이렇게 느려 터졌냐. 소 같다. 너는 15사단 여자 소다. 미련하다. 곰 같다"거나 "이래서 여군은 쓰는 것이 아니다. 너 같은 새끼가 일을 하니까 군대가 욕을 먹는다. 너 같은 새끼를 둔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는 모욕적 언행을 수시로 했다.

심지어는 다른 여군 장교가 듣고 있는 자리에서 "자는 시간 빼고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그 의도도 모르냐? 같이 자야지 아나? 같이 잘까?"는 발언까지 했다. 이날 오 대위의 일기장과 업무용 컴퓨터에는 오 대위의 수치심이 잘 나타나 있다.

"수치스런 이야기를 들었다. 농담이라고 할지라도 나랑 잘래? 이건 심하지 않은가... 치욕적이다. 저 사람은 도대체 날 얼마나 우습게 보면 저런 저질 B급 발언을 서슴치 않고 한 것일까"(2013.7.12 일기)

"자는 시간 빼고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그 의도도 모르나? 같이 자야지 아나? 같이 잘까? 힐끔 반응 보더니 나도 원하지 않아. 그러면 실무자와 참모관계가 안되니까. 그런데 왜 자꾸 의도를 모르나?"(같은 날 업무용PC 메모) 

급기야 그는 부관참모부 사무실에서 오 대위가 X반도(서스팬더)를 차고 있는 것을 보고 "X반도는 이렇게 매는 거다"라며 손으로 피해자의 뒤편에 서서 어깨를 만지고 등 부위를 쓰다듬거나 "보좌관 힘들지"라고 하며 오 대위의 어깨를 주무르는 추행을 저질렀다.

오 대위의 아버지는 법정에서 지난해 추석 연휴 때 집에 온 딸이 여느 때와는 달랐다고 진술했다.

"거실에서 아빠랑 얘기 좀 하자니까, 할 얘기 없다며 일어서길래,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거실에서 붙잡아 앉혀서 맥주를 한잔 하면서 울면서 얘기를 하는데 지금까지 딸을 키우면서 딸이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딸이 회식자리에서 참모가 다리를 더듬고 노래방에서 안고, '하루 밤만 자면 군대 생활 편하게 할 건데, 그 의도도 모르나?'면서 성희롱을 하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부모로서 치가 떨렸고, 왜 군대를 보냈나 후회도 되었다." (2014.2.11 2군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오 대위 아버지 증언)

부대 여군 고충상담관을 겸하고 있던 오 대위가 공식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는 아무 데도 없었다. 이것이 오 대위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명예 지켜달라고 절규했던 대한민국 육군 대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지난해 10월 15일 아침에도 그는 오 대위를 심하게 질책했고, 오후에도 병사 진급명령 처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이유로 "너, 나가"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이날 오후 6시 1분 위병소를 나간 오 대위는 다음 날 오후 부대 인근 화천군 청소년야영장 주차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고 직후 헌병대가 수거한 오 대위 승용차 블랙박스 SD카드에는 부대를 나온 오 대위가 독신자 숙소 주차장에 도착했다가 청소년야영장으로 이동하는 장면, 주차된 상태에서 한 시간 반가량 음악 소리, 오 대위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담겨 있었다.  

오 대위가 남긴 유서를 통해 "그놈의 여군 비하 발언 듣기 싫고 거북했습니다"라면서 "제 억울함 제발 풀어주세요"라고 적어 놓았다.

그는 이어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 병사들 우리 처부(기자 주 : 군대 사단사령부 내의 조직)간부들, 타 처부 간부들 예하부대까지 짓밟힌 제 명예로서 저는 살아갈 용기가 없습니다. 단 한번도 쉬이 넘어가지 않고 수명(기자 주 : 명령을 받들다)하지 않으려 내뺀 적 없고, 고민 안한 적 없습니다. 2009년 임관부터 지금까지 제 임무를 가벼이 대한 적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명예를 지켜달라고 절규했던 그는 대한민국 육군 대위 오혜란이었다.


태그:#오혜란, #오 대위 사건, #군대 성추행, #가혹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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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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