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럴 수가. 결국 '일베'의 설득에 넘어갔다. 이들의 소망대로 <겨울왕국>을 보고 만 것이다.

디즈니 공주 이야기는 두드러기 날 만큼 싫어하는 터라, <겨울왕국>을 볼 생각은 꿈에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베 회원의 결연한 외침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겨울왕국>이 '레이디 가카' 이야기인 만큼, 이 영화를 키워 <변호인>과 맞서자고 제안한 것이다.

 종편채널인 '채널A'는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내용의 방송을 했다.

종편채널인 '채널A'는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내용의 방송을 했다. ⓒ 채널A


여기에 종편 방송까지 거들었다. "<겨울왕국>이 박근혜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아 화제(채널A)"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닮은 점이 많아 화제'인 것은 일베와 종편이지만, 이 둘의 장단 맞추기가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어떤 점이 닮았다는 것일까?'

영화관에서 본 예고편만으로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다. 둘 모두 여자며, 주위를 얼어붙게 만든다는 사실 말고는 말이다. 게다가 한기를 몰고 오는 방식도 달랐다. 한 명은 손에서 냉기를 뿜는 반면, 다른 한 명은 눈으로 '얼음광선'을 쏘지 않는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박 대통령 집권 1주년을 기념하며 기꺼이 8천 원을 쓰기로 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보수세력이 기뻐했으면 좋겠다. 디즈니의 매출 증가가 그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영화를 본 소감은, 일베와 종편이 옳았다는 것이다. 두 인물이 너무 비슷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인정한다. <겨울왕국>은 '레이디 가카' 이야기였다.

<겨울왕국>의 뻔함과 새로움

 영화 <겨울왕국>의 한 장면

영화 <겨울왕국>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코리아(주)


내가 디즈니 공주를 싫어한 까닭은 이들이 등장하는 대개의 이야기들이 놀랄 만큼 단순하고 편협했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를 구해내어 행복하게 잘 산다'는 이야기가 지겨운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슈렉이 공주 동화책을 찢어 화장실 휴지로 쓰는 장면에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했을까.

<겨울왕국>이 디즈니의 약점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도 그렇거니와, '진실한 사랑의 행위'가 마법을 푼다는 뻔한 설정도 그렇다. 하지만 이 영화는 디즈니의 고질적 병폐였던 의존적 여성상을 뒤집는데 성공한다. 자신의 과거와 결별함으로써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침으로 베갯잇을 적시며 자는 주인공의 모습만이 아니다. 영화는 남녀관계의 깊숙한 변화까지 담아낸다. 현실이 그러하듯, 여자는 남자에 의해 구원받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와 협력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오히려 남자를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한다.

물론, 디즈니가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 것이 처음은 아니다. <라푼젤>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긴 금발에 프라이팬을 무기 삼아 휘두르는 주인공 모습을 보며, 여성성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울왕국>이 '공주스러움'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온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비현실적으로 마르고 이상화된 여자 주인공들을 내세운 것부터 그렇다. 예컨대 엘사의 눈은 발목 두께보다도 크게 그려져 있다.

여자의 외모를 '선'과 '악'의 대립 장치로 쓴 것도 그렇다. <겨울왕국>에도 명백한 '악당'이 등장하기는 하나,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갈등, 대립, 위기의 주역은 무엇보다 엘사 자신이다. 엘사는 악역과 선한 역할 모두를 맡는데, 세상을 얼어붙게 하는 얼음궁전 속의 '야성의 엘사'와, 변화되어 공동체로 되돌아가는 '착한 엘사'가 그렇다.   

엘사가 달아나 얼음궁전 속에 스스로를 가둘 때 두드러진 신체변화가 나타난다. 가슴과 엉덩이가 부각되고, 치마 사이로 다리를 드러내며, 걸음걸이까지 '도발적'으로 바뀐다. 여기서 엘사가 숨겨 온 초능력의 발산은 내적 욕망의 분출과 동일시되며, 이것은 흥미롭게도 외모의 변화로 상징화된다.

갈등을 해소한 엘사는 '야한' 모습을 버리고 과거의 '참한' 여자로 되돌아간다. 결국 '통제되지 않은 여성성', 즉 과도한 성적 매력을 통제되지 않은 초능력과 더불어 세상을 위협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의미화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여자의 능력과 욕망을 기존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는 보수적인 결말이라 할 만하다.

일베와 종편이 권하고, 미국 우익이 비난하는 영화

 영화 <겨울왕국>의 한 장면

영화 <겨울왕국>의 한 장면 ⓒ 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코리아(주)


<겨울왕국>은 볼만한 영화다. 일베 회원들 소망대로 더 많은 사람들이 봐도 좋겠다. 현실을 다른 시각에서 보여주는 영화는 좋은 영화니까 말이다. 하지만 남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독립적 여성은 마초성향의 일베 회원들이나 보수 종편이 환호할 대상은 아닐 듯하다. 역시나, 미국 우익세력과 보수 기독교도들은 이 영화를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 영화가 '마귀가 씌인 반기독교적 영화'라는 것이다.

목사이자 라디오 방송 진행자인 케빈 스완슨은 <겨울왕국>이 "동성애와 수간을 조장하는 사악한 영화"라고 목청을 높였다. 한국 보수교단이 2012년 레이디 가가 공연에 보인 반응과 비슷하다. 엘사는 남자에 전혀 관심이 없으며, 마법을 푸는 '진실한 사랑의 행위' 역시 이성이 아닌 동성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생 안나를 도운 사내 스벤은 사슴에게 노래를 불러 주는 등 마치 연인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같은 영화를 놓고 한국 보수는 적극 권하고, 미국 보수는 격렬히 비난하는 이 흥미로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종북세력'이나 볼 '사악한' 영화를 일베와 종편이 찬양한 꼴이니 말이다.

'텍스트 해석'과 '수용자 이론'을 읊어가며 심오한 논문을 쓸 수 있을지 모르나,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보수세력은 세상을 다른 시각에서 보여주려는 시도를 불온시하는 경향이 있다. 통념을 뒤집는 보도, 영화, 드라마가 '빨갱이', '사탄', '종북'의 칭호를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가 좋고, 현실이 좋다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달가울 까닭이 없다.

하지만 <변호인>처럼 한국사회를 날것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승승장구하자, 일베와 종편은 당황했다(물론 그들이 아끼는 '레이디 가카'도 당황하셨을 것이다). 그리하여, 옛 덴마크 동화를 소재로 만든 (비교적 진보적인) 미국 만화영화에 한국의 보수정치인을 투사하는 '정신승리'를 시도한다. 물론 종편의 입장에서는 코앞에 다가온 재승인 심사와 수신료 인상이라는 '날것의 현실'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언론으로서는 한심하고 부끄러운 짓이었지만, 그 덕에 종편은 재승인 심사통과라는 '현실의 승리'까지 얻어냈다. 가엾은 것은 일베 회원들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언론과 정치권의 수명이 연장되었다는 것은, 일베 회원들 대다수의 팍팍한 삶이 더 팍팍해질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이라는 '동토의 왕국'에서 변화의 희망을 갖기란 '올라프'가 여름을 꿈꾸는 것만큼이나 허황된 것일까?

대통령에게 권하는 '렛잇고'

 박근혜 대통령과 <겨울왕국>의 엘사

박근혜 대통령과 <겨울왕국>의 엘사 ⓒ 청와대·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코리아


<겨울왕국>에서 흥미롭게 지켜 본 것은, 선의가 불행한 결과는 낳는 과정이다. 왕이 딸을 보호하기 위해 내린 '단속령'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이 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 자식 잘 되라고 그러는 것'이라는 부모의 선의가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수많은 사례의 하나를 보게 된다. 영화는 자매가 부모의 그림자를 벗어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주제곡 '렛잇고'는 엘사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순간을 담고 있다. 부모는 자신에게 "감춰, 느껴선 안 돼,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라("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며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라고 종용했지만, 이제 움켜쥐고 있던 은폐의 고삐를 '놓아버리겠다(Let it go)'것이다. 그는 그동안 억눌러온 힘을 한껏 쏟아내 거대한 얼음궁전을 짓는다.

그런 면에서 <겨울왕국>은 대통령을 위한 영화다. 부모의 그림자를 벗어나 현실을 대면해야 대통령 개인과 국민 모두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억압적 통치가 먹히던 70년대도 아니고, 정부의 복지정책 없이도 가족이 가족을 책임질 수 있던 80년대 고성장 시대도 아니며, '탈규제'로 고삐 풀린 방임주의가 세계 경제를 거덜 내기 이전인 2000년대 초도 아니다.

우선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내놓고('Let IT Go'), 함께 풀어가자고 말하고 싶다. 누구도 대통령이 완전한 지식이나 말재주를 갖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국민과 거리를 둔 채 숨고 감추면 고고한 이미지는 지킬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은 시간을 허비한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제발 그 얼음궁전을 허물고 나와 현실 속에서 국민들의 땀, 한숨, 눈물과 마주하시라. 국민 다수는 어눌해도 대통령 본인의 생각을 듣기 원하며,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솔직하게 대화하고 토론하기를 원한다. 고통 받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씩 배우며 해결해갈 때, 남은 3년 반은 결코 짧지 않을 것이다.

지금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고 말하는 측근과 언론이 있다면, <겨울왕국>의 한스 왕자가 왜 자신의 대관식까지 찾아와 그리 살갑게 굴었는지를 떠올릴 일이다. 측근의 말이 달콤할수록 자리에서 물러난 뒤 후회는 커질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덧없는 후회가 클수록 국민들의 한숨과 좌절도 커질 것이다.

<겨울왕국> 주인공과 달리, 대통령은 겨울을 여름으로 바꿀 능력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봄이 와도 평생을 냉혹한 현실과 싸워야할 할 국민들에게 작은 웃음과 소박한 꿈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박근혜 겨울왕국 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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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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