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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1

서울의 한 초등학교 돌봄교실(자료사진).
 서울의 한 초등학교 돌봄교실(자료사진).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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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인 김진영(가명)씨는 19일 오후 3시께 서울 성북구에 있는 회사문을 나섰다. 오후 3시 50분 전철을 타고 송파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닿았다. 이 학교 돌봄교실에는 김씨의 늦둥이 아들이 있다. 김씨는 아이를 데리고 교문 밖에 있는 영어 학원 차량에 태웠다. 그 후 김씨는 다시 회사로 발길을 돌렸다.

매주 월·수·금 반복되는 김씨의 일과다. 아이를 돌봄교실에서 학원 차량으로 데려다주는 5분을 위해 회사를 2시간씩 비운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김씨는 "비교적 자유로운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가능하다"면서도 "5분 때문에 직장 생활이 엉망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생긴 문제다. 보조강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아이의 하교는 학부모가 맡아야 한다. 돌봄교사(돌봄전담사)가 아이의 하교까지 책임지기엔 역부족이다.

김씨는 "학부모 동반 귀가 원칙 때문에 학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와야 한다"면서 "학급 학생의 95%가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어 우리 아이도 영어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 매주 3일씩 이렇게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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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에 사는 장민수(가명, 38)씨는 3월 초 돌봄교실에 참여하는 딸을 데리러 학교로 갔다. 돌봄교실에서는 40여 명의 아이들이 모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장씨는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들인데, 얼마나 강압을 받았으면 그 많은 아이들이 다들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장씨가 딸에게 "집에 가자"고 하니, 딸은 후다닥 교실 밖으로 나왔다. 장씨는 "아이들이 프로그램도 없이 돌봄교실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걸 싫어한다"면서 "운영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돌봄교사의 처우도 열악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불만을 얘기하지 않고 조용히 학교를 빠져나왔다"고 전했다.

돌봄교실 학부모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무상교육을 외치고 있지만, 예산 부족 탓에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가 최대 무상보육 공약인 누리과정 확대 정책의 예산을 지방에 떠넘긴 데 있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누리과정에 허리가 휜 시도교육청은 각종 예산을 줄이면서 학교는 혼란에 빠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재원 없이 누리과정 확대... 예고된 재앙

당초 교육부는 누리과정 확대를 위해 올해 1조60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교육부의 누리과정 예산을 모두 삭감했다. 누리과정에 대한 국고 지원이 끊긴 것이다. 예산의 70% 이상을 정부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의지하는 각 시도교육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누리과정 예산을 떠안았다.

김현국 경기도교육청 정책기획관은 "올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지난해에 비해 2313억 원밖에 증가되지 않았는데, 필수 유지비용인 인건비와 국가시책으로 시행되는 누리과정에 소요되는 예산만 2조8244억 원이다, 시도교육청의 부담이 크게 늘었다"고 지적했다.

교부금이 줄어든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누리과정 예산을 늘리는 데 허덕였다. 올해 서울시교육청 예산 7조4391억 원 중 인건비와 기관·학교운영비 등을 제외하고 교육청이 비교적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돈은 1조5348억 원의 교육사업비다.

이 가운데 누리과정 예산은 전체 교육사업비의 1/3인 5473억 원에 달한다. 이 또한 지난해 본예산(2320억 원)에 비하면 3153억 원이 늘어난 것이다. 반면, 지난해 누리과정과 비슷한 예산을 확보한 무상급식 예산은 올해 352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2013년 2278억 원→2630억 원).

돌봄교실은 누리과정에 밀려 예산이 제대로 배정되지 못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올해 예산(446억 원)은 지난해(204억 원)에 비해 242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돌봄교실 예산은 시설 확충에 주로 쓰였다. '무상교육'이라는 말과 달리, 학부모 부담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또한 열악한 돌봄교사 처우가 개선되지 못해, 돌봄교실의 질은 떨어졌다.

서울의 초등학교 돌봄교사 시급은 6638원이다. 한 돌봄교사는 "8시간 근무자는 한 달에 120만 원, 4시간 근무자는 70여만 원을 받는다"면서 "프로그램 운영비가 줄고 보조교사가 해고된 상황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기 힘들 정도로 처리해야 할 각종 행정 업무가 넘쳐난다,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학교 비정규직 줄줄이 해고... "교육 시스템 흔들린다"

누리과정 예산 폭증에 따라 교육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예년 1000억 원이 넘던 명예퇴직 예산이 올해 255억 원이 줄면서 명예퇴직과 그에 따른 신규 교사 임용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초등신규교사 990명 중 발령을 받은 이는 38명뿐이다.

또한 누리과정에 밀린 각종 사업 예산이 줄어들면서 학교에서 쫓겨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고 있다. 초등학교 체육 수업을 돕는 스포츠강사는 서울에서만 251명이 학교를 떠났다. 333명만 남았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스포츠강사 관련 예산이 지난해 73억 원에서 올해 54억 원으로 줄었다"면서 "정부의 예산 지원이 줄고, 교육청 내에서도 누리과정 등에 예산을 우선적으로 배정할 수밖에 없어 생긴 문제"라고 밝혔다.

전 스포츠강사 정지현(가명, 38)씨는 올해 상반기로 계획했던 결혼도 미뤘다. 그는 "그동안 한 달에 130만 원 받으면서 주 21시간 체육수업을 진행했다, 오후에 다리가 풀릴 지경이 돼도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일했다"면서 "학교에서 쫓겨난 지금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해고가 단순히 예산이 아닌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정씨는 "누리과정과 돌봄교실로 혜택을 보는 학부모만 수십만 명이 될 것"이라면서 "박근혜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은 표 계산을 한 후, 스포츠강사 예산을 줄인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스포츠강사 예산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지원 예산도 지난해 1491억 원에서 올해 1337억 원으로 154억 원 줄였다. 지원 대상 학생수가 감소했다. 교과서 지원 예산도 107억 원 가량 줄었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예산 준비없이 추진된 누리과정·돌봄교실 등은 재정적 안정성이 떨어지며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결국 '예산 돌려막기'가 이뤄지면서 교육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정치적 구호를 앞세워 무리하게 추진하기 전에 치밀하게 재정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누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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