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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동해바다와 함께 멀리서 바라 본 논골담길
▲ 논골담길 전경 파란 동해바다와 함께 멀리서 바라 본 논골담길
ⓒ 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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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무언가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면, 그들은 이 도시를 기억해 냈다. 바다가 그리워지거나, 흠씬 술에 젖고 싶어지거나, 엉엉 울고 싶어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허둥지둥 이 술과 바람의 도시를 찾아나서는 것이었다."

강릉출신의 소설가 심상대는 그의 데뷔작 <묵호를 아는가>에서 '묵호'는 언제나 도시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향 같은 모습으로 그렸다. 그 고향에는 여자가 있고, 그 여자와의 하룻밤이 등장한다.

소설 <묵호를 아는가>에서 주인공 나는 아내와 이혼한 뒤 고향 묵호에 1년 만에 찾아와 친구들과 술을 들이킨다. 자신의 이혼을 알 리 없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헛헛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뱃사람 특유의 '아무렇지도 않음'은 그에게 삶에 대한 연민 비슷한 것을 느끼게 한다. 나는 한때 연인이었으나 나의 친구이기도 한 남자의 아내가 된 연희에게 전화하고, 묵호에서의 하룻밤을 떠나보낸다.

논골담길 위를 아슬아슬 지나가는 기차
▲ 논골담길 기차그림 논골담길 위를 아슬아슬 지나가는 기차
ⓒ 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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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에게 묵호는 어떤 곳일까? 목숨을 건 연애도, 피를 토하는 실연도, 가슴이 썩어 문드러지는 이혼도 한번 하지 못한 사람에게 묵호는 어떤 느낌을 줄까?

논골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의 뒷모습
▲ 논골 할머니 논골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의 뒷모습
ⓒ 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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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는 항상 다른 얼굴이다. 가파른 언덕에서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논골담길은 갈 때 마다 낮선 얼굴로, 때로는 고향집 할머니가 웃으며 반겨줄 것 같은 모습이다. 조그만 골목길을 따라가다 대문 앞에 멈춰서면,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의 주인이 "누구요"하고 방문을 열고 나올 것 만 같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나가던 사람입니다"하는 대답을 마음 속에 몇 번이나 담아 두지만, 수 많은 골목길의 미로 속에서 '나'를 잃고 만다.

묵호항에서 잡아올린 오징어를 손질하는 손길이 바쁘다
▲ 묵호항에서 오징어 손질하는 아주머니들 묵호항에서 잡아올린 오징어를 손질하는 손길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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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생존의 흔적이 볼거리인가. 조그만 텃밭을 만들기 위해 축대를 쌓고, 바다일 에 지친 몸을 누일 한 칸의 방을 꾸미기 위해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지은 집. 굽은 허리로 저 언덕 비탈길은 오르내리는 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는 곳이다. 바다를 일터로 명태를 잡고, 오징어 배를 갈라 산꼭대기 덕장에 널어 말리며 꿈을 키워온 곳이다.

묵호항에서 잡아올린 황태를 말리고 있다
▲ 황태덕 장소 묵호항에서 잡아올린 황태를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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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를 나르던 지게나 손수레에서 떨어진 물이 흙길을 적셔 마치 논처럼 질퍽거려서 논골담길이 되었다 한다. 한 짐 생선을 머리에 이고 장화를 신고 비탈길을 오르던 어머니는 또 얼마나 많이 넘어졌을까?

바다에 나가서 몇 해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은 생활고에 외로움에 또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그런 삶이 모여서 화석이 된 곳이 논골담길이다. 그 모든 삶의 역경을 이겨내고 오뚝이처럼 서 있는 곳 묵호다.

논골담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수 있는 그림이다
▲ 논골담길의 시작 논골담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수 있는 그림이다
ⓒ 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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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골담길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이곳은 묵호항과 그 주변에 일자리가 넘쳐나던 1940년대부터 묵호등대 주변 언덕에 많은 사람이 집을 짓고 살던 생활의 역사와 문화적 감성요소를 벽화로 그려내면서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묵호의 대표적인 길, 4곳

서민들의 삶의 터전인 것을 한눈에 보여주다싶이, 논골담길의 정리되지 않은 듯한 미로같은 마을
▲ 논골담길 미로 서민들의 삶의 터전인 것을 한눈에 보여주다싶이, 논골담길의 정리되지 않은 듯한 미로같은 마을
ⓒ 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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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네 개의 대표적인 골목길이 있다. 논골 1길은 '묵호의 현재',  논골 2길은 '모두의 묵호, 시간의 혼재', 논골 3길 벽화는 '묵호의 과거', 등대 오름길은 '희망과 미래'를 주제로 그렸다.

논골담길2로 들어가는 입구, 원더할머니가 길을 반긴다
▲ 웰컴투 논골담길2 논골담길2로 들어가는 입구, 원더할머니가 길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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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논골 2길에는 처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고단한 삶을 마다하지 않던 지게꾼 아버지의 모습, 어딘가 숨어 있는 골목길 놀이터, 극장, 문방구와 숨바꼭질 등 유년시절의 추억, 비눗방울에 비친 묵호의 현재와 미래, 어족자원의 감소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낚시꾼의 과거와 현재 등이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노골담길을 따라 가다보면 나오는 논골주막. 서민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 논골주막 노골담길을 따라 가다보면 나오는 논골주막. 서민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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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골3길은 뱃사람들과 시멘트 무연탄 공장인부 들이 모여 살면서 이루어진 마을로 슬레이트와 양철지붕을 얹은 집들로 빼곡하다. 작고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에 들어선 집들은 묵호항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힘겨운 삶의 이야기가 담장 곳곳에 담겨져 있다.

산꼭대기 마을 등대 앞에는 이런 시비가 세워져 있다

바람 앞에 내어준 삶 / 아비와 남편 삼킨 바람은
다시 묵호 언덕으로 불어와 / 꾸들꾸들 오징어, 명태를 말리다
남은 이들을 살려 낸다

그들에게 바람은 / 삶이며 죽음이며 /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간절한 바람이다

심상대씨는 자신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에서 항구에서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애야! 떠나거라! 어서 떠나거라! 애야 !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단다. 자아 어서 인간의 바다로 떠나거라. 인간의 바다에는 먼가가 있다. 그러니 애야 ! 삶 들끓는 인간의 바다로 어서 떠나라."

그러나 그 영혼은 다시 '인간의 바다'를 찾으려 고향인 묵호로 돌아온다. 하지만 고향에서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은 계속된다.

한 눈에 보이는 묵호항의 전경
▲ 묵호 외항소 한 눈에 보이는 묵호항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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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는 소설 속에서 묵호를 이렇게 표현했다.

"묵호는 술과 바람의 도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독한 술로 몸을 적시고 방파제 끝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토악질을 하고,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부두의 적탄장에서 날아오는 탄가루처럼 휘날려 어떤 이는 바다로, 어떤 이는 멀고 낮선 고장으로, 그리고 어떤 이는 욕설을 퍼 부으며 멀리 무덤 속으로…….(중략) 한잔의 소주와 바다가 있는 곳, 묵호 바다와 소주가 뒤섞이고, 아니 바다의 소금기와 소주의 취기가 마구 뒤섞여 싸우고 울부짖으면서도 기어이 살아가게 하는 곳, 묵호"

두손에 들어올 만큼의 작은 마을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 논골담길 손바닥 그림 두손에 들어올 만큼의 작은 마을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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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겨운 그대. 묵호로 가자. 논골담길을 오르며 그대 삶에 드리운 힘겨움보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몸무게 보다 더 무거운 생선을 지고 질퍽거리는 비탈길을 힘겹게 올랐을 아버지들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 시절 방황하던 젊은이들처럼 독한 술로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어버리자.

등대가 어둠을 비추는 이유는 사랑을 잃고 길 위에 서성이는 눈 먼 이들의 희망이기 때문이란다.

덧붙이는 글 | 하슬라아트월드 블로그에도 게재 합니다
http://blog.naver.com/ar2271



태그:#묵호, #논골담길, #동해, #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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