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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 1년, 이 정부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공안'이라는 단어다. 박근혜 정권을 공안정권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사상 초유의 민주노총 침탈 사태부터 대통령 사퇴 요구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발언까지. '공안정권'이라는 단어의 주변을 맴돈다.

공안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공포 혹은 제압, 비밀스러움을 연상하게 하지만, 정작 '공안(公安)'의 사전적 의미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편안히 유지되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대체 공공은 누구이고, 공공의 안녕은 무엇인가.

또다른 안녕

"청사초롱을 마치 쥐가 들고 있는 것처럼 그림을 그려넣었습니다. 피고는 우리 국민들과 아이들로부터 청사초롱과 번영에 대한 꿈을 강탈한 것입니다."

2011년, G20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넣은 이른바 '쥐벽서' 사건 공판에서 담당검사가 피고인 박정수씨에게 징역 10개월을 구형하며 한 말이다. 정부는 G20 기간에 음식물 쓰레기도 내놓지 말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청년들에게 "G20세대"라는 칭호를 그야말로 '하사'했다.

G20 기간에 "청사초롱과 번영에 대한 꿈"을 갖지 않으면 역적이라도 될 기세였다. 그것은 우리 국민이 가져야 마땅할 '공공의 꿈'이었고, 그 꿈에 이물질이 섞여 들어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쥐 한 마리의 그림에 불과하더라도. 이것이 검찰과 정권이 이해하는 '공공의 안녕'이다.

G20이 개최되던 날 명동사거리에는 G20 해체와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공공의 안녕일까 아니면 공공의 안녕을 저해하는 것일까
 G20이 개최되던 날 명동사거리에는 G20 해체와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공공의 안녕일까 아니면 공공의 안녕을 저해하는 것일까
ⓒ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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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0일, 고려대학교 후문 게시판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이 달린 대자보가 붙었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다고 수천 명이 직위해제되고, 불법 대선개입, 밀양 주민이 음독자살하는 하수상한 시절",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 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 말 한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 안녕들 하시냐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 물음이 향한 상대는 '모두'였다. 대자보에 대한 화답이 곧 담벼락을 뒤덮었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언론에 의해 '안녕 세대'라 이름 붙여진 이들이 생각하는 안녕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검찰과 정권이 주장하는 공공의 안녕 때문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물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공공의 안녕이란 무엇인가? "청사초롱과 번영에 대한 꿈"을 꾸는 의무를 부여받은 G20 세대와 제 발로 걸어나온 안녕 세대 중, 어느 쪽의 안녕이 공공의 안녕일까? 분명한 것은 이 둘의 안녕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농담

'공안'은 또다른 안녕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들도 용서하지 못한다. 특히나 그것이 '공안'의 정당성을 반박하는 것일 때는 더더욱. 그렇기에 공안통치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12년 11월 21일, 박정근씨는 북한 트위터 계정인 '우리민족끼리'가 쓴 트윗을 리트윗한 것 때문에 북 체제 찬양고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박정근씨는 "단지 북한을 풍자·조롱한 것"이며, 자신의 팔로어들이 평소 자신의 트윗 성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찬양고무로 오해될 리도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한 검찰의 반박은, "팔로어의 팔로어, 팔로어의 팔로어의 팔로어까지도" 리트윗이 전달될 수 있는데, 그들 중 모두가 오해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 원심의 판결을 뒤엎고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의 이 주장은 그것을 듣거나 읽은 사람들에게 한 가지 의문을 남겼다. 팔로어의 팔로어, 팔로어의 팔로어의 팔로어까지도 오해하지 않을, 공공의 안녕에 저해되지 않는 표현방식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역시 검찰로부터 나왔다. 작년 2월,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형사3부 검사 박대범)은 "위기의 사면초가 새누리당 출입기자가 박근혜에게 현재 상황 질문하자 박그네 왈 '꺼져 XXX'"라는 트윗을 쓴 이아무개씨를 허위사실공표죄 등으로 기소했다.

이씨는 검찰 조사에서 이 트윗 내용이 패러디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 측은 "패러디라면 문장 안에 괄호를 넣어서 패러디 혹은 농담이라고 적시해야 한다"라는 해석을 내렸다고 한다.

검찰이 제시한 이 표준표현양식, "(농담)"이라는 말이 적혀져 있지 않은 모든 농담은 잠재적 유죄일 수밖에 없다. "공공의 안녕"은 결국 전국민이 '연서복(연애에 서툰 복학생)'이 되어야 이룰 수 있는 길이며, 이는 미감의 통합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박정근의 죄는 결국 "다른 취향을 가진 죄"인 셈이다.

한동안 SNS의 트렌드였던 "연애에 서툰 복학생" 계정, 통칭 연서복.
 한동안 SNS의 트렌드였던 "연애에 서툰 복학생" 계정, 통칭 연서복.

그러나 우리는 '연서복'이 되고 싶지도, 유죄가 되고 싶지도 않다. 공공의 안녕은 신체적 불구속 상태뿐만 아니라 정신적 불구속 상태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제3의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촌스러움과 위험함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혹은 샛길을 말이다.

'연서복'과 '철컹철컹'의 사이에서

공안예술대상 포스터
 공안예술대상 포스터
ⓒ 공안예술대상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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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답안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는 공모전을 기획하기로 했다. 공모전이라는 걸 기획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만 모였기에 순조롭지만은 않았지만, 의미에 동의하는 많은 이들의 도움 덕에 그래도 그럴 듯한 기획이 만들어졌다.

심사위원들의 섭외도 수월하게 이루어져 총 15명의 심사위원단이 만들어졌다. 응모주제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다가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법적 금기의 경계선을 넘었는지 안 넘었는지 알 수 없는 모든 창작물'이라는 한 문장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공안예술대상'이다.

초·중등학생 시절의 국어 수업에서 졸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일제강점기 저항시에 대해 배운 것이 기억날 것이다. 문화통치의 시대, 자칫하면 원고가 통으로 삭제되고 잡지가 공책 마냥 비어서 나가던 시대 말이다.

시인들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의 은유를 통해 일제를 비판했고, 그 경향이 한반도의 저항시를 특이한 장르로 만들었다고 배웠다. 아 물론, 이 시대가 일제강점기 수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안예술대상을 통해 무슨 대단한 저항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공안예술대상은 공공의 안녕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자, '연서복'과 '철컹철컹(수갑을 차는 것을 표현하는 말-편집자주)'의 사이, 그 경계선이 어디쯤일까에 대한 실험이다. 농담이 통하지 않고 불온함을 "묵과할 수 없는" 시대, 리트윗이 압수수색 당하고 낙서가 법정에 서는 이 시대에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표현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궁여지책일 뿐이다. 그 답이 우리들의 '청사초롱'이 될 것이다.

공안예술대상 포스터_2
 공안예술대상 포스터_2
ⓒ 공안예술대상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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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일 기자는 공안예술대상의 기획단장입니다



태그:#공안예술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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