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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이나 AI(조류 인플루엔자) 발생으로 살처분 작업에 동원된 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들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지는 게 두렵다"고 호소한다. 육식의 희생자는 동물만이 아니다.

"살처분에 처음 동원됐을 때는 살아있는 오리를 잡는 것이 두려웠다. 집에 와서 잠이 들 때도 오리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연일 살처분 현장에 투입되면서 감각이 무뎌지고, 짜증이 나면서 빨리 (오리를) 다 죽여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나를 발견할 때 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3월 6일자 <연합뉴스> '"숨 헐떡이는 오리 떠올라" 살처분 트라우마 호소' 기사 발췌)  

'인간' 동물, 육식의 또 다른 희생자

지난 2012년 방영된 SBS 스페셜 <동물, 행복의 조건 "고기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는 육식으로 병드는 인간의 몸과 마음(정신)을 조명했다. 고기가 원래는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오늘날의 관행이 동물은 물론 사람도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미국의 동물보호단체 '머시 포 애니멀스'(MFA·동물에게 자비를)의 잠입취재원인 코디 탈로우가 등장한다. 코디는 2008년부터 2년간 미국의 공장식 농장에 위장 취업하여 그 실상을 기록했다. 코디는 농장에서 일했던 때가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농장일꾼들이 끝없이 황폐해지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일꾼들은 동물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간주하지 않았다. 코디가 몰래 촬영한 영상에는 농장 일꾼이 상품가치가 없는 닭을 처리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일꾼은 닭의 머리를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빙빙 돌려서 목을 비튼 다음 멀리 내동댕이쳤다. 그렇게 내던져진 닭은 목이 꺾인 채로 서서히 죽어갔다.

일꾼들은 닭을 거칠게 다루다가 날개나 다리가 부러져도 별것 아닌 일로 간주했다. '어차피 죽을 닭'이니까 도계장으로 보낼 때까지 달걀만 얻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들은 달걀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를 죽일 때도 거침이 없었다.

코디의 영상에는 농장 동물에 대한 이유 없는 학대도 담겨 있다. 살아있는 닭을 옷 주머니에 구겨 넣는 일꾼, 닭을 줄에 묶고 빙빙 돌리며 돌아다니는 일꾼들이 등장한다. 동물이 '생명다움'을 상실할수록 그들을 다루는 사람들 역시 '인간다움'을 상실했다고 한다.

낙농장의 젖소, 송아지 학대 일꾼이 송아지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짓밟고, 젖소의 꼬리를 부러뜨리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머시 포 애니멀스'가 폭로한 미국 오하이오 주 낙농장 학대영상의 한 장면이다.
▲ 낙농장의 젖소, 송아지 학대 일꾼이 송아지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짓밟고, 젖소의 꼬리를 부러뜨리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머시 포 애니멀스'가 폭로한 미국 오하이오 주 낙농장 학대영상의 한 장면이다.
ⓒ Mercy For 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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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머시 포 애니멀스'는 미국 오하이오 주의 낙농장에서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는 일꾼이 젖소와 송아지를 잔인무도하게 폭행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영상에서 문제의 일꾼은 자랑스러운 듯 이렇게 말했다. 

"젖소를 막대로 찌르고, 꼬리를 꺾고, 생식기에 막대를 찔러 넣고 마구 때렸지. 그리고 이튿날 농장 주인이 소가 유방염에 걸렸다며 쇠고기 감으로 팔아버리겠다고 하더군. 그런데 젖소가 트럭에 타지 않으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마구 팼지. 얼굴이 이렇게 부어오를 때까지 말이야."

측은지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이런 행위에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채식주의·동물보호 활동가인 게리 유로프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상 속의 일꾼은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학대가 일어난 이유는 사람들이 유제품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동물 학대에 분노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먹는 동물의 현실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 살고 있으니 미국 농장의 학대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오늘날 소비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에 살든 간에 사람들은 소비자로서 전 세계 농장동물의 고통에 가담하고 있다. 

코디는 농장 일꾼들이 점점 황폐해지는 현상을 '반동형성'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반동형성이란 특정 감정을 억누르면 오히려 반대 감정이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다른 존재에 동정심을 느낀다. 하지만 상품성과 효율성 때문에 동물의 고통을 무시하는 농장에서 동정심은 괴로움으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일꾼들은 동정심을 억눌러 자신의 감정을 보호한다. 그 결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지고, 잔혹한 학대도 일어나는 것이다.

코디는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는 두통이나 악몽을 호소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잔인해졌다고 증언한다. 결국 공장식 축산은 그곳 사람들까지 황폐하게 만든다. 

미국의 동물보호단체들이 폭로하는 농장 학대에는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사회적 약자로서 부당한 처우에 항거할 힘이 없는 이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좌절감과 스트레스를 동물에 대한 폭력으로 해소하기 쉽다고 한다. 이들의 황폐해지는 인간성은 동물 학대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문제다.

일꾼들의 황폐해지는 인간성에 대해 증언하는 코디 <동물, 행복의 조건 "고기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의 한 장면.
▲ 일꾼들의 황폐해지는 인간성에 대해 증언하는 코디 <동물, 행복의 조건 "고기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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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최훈 저·사월의책)에 따르면, 공장식 축산은 인류의 문화에도 심각한 해를 끼친다. 동물을 한낱 '고기기계'로 간주하는 사육방식이 지속할 경우 동물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이 더이상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닭이 마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고 '공장'에 갇혀 사는 오늘날, 닭싸움을 묘사한 김유정의 <동백꽃> 같은 작품은 더이상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돼지 사육 환경에서는 돼지를 '풍요의 상징'이라 부를 수 없으므로 '복돼지'와 같은 표현도 사라질 것이며, 돼지꿈도 더 이상 재물을 상징할 수 없을 거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공장식 축산이 인류의 문화와 그 전승을 해친다는 것이다.

  익혀먹으면 우리 몸은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육식으로 병들어가는 마음과 정신은 어찌할 것인가?
 익혀먹으면 우리 몸은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육식으로 병들어가는 마음과 정신은 어찌할 것인가?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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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때문에 치르는 환경비용

지구도 육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제연합(UN)은 축산 부문을 "각 지역에서부터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에서 환경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2대 혹은 3대 부문의 하나"라고 선언하고, "그 영향이 너무나 심각하므로 긴급히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고기·달걀·우유를 위한 가축 사육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여 지구온난화를 야기한다. 농장에서 배출되는 엄청난 분뇨는 주변 하천으로 흘러들어가 해양생물을 파괴한다. 뿐만 아니라 가축 사료로 쓰이는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 엄청난 면적의 토양이 파괴되고 있다. 1970년 이후 개간되어 사라진 아마존 열대림의 90% 이상이 육류 생산에 사용된다고 한다. 그 밖에도 공장식 축산은 토지 황폐화·기후변화·물 부족·야생동물 서식지 파괴·기아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공장식 사육 반대'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공장식 축산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2월 28일 오후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생명체학대방지포럼 대표가 AI와 관련하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장식사육 폐기와 동물복지축산 전면도입을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공장식 사육 반대'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공장식 축산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2월 28일 오후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생명체학대방지포럼 대표가 AI와 관련하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장식사육 폐기와 동물복지축산 전면도입을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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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간·동물·자연 모두가 고통 받고 있다. 게다가 이런 고통은 현 세대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구는 빌려 쓰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치느님','치맥'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 고기에 탐닉하느라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이 살아갈 터전까지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먹기 위한 사육이 불가피하다면 지속가능한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농장전염병과 관련하여 공장식 축산이 원인이라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AI사태에서도 정부는 철새를 탓하고 살처분을 고집하며 근본적인 대책에 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익혀 먹으면 안전하다"는 것 외에 어떤 뚜렷한 대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에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에 언급된 미국 오하이오주 낙농장 학대영상은 '머시 포 애니멀스' 웹사이트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http://mercyforanimals.org/ohda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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