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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억울함 토로하는 유우성 씨 "북한 갔다오지 않았다" '탈북자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의혹으로 참고인 검찰 조사를 받은 유우성 씨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울먹이고 있다.
이날 유 씨는 "북한에 갔다오지 않았다. 저희 가족처럼 억울하게 사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탈북자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의혹으로 참고인 검찰 조사를 받은 유우성 씨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울먹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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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은 간첩이 분명합니다. 증거가 없으니 처벌이 불가능하면 추방하세요."

국가정보원 협력자 김아무개씨의 유서 중 맨 마지막 내용이다. 이는 자신이 국정원의 부탁을 받아 중국 공문서를 위조했다고 실토한 김씨의 말이라는 점, 자살 기도 직전 유서에 쓴 내용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그래도 유우성은 간첩'이라는 일부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켰다.

지난 9일 국정원이 이례적인 사과문을 발표하면서도 여전히 '유씨는 간첩'이라는 식의 논조를 유지하고, 검찰이 증거위조사건을 수사하면서도 유씨 간첩 혐의에 대한 공소를 철회하지 않는 모순을 보이는 근저에는 이런 믿음이 똬리를 틀고 있다.

핵심 증거와 증언이 모두 탄핵됐거나 심각히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우성은 간첩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한마디로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는 데 있다. 두 번의 주민등록번호 변경, 시기와 상황에 따라 바꿔 쓴 네 개의 이름, 위조된 북한 신분증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유씨의 말에 조금만 귀를 기울여보면, 대부분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주민번호 변경 의혹] 수사를 받던 중에 이뤄진 변경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2004년 8월 발급된 유씨의 주민등록번호는 2009년 2월과 2009년 8월 변경됐다. 일반적으로 주민번호 변경은 흔치 않아서 두 번이나 번호를 변경했다면 '신분세탁용'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탈북자가 주민번호를 바꾼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탈북자들은 사회적응교육기관인 통일부 하나원의 소재지를 기준으로 주민번호를 부여받아왔기 때문에 주민번호 뒷자리만으로도 탈북자 신분이 노출돼 취업에 불이익을 받는 등 문제가 많았다.

실제 유씨도 신분이 드러나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학 편입 뒤 북경사범대 교환학생 연수에 선발돼 2007년 7월 중국으로 간 유씨는 현지에서 유학비자를 신청했지만 발급을 거부당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로 인해 탈북자라는 게 드러났고, 중국 당국은 유학비자를 발급을 거부했다. 결국 교환학생 연수를 포기하고 중국에서 돌아왔다.

이런 신분 노출 피해를 막기 위해 지난 2009년 1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와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 공포 즉시 시행됐다. 이때 많은 탈북자들이 주민번호를 변경했고, 유씨도 이때 변경신청을 했다.

같은 해 8월 유씨는 다시 한 번 주민번호 정정신청을 해 앞 여섯자리를 바꿨다. 생년월일이 바뀐 셈인데, 변경 전과 후의 두 생년월일은 사실 음력 생일과 양력 생일이다. 북한에 양력 기준으로 등록돼 있는 생년월일과 일치시키려고 그랬다는 게 유씨의 설명이다. 유씨는 통일이 되면 탈북 전에 딴 준(準)의사 자격 등이 쓸모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나중에 신분증명 근거로 삼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유씨 주장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설사 100% 믿을 수 없다 하더라도, 주민번호 변경이 신분세탁 목적이었다고 보기 힘든 결정적인 이유는 변경 시기 때문이다. 주민번호를 변경한 2009년 2월과 8월은 유씨가 2006년 5월 모친 장례를 위해 밀입북한 일에 대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국정원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때였다. 그는 수사기관의 감시하에 있는데, 주민번호를 바꾼다고 신분세탁이 될 리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네 개의 이름] 탈북자들에게 개명은 흔한 일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 씨 "나는 간첩이 아니다" 간첩혐의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탈북자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참고인으로 검찰조사를 받기에 앞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 뒤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유 씨는 "나는 간첩이 아닌 다른 사람과 똑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며 "1년 넘게 너무 억울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하루 빨리 건강이 안 좋은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 씨 "나는 간첩이 아니다" 간첩혐의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탈북자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참고인으로 검찰조사를 받기에 앞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 뒤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유 씨는 "나는 간첩이 아닌 다른 사람과 똑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며 "1년 넘게 너무 억울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하루 빨리 건강이 안 좋은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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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의 본래 이름은 '유가강'으로, 북한에서 태어난 유씨가 북한 당국에 등록돼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유씨는 탈북 뒤 남한에서 '유광일'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됐다. 유가강(리우자깡)이란 중국식 이름을 버리고 유광일로 등록한 것은 "그게 주변에도 익숙하고 편할 거라 생각"해서다.

유광일이란 '조선식' 이름은 이전부터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써왔던 이름이다. 실제 북한에서 유씨와 친하게 지내다가 유씨보다 먼저 북한을 떠난 탈북자가 국정원 조사에서 유씨를 계속 '광일이'라고 불렀던 사실이 진술 조서에서 확인된다.

유씨가 쓴 이름 중에는 '조광일'도 있다. 이 이름은 유씨가 2008년 1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영국에 머물 때에 난민신청서류와 난민영어반에서 쓴 이름이다. 영어 학점을 따야 하는데, 단시간에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어 유씨는 영어연수를 떠났다.

유씨는 현지에 있던 탈북자의 집에서 지내며 세차장일 등 아르바이트를 해 자비로 영어학원을 다닐 요량이었다. 그러던 유씨는 어떤 사정으로 있던 집에서 나오게 되면서 학비를 대기가 어려워졌다. 그때 찾은 돌파구가 난민을 위한 무료영어강좌였고, 난민신청을 하면서 조광일이라는 이름을 썼다. 한국에서 정부지원을 받아 정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썼다는 것이다.

2008년 7월 중순 한국으로 돌아온 유씨는 2010년 9월 개명신청이 받아들여져 이름을 현재 이름인 '유우성'으로 바꾸게 된다. 유씨는 이때 개명 이유를 두고 "운명을 바꾸는 데에 도움이 될까 해서"라고 설명했다. 2008년 12월부터 계속된 수사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자신의 운명을 비관한 유씨는 수차례 점을 봤는데, 점쟁이로부터 개명을 권유받았다는 것이다. 실제 개명 시점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이 통보(2010년 7월)된 직후다.

탈북자들이 개명은 흔한 일이다. 유씨 재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선 이들 중에도 이름을 바꾼 이가 있었다. 탈북자들이 개명을 하는 이유는 본래의 이름에서 북한풍이 너무 강하게 풍겨 탈북자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이거나, 단지 새출발을 위해서 이름을 바꾸는 경우 등 다양하다.

[위조 북한 신분증] 오히려 간첩이 아닐 가능성 높여주는 증거

위조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원증(아래 청년동맹원증)은 유씨가 수상하다고 주장할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다. 유씨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을 당시(2008년 12월~2009년 말) 위조된 북한 신분증을 제시하며 자신이 화교임을 감추려 했고, 이 신분증 위조에 보위부가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사실관계부터 다르다. 유씨는 위조된 북한 신분증을 수사당국에 제시한 적이 없다.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의 핵심은 북한 공민이 아닌데도 탈북자로 위장한 것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유씨는 자신은 화교가 맞으나, 동시에 북한 공민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자신이 탈북자가 맞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동생(유가려)에게 청년동맹원증을 보내라고 했지만, 수사가 마무리된 2010년 후반경에나 청년동맨원증이 도착해 수사기관에 제출하지 못했다. 이 청년동맹원증은 유씨가 보관하고 있었는데, 2013년 1월 10일 간첩혐의로 체포될 때 가택수색을 통해 압수됐다.

유씨는 북한에서 태어난 화교다. 고등중학교 4학년까지 회령시에서 북한 주민들이 다니는 일반 학교를 다니다 5학년부터 청진시의 화교학교를 다녔다. 유씨는 2학년 때 다른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서 청년동맹원증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2009년 이 증을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 동생에게 "재발급을 받든지, 그게 어려우면 만들어서라도 보내라"라고 했다는 게 유씨의 말이다.

위조된 이 청년동맹원증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발급년도로 적힌 1995년 당시 이 단체 이름은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이었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 된 건 1996년부터다. 연호 표기 방식도 틀렸다. 위조가 금방 탄로날 허술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간첩 혐의 수사에서 유씨는 이 맹원증이 위조된 것이 맞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유씨가 위조된 북한 청년동맹원증을 제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점은 비판받을 일이지만, 이게 과연 유씨가 신분세탁을 하려했다거나 보위부와 긴밀히 연관됐다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상황이 반대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유씨가 간첩이고 보위부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면, 위조를 분간 못할 정도로 정교한 신분증을 신속하게 받아서 수사기관에 제출했어야 하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청년동맹원증은 허술하게 위조된 데다가, 구하는 데 걸린 시간도 너무 길어 결국 수사를 받을 때는 제출되지 못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위조된 청년동맹원증은 오히려 유씨가 북한 보위부와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반증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증거 없이 간첩으로 단정하는 건 주관적 망상"

중요한 점은 이런 사정들을 국정원과 검찰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사과정에서 유씨가 자세히 설명했고, 1심 재판과정에서도 다 소명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검찰 관계자'를 출처로 보수 언론에 지속적으로 오르내리고 있고, 일부 정치인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정원과 검찰은 여전히 '증거는 없지만 유우성은 간첩'이라는 이상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간첩이냐 아니냐는 신념이 아니라 증거에 의해 결정된다. 간첩죄가 단순 좀도둑 범죄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증거는 없지만 유우성은 간첩"이라는 주장은 황당하다 못해 사악하기까지 하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게 말이 되나요? 간첩의 확정은 '증거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증거 없이 간첩으로 단정하는 것은 주관적 망상이고, 심각한 명예훼손이고, 인권침해입니다"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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