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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있는 북한식당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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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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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김일성 주석 시절, 북한과 '형제국'이었던 캄보디아. 내가 캄보디아에 드나들기 시작한 건 16년 전인 1999년부터다. 그 후 4년 뒤 난 캄보디아에 정착했고 12년째 머물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지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눈에 들어온 건 캄보디아 곳곳에 자리 잡은 북한식당들이었다.

북한 미녀들이 펼치는 화려한 공연을 보면서 북한 전통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대형 식당. 21세기이지만, 북한의 폐쇄성은 여전한지라 북한식당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사업차, 일 처리를 위해 한국에서 온 몇몇 한국 사람들은 캄보디아에 있는 북한식당을 꼭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꼽기도 한다.

북한식당은 캄보디아에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북한'이란 나라의 특성상 오해와 편견도 따르는 것 같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보수성향 온라인 매체인 <워싱턴 프리 비컨>은 전세계 60여 개에 이르는 북한식당이 스파이 활동의 주요 본거지이며 북한식당 수익금 모두 북한 당국에 송금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이 글에선 내가 캄보디아 북한식당을 다니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물론 개인의 경험이고, 전 세계에 있는 60여개 북한식당들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이 점 염두에 두고 읽어주었으면 한다.

[사례①] 북한음식엔 절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북한식당의 음식을 먹어본 우리 여행객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북한음식 맛 그대로"라며 극찬하는 이가 있는 반면, "값만 비싸지 도무지 먹을 수 없었다"는 의견도 꽤 있었다. 그런데 맛이 없었다는 평이 실린 인터넷상의 댓글 중에는 "북한음식이 우리처럼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에 가까운 옹호성 발언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종종 가는 북한식당은 그렇지 않았다. 그곳은 화장실 가는 쪽에서 주방이 보이는 구조로 돼 있었다. 어느 날 화장실로 가다가 무심결에 주방을 쳐다봤는데, 주방 한 가운데 낯익은 조미료 봉지가 놓여 있었다. 놀랍게도 '다OO'라는 한국 상표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일부 북한식당 직원들은 입버릇처럼 "야채와 고기 등 신선도가 생명인 재료를 제외한 모든 식자재는 직접 태국 방콕을 거쳐 북한에서 직접 공수해온다"고 말했지만, 조미료 봉지를 본 이후 그 말이 일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례②] 북한식당 여성들은 모두 '자연미인'이다?

2003년 처음 캄보디아 씨엠립에 북한식당이 문을 열 당시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의 모습
 2003년 처음 캄보디아 씨엠립에 북한식당이 문을 열 당시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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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식당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으로 '남남북녀'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상당한 미인이다. 소위 '출신성분'도 좋고 춤과 노래 연주 등 예능면에서는 다재다능한 여성들이다. 그러다 보니 북한식당을 다녀간 일부 한국여행객들은 페이스북 등 SNS나 블로그를 통해 '이들이 남한과 달리 성형미인이 아닌 '자연미인''이라고 극찬하곤 한다.

약간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모두 '자연미인'이라고 볼 수는 없겠다. 이미 북한에서도 쌍꺼풀수술 등 미용 수술이 보편화된 지 오래고 코수술 등 좀 더 어려운 성형수술도 평양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다니는 한 북한식당 종웝원은 "대부분의 북한 여성들도 성형수술에 관심이 높다"고 귀띔했다.

한 북한식당 여성 종업원은 '성형수술을 했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여자들 마음은 다 똑같지 않슴네까?"라며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사례③] 북한 메뉴에 나오는 낙지볶음에는 낙지가 없다?

북한에서는 '낙지'를 '오징어'라고 부른다. 반대로 '오징어'는 '낙지'라고 부른다. 잘못 알고 음식을 시켜 낭패 아닌 낭패를 보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 북한에서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부른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삼겹살 구이 역시 대부분의 북한 식당에서는 '세겹살 구이'라고 적혀 있다.

숫자 '3'을 가리키는 한자어 석 삼(三) 자 대신 우리말 '셋'을 붙였다는 점에서 순수 우리말에 더 가까운 단어를 만든 북한의 노력이 가상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오랜 문화적 단절로 인해 언어마저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가고 있다는 현실이 조금은 씁쓸하다.

[사례④] 북한식당은 북한산 주류만 판매한다?

돗수가 대략 25도로 높아 과거 7~80년대 우리네 막소주를 마시는 느낌이 든다. 과거에는 이 북한식당에서 북한맥주도 팔았지만, 가격에 비해 물류비용이 높아 최근에는 북한으로부터 들어오지 않는다고 북한식당관계자가 말해주었다.  대신 대부분의 북한식당에서는 현지 앙코르 맥주나 처음처럼이나 참이슬 같은 우리남한 소주를 판다.
▲ 북한식당에서 판매되고 있는 평양소주 돗수가 대략 25도로 높아 과거 7~80년대 우리네 막소주를 마시는 느낌이 든다. 과거에는 이 북한식당에서 북한맥주도 팔았지만, 가격에 비해 물류비용이 높아 최근에는 북한으로부터 들어오지 않는다고 북한식당관계자가 말해주었다. 대신 대부분의 북한식당에서는 현지 앙코르 맥주나 처음처럼이나 참이슬 같은 우리남한 소주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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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블로그 등에 올린 글을 보면 '북한식당 여종업원들로부터 비싼 들쭉술만 강요받았다'는 내용이 종종 올라온다. 그러나 북한식당에선 북한소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유명 소주나 현지 맥주도 원하면 주문해서 마실 수 있다.

북한 평양소주는 25도로 알코올 도수가 높고 단맛이 적어 1970~1980년대 우리네 막소주와 맛이 비슷하다. 가격은 남한 소주의 2배 정도로 조금 비싼 편이다. 참고로 교민업체 중에는 이들 북한식당에 주류뿐만 아니라 간장, 고추장 등 한국 식자재들을 납품하는 곳도 있다.

[사례⑤] 북한식당은 모두 조선노동당에서 일괄 운영한다?

캄보디아 내 북한식당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물론 북한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식당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종업원들에게 물어본 것에 따르면, 실제적인 운영주체는 식당마다 다르다. 국제태권도연맹(ITF)이라 불리는, 북한이 주도하는 태권도단체가 운영하는 식당도 있고, 조선노동당 산하에 있는 각각의 외화벌이 사업부서에서 별개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종업원들의 유니폼도 식당마다 다르다.

현재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에는 2곳의 북한식당이 있다. 그리고 수도 프놈펜에는 최근에 문을 연 '평양아리랑식당'까지 모두 4개의 식당이 있다. 캄보디아에만 무려 6개나 되는 북한식당이 있는 셈이다. 식당 수만 따지면, 중국 다음으로 북한식당이 많은 나라는 캄보디아가 아닐까 한다.

[사례⑥] 북한식당과 한국교민들은 늘 앙숙관계다?

과거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했을 때  현지 한인회가 북한식당 불매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북한식당 남자 종업원들이 한인회가 붙인 대북규탄성명이 담긴 포스터 내용에 항의하며, 급기야는 한국교민식당에 난입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비슷한 시기 한인회가 설치한 현수막이 북한 괴한들에 의해 강제 철거되는 등 불미스러운 사건들도 발생해, 국내언론은 물론이고 <프놈펜포스트> 등 현지 영자신문도 이 사건을 기사화했다.

당시 현지 한인단체들은 두 달여 넘게 북한식당 출입반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었다. '냉면 한 그릇이 총알되어 날아온다'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와 스티커는 그 당시 교민들이 자주 드나드는 식당이나 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북한식당과 한국교민들이 '앙숙관계'라는 말은 절반 정도만 맞다고 볼 수 있다. 수도 프놈펜은 예외로 두더라도 적어도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관광도시 씨엠립만큼은 사정이 좀 다르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지난 2003년경 씨엠립 평양랭면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메뉴가 많이 바뀌어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계란프라이 위에 얇게 썬 붉은 고추 고명이 얹혀 있어 이채롭다.
▲ 북한식당의 정식메뉴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지난 2003년경 씨엠립 평양랭면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메뉴가 많이 바뀌어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계란프라이 위에 얇게 썬 붉은 고추 고명이 얹혀 있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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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가이드 등 여행업계 종사자 대부분은 북한식당 종업원들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여성 종업원들 중 상당수는 손님들이 없는 공간에서 한국인 가이드를 통상 '오빠'라고 친근하게 부르곤 한다. 가이드들 역시 사석에서는 '옥란', '혜주'(모두 가명) 등 북한여성들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르기도 한다. 북한식당 종업원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한국가이드들도 많다.

식당 내 별실과 칸막이 공간에서는 영화 <웰컴투 동막골>(2005) 스토리처럼 남남북녀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설날엔 여행사 관계자들을 초청해 떡국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심지어 북한식당 책임자가 교민 장례식에 문상을 오는 일도 종종 있다. 평소 북한식당을 자주 이용하던 가이드나 교민이 상을 당했을 때는 거의 예외 없이 찾아온다. 다만 다른 교민들과 길게 대화는 나누지 않고 잠시 조의를 표하고 곧바로 자리를 뜬다. 이런 부분 역시 캄보디아에서 지내면서 내가 겪은 일이니, 다른 나라 북한식당은 어떤지 모르겠다.

북한식당 여성 종업원들은 항상 밝은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지만, 그 이면은 다른 듯도 하다. 우선 북한식당 여성들은 의무근무기간으로 정해진 3년 동안 500평 남짓한 북한식당 안에서 거의 생활한다. 그녀들이 거주하는 기숙사조차 식당 안에 있어 자유로운 외부출입은  불가능해 보였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휴일에도 5~6명 이상이 함께 다니는 등 개인의 생활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곳에 근무하는 여성들중 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앙코르와트를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들 여성들은 해외에 나아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 캄보디아 좋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북한여성은 "고국에 돌아가고 싶지요" 라는 말로 대신 속마음을 대신해주었다.
▲ 씨엠립 북한식당 여성들의 공연모습 이곳에 근무하는 여성들중 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앙코르와트를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들 여성들은 해외에 나아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 캄보디아 좋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북한여성은 "고국에 돌아가고 싶지요" 라는 말로 대신 속마음을 대신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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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많은 씨엠립 북한식당은 점심과 저녁 하루에 최소 3~4번 이상 공연도 해야 하고 손님 접대도 해야 한다. 개인적인 외출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나마 프놈펜 소재 북한식당들은 휴일도 없다. 3년의 의무기간이 지나면 북한으로 돌아가는데, 본인이 원할 경우 1년간 재교육을 받으면 다시 올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문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앙코르와트와 북한식당들은 차로 불과 10여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북한식당에 근무하는 여종업원 중에 앙코르와트를 다녀온 직원은 거의 없었다.


태그:#캄보디아, #박정연, #북한식당, #NORTH KOREAN RESTAURANT, #평양랭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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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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