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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사회장 영결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도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하여~~
▲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사회장 영결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도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하여~~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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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꿈,
우리 모두의 꿈이 되어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하여~

8일 부고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노동당 부대표 박은지의 부고였다. 얄궂게도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었다. 전도유망한 젊은 여성 정당인 박은지(35세)는 왜 하필 여성의 날에 스스로 생의 시간표를 접었을까.

서른 번째 한국여성대회 캐치프레이즈는 '점프, 뛰어올라 희망을 찾자'다. 암울한 대한민국에서는 뛰어올라 희망을 찾기도,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혼자서 가기도 버거웠나 보다. '민주주의 회복', '평등 세상', '소통 사회'를 강조한 3·8 여성선언이 선언이 아닌 실천의 장에서 펼쳐지고 있었더라면 아마도 그녀의 선택은 달라졌으리라.

사실 나는 박은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런데 빈소를 찾고 대한문 영결식에 참석한 것은 그녀가 아들 하나를 둔 여성가장이고 장애인차별폐지 운동이나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와도 무관하지 않아서 느낀 동질감 때문이었다.

빈소에 가서야 그녀가 그토록 오랫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장애인으로서 장애인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박덕경 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중앙회장이 아버지였던 것이다.

박은지 자신이 장애인 아버지, 기간제 교사, 싱글 맘 여성가장, 소수 정당 정당인으로 이 땅의 차별과 아픔을 골고루 경험했으리라. 진보와 사회변혁을 말하면서 정작 우리 안의 다름을 안고가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고, 안아주지 못하는 풍토에서 내적인 아픔과 소외도 경험했으리라.

유족대표 인사중인 박은지 부대표 아버지 박덕경씨
 유족대표 인사중인 박은지 부대표 아버지 박덕경씨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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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로비에서 진행된 추모제. 유족대표로 인사에 나선 박덕경씨의 첫마디는 "미안합니다. 제가 큰 딸 박은지 동지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였다.

그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자책감 섞인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떤 젊은이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황망하게 딸을 잃어 위로받아야 할 유족이 도대체 왜 미안해야 한단 말인가.

박덕경씨는 장애인 차별 철폐와 인권을 위해 싸우느라 집에 잘 들어가지 못했다. 초등학생이던 박은지는 일기장에 "아버지는 장애인 차별철폐 운동을 하느라 집에 잘 못 들어오신다'라고 썼다. 담임선생님은 거기에 "훌륭한 일을 하시는 아버지를 뒀다"고 적어줬다.

이후 은지는 밝고  명랑하게 자랐다. 청량리에 '신망애'라는 장애인시설 하나 짓는 데 장애인 시설은 들어올 수 없다며 온 지역 주민이 반대하는 것에 분개해 장애인 인권운동을 시작했다는 박덕경씨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며 진보 정치 운동에 뛰어들었던 딸의 뜻을 이어 좋은 세상 만드는 데 힘을 모아 함께 싸워가자고 당부했다.

2000년부터 논의되어 2002년 발의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통과된 것은 2006년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장향숙(장애인 비례대표) 의원과 서명하는 자리에는 열댓 명의 장애인들이 초대됐다. 이 때 박경석 대표가 기습적으로 품에서 플래카드를 꺼내들고 시위를 했다.

부양의무제, 장애인등급제가 폐지되고 상식이 살아나는 그날을 향한 박은지 동지의 약속을 기억하겠다"는 박경석 장애인등급제부양의무폐지 공동행동 위원장의 추모사는 절절했고 가슴 저렸다.

헌화 중인 박경석 대표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 연대 대표가 헌화를 하고 있다.
▲ 헌화 중인 박경석 대표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 연대 대표가 헌화를 하고 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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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대표는  2013년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3월 8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행사에서 박은지 부대표가 한 말을 이렇게 전했다.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은 10년 후의 상식을 지금 외치는 것이다. 십여 년 전 이동권 투쟁 당시 저상버스는 상식이 아니었다. 지금은 만족할 만큼 저상버스가 도입된 것은 아니지만 저상버스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아마 십년 후에 사람들은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장애인들에게 등급을 매기는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할 것"이다. 십년 뒤 상식을 만드는 여러분을 지지한다."

광화문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농성 투쟁을 한 지 벌써 568일째이다 언론은 그들의 외침에 주목하지 않는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형편은 더 나빠지고 복지기금은 대폭 축소됐다. 장애인들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같은 악법 속에서 끊임없이 소외되고 죽어가고 있다. 이제 약자들의 외침에 귀를 열어야 한다.

소외와 슬픔과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나 운동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박은지 부대표는 자신의 날개를 접으며, 산 자들에게 참 많은 숙제를 남겼다. 내부를 돌아보고 철저한 자기반성을 거쳐 좀 더 따뜻하게 서로 관심을 갖고, 더 가열찬 투지로 변화와 소통의 길을 가는 것이 남은 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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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