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밑바닥에서>에서 바실리사를 연기하는 김혜진

연극 <밑바닥에서>에서 바실리사를 연기하는 김혜진 ⓒ H&H


배우 김혜진의 관심 분야는 다양하다. 드라마와 CF에 만족하지 않고 전공인 미술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무대에도 오르기 시작한단다.

배우 하정우도 '한 미술'하지만 김혜진은 디자인을 전공한 미술 분야 재원이다. 무대에 오르기도 바쁜데 틈틈이 그림을 그려 놓은 게 어느 정도 되다 보니, 이번 봄에 개인 전시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일을 위한 열정이 타고났다고 볼 수밖에 없는 배우다. 김수로 프로젝트 고전 1탄 연극 <밑바닥에서> 가운데서 억척녀 바실리사를 연기하는 김혜진을 만났다.

- 바실리사는 센 역할이다. 바실리사보다 동생 나타샤를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12년 동안 방송에서 맡은 역할이 바실리사보다는 나타샤에 가깝다. (김)수로 오빠와 같은 소속사에 있었다. 그 인연으로 김수로 프로젝트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관람했다. 그림과 가까이 지내면서 공연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예전에 김수로 프로젝트 연극 <발칙한 로맨스>나 <연애시대> 출연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방송 제의를 받은 터라 출연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 <밑바닥에서>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무슨 역할인지도 모르고 수락했다. 수로 오빠가 '무슨 공연인지는 알아야지?' 하고 물었지만, '오빠가 하는 공연이면 한다니까'하고 무조건 수락했다.

나타샤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다. 반면에 바실리사는 감정을 뿜어내야만 한다. 수로 오빠니까 날 바실리사로 캐스팅한 거다. 센 연기를 할 수 있게끔 기회를 준 게 고맙다. 제 에너지가 이만큼이나 나올 수 있다는 걸 난생 처음 알았다. 바실리사를 잘 소화하면 제 연기 폭이 훨씬 넓어질 거 같다."

"독한 바실리사에 대한 연민으로 밤을 꼬박 샜다"

<밑바닥에서> 에서 바실리사를 연기하는 김혜진

▲ <밑바닥에서> 에서 바실리사를 연기하는 김혜진 ⓒ 박정환


- 연극 <미남선발대회>는 부드러운 작품이지만 <밑바닥에서>는 반대로 고전 정극이다.
"소속사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 원래 전공인 그림을 통해 지친 영혼을 달래고 싶었다. 그럼에도 배우의 꿈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진짜 배우 소리를 듣고 싶었다. 정극 제의도 있었지만 <미남선발대회>로 데뷔하게 되었다. 많은 공연 중 <미남선발대회>를 한 이유는 즐거운 공연을 해야 영혼이 유쾌해지고, 치유 받고 싶어서다. 안정이 되어야 진지한 연극이 가능했던 시기였다.

무대에서 배우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키우고 싶었다. 관객은 고전의 내용을 파악하고 싶어 하거나, 출연진을 보고 싶어 하는 두 종류일 거다. 만일 전자의 관객이라면 연극의 사상과 깊이를 만끽하고 싶어 할 것이다.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공연이 <밑바닥에서>다.

진정성 있는 공연을 하면서 '이런 게 연기구나'하고 연기 12년 만에 배울 정도로 배우가 얻는 게 크다. 방송에서 쌓은 연기와는 다른 룰의 연기를 이곳에서 배운다. 캐릭터를 배우기 전에 먼저 한 게 도서관에서 러시아를 공부하는 거였다. 연습 과정에서 일주일을 투자해서 배우 모두가 작품을 분석하기도 했다.

바실리사의 독한 면을 연기할 때 처음에는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코멘트를 받았다. 처음에는 50배, 아니 100배는 더 독해야 한다는 연기 주문을 받았다. '이거보다 10배는 더해야 해' 하고 독하디 독한 연습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농담을 해도 나도 모르게 표독스럽게 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캐릭터에서 조금만 빠져나와도 연기할 때 다시 쌓아야 했다.

프레스콜이 있기 전날 밤과 공연 전날 밤 꼬박 밤을 샜다. 악착스럽고 지독한 바실리사의 내면을 뿜어내려 하는 게 어려워서 밤을 샌 게 아니다. 바실리사의 감정이 제게 모두 전이되어서다. 주위 인물을 제압하려 드는 바실리사를 80% 정도 이해할 때에는 연민이 들었는데, 문제는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실생활에까지 파고들었다. 연습하는 내내 감정이 너무 이입되어서 유쾌하지 못했다."

딸의 연기를 본 말기 암 아버지, 기적처럼 회복

<밑바닥에서> 에서 바실리사를 연기하는 김혜진

▲ <밑바닥에서> 에서 바실리사를 연기하는 김혜진 ⓒ 박정환


- 디자이너를 하다가 연예계에 입문했다.
"원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다가 미술 공부를 하고 홍대에 들어갔다.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정도로 대학 다닐 때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악착같이 공부했다. 일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잠을 거의 안 자다시피 하고 살았다. 그 근성으로 디자이너 생활을 했다. 원래 그렇게 사는 게 정상인 줄로만 알았다.

일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연예계에 입문했다. 디자이너계는 나이가 아닌 실력으로 승진하는 세계다. 회사에서 부장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외국에서 잠깐 쉬는 동안 인터넷에 재미 삼아 사진을 올렸는데, 신기하게도 콘테스트에서 일등을 했다.

수백 통의 매니저 이메일이 날아왔다. 나이가 많아서 거절하려고 했지만 괜찮다고 해서 서울에 들어와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엄청나게 활동했다. 대학에서 일등을 놓치지 않을 때처럼 거의 잠을 포기하고 CF를 백 편 가량 찍으며 활동했다."

- 드라마 <아이리스>를 찍을 때 '김태희 친구'라는 별명이 붙었다.
"카메라 앞에서 설 때엔 그림을 그릴 때만큼 큰 기쁨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은 스타가 아니었다. 반짝 스타가 되면 큰일이 나겠더라. 주목을 크게 받다가 잘못하면 외면도 크게 받는 게 연예계다. 주인공 제의가 많았다. 하지만 그걸 모두 수락했다가는 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용 가방에 손수 짐을 꾸리고 5년 동안 남들 15년치 만큼의 일을 했다.

5년이 지나고 나니 대중의 사랑을 받아도 될 때라는 판단이 섰다. 그러던 차에 <아이리스>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보통의 드라마는 투톱의 주인공을 살린다. 하지만 당시 <아이리스>는 스타가 많았는데도, 말도 안 될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인생에 희비가 동시에 찾아오는 때가 있다. <아이리스>를 준비할 때 건강하던 아버지가 난데없이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서 밤새 촬영하고는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병실로 달려가야만 했다.

<아이리스>로 제가 성공하는 걸 아버지가 보시고는 놀라울 만큼 회복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전이가 다 되어서 약도 못 쓸 상황이었는데, 딸이 드라마에서 잘 되는 걸 보고 다시 살아났으니 병원에서는 기적이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김혜진 밑바닥에서 김수로 아이리스 미남선발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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