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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저자인 조유식 '알라딘' 대표.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저자인 조유식 '알라딘' 대표.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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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그의 나이 서른 세 살. 고려는 격변기였다. 공민왕이 시해되고, 우왕이 들어선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원나라 사신의 영접사 역할을 거부하다, 나주로 귀양을 갔다. 오랜 낭인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622년 후. 서른 세 살의 젊은 기자가 정도전의 '변호인'을 자청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특권마저 불의가 정의를 대신해 가로챘던 불운의 시대에 태어나, 현실과의 싸움에서도 역사의 법정에서도 모두 패한 사람이 있다면, 후세에 누가 그의 진실을 알아줄 것인가."

1997년, '불우한 영웅' 정도전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책 <정도전을 위한 변명>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2만 권 넘게 팔렸던 이 책은 3, 4년 전 절판됐다. 그리고 첫 발간된 지 17년만인 올해 휴머니스트에서 다시 출간됐다. 당시 <말>지 기자였던 저자 조유식(50)은 10여 년 전 인터넷서점 '알라딘'을 창업해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정도전으로부터 나온 조선의 색깔은?

"17년 전에 비하면 정도전에 대한 평가는 비할 바 없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평가가 더 높이 올라가길 바란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 2판 서문의 맺음말이다. 조유식 대표는 아직도 정도전이 '평가절하'돼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정도전이 과연 어떤 인물이길래.

"정도전은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세운 사람이다. 조선 건국은 단순히 왕조 교체가 아니라 세대 교체가 된 것이다. 정도전은 이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이다. 정도전만이 패러다임을 바꿔야겠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고 혁명을 추구했다. 정도전은 600여 년 전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대적인 합리성과 상식을 갖추고 있다. 20세기의 뛰어난 인물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에 뛰어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정도전이 없었다면 조선 개국이 가능했을까? 정도전을 뺀 조선 개국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조 대표의 답변은 명확했다. "정도전이 없었더라도 조선이 생길 확률은 51%였을 것이다". 이분법으로 나누자면 '정도전이 없더라도 조선의 개국은 필연'이라고 본 것이다.

조유식 대표는 "정도전은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걸 넘어서는 매력, 설득력,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고 말했다.
 조유식 대표는 "정도전은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걸 넘어서는 매력, 설득력,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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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조 대표는 거기에 단서를 달았다. "정도전 없는 조선이 만들어졌다면, 그 나라의 정체성은 애매했을 것"이라고. 고려와는 전혀 다른 나라이거나, 패러다임까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조선의 독특한 색깔은 최고 지도력을 갖춘 이성계나, 뛰어난 승부사 이방원에게 나온 게 아니라, 정도전에게서 나왔다는 평가다.

정도전으로부터 나온 조선의 색깔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게 '전제개혁(田制改革)'이다. 농사를 짓고 소출의 1/10만 나라에 세금으로 내게 했다. 맹자의 정전제(井田制) 영향을 받았지만, 이를 현실화 했다는 건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였다. 해방 후 토지개혁안과 단일토지세를 주장한 헨리 조지의 주장이 겹쳐져 보이는 대목이다. 조 대표는 "정도전과 정몽주 모두 백성의 삶을 걱정했지만, 추상적인 정몽주와는 달리 정도전은 꿈꾸던 이상을 현실로 만든 점을 높게 평가한다"고 말한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 드라마와 묘한 인연

지난 1월부터 방영된 KBS 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서점가에는 정도전을 다룬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도전 열풍'은 1997년에 출간된 <정도전을 위한 변명>에 일정정도 빚지고 있다. 정도전 연구에 독보적인 한영우 서울대 교수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세미나 한 번 열리지 않았던 정도전에 대한 재평가를 당당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조 대표도 뒤늦게 드라마 <정도전>을 챙겨보고 있다. 주요 인물로 분한 배우들의 열연 때문에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단다. 그는 드라마 속성상 픽션인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정도전 캐릭터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한다.

"드라마 초기에 정도전의 캐릭터가 너무 반항아로 그려진 것 같다. 정도전은 대장부를 지향하는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다. 취미가 '눈이 펄펄 내리는 날, 말 타고 사냥하는 것'일 정도로 호방했다. 그리고 정도전은 선(善), 권문세족은 악(惡)으로만 규정할 수 없다. 정도전도 부족하고 나쁜 일도 한 사람이다. 다만, 그걸 넘어서는 매력이 있었을 뿐이다. 앞으로 드라마에서 이렇게 입체적인 인물 묘사가 이뤄진다면…."

공교롭게도 <정도전을 위한 변명> 초판과 2판 발간 시점은 드라마와 묘한 인연을 맺고 있다. 1996~1998년 방영된 드라마 <용의눈물>이 한창 방영중일 때에 이 책의 초판이 나왔다. 이방원이 주인공이었던 <용의눈물>에서 정도전은 간신이 아닌 '비운의 영웅'으로 새롭게 묘사된다. 2판이 나온 올해에는 연초부터 스스로가 주인공인, 드라마 <정도전>이 방영되고 있다.



조 대표 본인도 책 밖에서 정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팟캐스트 방송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외전 '정도전을 위한 변명' 편에 출연했다. 박시백 화백과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가 진행해 왔던 고정 프로그램에 '미니시리즈' 식으로 7회가 편성된 것이다. 지난 2004년에는 <딴지일보> 총수인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CBS 라디오 토크쇼에도 몇 개월 동안 출연한 적이 있단다. '강제 하차'를 자청한 그때와는 달리 팟캐스트 방송은 편안하다고.

"때로는 그가 품은 이상에 공감하며 가슴 뛰었고, 때로는 그의 눈물에 함께 가슴을 쳤으며, 때로는 그가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한 권모술수에 실망하여 책장을 덮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그를 위한 변명을 쓰기로 작정한 것은 몸을 사리지 않고 역사에 헌신한 그의 삶에서 진한 진정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 초판 서문에서 조 대표는 "정도전은 나의 스승이자 선배이자 친구였다"고 고백한다. 어떤 면에서 '친구'라고 느꼈냐고 묻자, 그는 '버르장머리 없는 멘트였다'며 멋쩍게 웃으면서도 "당시 사회 변화를 간절하게 바라던 젊은이의 입장에서 (정도전에게) 느끼는 공감대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정도전 같은 문제의 인물은 없었다"고 단언하는 조 대표는 "정도전에게 적잖은 빚을 졌다"고 말한다. 그 빚이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정리하는 건 무모한 일이다.

지난 3월 3일 휴머니스트 사옥에서 진행된 팟캐스트 방송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외전 '정도전을 위한 변명' 녹음 현장.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저자인 조유식 '알라딘' 대표(맨 오른쪽)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저자인 박시백 화백(가운데)과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맨 왼쪽)와 함께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3일 휴머니스트 사옥에서 진행된 팟캐스트 방송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외전 '정도전을 위한 변명' 녹음 현장.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저자인 조유식 '알라딘' 대표(맨 오른쪽)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저자인 박시백 화백(가운데)과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맨 왼쪽)와 함께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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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기사 : [일문일답 ①] "우리는 왜 정도전에게 빚을 졌는가?"
☞ 관련기사 : [일문일답 ②] "드라마 속 정도전, 올곧게만 표현됐다"


태그:#정도전, #조유식, #정도전을위한변명, #휴머니스트,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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