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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열풍이 불고 있다. KBS 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를 끌고,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 재출간됐다. 1997년 정도전에 대한 새로운 조명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책이 다시 독자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사이 이 책의 저자인 조유식은 글을 쓰는 <말>지 기자에서 인터넷서점 '알라딘' 대표가 되어 있었다. 그가 왜 정도전에 주목했는지, 정도전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다음은 조유식 대표와의 '일문일답②'다. <기자 말>

 지난 3월 3일 휴머니스트 사옥에서 진행된 팟캐스트 방송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외전 '정도전을 위한 변명' 녹음 현장.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저자인 조유식 '알라딘' 대표(오른쪽)와 박시백 화백.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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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에는 '픽션이 많이 들어가는구나' 하고 놀랐는데, 지금은 이해하면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 주요 인물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탄탄해서 더욱 재미있다. 사족을 달자면, 드라마 초기에 정도전의 캐릭터가 너무 반항아로 그려진 것 같다. 실제 정도전은 훨씬 더 대장부를 지향하는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다. 지금은 다행히 드라마 속 정도전 캐릭터에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말 타고 산에 가는 모습도 나왔으면 좋겠다."

- 정도전은 술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죽을 때도 술자리에 있었는데.
"주요 대목마다 술 얘기가 나온다. (죽는 날도) 술 먹고 있을 때가 아닌데, 술을 먹다가 잡혀가 죽었다.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했어야 했다. 그런데 무방비로 당했다. 방심했던 것 같다. 정도전은 이방원이 자신을 죽이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은 악의 무리인 고려 권문세족과 싸우는 '절대 선'처럼 묘사되는 것 같다. 당대 인물들과 갈등 상황을 이분법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인데.
"중요한 포인트다. 아마 그런 점 때문에 정도전과 갈등하는 이인임의 인물 해석이 발전돼있는 것 아닌가 싶다. (이인임이)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 안 나온다. 반면, 정도전은 너무 올곧은 쪽으로만 표현된다. 정도전은 실제로는 완전히 착한 사람도, 완전히 나쁜 사람도 아니다. 나쁜 짓도 했지만, 끊임없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좋은 쪽으로 가려했던 인물이다.

인간은 부족한 면이 있지만, 완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정도전은 분명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다. 그걸 넘어서는 매력, 설득력,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던 것이다. 이런 점을 깊이 파헤치면 좋겠다. 그것을 연기로 보여줄 수 있다면 아카데미상 감일 것이다. 판에 박힌 인물 해석은 사람들의 인식을 제약할 수 있다."


- 최근 정도전을 다룬 팟캐스트 방송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외전 '정도전을 위한 변명' 편에 출연했다. 재미있게 들었다. 직접 방송을 해보니 어떤가.
"녹음하는 과정은 재밌다. 말을 잘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저자로서 책 홍보에 협조해야 하지 않겠나. (웃음) 2004년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한 적이 있다. 반년 가까이 했다. 그때도 내가 얘기하는 대목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하차시켜달라고 졸랐다. 지금 하고 있는 팟캐스트 방송은 편안하다. 남이 들어도 재밌는 방담을 그대로 옮겨놓은 장점이 있다. 그나마 내가 잘 아는 주제니까 한마디씩 한다."

- 팟캐스트 방송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이성계와 정도전에 끝까지 맞서는 정몽주가 인상적이다. 한 사람이 죽기로 싸우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느껴진다고.
"그 당시 무엇이 맞느냐를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몽주는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은 좋은데, 꼭 왕조 바꿔야 하느냐, 너희가 왕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도전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도전은 어려운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위대했다. 정몽주는 비록 그걸 넘어서진 못했지만, 박수를 보내도 아깝지 않은 삶을 살았다."

- 정도전과 혁명 세력이 권력을 잡은 뒤 전제개혁(田制改革)을 실시했다. 1/10만 국가에 세금으로 내는 방식이다. 해방 이후의 토지개혁과도 비슷하고, 단일토지세를 주장한 헨리 조지의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600여 년 전에 이런 개혁조치를 단행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아이디어의 원조는 맹자다. 맹자는 땅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9등분해 8곳은 각자 농사를 지어 먹고, 나머지 한 곳은 공동으로 경작해 세금을 내는 정전제를 주장했다. 정도전의 전제개혁은 이보다 발전된 형태다. 농사를 짓고 수확의 1/10만 세금으로 내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정도전만이 실제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정도전은 정몽주와 대비된다. 백성의 삶을 나아지게 하겠다는 정몽주의 생각은 추상적이었다."

 17년만에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재출간한 조유식 '알라딘' 대표.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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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은 공자와 맹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드라마 <정도전>을 보면, 정몽주는 귀양 가는 정도전에게 읽어보라며 <맹자>를 건네는데.
"실제로는 정도전이 귀양을 간 뒤에, 정몽주가 <맹자>를 보낸 것이다. <대학>·<중용>도 건넸다. 정몽주는 정도전에게 <논어>는 읽었으니까, <대학>·<중용>을 읽어 철학적인 틀을 잡으라고 한 뒤, 이를 현실에서 어떻게 풀어나갈지 생각해보라며 <맹자>를 보낸 것이다. 체계적으로 교육시킨 것이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세미나 커리큘럼을 짜준 것과 비슷하다."

- 정도전은 이성계가 8번째 왕자인 이방석을 세자로 삼는 데 동의했고, 이 때문에 이방원의 미움을 샀다. 정도전은 왜 이방원과 대립했나.
"이성계와 정도전 사이에는 몇 대목을 빼면 이견이 거의 없었다. 정도전은 처음에 의견이 달라도 결국에는 이성계의 뜻을 따른다. 세자 책봉도 이성계가 끝내 양보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정도전이 보기에 이방원은 강력한 세자 후보였지만, 반드시 그가 세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참 아쉬운 대목이다. 정도전이 오래 살아남아서, 엄청난 생산력을 발휘해 활동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 정도전은 '재상중심주의'를 역설했다. <조선경국전>에 '임금이 신하만 못하면 전권을 신하에게 맡기는 게 좋다, 임금이 옳다고 해도 재상은 그르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썼다. 지금 돌이켜봐도 상당히 앞서나가는데.
"근대적인 발상이다. 왕조 정치의 가장 적합한 정치 형태를 일원화한 것 같다. 왕조 국가가 잘 되려면 왕권 중심주의로 가면 안 된다. 재상중심주의로 가야, 정치가 잘될 것이라고 봤다. 왕은 큰 방향을 정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재상이 실질적인 CEO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이 잘하지 못하는데, 제대로 된 재상조차 없으면 나라가 산으로 간다. (재상중심주의는) 왕조 정치에 어긋나는 이론이 아니라 왕권 국가에 적합한 통치체제인 것이다."

-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는 사람조차 없고, 대통령의 한마디에 여당은 꼼짝을 못한다. 조선 초기보다 못한 것 같다. 정도전이 2014년을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추상적으로 얘기하면 '상식과 합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자'일 것이다. 그리고 현 시대에 정도전과 같은 정치가가 있다면, 뚜렷한 비전과 함께 합리적이고 탁월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가 '그건 아닌 것 같다'라고 하면, 정적들도 '그렇지'라고 수긍할 것이다. 간단명료한 글과 말로 설명하는 능력으로 사람을 설득해, 조금씩 전진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 우리 사회가 상식적인 패러다임에 따라 굴러가고 있는지 그리고 합리적인 잣대를 갖고 있는지 회의가 든다. 그런 갈증으로 정도전에 주목하게 되는 것 아닌가.
"조선이 망하면서 밑에서부터 쌓아놓은 상식과 합리가 깡그리 무너졌다가, 그것을 이제 새로 깨우치고 얻어내고 키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우리나라 사람 전체가 한 발짝 성숙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저자인 조유식 '알라딘' 대표가 지난 6일 오후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책장에 놓여있는 북앤드 모양을 흉내내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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