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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열풍이 불고 있다. KBS 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를 끌고,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 재출간됐다. 1997년 정도전에 대한 새로운 조명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책이 다시 독자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사이 이 책의 저자인 조유식은 글을 쓰는 <말>지 기자에서 인터넷서점 '알라딘' 대표가 되어 있었다. 그가 왜 정도전에 주목했는지, 정도전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다음은 조유식 대표와의 '일문일답①'이다. <기자 말>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저자인 조유식 '알라딘' 대표.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저자인 조유식 '알라딘' 대표.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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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을 위한 변명>은 1997년 11월 첫 출간 이후 17년 만에 재출간됐다. 소감이 남다를 텐데.
"17년 전 책을 다 썼을 때, '인생에 후회 없는 책을 쓰려면 3년 정도 생각을 많이 하면서 써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팩트(fact)에 대한 취재 부족보다는 해석이랍시고 달아놓은 코멘트가 부족해보였다. 더욱 깊은 생각 속에서 코멘트가 나와야 했다. 당시 정도전의 지향과 600년 뒤의 의미가 무엇인지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 3~4년 전에 절판된 뒤 '더 안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부터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가 다시 책을 내자고 했다. 사양하다가, '이제는 안하던 일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재출간을 결심했다."

-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펴낸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5년 동안의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려고 할 때, 글 쓰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책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전에는 유교에 대한 관심을 갖고 몇년 동안 공부했다. 공자·맹자 등 원시유교는 건강했다. '전근대적인 비합리성이나 봉건성을 찾을 수 없었는데, 왜 조선에 와서 (유교가) 고리타분한 모습이 됐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원시유교와 조선의 연결고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정도전이 조선 건국의 주역이었고, 당시 왕조교체가 아니라 세대교체를 통해 큰 변화가 있었다. 이게 딱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 길로 정도전 관련 책을 사서 공부했다."

- 책을 처음 펴냈을 때 조 대표의 나이가 33살이었다. 그 나이에 정도전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책에 실린 연표를 살펴보더니) 1375년이다. 정도전이 귀양살이를 시작한 첫 해다. 이후 9년 동안 낭인 생활을 하며 지냈다."

- (책을 처음 펴낸) 1997년 정도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학계의 평가는 어땠나.
"학계에서는 정도전을 거의 취급하지 않았다. 조선후기 학자인 송시열은 정도전에 대해 '간신'이라고 했다. 그것이 정통의 평가로 굳어져왔다. 1970년대 한영우 서울대 교수가 거의 유일하게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주역으로서 건설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 당시까지 정도전에 대한 학술세미나 한 번 없었던 걸로 안다. 1996년 말에 시작된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은 괜찮은 인물로 나온다. 사람들은 그때 정도전이 조선 건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 정도전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와, 책을 다 쓰고 난 뒤에 정도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정도전을 몰랐으니 구체적인 상(像)이 없었다. 얘기를 종합해 보면, 정도전은 대장부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권근은 정도전을 두고 '맹자가 조선시대에 살아나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맹자가 강조했던 중요한 이미지가 '대장부', '호연지기'다. 정도전은 쓸데없이 머리를 굽히지 않고, 왕이 뭐라고 해도 선비의 기개를 보여주었다. 자존심이 강했다. 정도전이 가진 최고의 취미는 눈이 펄펄 내리는 날 말 타고 사냥하는 것이었다. 정도전은 문무(文武)를 겸비했다. 머리가 좋아서 모르는 게 없고 글도 잘 썼다. 그리고 술도 좋아했다."

- <정도전을 위한 변명>은 주인공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떤 의미인가.
"직업이 기자였으니까. 기자는 항상 두괄식 아닌가. (웃음) 첫 문장에서 무엇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을까 고민하다가, 그렇게 했다. 언제 태어났는지부터 쓰면 독자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불리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정도전의) 하루가 그렇게 상세하게 나온 것은 그날 밖에 없다. 바로 정도전이 죽은 날이다. 그걸 옮기면서 살을 붙여 첫 대목을 썼다."

- 정도전은 어떤 인물이었나? 문무를 겸비한 것은 물론, 건축·작명·의학 등 모든 분야에 통달했다. 다재다능, 팔방미인이라는 수식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천재였는데.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주역이다. 조선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세대 교체를 했다. 정도전은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이다. 혼자서 한 것은 아니지만, 정도전만이 패러다임을 바꿔야겠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고 그것을 철저히 추구했다. 나머지 의식 있는 사대부들은 그런 방향으로 나라를 바꿔야 한다는 저변의 여론을 형성했다.

정도전을 보면, 저런 사람이 그 시절에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근대적인 합리성과 상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을 만든 것은 유교의 애민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고려시대였다면 (한글이) 나올 수 있었을까. (조선 건국에서부터)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애민주의가 당연하게 된 것이다. 땅을 공평하게 나눠주는 것이 상식이 됐다. 측우기·해시계·물시계도 정도전이 풍수지리설을 배척하고 합리성을 얘기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 한양 천도(遷都) 논란에서도 정도전의 합리성이 엿보이는데.
"한양 천도할 때 정도전은 '이제 막 나라 세웠는데 왜 천도하느냐'고 했다. 천도를 주장한 이들은 풍수지리설을 근거로 개성의 지기(地氣)가 쇠했다고 했다. 정도전은 '중국의 왕조는 10개가 있었는데, 수도는 서너 개밖에 안 된다, 같은 데서 왕조가 서고 지는데 지기와 상관없다'고 했다. 굉장히 상식적인 얘기다. 그런 얘기를 어떻게 1390년경에 할 수 있었을까. 20세기의 뛰어난 인물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에 뛰어들어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라고 얘기한 것 같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저자인 조유식 '알라딘' 대표.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저자인 조유식 '알라딘' 대표.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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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은 '혁명'과 '개혁'의 관점에서 조선 후기 조광조와도 비교된다.
"정도전은 외교정책과 관련해 고려 왕건의 북진 정책을 훌륭했다고 평가했고, 고려 인종의 금나라 사대주의 역시 백성을 위한 것이라고 칭찬한다. 상대가 안 되는데 싸우면 백성만 피해를 입고, 힘이 될 때는 왕건처럼 고토회복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잘 따져보면 상식적인 것이다. 조광조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조광조는 훌륭한 정치가였지만 이데올로기화된 도덕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여진족을 몰아내기 위한 전투에서 기만 전술을 쓴 것을 두고, '지치주의(至治主義)를 지향하는 조선이 어떻게 기만전술을 쓸 수 있냐'고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정도전의 합리적인 사고로 볼 때 조광조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 '군대는 믿음으로 조직을 만들고, 전투는 예측불허로 한다'고 했다. 정도전은 다방면에서 이런 사고를 했기 때문에, 그의 말들은 빛날 수 있었다."

- 이상주의자는 현실과 동떨어지기 쉽다. 그런데 정도전은 이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철저히 고려한 인물이라고 보여지는데.
"현실세계에서 문제를 풀 수 있었다는 차원에서 행운아였고, 또한 그만한 능력 있었을 것이다. 공자·맹자의 사상을 이해한 사람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실제 일시적으로나마 권력을 잡고 나라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은 없었다. 정도전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운이 좋고 능력도 있는 인물이었다."

-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이성계가 정도전을 만나지 못했다면, 조선 개국이 가능했을까?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순조롭게 진행됐을까?
"이성계와 정도전은 사실상 공동 창업자였다. 정도전이 없었더라도 조선이 생길 확률은 51%는 됐을 것이다. 이방원이라는 탁월한 승부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조선에 색깔을 불어넣은 사람은 정도전이었다. 조선은 고려의 전근대성을 떨쳐버리고, 백성들에게 땅을 나눠주면서 경제 기반을 근본적으로 개선했다. 불교 대신 유교를 지향했다. 이게 조선의 독특한 색깔인데, 정도전에서 나왔다. 정도전이 없었다면, 조선의 정체성은 애매했을 것이다."

- 책에서 '정도전은 나의 스승이자 선배이자 친구였다'고 했다. 스승은 그렇다고 치고, 어떤 면에서 친구라고 느꼈나.
"책을 다시 썼다면,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멘트는 삭제했을 것이다. (웃음) 그만큼 공감대가 있었다. 정도전이 나쁜 짓도 꽤 했고 음모술수, 불법 행위 등 어두운 면도 갖고 있다. 언사가 너무 강했고, 부족한 면이 있었다.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하고 잘못한 점도 있었지만, 방향성을 잃지 않고 제대로 된 나라를 세워보겠다는 데 '올인'한 모습을 보면서, 사회 변화를 지향하는 젊은이로서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나."

17년만에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재출간한 조유식 대표가 6일 서울 중구 알라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17년만에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재출간한 조유식 대표가 6일 서울 중구 알라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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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은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후에 '만고역적'으로 평가받다가, 조선의 끝자락인 흥선대원군 때 와서야 복권이 됐는데. 왜 이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인가.
"동시대 사람들은 정도전에 대해 미안해하는 정서를 갖고 있었다. 역적으로 찍혔지만, 조선 개국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정도전을 박하게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고역적'인) 정도전의 아들과 손자는 병조판서와 재상까지 지냈다. 동시대 사람들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낙인이 찍힌 정도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허균, 정여립과 같은 극소수의 혁명가들만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왕 가운데에는 영·정조에 들어서면서 정도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무엇인가를 바꿔보려 했던 왕이었고 즉위 과정이 드라마틱했다."

- 정도전은 후세의 역사적 평가를 의식한 인물이었나.
"젊어서부터 큰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품었던 건 확실하다. 그는 과거에 급제한 뒤 '엄청나게 큰 일을 할 사람인데 누가 날 알아줄까'라는 내용의 시를 쓰기도 했다. 지금이라고 한다면, 행정고시에 붙자마자 이런 시를 쓴 셈이다. 과대망상일 수도 있는데, 스스로 큰 일을 할 대장부나 대인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 재출간된 책의 서문에서 "우리 모두는 정도전에게 빚졌다"라고 썼다. 무슨 의미인가?
"초판이 나왔던 17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정도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정도전에 대한 변명'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 정도전은 '억울한 혁명가' 정도가 아니라 훨씬 큰 일을 해낸 사람이다. 전근대적인 귀족 중심이었던 고려가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비상식이 많이 사라졌다. 백성에 대한 존중이 약하던 시대에서 백성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현대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사람에 비해 민주주의 감수성이 발달했다. 이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비합리성과 비상식 등이 한 차례 정리됐기 때문이다. 정도전에게 빚을 진 셈이다."

- 조선왕조는 500년 이상 존속했다. 세계적으로 이런 경우가 거의 없는데.
"우리는 조선과 옛 지도층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 '얼마나 한심했으면 나라를 말아먹었느냐'라는 게 기본적인 정서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나라 가운데, 과거에 잘 나간 적이 없는 나라가 거의 없다. 뼈대 있는 집안만 살아남은 셈이다. 그런데 한국, 베트남, 폴란드 등 몇 나라만 예외적으로 (세계적으로) 잘 나간 적이 없는 데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우리 민족에게) 근성이나 죽지 않는 저력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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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도전, #조유식, #정도전을위한변명, #휴머니스트,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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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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