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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뭘까? 익숙한 일상 속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예측불허의 사건들이 발생하기 때문 아닐까?

청춘지게꾼의 여행도 그래서 즐거웠다. 미리 촘촘한 계획을 짠 것도, 섭외를 해놓은 것도 아닌데 글쎄, 절로절로 출연진들이 모여들어 줬으니.

길가다 '즉석만남'... 여행 계획 취소하고 무작정 따랐다

여행 첫날,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서의 일정을 흡족하게 마무리한 후 얼근히 맥주를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서 숙소로 돌아가던 지게꾼들. 한옥마을 뒤켠의 그 짧은 골목길에서 지게꾼은 '기접놀이꾼'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통 넓은 바지에 개량한복, 남자치고는 긴 머리 등, 한눈에 느낌이 팍 왔다. 그들의 눈에도 지게꾼이 범상해 보이지는 않았으리라. 구제시장에서 산 겉옷에 직접 재봉질해 만든 바지 같은 걸 입고, 휘장이니 지게, 악기 따위를 가지고 다녔으니.

그렇게 눈이 맞아버린 우리는 그 길로 함께 2차를 가게 되었다. 전혀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흥미진진했다. 남다른 풍모를 풍기시던 형님들은 전주 지역의 전통 민속놀이인 '기접놀이'를 전승하는 분들이었다.

즉흥적으로 함께 한 2차 술자리에서 기접놀이꾼과 한 컷!
 즉흥적으로 함께 한 2차 술자리에서 기접놀이꾼과 한 컷!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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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접놀이란 쉽게 말해 기(旗)를 가지고 하는 마을 단위의 민속놀이이다. 전통적으로 백중날에 전주는 물론 호남지역에서 마을마다 했던 민속놀이지만, 대부분 전승이 끊겨버렸다. 전주 기접놀이도 1950년대에 맥이 끊겼다가 1974년부터 다시 재현된 것. 현재는 매년 정월대보름 무렵에 행해진다.

지게꾼이 방문한 때는 2월 초, 때마침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있어서 기접놀이 연습이 한창이라고 했다. 이날도 연습 뒤풀이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 지게꾼을 만난 것이다.

기울어지는 술잔과 함께 우정을 싹틔우며, 기접놀이꾼은 다음날 삼천천변에서의 기접놀이 연습에 지게꾼을 초대했다. 전주 형님들의 인품에 이미 홀딱 반해버린 지게꾼은 미련 없이 다음날의 순천만 일정을 포기하고 전주에 좀 더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용기(龍旗) 들고 마을끼리 겨루는 전주 '기접놀이'를 체험하다

그리하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길가다 '즉석만남'한 형님들만 믿고 따라간 지게꾼들. 삼천동 농협공판장 근처의 천변에 도착해 기다리니 곧이어 천장에 장대 여럿을 단 사륜구동 차량이 나타났다. 등장만으로도 일대를 평정하는 그 어마어마한 위엄이란!

기접놀이에 쓰이는 장대를 위에 싣고 온 차. 등장만으로도 위엄이 굉장하다.
 기접놀이에 쓰이는 장대를 위에 싣고 온 차. 등장만으로도 위엄이 굉장하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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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혼자서 들기도 어려울 정도로 크고 무거운 기. 특히 가장 큰 용기(龍旗)는 마을의 위세를 보여주는 기로써 바닥에 떨어지면 안 된단다. 전통적으로 기를 가지고 노는 문화가 전국 여기저기에 있어왔지만, 기를 가지고 마을끼리 겨루는 곳은 여기 전주뿐이란다.

기접놀이를 연습하는 모습
 기접놀이를 연습하는 모습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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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접놀이를 체험하고 있는 지게꾼들
 기접놀이를 체험하고 있는 지게꾼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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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접놀이꾼들과의 만남으로, 지게꾼들은 어디서 구경하기도 힘든 기접놀이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다. 게다가 연습이 이루어진 삼천 천변은 아파트촌의 공원으로 조성이 되어 주민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이었다. 지게꾼들은 기접놀이 체험과 함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인생상담과 음악치료를 진행하기도 했다.

산책 나온 할머니는 자식 자랑과 걱정을 반반 섞어 한참 털어놓더니, 이내 옆에 놓인 북을 치며 노래까지 한 곡조 뽑고 갔다. 기접놀이에 대한 주민의 관심도 높아서, 연습 중에도 지나가는 주민들이  "본 행사가 언제냐"고 몇 번이나 묻고 갔다.

삼천천변에서 기접놀이 체험과 인생상담을 진행한 청춘지게꾼
 삼천천변에서 기접놀이 체험과 인생상담을 진행한 청춘지게꾼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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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스치고 말 수도 있었던 길 위에서의 인연을 붙잡은 덕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간 청춘지게꾼 전국유랑 둘째 날. 기접놀이꾼과 지게꾼은 우리 사회의 주류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통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금세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지게꾼들은 즐겁고도 뜻깊은 오후 한 때를 보낸 뒤, 기접놀이꾼들과 작별하고 예정보다 반일 늦게 순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태그:#기접놀이, #전주, #청춘지게꾼, #삼천천, #내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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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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