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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길바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고민을 '무작정' 들어주는 문선배(24, 건달, 인생상담소장), 실패의 인생을 스펙으로 삼아, 서울 신촌에서 대안문화주점 '인간실격패 알고 보니 부전승'을 운영하는 강악사(30, 술집 사장, 요리사, 기생, 희대의 관심병사 전역, 부전승자), 주야장천 밖으로만 떠도는 역마살 인생의 박작가(25, <청춘, 내일로>, <교환학생 완전정복> 저자) 세 명이 뭉쳤다.

이들은 조선 팔도 청춘들의 고민을 모두 '들어줘' 버리기 위해 (진짜) 지게를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2014년 2월 8일부터14일까지 7일간 기차를 타고 전주·순천·하동·부산·경주·안동을 누볐다. - 기자말 

아직도 모르는 분이 혹 계실까 봐 친절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내일로'라는 게 유행이다. '내일로'는 코레일에서 여름과 겨울방학 기간 동안 만 25세 이하 청춘들에 6만2700원으로 판매하는 7일짜리 패스형 승차권의 이름. KTX를 제외한 새마을, 누리로, 무궁화 열차를 입석과 자유석으로 무제한 탑승할 수 있다.

지난여름 "극장흥행 1위는 <설국열차>요, 야외흥행 1위는 청춘열차"라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로, 이 내일로 티켓을 이용해 국내여행을 다니는 청춘이 많다. 방학이면 기차표 한 장 끊어 팔도를 누비는 대학생들을 주변에서 보셨다면, 십중팔구 이 내일로 티켓을 이용해 여행하는 '레일러'다.

청춘지게꾼도 내일로 티켓을 이용했다. 자타공인 '내신(내일로 신)'이자 내일로 여행 가이드북 저자인 박 작가는 물론이고, 내일로 여행이 처음이라는 문 선배도 이 티켓을 끊었다. 나이가 만 25세가 넘어 내일로 티켓을 살 수 없는 강 악사는 일반 승차권을 사서 다녔다. (관련기사: 건달-기생-작가, 셋이 떠난 수상한 여행)

지난달 8일, 지게꾼의 첫 목적지는 전주. 유명한 한옥마을과 전동성당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막걸리, 피순대 등 특유의 먹을거리가 많아 제대로 '먹부림' 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전주는 내일로 여행자들에게도 인기 많은 여행지다. 용산역에서 전라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약 3시간 반 정도면 닿는다.

'사연'은 열차를 타고

레일러 문선배. 이런 비주얼로 주목을 받지 않기란 오히려 어려웠다.
 레일러 문선배. 이런 비주얼로 주목을 받지 않기란 오히려 어려웠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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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맞아 가득 찬 전주행 열차에서 지게꾼은 앞으로의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고라도 하는 듯한 만남을 겪었다.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반공 할아버지'였다.

우연히 강악사의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했고 인천상륙작전에도 투입되었다는 참전용사이자 해병대 '0기' 창설요원. 현재 연세는 아흔으로, 스무 살 무렵부터 약 칠십여 년간 흡연을 해온 놀라운 심폐기능의 소유자. 자랑스럽게 해병대 배지를 달고 다니시는 할아버지는 아직도 정정함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살아온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참전 용사의 위용이, 언제나 인류애를 부르짖는 평화주의자 지게꾼은 그저 신기하고 생소했다. 하여 "빨갱이 새끼들"을 욕하는 반공 할아버지의 격한 말투에 왠지 쿡쿡 찔리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내릴 때까지 환담을 하였으며, 착실한 청년 코스프레로 할아버지의 도시락 심부름도 흔쾌히 했다.

전주 남부시장의 청년 사장들

전주역 앞에서 찍은 인증샷. 비에 젖은 바닥에 비친 그림자까지 매우 신령스럽기 짝이 없다.
 전주역 앞에서 찍은 인증샷. 비에 젖은 바닥에 비친 그림자까지 매우 신령스럽기 짝이 없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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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여정 동안 또 얼마나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전주역에 내렸다. 심상찮은 비주얼로 가는 곳마다 존재감을 과시하는 지게꾼들, 왠지 모르게 수군대는 듯한 주변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전주역 앞에서 인증샷 찰칵 찍고 제일 먼저 간 곳은 남부시장.

전주역에서 버스를 타고 25분 정도면 도착하는 남부시장은 피순대와 콩나물국밥 등 푸짐한 전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전통시장이다. 한옥마을에서 큰길 하나만 건너면 되기에 함께 둘러보기도 좋다.

지게꾼이 남부시장을 찾은 것은 별미 피순대를 맛보기 위함만은 아니다. 시장 2층에 자리한 '청년몰'을 방문하는 게 주목적이었다. 남부시장 2층 청년몰은 지난 2012년 5월, 전통시장 살리기와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사회적 기업 '이음'의 주도로 탄생했다. 청년 장사꾼들의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밀집한 청년몰은 현재 전주 한옥마을에 이은 제2의 관광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남부시장 이층 청년몰의 슬로건 -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남부시장 이층 청년몰의 슬로건 -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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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몰 내 '청춘식당'의 모습. "낮술 환영"
 청년몰 내 '청춘식당'의 모습. "낮술 환영"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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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몰에서는 꿈 많은 청년 사장님들이 '미스터리 상회' '우주계란' '범이네 식충이' '같이놀다가게' 등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가게를 차려 대안적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멀쩡히 다니던 학교나 직장을 그만두고 소신과 꿈을 찾아서 전주까지 온 청년도 있다. 평범이라는 단어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지게꾼들과 뭔가 통하는 구석이 있을 거라 기대한 것은 당연지사.

보드게임방 '같이놀다가게'
 보드게임방 '같이놀다가게'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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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면 사야 합니다"
 "만지면 사야 합니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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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1층에서 전주 방문 기념으로 피순대에 막걸리 두어 병을 꿀떡 한 지게꾼은 곧장 2층 청년몰을 접수했다. 청년몰 한 켠에 휘장과 포스터를 내걸고 지게와 악기를 꺼내놓자, 채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구경꾼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청년몰에 오면 분명 우리와 뜻이 맞는 청춘들을 만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첫 번째 도시인 전주에 도착하자마자 그야말로 흥해부렀다! 청년몰을 구경하던 여행자들은 물론 청년 사장들까지도 나와서 신기한 듯 지게꾼들을 구경했다.

청춘지게꾼이 등장하자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는 사람들.
 청춘지게꾼이 등장하자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는 사람들.
ⓒ 박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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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꾼들은 곧 제3세계 악기 연주와 타령이 함께하는 아방가르드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청춘지게꾼의 취지를 소개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았다.

지게꾼의 퍼포먼스에는 특별한 레퍼토리가 있는 것도, 미리 맞춰놓은 각본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때 그때 느낌 따라, 상황 따라 악기 연주 혹은 인생 상담을 하며 게릴라식으로 청춘들과 교감을 나눴다.

제3세계 민속악기 연주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지게꾼들.
 제3세계 민속악기 연주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지게꾼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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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있게" 살고 싶은 지역 청년들

오늘의 내담자는 청년몰에서 '소소한 무역상'을 운영하는 박종현 사장(33). 전주 청년몰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하는 박종현씨는 지게꾼을 인터뷰하면서 고충도 함께 털어놓았다.

"청년몰이 유명세를 타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고민은 있어요. 일단은 상업 공간인데 사진 찍고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들도 많아요."

한편, 자리를 정리하는 지게꾼들에게 다가와 말 건 청년이 있었다. 유난히 눈을 반짝이며 지게꾼의 퍼포먼스를 지켜보던 대학생 송지용씨(25). 그는 <오마이뉴스>에 뜬 지게꾼들의 기사를 읽었다며, 격한 반가움을 표했다. 전북 정읍과 익산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청년 네트워크 '고스트미팅크럽'의 운영자이기도 한 그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저 남들이 하니까 다 하는 스펙 쌓기, 취업 준비하면서 '영혼 없이' 살고 싶지 않아요."

영혼 없이 남들 흉내 내며 살고 싶지 않다는 데 지게꾼들도 200% 동의한다. 느낌 팍팍 통해버린 송지용씨는 즉석에서 우리를 고스트미팅크럽의 지방청년 네트워킹파티인 '까꿍잔치'에 초청했다. 잔치에 직접 참석할 수 없었던 지게꾼들은 대신에 간단한 영상을 통해 까꿍잔치 참석자들을 만나기로 했다.

곧바로 청년몰 내 서점 '우주계란'에서 청춘지게꾼의 소개 영상을 촬영했고, 영상은 2월 21일에 까꿍잔치에서 상영되었다.

청년몰 내 서점 '우주계란'에서 까꿍파티 영상을 촬영했다.
 청년몰 내 서점 '우주계란'에서 까꿍파티 영상을 촬영했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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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있게' 살고 싶다.... 돈, 유명세도 아닌 단지 내 영혼 내가 챙겨 가며 살고 싶다는 작은 꿈이, 2014년의 우리 청춘들에게는 왜 이리 호락호락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것도 좋았지만 깊이 뜻이 통하는 동지 몇 명을 만난 데 한껏 흐뭇해진 마음에 지게꾼들은 그날 저녁 수많은 맥주병을 비웠다. 가겟방에 테이블을 놓고 맥주를 마시는 전주 특유의 '가맥(가게맥주)' 문화를 한껏 즐기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부비트랩을 밟듯 놀라운 사람들을 만나느라고 도무지 쉴 틈이 없는 지게꾼들은 또 한 팀의 귀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2014년 2월 8일~14일 동안의 기록입니다.



태그:#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청춘지게꾼, #내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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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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