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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가는 길

정수사는 강화에 있는 절 중에 그리 알려진 절은 아니다. 전등사·석모도 보문사와 함께 강화의 3대 고찰 중 하나이긴 하나 규모나 인지도 면에서 전등사에 뒤지고, 남해 보리암·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3대 관음도량인 보문사에 인기를 내주어 갈 때마다 한적하여 톡톡히 주인대접을 받는 그런 절이다.

 정수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즈넉한 절이다
▲ 정수사 정경 정수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즈넉한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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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에서 동막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있어 동막에 눈을 빼앗기기라도 하면 정수사 입구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연히 눈에 띄어 찾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강화의 산, 마니산 동쪽 기슭, 조그마한 터에 자리 잡았다. 터가 좁아 큰 절이 되기에는 날 때부터 어려웠다. 큰 길에서 숲길 따라 1300m 정도 오르면 닿는다. 예전엔 길이 좁아 걸어 내려오는 등산객이라도 만나면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은 차가 서로 비켜설 정도로 길이 넓어져 차로 올라도 마음이 그다지 무겁지 않다.

터가 좁아 어차피 큰 절이 되기에는 날 때부터 어려웠다
▲ 정수사 정경 터가 좁아 어차피 큰 절이 되기에는 날 때부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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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입구에 정수사를 알리는 표지돌이 보이고 화살표대로 눈을 돌리면 아스라이 계단길이 나 있다. 계단길 양 옆은 상사화 자생지다. 상사화는 줄기와 꽃이 평생 만나지 못한다 하여 이별초라고도 하는데 정수사 상사화는 8월에 노란색 꽃을 피운다. 잎과 함께 꽃봉오리에 연밥이 있는 연꽃이나 암·수꽃봉오리와 열매를 함께 달고 있는 석류와는 아주 다르다. 

평생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하여 이별초라 부른다. 안타깝게도 정수사 상사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2009년 8월 영양 봉감모전오층석탑 가는 길가에서 촬영)
▲ 상사화 꽃 평생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하여 이별초라 부른다. 안타깝게도 정수사 상사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2009년 8월 영양 봉감모전오층석탑 가는 길가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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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과 꽃과 열매를 함께 달고 있는 연꽃은 이별초와는 아주 다른 꽃이다.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일련의 단계를 모두 담고 있는 연꽃은 불법이 전하려는 강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2008년 1월 촬영)
▲ 정수사 꽃살문 연꽃 잎과 꽃과 열매를 함께 달고 있는 연꽃은 이별초와는 아주 다른 꽃이다.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일련의 단계를 모두 담고 있는 연꽃은 불법이 전하려는 강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2008년 1월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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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개 계단을 오르면 정수사 앞마당. 마당이 좁으니 절은 자연스레 단출할 수밖에 없다. 앞마당에 대웅보전이 벼랑바위에 기대있고 그 서쪽 바위틈에 삼성각이, 동쪽에 요사채가 빈터를 메우고 있는데 정수사 건물은 이게 전부다.

앞마당 중심에 서 있는 대웅보전은 아담한 맞배지붕건물이다. 앞면 3칸, 측면 3칸이었으나 나중에 툇마루를 내어 4칸이 되었다. 정면에서 보면 아담해보이나 느티나무가 서 있는 바위언덕에 올라 옆을 보면 그리 만만하게만 볼 게 아니다. 하늘을 가르는 맞배지붕 지붕선은 경쾌하나 몸집은 육중하고 옹골지다. 

정면에서 보면 아담하게 보이나 옆에서 보면 육중하고 옹골져 보인다
▲ 대웅보전 측면 정면에서 보면 아담하게 보이나 옆에서 보면 육중하고 옹골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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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의 보물, 툇마루와 꽃살문 딸린 대웅보전

대웅보전에는 다른 데서 구경하기 어려운 툇마루가 있다. 법당에 툇마루를 두는 경우는 드문데, 안동 봉정사 대웅전과 개목사 원통전 툇마루 외에는 없다. 단청과 꽃살문이 없었다면 여느 살림집으로 착각하기 쉽다. 살림집에는 단청과 꽃살문을 두지 않는데 법당에 툇마루를 두었기 때문에 단청과 꽃살문을 더욱 화려하게 했는지 모른다. 

법당에 툇마루를 두는 경우는 드문 데 꽃살문과 단청이 없었다면 여는 살림집 같다
▲ 정수사 대웅보전 툇마루 법당에 툇마루를 두는 경우는 드문 데 꽃살문과 단청이 없었다면 여는 살림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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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의 백미는 꽃살문. 여느 절집의 꽃살문과 달리 나무통판에 모란과 연꽃을 통째로 조각하여 문틀에 끼워 넣었다. 쉽게 구경하기 어려운 것이다. 낙산사 원통보전에 있었으나 불타버렸고 이제 성혈사 나한전, 동학사 대웅전, 용문사 윤장대에 남아있다.

종교적 열정과 정성이 가득 담긴 처절한 꽃살문이다(겨울에는 비닐로 덮어놓아 감상하기 어려워 예전 사진으로 대체)
▲ 정수사 대웅보전 꽃살문 종교적 열정과 정성이 가득 담긴 처절한 꽃살문이다(겨울에는 비닐로 덮어놓아 감상하기 어려워 예전 사진으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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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절 규모를 감안하면 여간 정성을 다한 것이 아니다. 종교적 열정이 없었다면 만들기 어려운 처절함이 배어있는 것 같아 애처롭게 보이기도 한다. 다른 데에 쏟을 정성을 이 꽃살문에 전부 쏟아 부은 것 같다.

정수사 꽃살문은 법당 3칸 중에 가운데 칸에만 두고 나머지는 격자형으로 소박하게 꾸몄다. 전부 꽃살문으로 하였다면 화려함이 지나쳐 사치로 보였을지 모른다. 꽃살문 가운데 두 짝은 연꽃이, 양 옆으로 모란이 조각되어있다.

가운데 두 짝은 데칼코마니 기법을 이용한 것처럼 아주 비슷하게 조각되어 있다. 연꽃과 모란은 파란색 고리금문, 황색 여의두문, 흰색 연화문, 주황색 격자금문 등 각각 다른 색, 다른 무늬를 가진 네 개의 꽃병에서 몽실하게 피어있다. 활짝 핀 것도 있고 막 피려고 봉우리가 맺힌 것도 있다.

가운데 연꽃 꽃살문으로 두 개는 데칼코마니 기법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여의두문과 연화문 꽃병에 연꽃이 소담하게 피어있다 (2008년 1월 촬영)
▲ 정수사 꽃살문 가운데 연꽃 꽃살문으로 두 개는 데칼코마니 기법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여의두문과 연화문 꽃병에 연꽃이 소담하게 피어있다 (2008년 1월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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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주변의 회색조 바위와 나무 그리고 진회색 바다색이 주는 흐릿한 분위기 때문에 대웅보전의 꽃살문은 더욱 화려해 보인다. 봄철의 진달래와 여름철 이별초 외에 이렇다 할 꽃이 없는 이곳은 이 꽃문으로 인해 사시사철 꽃향기가 난다. 

정수사 깊이를 더해주는 함허대사 부도

정수사(淨水寺)는 신라 선덕여왕 때(639년), 마니산을 참배한 회전대사가 정수사(精修寺)라 이름 지으며 창건했다. 그 후 세종 때 함허대사가 중창하였는데 법당 서쪽에 맑은 물이 샘솟는 것을 보고 정수사(淨水寺)라 고쳐 불렀다.

이런 인연으로 요사채 뒷산에 함허대사 부도가 모셔져 있다. 부석거리는 산길따라 100m 정도 오르면 닿는다. 비교적 평평한 터, 굽은 소나무 밑에 있다. 부도의 조각수법이나 생김새는 그다지 눈여겨 볼만한 것은 못 되지만은 정수사를 부흥시킨 함허대사의 연을 구한다고 생각하면 여간 사랑스런 부도일 수 없다.

굽은 소나무 아래 편안히 놓여 있는 부도를 보면 삶과 죽음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 함허대사 부도 굽은 소나무 아래 편안히 놓여 있는 부도를 보면 삶과 죽음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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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절에서는 이렇게 대접받지 못했을 것이다. 비교적 너른 터에 장대석을 두르고 두 그루 소나무에 안겨 남쪽바다를 보고 서 있다. 이 부도는 대웅보전과 함께 정수사가 그저 조그마한 절에 그치지 않고 깊이 있는 절임을 묵묵히 알려주고 있다.

부도는 물질의 구성요소, 땅(기단)과 물(원형몸돌)과 불(지붕돌)과 바람(앙련)을 표현하고 있다. 부도를 멀찌감치 바라보며 또 한 번 깨닫는다. 인간의 육신은 땅으로, 물로, 불로, 바람으로 환원되어 돌아가거늘 뭐 그리 욕심을 부리는가? 거짓된 삶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욕심은 화를 낳고 화는 파멸을 가져온다. 욕심을 여기에 내려놓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태그:#정수사, #함허대사, #꽃살문, #꽃문, #툇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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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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