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크메르루즈(Khmer Rouge)는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크메르루즈가 죽인 것은 문화이며, 이 나라의 정신입니다."

2014년도 제86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선정된 <미싱 픽처>(원제는 'The Missing Picture')의  리티 판 (51·Rithy Panh) 감독이 지난 2일 본 시상식을 앞두고, 알자지라 미국방송과의 인터뷰 중 한 말이다.

캄보디아 출신 감독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후보에 올라

리티 판의 영화 <미싱 픽처> 포스터.
 리티 판의 영화 <미싱 픽처> 포스터.
ⓒ Catherine Dussart Product

관련사진보기


이 영화는 캄보디아 최초로 아카데미상(오스카상) 본선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일 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시상식 본상 수상엔 실패했다. 이 부분 작품상은 <더 그레이트 뷰티(The Great Beauty)>(이탈리아)에 돌아갔다.

그러나 캄보디아 출신 감독이 만든 영화가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캄보디아 국민들은 열광했다. 또 <월스트리트 저널> <사우스 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주요외신들도 이 소식을 비중있게 다뤘다

70년대 캄보디아 대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 <킬링필드>(1984년)는 주인공 디스 프란역의 행 S. 응고르(Haing.S. Ngor)가 제 57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는 등 3개 부문에서 상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캄보디아 영화가 아닌, 영화 <미션>으로 유명한 롤랑 조페(Roland Joffe) 감독이 만든 서구영화다.

영화 <미싱 픽처>는 리티 판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 <제거>(The Elimination, 2013)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점토 애니메이션(Clay Animation)기법을 이용해 제작한 영화다.

'잃어버린 사진'이라는 뜻의 영화 제목처럼 <미싱 픽처>는 4년간(1975년~79년) 크메르루즈가 자신과 가족들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를 담은 사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함축적 의미를 갖고 있다.

200만 명 목숨 잃은 '대학살'... 부모·형제 잃은 리티 판

제86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 <미싱 픽처>의 리티 판 감독(중앙)이 오스카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86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 <미싱 픽처>의 리티 판 감독(중앙)이 오스카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관련사진보기


지난 1970년대,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 정권은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2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중엔 기아와 질병 등으로 생을 마감한 이들도, 처형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다.

리티 판 감독 역시 그 희생자 중에 한 명이었다. 감독이 13살이던 1975년 4월 17일, 폴포트 정권에 의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이 함락됐다. 이후 이어진 도시 소개령에 따라 학교와 병원도 문을 닫았다.

그와 가족들은 '농업혁명을 통한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망상을 가진 크메르루즈 집단에 의해 농촌 재교육수용시설로 끌려들어갔고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부모 모두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고, 네 명의 형제자매 중 두 명과 어린 조카들마저도 기아와 질병으로 세상을 떴다.

1979년 폴포트정권이 몰락한 직후, 그는 운좋게 살아 남아 태국국경 난민촌에서 생활하다, 곧바로 프랑스 파리로 날아갔다. 그곳 대학에 다니면서 영화를 전공했다. 그리고 직접 영화도 만들었다. <미싱 픽처>를 비롯한 그의 영화 대부분은 그래서 캄보디아-프랑스 합작영화다.

그는 프랑스에서 생활할 당시 "과거 4년간 이어진 크메르루즈 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캄보디아 말조차 잊고 살려고 노력했었다"고 오래 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술회한 바 있다.

뚜얼 슬렝 수용소의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한 명이었던 화가 '완낫'(2011년 작고)이 그린 유화 그림. 어린아이를 쳐죽이는 데 사용된 그림 속 나무(Killing Tree)가 지금도 프놈펜 외곽 킬링필드(벙쩍 아엑)에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 크메르루즈의 잔혹상을 그린 유화 그림 뚜얼 슬렝 수용소의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한 명이었던 화가 '완낫'(2011년 작고)이 그린 유화 그림. 어린아이를 쳐죽이는 데 사용된 그림 속 나무(Killing Tree)가 지금도 프놈펜 외곽 킬링필드(벙쩍 아엑)에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 박정연

관련사진보기


폴폿이 이끄는 크메르루즈 정권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미명 아래 도시민들을 시골로 내몰아 기아와 질병, 처형 등의 방식으로 200만 명의 무고한 양민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 크메르루즈 정권 시절 희생된 자의 유골 (뚜얼 슬렝 학살박물관 내) 폴폿이 이끄는 크메르루즈 정권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미명 아래 도시민들을 시골로 내몰아 기아와 질병, 처형 등의 방식으로 200만 명의 무고한 양민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 박정연

관련사진보기


아카데미상 후보로 선정된 후 영국 <인디펜던스>와 한 인터뷰에서도 그는 잃어버린 소중한 사진처럼,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아쉬움과 회한을 피력했다.

"(만약 가능하다면) 크메르루즈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부모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사랑하며 돕고, 내가 받은 것을 부모에게 돌려주는 그런 삶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킬링필드'로 불리던 크메르루즈 시절은 평생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영원토록 잊혀지지 않을 악몽일 것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990년, 그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평생 잊고 싶던 나라인 고국 캄보디아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으며,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캄보디아인 영화감독이 되었다.

그가 만든 작품 중엔 일반 영화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작품도 여러 편 있다. 1994년에 만든 <라이스 피플>(Neak Sre, 프랑스 칸영화제 본선진출)를 비롯해 <보파나, 캄보디아 비극의 여인>(1996년), 1만4000여 명이 고문 끝에 목숨을 잃은 악명 높은 수용소인 뚜얼 슬렝의 암호명칭인 'S-21'의 이름을 따 만든 <S-21 : 크메르루즈 킬링머신>(2003년)같은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뚜얼 슬렝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수감자와 감옥을 지키던 간수들간의 실제 인터뷰 내용도 담겨 있다.

이번에 아카데미상에 후보로 오른 그의 작품 <미싱 픽처>는 지난해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 부문(A Certain Regard Prize)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도 '올해의 아시아 감독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다.

후학 양성 위해 프놈펜 시내에 시청각 센터 건립

리티 판 감독이 지난 2006년 자신의 사비를 털어 건립한 보파나 시청각센터는 미래 영화감독을 꿈꾸는 영화학도들을 위한 교육장소로서 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영상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시청각자료도서관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 리티 판 감독이 만든 보파나 시청각센터의 전경 (수도 프놈펜 소재) 리티 판 감독이 지난 2006년 자신의 사비를 털어 건립한 보파나 시청각센터는 미래 영화감독을 꿈꾸는 영화학도들을 위한 교육장소로서 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영상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시청각자료도서관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 박정연

관련사진보기


'보파나' 라는 이름은 크메르루즈정권시절 비운에 죽은 여인의 이름 보파나에서 따왔다. 리티 판 감독은 지난 1996년 이 여성의 참혹했던 삶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 보파나 시청각센터내 자료열람실의 모습 '보파나' 라는 이름은 크메르루즈정권시절 비운에 죽은 여인의 이름 보파나에서 따왔다. 리티 판 감독은 지난 1996년 이 여성의 참혹했던 삶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 박정연

관련사진보기


그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지난 2006년 프놈펜 시내에 '보파나 시청각센터(Bophana Audiovisual Centre)'를 건립했다. 그가 만든 이 영상자료센터는 현재 영화 <시네마천국>에 나오는 주인공 토토처럼 영화 감독을 꿈꾸는 캄보디아 후학도들을 양성하기 위한 공간 및 예술전시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5일 그가 운영 중인 프놈펜 소재 보파나 시청각센터(Bophana Audiovisual Centre) 를 방문했다. 리티 판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LA에 가 있던 시점이라 프랑스출신의 담당직원 스타니슬라스 뚜제(Stanislas Touzet)씨가 대신 마중을 나와 안내를 해주었다. 벽면에는 그에 관한 소식을 알리는 글들이 안내게시판에 게재되어 있었고, 1층은 월 단위로 다양한 주제를 가진 사진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올라간 2층에는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영상물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개인용 PC모니터를 통해 노로돔 시하누크 전 국왕의 1960년대 영화를 보는 현지인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아날로그 필름과 골동품 수준의 영사기도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내를 맡아준 담당자는 "이곳에선 매주 주말마다 작품성 높은 영화들도 무료상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리티 판 감독과 직접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문화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캄보디아에 이런 영상자료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 만으로도 나름 큰 수확이었다.

아카데미상 수상이 끝난 직후 리티 판 감독은 <캄보디아 데일리>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우리는 역사적인 순간에 매우 근접해 있었다. 조금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언제가 이런 상을 수상할 날이 올 것이고, 오늘 캄보디아는 (모두에게) 인정받았다. 우리는 충분히 잠재력을 갖고 있다."

현재 이 영화는 6일(현지시각)부터  영어자막이 달린 크메르어 버전으로 현지 시내 영화관에서도 상영에 들어갔다.


태그:#캄보디아, #박정연, #리티 빤, #RITY PANH, #보파나 시청각센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