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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간만에 콧바람 좀 쐬자는 아내의 말에,

"거제도 한 번 가볼까?"

아차 싶었다. 그 한마디에 하루종일 운전대를 잡을 줄이야. 그래도 내심 좋아하며 애들하고 짐을 챙기는 아내를 보니 '내가 그동안 바깥 바람을 너무 쐬어주지 못했구나' 하는 미안한 생각에 마음을 다시 고쳐 먹었다. 해서 나름 거제도에 대한 지도도 보고 가볼만 한 곳을 잠깐 조회 해본 후에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거제도 여행기
울산에서 거제까지 2시간…. 이는 물론 막히지 않을 경우 걸리는 시간이다. 귀향길의 지체는 예상을 했지만 거제도까지 가는 시간보다 1시간 이상 걸릴 줄은 몰랐다. 그래도 낯선 남해에서의 몇 시간은 남도의 정취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시간이어서 나름 의미가 있었다.

서해의 갯벌위주…. 그리고 너른 백사장과도 다르고, 동해의 자로 잰 듯한 해안선과 해송, 짧은 모래사장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한려수도 해상공원이 넓게 퍼져 있는 남해는 거제도와 남해시을 양 기점으로 중간에 매물도, 병매도, 외도, 해금강 등 많은 볼거리가 있으며 그들과 함께 풍광을 선사하는 햇살이 유명하다. 넓게 퍼져 있는 양식장도 그럭저럭 주위 경치와 제법 잘 어울린다.

거제도 지도 관광지로서 거제도를 홍보하는 지도! 정말 가 볼 곳이 많다.
▲ 거제도 지도 관광지로서 거제도를 홍보하는 지도! 정말 가 볼 곳이 많다.
ⓒ 거제도 홍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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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에 이렇게 많은 관광지가 있는 줄은 몰랐다. 지도를 보니 해안가 곳곳이 관광지이며 작은 섬들이 널려 있다. 개인 섬도 있고 시에서 관리하는 섬이 있지만, 섬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거제도에는 민족 전쟁의 비극인 포로수용소 유적도 있는데, 이는 단지 남북한 간의 문제가 아니라 유엔 참전국들에게도 많은 상처와 아픔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아름다움과 아픔이 공존하는 섬. 거제도. 작지도 크지도 않은 섬이지만 거제도의 상세한 것까지 배워가려면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듯하다.

이번에 가본 곳은, 시간상 몽돌 해변과, 해금강 주변, 신선대, 그리고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지 등 네 군데이다. 울산에서 좀 일찍 출발하면 하루 거리로도 충분히 구경거리가 되기에 많은 곳을 둘러 본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거제도의 역사와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몽돌해변

왜 몽돌인가 했더니 바닷가로 나서자마자 금방 알겠더라. 백사장도 아니고 갯벌도 아니고 몽글몽글한 자갈이 수없이 펼쳐져 있다.

서해안의 넓은 백사장이나 갯벌만 보아왔던 나는 몽돌해변을 보고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수만 년의 시간을 갖고 물이 바위를 깎아 자갈을 만들었을 것이다. 아직 몽돌해변을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추천한다. 여느 해변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아름다운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 시원하게 뻗은 백사장을 바라보는 느낌도 좋지만, 회색과 검정색의 각종 자갈을 보면서 맨발로 걷는 기분은 묘할 것이다. 서해안의 푹푹 빠져버리는 모래사장은 재미도 있고, 숨어있는 게들이 움직이는 갯벌도 것도 좋은 구경거리다.

그런데 몽돌의 자갈해변은 발바닥을 간질인다. 햇볕이 따뜻하면 발바닥 지압은 물론 뜨거운 기운이 발바닥을 통해서 온몸으로 전해오니 재밋거리도 되겠지만 건강에도 꽤 좋지 앉을까 생각한다.

몽돌해변 자갈이 너무 예쁘다. 맨발로 밟으면 어떤 느낌일까? 계절마다 각기 다른 기쁨을 선사할 것 같다.
▲ 몽돌해변 자갈이 너무 예쁘다. 맨발로 밟으면 어떤 느낌일까? 계절마다 각기 다른 기쁨을 선사할 것 같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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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자갈을 주워 바닷가로 던지는 걸 흐뭇하게 쳐다보다가 살짝 놀랐다. 파도소리가 좀 특이해서다. 자갈이 깔려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적은 파도가 밀려 올 때랑 많은 파도가 밀려 올 때의 소리는 당연히 다르다. 살짝 살짝 흐르는 올라오는 소리가 작은 파도라면, 쏴! 하며 파도가 뒤집히면서 철썩 철썩 소리가 나는 건 많은 물이 밀려 올 때이다. 그런데 파도의 양에 따라 물이 내려가는 소리도 다름을 이번에 처음 보았다.

몽돌해변 눈이 부시다. 몽돌해변에 비치는 햇살은 너무도 따스했다.
▲ 몽돌해변 눈이 부시다. 몽돌해변에 비치는 햇살은 너무도 따스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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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도가 내려갈 때면 자갈 위로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난다. 그렇지만 큰 파도가 올라왔다 내려갈 때면 물이 자갈을 긁어내리는 소리가 난다. 그런데 그 소리가 너무 맑고 투명하다. 수백 개의 유리구슬을 순식간에 긁어내리는 소리가 이렇게 청아할 줄이야. 내가 들었던 소리 중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아름다운 소리였다. 몽돌 해변이 고마웠다.

작은 파도 몰려 올 때랑
큰 파도 올라 올 때랑
소리가 다르듯,

작은 물 내려 갈 때랑
큰 물 내려 갈 때랑
소리가 다르다네

작은 물 내려갈 땐,
자갈 위로
물 흐르는 소리

큰 물 쓸려 내려갈 땐
물이 자갈을
긁어내는 소리

맑고 투명한 소리
깨알같은 유리알 소리

마치,
유리구슬 수백 개
굴러가는 소리 같아

즉흥적으로 철없는 시구가 떠올랐다. 돌아오며 내내 이 구절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만큼 처음 듣는 파도소리가 신선하게 다가 왔음이다.

겨울이지만 바다 구경 나온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고 낚시꾼을 따라온 가족들이 보인다. 낚싯대 드리우고 주구장창 앉아있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이지만, 이럴 땐 따스한 겨울햇살 아래 은인자중(隱忍自重)하던 강태공 흉내 한 번 내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는 시장바닥이나, 거친 땀을 흘려가며 일하는 막노동 공사판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는 것이 세상사는 모습을 보는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겨울 바다 한적한 바위틈에서 낚시꾼들을 보는 것은 치열한 일상을 벗어나 여유와 멋을 아는 사람들을 배워가는 길이기도 하겠지.

해금강

해금강 부두에서 바라본 해금강 전경
▲ 해금강 부두에서 바라본 해금강 전경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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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원래 해금강은 북한의 강원도 금강산에 있는 지명이지만, 그 자태와 정취가 이곳 거제와 비슷하다 하여 거제에 있는 갈도 근방의 섬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몽돌 해변에서 해금강으로 가는 길은 왼쪽으로 전부 바다가 보이게 도로가 나 있다. 과거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을 때 서귀포 근방의 도로가 이랬는데, 마치 제주도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기분이었다.

바위와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을 따라 소나무와 기타 활엽수가 줄지어 서 있고, 해안가에는 섬이라 불러야 할지 바위라 불러야 할지 모를 조그만 바위 조각들이 바다 가운데 자리 잡고 서 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남도의 해변이었다.

해금강 해금강에서 아들들과 한 컷!
▲ 해금강 해금강에서 아들들과 한 컷!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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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지만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바람 또한 차지 않아 가벼운 점퍼 두르고 감상하기엔 딱 좋은 날이었다. 성수기가 되면 차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텐데 차라리 좀 싸늘하더라도 여유 있는 계절에 찾는 것이 더 낭만적인 것 같다.

산도로가 마치 과거 대관령을 넘는 영동고속도로처럼 구불구불하고 도로가 넓지 않아 잠깐 한 눈을 팔면 위험한 순간이 되곤 하니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왼쪽 바닷가를 끼고 달리는 기분은 꽤 즐길 만하다. 바이킹 선을 타고 폭풍의 파도를 즐기던 바이킹족들에 비유한다면 너무 비약적인가?

바닷가 도로 쪽으로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아무 곳이나 서서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게 바로 해금강이기 때문이다.

신선대 언덕 위에서 바라본 바다

신선대 앞바다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대매물도, 송도, 병매도, 외도는 어디있을까?
▲ 신선대 앞바다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대매물도, 송도, 병매도, 외도는 어디있을까?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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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섬이 대매물도, 송도, 병매도….

바다에 몸을 담근 자그만 바위섬들은 무슨 아쉬움이 있어 육지를 버리고 바다를 택했는지 자못 궁금하다. 사람들이 발길이 싫어서 일까? 파도와 물고기와 바윗덩이가 하나 됨을 더 원했던 것일까?

아님, 원래 바닷고기였는데 육지가 그리워 땅으로 기어 나오다 수명을 다해 바위가 된 것일까?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자연이 존재하는 이유를 내 맘대로 간직하고 싶어 바로 자리를 떴다.

거제도의 신선대 산중턱에서 바라본 신선대. 바위틈에 자란 소나무가 한층 신비로움을 더 한다.
▲ 거제도의 신선대 산중턱에서 바라본 신선대. 바위틈에 자란 소나무가 한층 신비로움을 더 한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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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의 아랫부분이 바로 신선대이다. 맑은 날이면 신선들이 자리를 잡고 천상의 차를 마시며 바둑을 두고 바다를 읊어댔을 만한 곳.

저녁 어스름, 남해 어느 섬에 산다는 관세음보살의 방문을 기다리며 소나무 아래 바람을 맞고 있었을 수도 있다.

자연의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것이 가지는 외형이 사람살이의 대상들과 유사하여 대체물을 찾는 것인데, 인간의 작명 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자연에 이름을 붙여 숭배의 대상을 찾고 그것에 기대며, 인생의 고통과 기쁨을 자연 대상으로 치환시켜 버리는 것은 우리의 나약함의 반증이다.

신선대에 앉아 천상의 존재가 되어 보고 싶어 그랬을까? 신선대에 제사음식을 바치며 고단한 우리의 삶이 나아지길 바라야  했을까?

아마도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했던 주민들이 바다와 육지가 맞닿아 있던 신묘한 바위에 길흉을 주관하는 힘이 있다 믿어, 거친 바다를 잠재우고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가 하면, 그들 자손의 번영을 위해 이곳을 이용했을 것이다.

뭍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바닷가와 섬에 사는 사람들은 늘 바다로부터의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생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바다에서 얻는 대신에, 그들이 바다로부터 치러야 할 대가는 폭풍과 해일, 태풍으로 인한 목숨 바로 그것이다.

바다는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곳이고 생명을 거두어 가는 곳이다. 그래서 바다의 아침은 아름답고, 낮 동안엔 한가히 보이며, 저녁의 석양은 거룩하다. 허나 항시 바다는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경외의 대상이다.

그러한 연유로 해안가의 무속신앙과 자연숭배의식은 내륙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주민들의 통일성과 집단성을 강조할 뿐더러 공동체 위주의 공유신앙으로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극단적 형태로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그렇게 단합·협력하지 않으면 바다로부터 얻는 유익보다 잃어버릴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선대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며 바로 아래가 신선대임을 알았다.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지

몽돌해변에서 바닷고기 회와 성게알 비빔밥을 먹고 향한 곳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지였다. 몽돌해변이나 해금강, 신선대를 찾던 마음은 이내 잦아들고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에 내 몸은 무의식적으로 위축되었다.

여행이란 게 아름답고 귀한 것, 보기 좋은 것만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기에 이곳을 들러보기로 했다.

거제 포로수용소 전경 흥남철수작전 노래비.  가수 '현인'의 노래로 유명한 '굳세어라 금순아'
▲ 거제 포로수용소 전경 흥남철수작전 노래비. 가수 '현인'의 노래로 유명한 '굳세어라 금순아'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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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만 보던 거제 포로수용소. 6·25 전쟁 발발 이후 포로들을 수용하던 곳이다. 이들은 제네바 협약에 의거하여 전쟁포로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한다.

식사시간 외에 음악과, 그림 그리기, 운동 등을 할 수 있었고, 재봉기술이나 목수 등의 일을 배우는 사회 교화 작업도 실시했다.

이렇게 자유시간이 주어지고 수용소 안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다보니 자연스레 생각과 사상이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리게 되고 나중엔 폭동까지 일으키게 된다. 포로들 간에 이데올로기 싸움은 반공(反共)과 친공(親共)으로 분리되어 수용소 안에서 엄청난 사상자를 낸다. 뿐만 아니라 자체 무기를 만들어 철조망을 탈출해 수용소 운영간부인 미국인 준장까지 납치하는 등 그 세력이 한층 커져 나중엔 무력 진압까지 해야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포로들의 규모는 수용소의 크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십수 만에 달한다. 여성 포로도 수천 명에 이른다.

그들이 포로가 된 원인은 생포된 인민군들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상당히 많다 한다. 수용소로 오게 된 과정이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1950년 북한군의 낙동강전선 구축 후에 맥아더장군을 위시한 유엔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허리를 차단당하자 도주하는 많은 인민군들이 포로로 생포되었다.

그뿐인가. 상륙작전 당시 유엔군의 상륙을 저지하던 상당한 수의 인민군들이 포로로 잡혔고, 1950년 9월 서울을 수복하고 곧바로 압록강까지 진출했던 유엔군들을 무력화시켰던 중공군 포로들도 2만여 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서해바다를 이용해 배로 운반되었고 나머지는 육지에서 차량을 통해 거제 앞바다까지 온 후 배를 타고 이동시켰다.

앞서 말한 것처럼 포로수용소에는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에 남북의 치열한 교전 속에 숨죽여 있던 민간인들이 엉뚱하게 북한군으로 오인되어 생포되었고, 낙오된 국군들, 또한 강제로 북한군의 부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도 변절자라는 오명을 쓰고 포로수용소로 오게 된다. 한마디로 포로로 분류되기까지 적군과 아군의 구분이 명확치 않았고, 확인불가 인사들은 모두 전쟁포로로 생포하는 등 그 과정이 불투명했고 적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수용소 내에서 반공과 친공이라는 포로들의 세력다툼이 생겨난 것도 이 원인이 한 몫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1953년 정전 협정에 의해서 민간인들로 석방되는데 끝까지 친공의 이데올로기를 굽히지 않았던 사람들은 북한과 중공으로 송환된다. 북한군이었지만 남한에 남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석방되는 즉시 남한에 민간인으로서 살아가게 되었다.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피난민들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지에서 본 대동강철교를 건너는 피난민들
▲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피난민들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지에서 본 대동강철교를 건너는 피난민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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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게 해준 곳이었다. 대동강 철교를 넘던 북한 사람들. 한강 철교를 넘어 남으로 남으로 향하던 주민들….

모두가 전쟁의 피해자였으며, 총포와 이데올로기 안에서 떨던 사람들이다. 대동강과 한강을 건너 삶을 찾아 떠나왔듯 오늘날 우리들도 인생의 강이라는 커다란 줄기를 따라 흘러가며 이 강 너머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다.

전쟁은 삶을 망가뜨리는 악마이다. 삶 또한 전쟁과 다르지 않다. 극과 극은 같은 방향성을 지니듯 전쟁과 생명은 같은 목표를 담보로 한다. 더 이상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대동강 철교를 건너던 사람들의 초췌한 모습이 가뜩이나 추운 겨울바람에 살을 에이게 한다. 끊어진 철교를 건너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함께 떠나지 못한 가족을? 오늘 내일 먹을 끼니 걱정을?

돌아오는 길

거제도는 아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치열한 이데올로기의 싸움이 극에 달했던 곳이고 자유에의 갈망을 외쳤던 곳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거제도의 아름다운 경관은 이 아픔의 흔적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이와 같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자연은 아름답기만 하다.

영화 <지중해>에서 그려준 전쟁과 사랑, 평화가 그랬고, <야곱의 사다리>나 <하얀 전쟁>에서 보여주는 메시지가 그러하다.

아직도 세계는 전쟁 중이다. 아름답고 고색창연한 과거의 유물들이 파괴되고 있고 10대의 어린이들이 AK 소총을 들고 다닌다. 이데올로기와 종교 전쟁은 끝이 없다. 인류역사 이래 침략행위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이 없었던 해가 과연 몇 년이나 될까?

거제의 신선대에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고 싶어 했던 어부들의 심정을 안다면, 해금강에서목선을 저어가며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에게 생명을 선사해 주었던 진리를 깨닫는다면 전쟁은 사라질까?

어느 계절을 따지지 않고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거제도는 자연이 내려준 천혜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잠시나마 휴식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그만큼 남도의 해안은 아름답다.

그러나 거제의 해안을 돌며 포로수용소로 들어가는 순간, 새삼 이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을 허락한 신에게 감사드린다.

자갈 해변에서 큰 파도가 올라오며 내려갈 때 물이 자갈을 긁어내듯 내 가슴의 상처를 긁어내는 소리가 아름다운 총성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향하는 내 머리 속엔 갖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오늘, 거제도를 통해 또 하나를 배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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