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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초가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이야기를 지인에게서 듣고, 책과 언론에서 읽고, 이제는 영화관에서도 보았을 뿐이다. 이미 세간에 많이 알려진 그녀의 사연이라, '삼성' '백혈병' 이렇게 두 단어를 적어본다. 이제 이 글을 읽는 분도 아시리라 믿는다.

그녀의 이름은 황유미다. 속초에서 나고 자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7년이다. 살아있었다면, 아프지 않았다면 올해 서른이 되었을 그녀의 삶이 어땠을지 잠시 상상해본다. 그러나 오늘, 3월 6일은 그녀의 일곱 번째 기일이다. 매년 이날엔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이 함께 추모제를 열어왔다. 그녀 그리고 차마 그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전자산업에서 종사하다 사망한 노동자들을 기린다. 그런데 올해는 좀 색다르다. 추모주간 행사가 지난 월요일부터 열렸다.

기흥, 안양, 영등포, 서울시청, 명동... 방진복 입고 행진

시작은 경기도 기흥이었다. 3월 3일 이른 아침, 그녀가 일하던 공장인 삼성전자 기흥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말했다.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는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달라고, 더 이상 아프지 말자고.

고 황유미 7주기 및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주간을 알리는 기자회견 뒤 수원역으로 향하는 방진복을 입은 활동가들
▲ 황유미를 잊지 말아요 고 황유미 7주기 및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주간을 알리는 기자회견 뒤 수원역으로 향하는 방진복을 입은 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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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어르신이, 추모주간 첫째날 저녁, 수원역에서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 "황상기와 함께하는 봄날 콘서트"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어르신이, 추모주간 첫째날 저녁, 수원역에서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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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원 시내까지 행진한 활동가들은 수원역에서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넨 사람은 유미씨의 아버지. 담담하게 "우리 유미의 죽음은 산업재해"라고 세상에 외쳐온 그는 지난 7년간 딸의 이야기를 세상에 어떻게 알려왔는지, 삼성과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영화 <또하나의 약속>이 만들어지고 개봉된 소감이 어떠한지를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유쾌하게 말했다.

4일과 5일에 걸쳐 안양, 영등포, 서울시청, 명동에서 그 행진은 계속 되었다. 방진복을 입은 반올림 사람들이 지하철과 거리, 때로는 광장에 서서 선전전과 플래쉬몹을 했다. 삼성전자 서비스노동자들이 함께 힘을 보태며 추모 행사가 진행되었다. 관심을 갖고, 말을 걸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명동 한복판의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 명동일대 플래쉬몹 명동 한복판의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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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주간 삼일 째, 광화문 광장에서 방진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광화문 광장 방진복 플래쉬몹 추모주간 삼일 째, 광화문 광장에서 방진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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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제보현황을 보자. 2014년 현재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에 제보된 현황에 따르면 삼성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직업병 피해자만 190여 명에 이르고, 그 중 사망한 노동자가 70여 명에 이른다. 백혈병과 희귀병을 앓는 피해자가 대다수이고, 제보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을 넘어 LCD, 각종 전자제품 생산공정에 있는 노동자들을 포괄한다.

지금도 반올림 카페에는 제보자의 글이 올라오고, 어느 누군가는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락을 해볼까, 말까.' 연락 해도 된다. 응원의 글도 좋고, 관심 표현도 좋다.

그녀가 떠난 지 7년, 아직 넘을 산이 많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반도체가 만들어진다는 클린룸은 마냥 깨끗한 곳으로만 알았는데 그곳에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누구도 믿지 않던 그때부터, 법원에서 직업병임을 인정한 상황만 보더라도 직업병 피해자를 대하는 세상의 태도는 변했다.

그러나 순탄치 않았고 저절로 변하지도 않았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 피해자에게 직업병임을 증명해보라며 외면하던 근로복지공단과 법원, 결코 직업병임을 시인하지 않던 삼성이 있었다. 그 두터운 벽과 끊임없이 싸워야했던 피해자와 가족, 활동가들이 있었다.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가와 르포 작가, 언론, 영화 <또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있었고, 법적 싸움을 물심양면 지원한 사람들, 헌혈증을 보내주던 사람들, 간식을 보내주던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고 지지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7년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러나 아직 넘을 산이 많다. 아직도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은 직업병이 아니라며 다시 상급 법원에 항소를 했고, 많은 피해자들의 사건이 근로복지공단, 법원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반올림은 삼성과 협상을 진행중이다.

지난해 12월, 피해자 가족들을 포함한 반올림은 기흥공장에서 삼성전자와 '직업병 피해에 대한 대책마련'을 위한 첫 교섭을 벌였다. 6년의 기나긴 싸움의 결과였다. 그러나 삼성은 첫 교섭 자리에서 '반올림'은 교섭 당사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파행으로 몰고갔다. 피해자와 함께 오랜 시간 싸워온, 피해자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대책 마련에 늘 고심하는 반올림이 당사자가 아니면 어쩌자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이 문제에 대해 협상단의 대표를 맡고 있는 고 황유미님의 아버지 황상기 어르신의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저는 이런 삼성의 태도가 반올림과 피해자를 분리시켜 합의금 몇 푼 집어주고 노동자의 노동3권, 각종 화학약품에 대한 관리부실, 전리방사선 노출 문제, 환경문제 등을 피해가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는 안됩니다. 삼성은 이제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책임 있는 자가 나와서 직업병 피해에 대한 공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위해 반올림과의 교섭에 성실히 임하길 바랍니다." (협상 촉구 아고라 서명)

삼성전자의 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널리 알린 그녀를 기억하는 오늘. 부디 전국에서 아파 쓰러지는 노동자가 없길 바란다.

고 황유미씨 추모문화제는 3월 6일 저녁 7시, 강남역 8번 출구에서 열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혜영 기자는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입니다.



태그:#노동건강연대, #삼성 반도체, #황유미, #강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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