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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로 한다.'

이 한 줄만 달랑 컴퓨터 하얀 화면에 써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새벽녘에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도저히 짧게 쓸 수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다시금 짧게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시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가능할까?

조향미의 <시인의 교실>의 첫 장을 넘긴 것은 일주일 전쯤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야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그 사이 나는 지리산을 포함해서 두 번 산행을 했고, 기차를 타고 여수 바다와 동백을 보고 왔다. 물론 책은 늘 배낭 속에 있었다. 한 번은 배낭에 책을 넣은 줄 알았다가 나중에 없는 걸 확인하고 황급히 시내버스에서 내려 다시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개학을 며칠 앞둔 나를 위한, 나를 배려한 행복한 여행이었다. 개학하면 나보다는 아이들이 우선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짧게 쓰기로 했는데...

지난 토요일 여수 오동도로 가는 길에 바다를 바라보며 <시인의 교실>릉 읽었다.
▲ 조향미의 <시인의 교실> 지난 토요일 여수 오동도로 가는 길에 바다를 바라보며 <시인의 교실>릉 읽었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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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부와 2부를 읽을 때만 해도 나는 이 책의 서평을 내가 쓰겠노라고 지인들에게 호기 있게 말을 하고 다녔다. 심지어는 저자에게까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객관적 관찰자인 독자로서의 책 읽기가 가능했다. 나는 여수 오동도에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저자 조향미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샘의 <시인의 교실> 읽으면서 여수 오동도로 가고 있어요. 책이 이렇게도 좋아도 되는지 파도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육사의 <광야> 한 꼭지만으로도 책값이 아깝지 않겠다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눈물이 날만큼 좋았어요. 아이들과의 발랄한 수업이야기와 샘의 깊고 다정하고 아름다운 산문과 샘이 소개한 빼어난 인용시들이 조화를 이루는 매혹적인 책이에요."    

하지만 3부와 4부를 읽으면서 나는 몸과 마음 두루 화학적 변화를 겪는다. 나는 말수가 적어졌고, 서평을 쓰겠다고 떠들고 다닌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지극한 '우주적 모성'에 나의 남루하기 짝이 없는 영혼을 데인 듯했다. 몸과 마음이 으슬으슬 추웠다. 어렵사리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써야하는 곤궁한 처지에서 벗어나 한 번 더 행복한 독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 짧게 쓰려고 한 이유다.               

이 책의 1부와 2부에 등장하는 <시인의 교실>의 아이들은 발랄하고 풋풋하다. 입시교육에 지친 어린 영혼들을 바라보는 문학 교사 조향미의 눈길에도 고통보다는 기쁨이 어려 있다. 육사의 <광야>와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단편 <몌별> 등을 가르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자의 모습에 가슴이 멍했지만, 그 뒷맛은 언제나 싱싱하고 향긋한 봄나물을 씹는 것 같았다. 남학생들에게는 절대로 <몌별>을 가르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동료 교사의 당부도 무시한 채 수업을 강행한 뒤에 쓴 수업후기에도 그런 밝고 긍정적인 기운이 감돈다.
     
"문학교사는 작가와 독자를 이어주는 매개자다. 좋은 작품을 써준 작가가 고맙고 잘 읽어준 독자도 고맙다. 그런 감사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그런데 왜 저자의 동료 교사들은 남학생들에게 <몌별>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을까? 그것은 저자가 상처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으리라. 아마도 조향미에게 그 상처의 진원지는 '가르침의 불가능'이었을 터다. 하지만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지 않은 교실에 대한 아픈 성찰을 뒤로 한 채 문학 교사 조향미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다. 어떻게? 그리고 그 결과는?

"수업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좀 어려운 작품이다. 그러나 너무도 아름답고 멋진 작품이라 여학생들에게는 아주 반응이 좋았다. 남학생들은 안 될 거라고들 하는데, 나는 너희 문학적 감수성이 여학생 못지않음을 증명하고 싶다. 앞으로 몇 시간은 집중해야한다. (…) 은근히 경쟁심을 자극한 발언에 걸려든 것인지, 학생들은 보통 때보다 뛰어난 집중력을 보여 준다. 대여섯 시간의 수업을 마친 뒤 받아 본 남학생들의 글, 나는 앞으로 남학생들을 적극 옹호하기로 했다. 여학생 같은 감성은 물론, 여학생들이 보지 못했던 부분을 깊이 읽어내는 아이들도 제법 있었다. 어떤 분야에서든 성차별은 금물이다."

물론 늘 이런 기분 좋은 결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어느 날은 영화 <레 미제라블>을 보고 난 뒤 수업을 하다가 아이들과 교사 조향미 사이에 뜻밖의 논쟁이 벌어진다. 장발장이 자기를 추적하는 자베르 경감에게 "장발장 진범이 잡혔다"는 말을 듣고 격심한 갈등을 하다가 결국은 스스로 법정에 나가 자수하는 대목에서다. 한 아이가 그 장면을 보고 좀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고 말을 한다. 저자는 아이의 반응이 뜻밖이어서 다른 아이들에게도 묻는다. "이런 경우에 너희들은 진실을 밝히지 않겠니?" 그러자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대답한다.

"다시 감옥에 갇힐 수도 있는데 뭣하러 스스로 밝혀요?"  

고백하자면, 이 대목에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꼴이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저자는 아이의 반응이 뜻밖이었다고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 웃음은 아이들 쪽보다는 저자를 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설을 읽어보면 장발장 스스로도 자신이 자수할 것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이거 미친 짓 아냐?"라는 식으로 자신을 힐난하는 장면도 나온다.

아이들과 울고 웃는 문학공부

조향미의 <시인의 교실>(교육공동체 벗) 표지
 조향미의 <시인의 교실>(교육공동체 벗) 표지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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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몇 줄을 더 읽어가다가 이내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이들과의 대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이 내게도 자못 심각한 사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악법이 문제라면 그 법을 따르지 않고 도망도 치고 싸움도 해야 하지만, 무고한 사람이 자기 때문에 누명을 쓰고 있다면 그건 밝혀야하지 않니?"
"진실을 밝히는 것은 이상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할 사람이 없을 걸요. 선생님이라면 그러실 수 있겠어요? 만약에 사형을 당한다면요?"

"흠, 그럼 내가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죄 없는 사람이 나 때문에 사형을 당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이런 상황이야. 내가 죽을 것인가. 다른 사람을 죽일 것인가?"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할 수 없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어쨌든 자기가 살자고 하는 일이잖아요."

결국, 문학수업을 통해 장발장의 숭고한 정신을 가르치고자 했던 조향미는 대다수 아이들에게 동의는커녕 세상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로 매도되기에 이른다. 저자는 그날의 심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래, 이렇게 말을 하는 나도 막상 그런 상황이 되면 나 살자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선택을 할지 모른다. 그런데, 적어도 이렇게 숭고한 정신이 드러난 작품을 볼 때 우리는 감동받으며 그것을 본받으려는 마음이 일어나기는 해야할 것이다. 나약하고 이기적인 나를 반성하고 나도 이렇게 고귀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종교며 학문이며 예술은 다 뭐란 말인가."

내가 처음 이 책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이런 현실의 묵직함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의 발랄한 수업이 가능했던 지점에서였다. 그렇다고 그런 찬란한 순간마저도 현실이 녹록했던 건 아니다. 가령, 저자와 아이들이 육사의 <광야>를 공부하는 장면은 지금도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지금 눈이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바로 이 대목에서 한 아이가 이렇게 외친다. 

"저는 안 뿌릴 거예요."

이 말 한마디 때문에 열 개 반의 <광야> 마무리 수업을 새로 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 뒤에도 <광야>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수업이 된 것도 이 대답 때문이었다. 그날 그 아이와의 대화가 이렇게 이어진 뒤의 일이다.

"씨앗을 안 뿌리겠다는 말은 용기가 없어서 못 뿌리는 것이 아니라 뿌릴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말이네?"
"내가 열매를 따 먹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뿌려요?"
"흠... 그래? 그럼 네가 지금 따 먹고 있는 열매들은 다 네가 뿌린 씨앗이니?"

아이는 순간 멈칫한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가르치는 시인의 교실의 풍경은 아름답다. 물론 이때의 아름다움은 문학교사 조향미가 창조해낸 것이다. 열악한 텃밭에서 장미꽃을 피워내듯이 말이다. 아이들과 주고받는 대화도 무척 살갑다. 이때의 살가움도 시인이자 교사인 조향미의 작품이지만 그 원형은 아이들로부터 나온 것임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국 '공부=성적=입시'라는 등식만이 존재하는 오늘날의 학교에서 문학 수업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삶은 원형을 잃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교사 조향미의 믿음이었던 것이다.

'어린왕자와 희망버스'라는 제목을 단 저자의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퍽 신선하게 읽힌다. 이 꼭지 글은 어느해 모 대학교 정시 논술문제를 학생들과 함께 풀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논제 파악부터 쉽지가 않을 것 같은 난해한 문제를 저자는 비교적 손쉽게 풀어나간다. 논술은 결국 삶에서 나온다. 삶(시대)에 대한 해석이 탁월해야 좋은 글도 써진다. 바로 그런 이유로, 많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교실의 아이들은 차츰 시인을 닮아가면서 자기 성장의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 슬프다. 무엇보다도 가르친다는 일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 때가 많다고 고백한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학교는 사회(시대)의 반영인 것을. 학교에서 소사(小事)를 하고 계시는 소사(지금은 주사나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가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교사나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자기 일을 사랑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심마저 든다. 유럽 등 다른 몇 선진국들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에게는 한낱 유토피아에 불과한 그런 세상이 이미 와 있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는 것일까?

저자는 그런 삶(시대)에 대한 생각을 엄살도 과장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얀 종이에 꾹꾹 눌러 쓴 글씨처럼 아프게 드러낸다. 이런 사유나 글쓰기 행위가 저자에게는 일종의 '수용'의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원래 인간의 삶은 고해(苦海)라는데, 나만 안 슬프고 안 아프며 살 수 있나"라는 고백이 말의 허영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나는 이 책의 독자가 문학교사로만 한정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서두에도 잠깐 언급했듯이, 교사이자 시인인 저자가 지극한 '우주적 모성'으로 쓴 산문들을 읽다보면 피가 맑아지면서 없었던 영혼이 생겨나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아, 나도 여생이나마 진실한 삶을 궁구하며 살고 싶어진다.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몸을 뒤척인 이유다.       

여수 바닷가에서 <시인의 교실>을 읽다.
▲ 조향미의 <시인의 교실> 여수 바닷가에서 <시인의 교실>을 읽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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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자는 부산 광안리 바닷가 근처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 바다와 한 번 제대로 사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퇴근길이 불쑥 들었는데 돈이 없어서 매매는 엄두도 못 냈고 애초부터 집을 살 생각도 없었단다. 제4부 <고향으로 가는 길>에 나오는 시인 조향미의 아름다운 산문 몇 줄을 소개하면서 책의 가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글을 마칠까 한다.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바다는 늘 시원(始原)을 생각나게 한다. 어쩌면 이렇게 넘실거리는 물을 담고 있는 거대한 별이 있다니! 우주인이 지구에 온다면 저 거대한 물 그릇, 바다를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 이제 바닷가에 집을 얻어 살면서 비나 바다를 맘껏 즐긴다. 오랜 소망을 이루었다. 허공의 빗줄기가 어떻게 바다에 휘날려 떨어지는지, 무량한 물의 바다가 작은 빗방울을 어떻게 담쏙담쏙 받아먹는지 원 없이 바라본다. 비바람 속에서 넘실대는 파도에 생의 근심도 씻어 보낸다. 하늘도 바다도 아득한 이 밤, 어느 시원으로부터 나온 것일까? 토닥토닥 빗소리가 사무치게 정겹다."

덧붙이는 글 | 시인의 교실/조향미/교육공동체 벗/11,000원



시인의 교실

조향미 지음, 교육공동체벗(2014)


태그:#조향미, #시인의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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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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