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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든에 관한 책을 쓸 때 내게 일어난 일"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2월 중순 작가 루크 하딩(Luke Harding)이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그의 체험담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미 정부의 사찰 정보를 공개하고 피신한 스노든에 관한 책을 쓰면서 그의 주변에서는 여러가지 기괴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 중 브라질 호텔서 만난 짧은 머리를 한 키 큰 백인 남자 얘기가 있습니다. 거의 많은 시간을 호텔 헬스클럽에서 보내는 것 같은 그 남자는 처음 만난 작가에게 함께 시내를 구경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새 운동복과 새 운동화로 깔맞춤한 이 남자, 우연인 듯 행동하지만 작가는 그가 앞서 자신과 수도 없이 맞닥뜨렸던 정보 요원 중 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쨌거나 둘은 같이 관광을 하며 하루를 보냈고 남자의 저녁 제안까진 정중히 거절하고 돌아와선 작가는 아내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CIA가 날 감시하라고 누구를 보냈는데, 러시아 스파이처럼 촌스러워."

아내가 답합니다. "정말? 헐" 작가는 아내에게 다시 문자를 보냅니다. "도대체 얘네들은 어디서 스파이 기술을 배웠을까?" 그런데 아내의 답문이 도착하기 전, 자신의 아이폰 화면이 번쩍거렸고 키보드는 말을 듣지 않았다고요. 작가는 담담히 생각합니다. 자신의 문자가 누군가의 화를 돋운 것 같다고.

삼성 부장님의 글, 러시아 스파이처럼 참 촌스럽네

삼성그룹은 15일 신입사원 채용제도를 전면 개편해 전국 200개 4년제 대학의 총·학장에게 인재 추천권을 부여하고 연중 수시로 지원자를 발굴하기로 했다. 또 1995년 열린 채용 체제로 전환하면서 폐지한 서류전형을 19년 만에 다시 도입해 이미 사교육 시장이 형성된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방침이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의 삼성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
 삼성그룹은 15일 신입사원 채용제도를 전면 개편해 전국 200개 4년제 대학의 총·학장에게 인재 추천권을 부여하고 연중 수시로 지원자를 발굴하기로 했다. 또 1995년 열린 채용 체제로 전환하면서 폐지한 서류전형을 19년 만에 다시 도입해 이미 사교육 시장이 형성된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방침이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의 삼성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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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글 하나를 접했습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해 삼성전자 홍보팀에서 일하는 부장님이 삼성전자 블로그에 올린 글이었죠.

영화를 보고 온 딸의 질문으로 시작한 이 글은 영화로 촉발된 삼성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 대해 안타까워 합니다. 20년 삼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런 내 직장은 절대 그런 부도덕한 짓을 할 집단이 아니'라고 웅변합니다.

또 영화 속에 절대악으로 묘사된 담당자는 실제론 평범하고 마음 따뜻한 가장일 뿐이고 정부의 환경기준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회사의 안전 관리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 장면들은 인터넷 괴담일 뿐이고 44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80년대 단체관람을 연상케하는 투쟁의 결과로 보십니다.

저 역시 이 부장님의 이 글을 읽고 안타까웠습니다. 따님을 등장시키신 것도 그렇고 화학 전공이 아니라며 사건 전반의 중요 논란을 요령껏 비켜가신 전제도 그랬습니다.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이야기기에 시시비비하지 않고 있는 회사에 대해 말할 때도요. 더불어 영화가 예술로서가 아니라 진실을 왜곡하는데 쓰이고 있다고 하신 부분, 외압설 유포와 관객 동원, 투쟁 수단 같은 말을 보면서 지금 삼성에서 열심히 일하시고 계신 분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작가 루크 하딩의 미국의 정보기관에 대한 묘사처럼 부장님 글 속에 담긴 삼성 기업을 보며 느낀 감정은 '러시아 스파이처럼 참 촌스럽다' 입니다. 힘과 돈과 정보와 권력을 가진 이들이 세련되기까지 하다면 얼마나 더 끔찍할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느낌은 그렇습니다.

아, 삼성분들은 이 영화를 저렇게 느끼시는구나, 주인공 가족과 함께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을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저렇게 대처했던 거구나... 하면서요.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만 간다는 대(大) 삼성에서 사안을 판단하는 능력이 왜 정도일까 하는 의아함도요. 그러면서 저의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던 그 시절, 저도 괴물이었죠

영화 <또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영화 <또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 또하나의 약속 제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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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광고비로만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어느 날 출근하는데, 회사 1층 복도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초조하게 서 있더군요. 동료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건네 들었다며, 회사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청년이 공장 기계에 깔려 죽었다고 했습니다. 보상을 요구하는 가족들이 회사로 몰려온 거라면서요.

전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죽은 청년이 있다는 사실도 그렇고 황망한 자식의 죽음 앞에 회사까지 달려 왔어야 하는 가족들의 입장이 말이죠. 당연히 나의 사랑하는 회사는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적절한 보상을 해주라 믿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농성을 시작한 걸 보면 말이죠.

가족들은 회사 1층 복도에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이 생전 녹음했다던 정태춘의 노래를 반복해서 크게 틀어 놓았습니다. 출퇴근 때나 점심시간에 우리 직원들은 죽은 그 청년의 노래를 귀가 쩡쩡 울리도록 들으며 나 자신이 죄인인양 눈도 못 마주치고 고개를 숙이고 다녔습니다. 가끔은 드시라며 음료수를 놔드리기도 했고요. 우리들과는 다르게 무심한 표정으로 그 앞을 지나치는 회장님, 사장님, 이사님들의 태도에 혀를 내두르면서 말이죠.

그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넘어가니, 저를 비롯한 말단 직원들에게도 그런 상황이 힘들어지더군요. 완강한 회사보다도 끈질긴 가족에게 좀 지친 상태가 된 거였습니다. 그리고는 회사에서 건네주는 이런 저런 이야기 '친부모가 아니다', '얼마를 주기로 했는데 몇 배를 더 요구한다', '죽은 자식 가지고 장사한다 등등'의 얘기에 혹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입장이 달라지니 그들을 보는 시각도 변하더군요. 어쩔 줄 몰랐던 초반과는 다르게 나중에는 그들 앞을 지나며 경멸의 눈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회사에서 들은 온갖 파렴치한 말을 되새기면서 말이죠.

그 청년은 저와 비슷한 또래였습니다. 저처럼 정태춘 노래를 좋아했고 아마도 비슷한 영화와 책을 좋아했을 청년이었을 겁니다. 우리 집과 별반 차이도 없는 가족 성원들이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벌레 보듯하며 회사의 굳건한 조치에 응원까지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때 제가 괴물이 되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회사는 선량한 직원들을 모두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의 약속>속의 오해를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부장님 글을 읽으며 당시의 저를 생각했습니다. 부장님 말씀처럼 영화에서 냉혈한으로 묘사된 그 인사담당자는 평범한 가장에 직장인이었을 겁니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분이셨을 수도 있지요. 저는 부장님도 좋은 아빠에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까지 한 솥 밥 먹던 동료들이 허기와 공포 속에 놓여있을 때 그들을 공격하던 사용자 편의 쌍용 직원들도 뭐가 다르겠습니까. 비정규직 처우개선 대신 자식 고용을 먼저 앞세운 분들도 모두 평범한 가장에 성실한 직장인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저처럼 한 발만 물러서 보면, 이런 모든 것들이 바로 괴물이라 불립니다. 부장님은 아니라고 하시지만요.

글을 읽으며 부장님도 그때 저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한껏 멋을 내고 자랑스럽게 출근하는 회사 입구에서 추레한 모습에 결연히 서 있는 이들 앞을 지나며 마음 편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경멸하면 됩니다. 투쟁이나 하고 자식 목숨 값을 흥정하는 장사꾼으로 몰면 간단합니다. 내 소중한 회사를 해하려는 악의 무리처럼 보면 됩니다. 그 대신, 사실과 진실에 대해선 알고 싶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나 자신을 합리화시켜줄 출처를 알 수 없는 온갖 소문과 뒷담화에만 반응하면 됩니다. 이 모든 것이 괴물만 되면 아주 쉽습니다. 

전 지금도 정태춘의 노래를 들으면 그 청년의 목소리가 오버랩 되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더불어 당시 임원들이 참 원망스럽습니다. 기업의 목표는 오직 오직 이익 창출이란 낡은 모토로 모든 사항을 보셨던 그 계산법이 말입니다. 광고비를 조금만 줄여서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시설 점검을 통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했으면 좋으련만, 그건 이윤창출과는 거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6년여의 근무 기간 중 그런 사례를 몇 번 더 보았으니 말입니다. 회사는 선량한 직원들을 모두 괴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적자생존이 판치는 한국 사회에서 이는 여전히 횡행하는 참으로 흔한 이윤 창출의 방법입니다.

삼성이 더 이상 직원들을 괴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 또하나의약속제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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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똑똑하고 멋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능력 많은 그녀는 삼성에 스카우트 돼 들어갔지요.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엄마의 간곡한 부탁으로 3년만 버티겠다고 했습니다. 휴일에도 수시로 회사로 뛰어가야 했던 그녀를 어렵게 몇 년 만에 만났습니다. 동료들보다 빠르게 승진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화려해진 신발이며 옷, 가방과는 달리 그녀의 입에선 꿈 많던 그 전과는 다른 초라한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삼성을 말한다> 김용철 변호사는 죽을 때까지 발 못 뻗고 잘 거라 하더군요. 그녀가 존경했던 상사의 자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건, 홍보팀이 제대로 일을 처리 못해 경비원의 입을 막지 못한 게 실수라고 했고요.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못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도 그녀를 동경하고 공감하는 다른 친구가 더 흥미있을 테지요.

외국에 살면 삼성이란 이름은 애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은 대단한 기업입니다. 나의 훌륭한 외국 친구들도 아이폰이냐 갤럭시냐로 고민합니다. 저렴한 가격에 공격적 프로모션, 엄청난 광고의 영향입니다. 그리고 한국인인 저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습니다. 저는 고민하다 대답합니다. 피의 다이아몬드를 아냐고. 우리가 그 물건을 구입하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않냐고. 그러면서 한국 안에서 삼성이 벌이는 탈세와 불법과 인명경시와 무소불위 행동들을 몇 가지 말해줍니다. 그러면 평범한 내 친구들은 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지요. 호기심 많은 그네들은 21세기에 그런 일이 가능한지 의아해하며 인터넷을 뒤질 겁니다. 국제화시대에 우크라이나며 우간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기는 어렵지 않으니까요.

저는 삼성이 대단한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성원들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삼성이 어떤 방향으로 기업 경영을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지형은 크게 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삼성이 법을 지키고 공정하고 약자를 생각하고 세금 잘 내고 사람 목숨을 귀하게 여기고 함께 공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안 시켜도 삼성을 홍보하겠습니다. 갤럭시며 노트가 얼마나 좋은 줄 모르냐며 이런 좋은 회사 제품은 꼭 사줘야 한다며 얘기하고 다니겠습니다. 나의 예쁘고 똑똑하고 멋진 친구와 다시 연락해서, 역시 너의 엄마말이 맞았다며 격려하고 다시 키득대고 싶습니다.

직원들이 괴물이 되지 않아도 되는 회사, 훌륭한 직원들을 촌스럽게 만들지 않는 회사, 삼성이 그렇게 되기를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태그:#삼성,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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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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