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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모태 신앙'이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저녁 예배까지 따라다녔다. 성탄절 기념 성극에서는 예수 역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기독교 계열의 대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한 지역의 유일한 '미션 스쿨'에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교회 문턱을 넘어서면 아직도(?!)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만하면 영락없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도 어디 가서 내 종교가 기독교라고 자랑스레 말하지 못한다. 믿음이니 영성이니 하는 거창한 말들은 아예 꺼내지 않겠다. 세속의 번다한 일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거룩한 성령이 임재하는 일은 앞으로도 어려울 듯하다.

하나님의 얼굴이자 몸인 교회에 헌신한 적도 없다. 낮고 비천한 자들의 친구가 되었던 예수처럼 세상의 그늘 속으로 먼저 걸어가지도 못했다. 물론 가끔은 신앙심이 꽤 깊은 체 한다. 그때 내 거만한 혀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장 45절)를 읊조릴 때가 많다. 마치 인자나 됐다는 듯이 말이다. 부끄럽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16번째 교회>를 읽으면서 부끄러움을 또 느꼈다. 기독교 평신도가 쓴 책이어서였을까. 저자는 용감하게도(?) 이 땅의 기독교를, 그리고 교회와 목사들을 향해 이렇게 묻는 듯하다.

'과연 이게 최선입니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옳게 가고 있는가요.'

'왕' 노릇하는 목사들 사라지면 '개독교'란 말 없어질까

<주님께서 찾으시는 16번째 교회> 겉그림
 <주님께서 찾으시는 16번째 교회> 겉그림
ⓒ 기쁨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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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개독교'라는 말을 듣는 세상이 된 지 꽤 됐다. 나 스스로 '나이롱' 크리스찬이라 여기지만, 모욕적이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일부 대형교회의 물량주의와 그곳을 다스리는(!) 제왕 같은 목사들 탓이 크다. 저자의 말처럼, 한국의 비기독교인들은 대형교회를 통해 기독교를 바라보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형교회 문제가 전부일까. 막대한 규모의 큰 교회들과, 그곳을 발판 삼아 '왕' 노릇을 하고 있는 듯한 목사들이 사라지면 '개독교'라는 말도 저절로 없어질까.

성직자가 큰 집에서 살면서 큰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라고 꼭 말하고 싶습니다. 대형교회의 목사가 되는 것만이 목회의 성공이 아닌데, 많은 신학생들과 교역자들의 목표가 어느덧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것이 되어버린 것은, 어쩌면 대형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되면 많은 대우와 혜택을 받기에 다른 목회자 분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면, 이것은 교회가 변질되었다는 가장 큰 증거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11쪽)

저자의 비판적인 시선은 어느 한 곳에만 머물지 않는다. 저자가 보기에,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는 현실은 일부 대형교회나 그릇된 목사들만의 탓이 아니다. 그들이 오도하고 퍼뜨린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땅의 대다수 교회와 목사들이 '개독교'를 만들어낸 그들을 추종한다.

편의점은 필요한 물건을 24시간 팔면서 지역에 공헌이라도 하지만 과연 교회는 어떨까요? 교회의 이름이 적힌 띠를 두르고 삼삼오오 나와 교회의 이름과 약도가 적힌 휴지를 나누어 주며 서로 우리 교회로 나오라고 경쟁적으로 행사를 하는 것 외에 지역주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큰 의미가 되어주는 교회가 몇이나 있을까요? (47쪽)

이 책은 시종일관 교회가 그 규모나 신도 수가 아니라 지역에서 펼치는 사랑의 행적으로 소문 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전국 수백 곳의 교회를 탐방했다. 지역에서 사랑으로 소문 나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밝히기 위해서였다.

변질돼버린 전도 중심엔 교회 건축이 있다

저자가 본 한국 교회의 현실은 어땠을까. 저자는 왜곡된 전도 문제를 비중 있게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 교회들은 다양한 전도프로그램이나 전도세미나, 전도축제 등을 진행한다. 전도용품 전문 판매몰까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전도 점수를 매긴 뒤 '전도왕'이라며 상을 주는 교회도 많다. 유력한 기독 언론과 연계해 교회를 알리고, 간증 명목으로 연예인을 불러 전도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교회는 전도용품이라며 휴지에 교회약도와 전화번호, 목사 약력 등을 새겨 넣어 신자들에게 안긴 뒤 그들을 거리로 내몬다.

전도 자체가 교회의 가장 큰 목적이 돼버린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저자는 변질돼버린 전도의 중심에 교회 건축과 이로 인한 부채 해결의 문제가 깔려 있다고 말한다.

담임목사님뿐만 아니라 그 교회에 다니는 대부분의 성도들은 본의 아니게 빚 진 자가 되어 빚을 갚기 위한 모든 노력에 동원되며, 집을 팔아서라도 교회 건축에 헌신하는 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길이라고 교육되고 있습니다. (97쪽)

저자의 말처럼,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회건물은 공해이자 부담거리일 뿐이다. 그들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가 지역 동네에서조차 인정받거나 존경 받지 못한다. 더군다나 교회들은 빚으로 세운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 한 지역 내에서 피 튀기는 경쟁을 한다. 교회에 처음 나오는 '새' 신자는 인근의 다른 교회에 다니던 '헌' 신자일 뿐이다. 이웃 교회의 신자 빼오기는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오늘날 교회들 간의 경쟁은 뜨겁기만 하다. 세속적인 '갑을 관계'의 논리를 종교의 현장에서 찾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이 땅에 수많은 개척교회들이 치킨집처럼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어쩌면 너무 많은 교회가 생기기에 경쟁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에 치킨집처럼 고객을 유치하지 못하면 생계에 위협을 느끼기에 개척교회는 서로가 더 처절하게 경쟁하고 대기업의 횡포처럼 대형교회에 피해의식을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65쪽)

'개독교' 척결법은 교회를 사랑으로 소문내는 것

이들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제법 큰 교회의 부목사나 전도사들은 40대부터 명퇴 압력을 받는다. 저자는, 담임목사의 눈치를 보니 직장 생활을 하는 회사원 같다고 느끼는 어느 부목사들의 비탄 섞인 이야기도 전한다.

어느 부부의 사례는 혀를 차게 만든다. 이들 부부는 교회에서 안수집사와 권사 직분을 제안 받고 큰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교회에 헌금이나 헌물을 내는 전통에 따라 직분을 수락하게 되면 각각 500만 원씩 내야 한다는 얘기를 함께 들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일부 교회의 문제지만, 물신주의에 빠진 기독교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사례로 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이미 말한 것처럼, 저자의 '개독교' 척결법은 교회의 사랑을 소문 내는 것이다. 본보기 격으로 제시해 놓은 교회들도 있다. 본보기라지만 삼계탕으로 어르신들을 돌보고, 이른 아침 맥없이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초코파이와 요구르트로 봉사하는 소박한 모습들이다.

감자탕집 위에 교회가 있었으나 감자탕집 장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간판을 치워서 사람들이 그냥 감자탕교회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한 교회(서울 광염교회)의 사례는 감동적이다. 교회가 사랑으로 소문 나는 일이 말 그대로의 낮춤과 봉사, 섬김 등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다. 한국 기독교의 고질적인 병폐를 치유하고 교회가 진정으로 공동체와 함께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얼마 전, 배임과 조세 포탈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관련기사: "비켜 XX야" 조용기 목사를 지키는 신도들). 모자를 눌러 쓰고 승용차에 오르는 조 목사와 그를 지키기 위해 기자들에게 욕설을 퍼붓던 신자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못난 나는 '제 종교는 기독교입니다'를 언제쯤에나 자랑스레 외칠 수 있을까.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든 말든 그들만의 '왕국'에서 살아가려는 듯하는 그들에게 예수는 과연 어떤 말을 할까.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16번째 교회> (임민택 지음 | 기쁨마당 | 2012. 2. 25. | 280쪽 | 1만2000원)



소명을 위한 기름 부으심

사무엘 리 지음, 김병수 옮김, 맛디아(2008)


태그:#<주님께서 찾으시는 16번째 교회>, #임민택, #기쁨마당, #'개독교',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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