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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로 부산외대 학생 등 10여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이튿날인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학총장들과 만찬을 즐겼다.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로 부산외대 학생 등 10여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이튿날인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학총장들과 만찬을 즐겼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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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금 전 끝난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 소식부터 전해드립니다. 3천 미터 계주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며 우리 선수단에 두 번째 금메달을 안겼습니다."

먼저 퀴즈하나. 이 평범해 보이는 소치 동계올림픽 관련 뉴스 오프팅 멘트는 어느 방송사, 며칠자 보도 내용일까. 힌트를 내자면, 기쁜 소식도 다 때가 있는 법 정도? 정답은 지난 18일 MBC <뉴스데스크>를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다. 전날 밤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로 대학생 등 10명이 사망하는 등 1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MBC는 올림픽에 숟가락 얹기 바빴다. 다른 방송사들의 오프닝 멘트는 MBC와는 달랐다.

비교하자면, 굳은 얼굴의 손석희 앵커가 "나쁜 소식부터 전해드려야 겠습니다"라던 JTBC와 "이들의 꿈은 뭐였을까요?"라고 안타까워한 SBS, 그리고 기어이 첫 소식을 쇼트트랙 메달 획득으로 장식한 '공영방송' KBS라고 해 두자.      

지난 18일자 JTBC, SBS, KBS의 메인뉴스 오프닝 멘트.
 지난 18일자 JTBC, SBS, KBS의 메인뉴스 오프닝 멘트.
ⓒ 하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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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 말거나,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오후 전국 대학 총장 160명을 불러다 놓고 만찬을 즐겼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와인잔도 곁들였고, 건배도 했다. 부산외대 총장은 불참했다. 이미 예정된 만찬회였다 하더라도, 꽃다운 나이의 대학생들이 비명횡사했고, 아직 영결식도 치르지 않았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최소한 자제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런 지적을 하는 방송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박근혜 정부 1년, 2014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2009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세계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전세계 180개국 중 한국은 이명박 정부 때보다도 하락한 57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최근 3년간, 44위에서 50위로, 다시 57위로 추락을 거듭했다.

표현의 자유도 위축되기는 마찬가지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지난 24일 국제엠네스티가 취임 1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 앞으로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결사의 자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등 주요 인권 사안에 대해 주목할 것을 당부하는 이 편지에는 '종북몰이'와 관련해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 및 결사의 자유 등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포함돼 있다.

이 언론자유 후퇴와 표현의 자유 위축에 방송사들이 앞장선 것은 물론이다. 보도부문의 비판적 기능은 축소됐고, 연성화된 뉴스가 횡행했으며, '땡전뉴스'를 잇는 '땡박뉴스'란 비아냥까지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 몇몇 방송사들의 언론으로서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비오는 날 소시지빵 즐기라는 MBC, 김재철 시즌2 시작되나

MBC <뉴스데스크>의 지난 1년의 기록들.
 MBC <뉴스데스크>의 지난 1년의 기록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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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안광한 MBC 사장이 취임했다. 최근 새누리당에 입당한 김재철 전 사장의 오른팔로 불리던 인물이다. 그는 2012년 MBC 노조 파업 당시 부사장 자리에서 노조원들의 해고와 징계를 주도한 인물이다. 지난 1월 법원은 이 해고와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앞선 편성본부장 시절엔 시사교양프로그램 <후플러스>를 폐지하고 <PD수첩-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편 불방 사태를 이끈 장본인이다. 취임식에서 안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할 방송사인 MBC의 사원 신분으로 특정 정치 집단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방송에 반영하고자 하는 행동은 더 이상 '공영적', '양심적' 또는 '사회 정의'로 치부될 수 없다."

MBC가 공정성을 잃은 지 오래라는 것이 중평인데 이게 무슨 소리일까. MBC 노조원들이 특정 정치 집단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얘기도 금시초문이다. 오히려 MBC는 저 유명한 '안철수 논문표절' 오보와 같은 헛발질로 특정 정치 세력을 도와준 전력으로 뉴스·보도 부문에서 맹위를 떨치지 않았던가.

김재철 사장 하에서 오후 8시대로 시간을 옮긴 MBC <뉴스데스크>의 위상은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만큼이나 추락해버렸다. MBC는 지난 1년 정치, 사회 현안은 외면하고 종북몰이 올인한 채, "비오는 날은 소시지"를 먹으라 독려하고, 김정은의 눈썹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며, MB를 녹색성장 전도사로 찬양하는데 몰두했다.

'뉴스의 연성화'라는 표현도 낮뜨거울 지경이다. 일각에선 MBC가 종편과 경쟁하고 있는것 아니냐는 지적도 난무한다. <뉴스데스크>만 놓고 보면, 손석희 사장을 JTBC로 떠나 보낸 것도 모자라 TV조선이나 채널A를 따라잡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도 남아 보인다. 안 사장의 취임으로 제대로 된 '김재철 시즌2'가 예상되는 MBC의 추락에는 더 이상 날개가 없어 보인다.    

'변해서 온 그대' 민경욱 대변인을 낳은 KBS, 수신료 인상에 올인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을 패러디한 KBS 노보 최신호 표지.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을 패러디한 KBS 노보 최신호 표지.
ⓒ KBS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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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은 선배가 부끄럽습니다. 후배들의 자존심을 팔아 일신의 영달을 쫓는 선배는 선배로 인정할 수조차 없습니다."

체벌이 횡행한다는 일부 체대의 후배 학생들 얘기가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 KBS 기자들이 울분에 찬 목소리다. KBS 35기 기자들은 지난 5일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민경욱 전 <9시뉴스> 앵커가 청와대로 출근한 5일 즉각 이런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민경욱 대변인의 까마득한 후배 기자들은 "국가를 위한 헌신이라고요, 아니오, 정권을 위한 헌신이겠죠"라며 청와대 출근 하루 전 면직 처리된 선배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KBS가 정권의 나팔수라는 조롱, 이제는 완전히 무뎌질만큼 지겹게 들어 더 이상 부끄러움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라고도 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부터 들어왔던 '정권의 나팔수'라는 KBS의 별명이 박근혜 정부들어 다시 부활했다. 민경욱 대변인의 임명은 이런 불명예에 완벽한 알리바이로 작용한 셈이다. 그 KBS는 지금 수신료 인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창조방송'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 방송통신위원회와 힘을 합쳐 때로는 국민들에게 읍소하고, 때로는 압박하면서 '수신료 올리기'에 혈안이 됐다. 지난 경주 리조트 참사 보도도 간헐적 뉴스속보로 때운 채 올림픽 방송에 열을 올리던 KBS. 과연 국민들이 이러한 공영방송을 곱게 보고 수신료 인상에 동의해줄 수 있을까.

역대 최고의 방송사고에도 아랑곳 않는 TV조선, 그리고 <뉴스타파>

'안현수 귀화'를 '안철수 귀화'로 오기한 TV조선.
 '안현수 귀화'를 '안철수 귀화'로 오기한 TV조선.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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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사장과 보도부문 직원들이 매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며 고군분투 중인 JTBC와 달리 TV조선은 출범 당시의 우려를 현실화하고 있다. '노년층의 장난감'이란 일각의 분석에 화답하듯 '종북'에 올인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확실히 내고 있다. 더 정확히는 한 손엔 '종북', 또 한손엔 '박근혜 찬양'이랄까(TV조선의 유일한 경쟁상대는 박근혜 대통령을 <겨울왕국> 엘사와 비교하는 채널A 정도다).

한편으로 TV조선은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워가는 중이다. 지난 1년동안 한국 방송역사상 유례 없는 방송 사고를 지치지도 않고 거듭하고 있다. '안현수 귀화'를 '안철수 귀화'로 오기낸 것은 '안철수 효과'를 두려워하는 TV조선 내부의 무의식의 발로라 여겨줄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역에 내보낸 취재기자가 리포트를 하는 10여분 내내 지속된 방송사고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아마추어리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념과 편향, 공정성을 넘어 '종합편성' 방송사를 운영할 여력을 갖춰가고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러나 가장 안쓰러운 방송사를 꼽자면 CJ의 케이블 채널 중 하나인 tvN이 으뜸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전후 <여의도 텔레토비>로 한국 풍자코미디의 한 획을 그었던 <SNL 코리아>의 tvN은 이재현 사장 구속 이후 '창조경제'를 응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영화 <설국열차>와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창조경제에서 비롯됐다는 자사 광고를 tvN을 비롯한 케이블 TV와 CGV 극장광고를 통해 연일 내보낸 지 벌써 수개월 째다.

tvN은 한술 더 떠 대선 전 박근혜 대통령을 대놓고 지지했던 정치평론가 고성국을 캐스팅해 <고성국의 빨간의자>란 정체불명의 토크쇼를 편성하기에 이르렀다. 창조경제를 적극 홍보했던 창업 오디션 <크레에이티브 코리아>도 대표적인 '정권 읍소형'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tvN이 신설한 강연 프로그램 제목 역시 <창조 199>다.

박근혜 정부 1년, 가장 눈부시게 성장한 방송국은 아쉽게도 TV로 만나 볼 수 없다. 후원 회원 수 3만2022명을 돌파한 <뉴스타파>는 오직 유튜브와 홈페이지를 통해 시청해야 하는 현실이다. <PD수첩>을 만들었던 최승호 앵커와 제작진은 조세피난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조작 등 굵직한 특종을 터트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시청자들은 <뉴스타파>와 같은 탐사보도프로그램을 다시 TV를 통해 마주할 수 있게 될까.


태그:#박근혜, #방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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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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