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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0일 폭설로 무너지 공장 지붕에 갈려 사망한 김대환군의 빈소. 찾아오는 이 없이 유족들만 넋을 놓고 있다.
 지난 2월 10일 폭설로 무너지 공장 지붕에 갈려 사망한 김대환군의 빈소. 찾아오는 이 없이 유족들만 넋을 놓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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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교육 중 사망한 실업계 고교생의 장례식이 보름 넘게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10시 19분께, 울산 북구 농소동 모듈화산업단지 내 자동차협력업체인 '금영ETS' 공장에서 지붕이 폭설로 무너졌다. 이 사고로 야간작업을 하던 현대공고 3학년 김대환(19)군이 숨졌다. 하지만 김군의 장례식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사고일을 기준으로 따지면 16일째 장례식이 미뤄진 것이다. (관련기사: <야간작업하던 울산 고교 실습생, 지붕 무너져 사망>)

김군의 빈소가 차려진 울산 북구 연암동 울산전문장례식장을 25일 오전에 찾았다. 조문객이 없어 텅빈 빈소에는 김군의 부모와 유족들이 망연자실한 채 영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유족들은 "사고 후 회사 측이 협상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습하다 사망한 고등학생... 아직도 장례 못 치러

김군의 사망 사고 일 주일 후 115명의 사상자를 낸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이 "보상 등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한 후 사고 이틀 만에 리조트 보유사인 코오롱, 대학, 피해 학생 가족 등이 보상 등 협의가 이뤄져 장례식을 치렀다. 둘 다 안타까운 사고지만, 사고 처리 등 진행과정은 많이 다르다.

김군이 야간 근무 중 숨진 것을 두고 정치권과 노동계는 해당 업체가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어긴 점, 또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폭설로 작업을 중단하면서도 하청업체는 조업을 강행한 점을 등을 들어 인재에 의한 사망사고라며 처벌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이어 터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면서 고인이 된 김군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크게 줄었다. 이후 보상은커녕 김군 유가족은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25일 오전에 만난 김군의 아버지는 울기에도 지친 표정이었다. 김군의 어머니(47)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외삼촌 이현근(46)씨는 "기왕 이렇게 됐는데... 대환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회사 측이 그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사 측 대표는 김군이 숨진 다음날 빈소를 찾았지만 유족들은 현장실습표준협약서까지 어기고 일을 시킨 데 대한 분한 마음에 조문을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 뒤 10일 만에 회사 대표는 다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사망사고가 난 후 노동부는 금영ETS에 작업중지명령을 내렸지만 지난 20일부터 이를 해제해 다시 작업이 진행 중이다.

김군 어머니와 외삼촌은 사고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 등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작업이 시작됐다는 소식에 지난 24일 공장을 찾았다. 외삼촌은 "누나와 함께 공장을 찾아가니 회사의 고문이 '누구냐?'고 묻더라"며 "얼마나 무심하면 그렇게 묻겠냐"고 말했다. 

야간 작업 중 숨진 고교실습생 김대환 군의 학교 친구가 적은 편지가 영정 앞에 놓여 있다
 야간 작업 중 숨진 고교실습생 김대환 군의 학교 친구가 적은 편지가 영정 앞에 놓여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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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협력업체 금영ETS 사망사고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실습규칙을 어기고 고교실습생에게 야간작업을 시킨 점, 폭설로 지붕이 무너져 사망사고가 났는데도 곧이어 인근에서 같은 사고로 11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점 등이 그렇다.

리조트 참사 직후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의 체육관 붕괴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해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희생자 유족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면서 부상자 치료, 장례 보상 등에 만전을 기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곧이어 19일 오전 10시 유족과 코오롱 그룹 측은 울산21세기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나 보상에 합의했고 곧이어 대학 측과도 합의해 장례를 마쳤다.

김군의 외삼촌은 "고교 실습생의 야간작업을 금지하는 현장실습표준협약에는 학생과 학교, 회사 측이 서명까지 했다"며 "하지만 회사 측은 근로계약서 등을 근거로 야간작업을 당연시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지키지도 않는 실습표준협약서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대환이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부모님을 기쁘게 할 생각으로 야간을 한다고 했더라도, 회사 측이 학생에게 바로 설명하고 올바르게 지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똑 같은 나이에 폭설로 비명을 달리한 아까운 청춘인데 사후 조치는 왜 이렇게 다르나"라고 말했다.

회사 측 "곧 연락해 협상하겠다"

김군의 빈소에는 현대공고 3학년 4반(지난 2월 12일 졸업) 친구가 적은 편지가 놓여 있었다. 편지에는 "대환아 많이 추웠지,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착했으니까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적혀 있다.

김군은 친구들 사이에서 '바른생활 사나이'로 통했다고 한다. 대환이가 공부보다는 기술을 익히려 전문계고를 지원했을 때도 부모는 아들을 믿고 허락했다. 김군 어머니는 "꼭 대학을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냐"며 "대환이가 전문계고로 진학을 한다고 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는데, 이 사회가 이럴 줄 몰랐다"고 말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김군 친구들은 일 주일 동안 교대로 빈소를 지키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한편 회사 측은 "아들을 잃은 유족의 슬픈 심정을 공감한다"며 "너무 슬픈 나머지 흥분해 오해가 생긴 것 같다. 곧 연락을 취해 협상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태그:#현대공고 실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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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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