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이 보낸 사람>에서 인민군 장교 박정식 역의 배우 조덕제가 2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에서 인민군 장교 박정식 역의 배우 조덕제가 2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조경이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배우 조덕제(46). 20여 년 동안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었고, 이후 최근까지 충무로의 크고 작은 상업영화 20여 편에 출연하며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참 부지런히 맡은 배역에 충실했다. 그 결실일까? 이제 그의 연기를 눈여겨보는 영화 팬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는 강렬하고 날렵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그가 정확히 어느 영화에 출연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단순히 악역을 많이 맡았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 영화 <추격자><고고70><거북이 달린다><악마를 보았다><헬로 고스트>에서는 형사 역할을 했다. 물론 사람 좋은 넉넉한 이미지의 형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악역 많이 안 했는데...편하게 보이는 인상 아닌가봐"

조덕제가 참으로 징글징글하게 보였던 때가 있기는 했다. 바로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 서경사 역할을 맡았을 때. 김복남(서영희 분)이 섬에 갇혀 남편과 시동생과 마을 사람들에게 지독하게 괴롭힘을 받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자기가 챙길 것만 챙겨 배를 타고 유유히 섬을 빠져나와 절망감을 남겨주었다.

"사실 악역이라고 대표할만한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어요. (기자가 <김복남> 이야기를 꺼내자)아, 처음에 도와줄 거 같이 나타난 경찰이었는데 그냥 갔죠. 그거 외에는 사실 악역을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그런 인상이 있나 봐요. 지금 최호 감독님의 영화 <빅매치>에 출연하고 있는데 거기서는 코믹하고 허당기 있는 악당 역할이거든요. 감독님도 '조덕제씨는 느와르 영화에 어울리는 마스크인데...센 이미지에 어울리는데..'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전 사실 따뜻한 영화를 좋아해요.(미소)"

 영화 <신이 보낸 사람>에서 인민군 장교 박정식 역의 배우 조덕제가 2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조덕제는 '센' 이미지를 풍기는 마스크 때문에 살인마나 사이코패스나 똘기 충만한 악당으로 출연했을 것 같지만 영화 <추격자> <고고70> <거북이 달린다> <악마를 보았다> <헬로 고스트>에서는 형사 역할을 했다. ⓒ 이정민


그런가 하면,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는 판사 역할을 했었고 영화 <26년>에서는 '그 사람'의 경호실장 마상열 역을 맡아 주인공들과 대치되는 지점에서 한 치도 봐주는 법은 없었다. 조덕제는 "아무래도 그동안 했던 역할이 주인공 편에 선 게 아니라 주인공과 대치되는 인물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며 "주인공 쪽에 있어야 오래 살아남는데..."라며 웃었다.

"주인공과 동료라고 해도 호락호락한 역할은 아니었어요. 표정이나 느낌이 편안하게 보이는 인상이 아니라서 제가 영화에 나오면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은 느낌을 주나 봐요. 영화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저라는 존재가 신경 쓰이는 거죠."

그런 그가 최근에는 영화 <들개들>에서 진짜 악역을 연기했다. <들개들>은 2012년 전북 무주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지적장애가 있는 10대 소녀를 수년간 성폭행한 마을주민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으노, '무주판 <도가니>'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 영화 속에서 조덕제는 소름끼치는 악역을 소화했다. 

"<들개들>에서는 진짜 악역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악역은 연기적으로 끌어낼 게 많아서 연기하는 재미가 있지만 하고 나면 마음이 너무 안 좋아요. 모니터를 할 때, 화면에 보이는 모습이 제가 아닌 극 중 인물로 보이는데 그 인물이 너무 싫어요. '나는 저런 역할 하지 말아야지' 하는데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저인 거죠.

사실 '악역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따뜻하고 사람들을 정화시켜주는 메시지가 담긴 영화를 좋아해요. 보고 나서 희망과 힘이 생기는 영화요. 근데 <들개들>은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치부를 많이 드러내는 영화다 보니 더 씁쓸함이 컸던 것 같아요." 

"연극무대 베테랑...충무로서 송강호·이병헌 보고 놀랐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에서 인민군 장교 박정식 역의 배우 조덕제가 2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신이 보낸 사람>에서 인민군 장교 박정식 역의 배우 조덕제가 2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소설 <태백산맥>을 너무 인상적으로 봤는데, 그 영화의 오디션을 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연기수업을 받은 적도 없지만 순천 쪽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서 사투리를 따로 배울 필요는 없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임권택 감독님 찾아뵙고 오디션을 보고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 이정민


영화 외적으로 일상에서 '사람'으로서 풍기는 이미지는 어떨까. 실제 만난 조덕제는 강렬한 눈매와 턱선 뒤에 수줍은 미소를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줍고 훈훈한 미소를 자주 보여주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모두 경상도 분이었어요. 근데 8살 이전까지 경상도에서 살다가 8살 이후에 아버지 직장 때문에 전라도의 시골로 왔어요. 그때 의사소통이 잘 안 되더라고요. 초등학교 때 가정통신란을 보면 '아이가 아직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써있어요. 아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태생적으로 환경을 이겨보려고 하는 노력들이 외부에 방어벽을 쳤던 게 아닌가 싶어요."

어린 시절을 회상하던 조덕제는 "싸움을 걸어오는 이들이 있을 때면 그 학교에서 싸움 제일 잘 하는 애랑 싸웠다"며 "그 애를 이기면 다른 애들이 싸움을 걸어올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어릴 때 꿈은 가수였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그래서 고등학교 때 기타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친구들과 팀을 꾸리기도 했다고. "하지만 당시 여수에서 그런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되지 않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은 기회에 소설 <태백산맥>을 너무 인상적으로 봤는데, 그 영화의 오디션을 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연기수업을 받은 적도 없지만 순천 쪽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서 사투리를 따로 배울 필요는 없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임권택 감독님 찾아뵙고 오디션을 보고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에서 인민군 장교 박정식 역의 배우 조덕제가 2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앞으로는 좀더 재미난 역할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좀더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역할에 많이 도전하고 싶어요." ⓒ 이정민


영화 <태백산맥>을 시작으로 그의 연기 인생이 시작됐다. 그 영화에 출연한 이후 연극만 20여년 가까이 출연했다. 연극무대에서 연기 좀 한다고 호평도 들었던 그가 영화 쪽에 와서 가장 충격적인 배우들을 목격했으니, 바로 송강호와 이병헌이었다고. 송강호와는 영화 <괴물><살인의 추억><박쥐> 등에 같이 출연했고, 이병헌과는 영화 <악마를 보았다>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서 호흡을 맞췄다.

"저도 연극을 하면서, 다른 건 몰라도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배우라는 자부심은 있었거든요. 근데 영화 <놈놈놈>에서 송강호 선배님을 봤는데 현장에서 엄청나게 집중을 하고, 현장에 오기 전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는지 보이더라고요. '아, 내가 노력하는 건 송강호 선배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되는구나' 알았어요.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싶었죠. 송강호 선배를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이병헌씨도 영화를 준비하는 모습이 순례자처럼, 너무나 철저해서 놀랐어요. 정말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조덕제의 가족은 아직 여수에 살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출연한 작품들 중에서 <26년>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객지에서 영화 일을 하는 것을 너무 걱정하시는데 <26년>을 보시고는 그래도 좀 얼굴이 자주 보이는 역할이라서 '이제 좀 일이 잘 풀리 수도 있겠구나' 하시면서  좋아하셨다"고 전했다. <부러진 화살> 출연 당시 판사복을 입은 사진을 보내드리니 "우리 아들이 판사가 됐구나!" 하면서 좋아하셨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가만히 있어서 무표정해 보이는 것이 화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조덕제는 "알고 보면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면이 많고, 예리하게 보이지만 완전 허당"이라고 조금 더 편하게 자신을 봐주길 바랐다.

"앞으로는 재미난 역할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관객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역할에 많이 도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관객들에게 연기적으로 신뢰를 드릴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제가 할 일인 것 같아요. 더욱 성실하게 진실되게 연기하는 재미난 배우 조덕제가 되겠습니다."


조덕제의 최근 개봉작 아세요?
영화 <신이 보낸 사람>, 현실적인 북한군인 박정식 역


 영화 <신이 보낸 사람>에서 인민군 장교 박정식 역의 배우 조덕제가 24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덕제 "송강호·이병헌의 노력과 성실함에 놀라" ⓒ 이정민


"요즘 충무로에서 북한 소재의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보다 상업영화로서 좀 더 재밌게 보이기 위해 그저 소재로만 이용되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 이번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은 정말 실상을 고발하듯이 밝혀냈더라고요.

북한의 참혹한 인권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주고자 하는 의도가 강한 시나리오였어요. 제가 원래 극 사실주의나 리얼리티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신이 보낸 사람>은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더 소외되고 외면당해 인권을 상실할 수 밖에 없는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어요. 제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그런 현실을 간과할 수는 없었죠. 

또한 영화적 구성에서 드라마틱한 힘도 있고 분명 정서적으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겠다 싶어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어요. 저예산이어서 육체적 고생스러움이 따라올 수 있는 것은 알았지만 좋은 것들을 전달해 줄 수 있겠다는, 배우로서 사명감 같은 게 들어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조덕제 신이 보낸 사람 들개들 송강호 26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