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개봉한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한 장면.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에 출연한 배우 김강우, 고창석, 정진영(왼쪽부터)

▲ 20일 개봉한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한 장면.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에 출연한 배우 김강우, 고창석, 정진영(왼쪽부터) ⓒ (주)영화사 수박


스마트폰과 SNS가 대중화된 요즘, 누구나 한 번쯤 저마다의 루트를 통해 '찌라시'급의 정보들을 접해 봤을 거다. 정계, 재계의 정보에도 눈길이 가지만, 아무래도 가장 친숙한 것은 연예계 정보. 보통 그러한 정보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들로 구성된다. 주인공은 알파벳 순서로 처리된 익명의 남녀 연예인 혹은 유명 인사. 그 내용은 그들의 구린 사생활, 더 나아가 섹스 스캔들 따위에 맞춰져 있다.

호기심의 해소와 때 아닌 공유 의식을 동시에 품게 하는 찌라시 정보는 LTE-A급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해당 정보가 대중의 가십거리를 넘어 언론에 기사화되는 순간, 그 정보는 의혹과 사실의 언저리에 머문다. 이쯤 되면 해당 정보의 사실 관계 파악은 나중 일이 된다. 대중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훑으며 그중 가장 자극적인 기사를 클릭할 뿐이고, 정보를 퍼뜨린 측은 우리의 관심이 그 쪽으로 쏠리는 것에 흡족할 뿐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찌라시를 퍼뜨린 측에서는 '이 요긴한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다른 사건들을 무마할 것인가'에 골몰한다. 이는 이를 퍼다 나르는 쓰레기 언론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동조와 적극적인 도배 신공이 있어야 여론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사이에는 서로의 이익을 내세운 모종의 거래가 존재한다. 윈윈(WIN-WIN)전략이기에 서로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찌라시'는 곧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 혹은 조직의 '언론 플레이 재료'다. 대중을 속이고 그들의 관심을 쏠리게 하는 것이 찌라시의 일차적 목적이다. 그 다음은 치밀한 언론 플레이로 판을 흔드는 것. 이제는 대중을 속이기 위해 날조된 그 정보가 대중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 지경이 된 것일까.

<찌라시> 그 정체는 곧 스캔들 메이커였다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를 보기 전, 괜히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든다면 이 영화의 소재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사회성 때문일 것이다. '사실일까 아닐까, 이 영화의 내용이 실제 내가 사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가' 하는 등의 씁쓸한 가정 말이다.

정작 영화는 관객의 걱정과 달리 상업영화란 포장지로 이 가볍지 않은 서사를 사실과 허구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시킨다. 영화를 보는 이에 따라 영화가 말하는 내용은 사실로 느껴질 수도 있고, 허구로 느껴질 수도 있다. 철저히 판단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참고로 영화의 연출을 맡은 김광식 감독은 영화의 내용 중 약 70%가 사실에 가깝다고 전했다. 이 바닥의 생리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의 내용은 얼마나 사실에 가깝게 느껴질까.

사람 보는 안목과 끈질긴 집념을 가진 매니저 우곤(김강우 분)은 자신을 믿고 따라준 여배우, 미진의 성공을 위해 매일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우곤의 노력으로 미진의 성공가도가 가시화될 때 쯤, 증권가 찌라시에서 새어 나온 스캔들 하나. 그 스캔들이 담고 있는 내용은 한 국회의원이 미진의 스폰서라는 이야기다. 우곤은 이 황당한 루머를 수습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미진의 마음을 달래는 데도 여념이 없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진을 찾은 우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곤은 샤워실에서 목숨을 잃은 미진을 발견한다. 미진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잃은 우곤은 죽은 미진의 억울함과 루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찌라시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 영화는 태생적으로 가벼울 수 없는 영화였다. 물론 소재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찌라시'란 무엇인가. 유명 연예인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일조하고, 국정원에 있어야 할 기록도 발췌가 가능한, 부러 과장을 보태 사람의 목숨과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무시무시한 정보 쪼가리가 아니던가. 찌라시로부터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별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 여러 차례 입증됐음에도 마치 사실인 냥 여기 저기 언론에 흩뿌려져 대중의 관심을 손쉽게 돌리는 그 누군가의 영악한 대중 장악 수단, 그것이 현 사회가 정의하는 찌라시의 본질인 것이다.

중량감 자체에 큰 부담? 인물 묘사와 사건 구성 아쉬워

20일 개봉한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한 장면. 영화에서 매니저 우곤 역을 맡은 배우 김강우의 모습

▲ 20일 개봉한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한 장면. 영화에서 매니저 우곤 역을 맡은 배우 김강우의 모습 ⓒ (주)영화사 수박


그래서일까. 영화는 최대한 소재가 가진 중량감을 덜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첫 번째 전략은 주요 인물들의 성격과 이들이 처한 상황들에 힘을 빼는 것이다. 풀어 말하면 대놓고 영화적인 설정들을 심어 놓아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보다 영화 속 가상세계에 더 가까운 것처럼 포장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들이다.

육상선수를 좀 했다는 우곤이 달리는 차를 쫓을 정도로 엄청난 추격전을 보인다. 방망이 하나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던 그가 어느새 히어로영화의 영웅처럼 싸움을 잘하는 인물로 변해가고 있다. 절대 악 차성주(박성웅 분)에게는 연신 자신의 손가락을 내어주지만, 다른 사람과의 일대일에서는 좀처럼 밀리는 법이 없다. 다분히 영화적이다.

찌라시 유통업자 역할의 박사장(정진영 분)도 마찬가지. 그는 참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가장 미스터리한 것은 그가 우곤을 도와주는 이유다. 극 중 미스 김만큼이나 영화를 본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이다. 허망했던 것은 나중에 밝혀진 그 이유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 더군다나 예상 안의 이유인데도 납득이 잘 안 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조그만 반전에 별 감흥이 없었다.

이는 미스 김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미스 김이었다면 그 말도 안 되는 회사를 때려 치고 나왔을 것이다. 그녀가 우곤을 도와줄 이유도 분명치 않다. 두 인물이 우곤의 복수를 돕는 이유, 가볍게 넘기기 쉽지가 분명히 납득 가능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부분이다. 목숨이 달릴 정도로 위험한 일이기에 더 그렇다. 영화는 이 둘의 전사를 넣어 이 부분을 풍성하게 만들었어야 함에도 그런 부분에서 꼼꼼하지 못했다.

전설의 도청업자 백문(고창석 분)은 누구나 예상하듯 영화의 팽팽한 긴장을 풀어 줄 코믹 감초다. 그런데 그 쓰임이 적절치 않은 순간도 몇몇 보인다. 이 영화를 보며 가장 불편했던 장면들은 긴장된 분위기를 가볍게 풀지 못하고, 느닷없이 소모된 코믹 릴리프(희극적 사건 혹은 장면)였다. 느닷없는 코믹 릴리프들은 극단의 분위기와 극단의 연기 안에 배치되어 엉성한 블랙코미디로 천착하는 결과를 낳았다. 손가락이 사정없이 꺾여나가는 상황에서 고창석, 정진영의 코믹 연기에 웃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성웅은 너무 악독했고 고창석은 너무 귀여웠다.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소재에서 오는 괜한 거부감을 상쇄하기 위해 오락성을 강화하는 연출법을 택했다. 시도는 좋았다. 다만, 꼼꼼하지 못한 부분들이 아쉬웠을 뿐이다. 다행히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크게 지루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시간은 잘 갔다. 심지어 끝에 가서는 아쉬웠다. 너무 재밌어서라기보다는 결말이 석연치 않아서였다.

스릴러 장르의 적당한 긴장감을 주재료로 액션, 코믹, 정치 등을 부재료로 양념한 영화는 우곤이 찌라시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갔을 때 가장 재밌고, 그곳을 벗어났을 때 가장 뻔해진다. 영화가 그걸 알았다면 어느 부분에 더 정성을 쏟았어야 하는 지, 답이 나온다. 찌라시의 세계를 좀 더 팔 필요가 있었다. 더 재밌는 영화가 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자꾸 남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강우 찌라시 정진영 박성웅 고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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