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봄, 한국의 한 대학교 봉사팀이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고아원에서 일주일간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며 현지에 있는 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현지 고아원 한 군데를 섭외한 뒤 고아원 측에 방문 일정을 알려줬다. 그런데 처음에는 반기던 고아원측이 갑자기 난색을 표하며 "명절기간에는 봉사활동이 불가능하니, 일정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난 이유를 물었고, 고아원 관계자들 입에선 놀라운 답변이 나왔다.

"명절기간에는 대부분 아이들이 고향에 내려가기 때문에 고아원에는 아무도 없다."

고아들이 부모가 사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니... 처음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한국 봉사팀에 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후 명절기간에 텅 빈 고아원을 목격하고 나서야, 고아원 관계자들이 난색을 표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고아원 내 고아들 중 상당수가 사실 한부모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가짜 고아'였던 것이다

'킬링필드'의 깊은 상처를 딛고 매년 해외관광객 40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국가'로 변신한 캄보디아. 전쟁고아들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음에도 현재 캄보디아에는 500여 개의 고아원이 있다. 지난 14일 <아시안 퍼시픽 포스트>에 따르면 이 수치는 지난 10년 사이 두 배나 증가한 것이다.

캄보디아에 '고아'들이 넘쳐나는 현실에 대해 최근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Aljazeera)는 "캄보디아에는 10만여 명에 달하는 고아원 원생들이 있으며 이들 중 70%는 부모가 있는 '가짜 고아'"라고 보도했다.

캄보디아에 넘쳐나는 '가짜 고아'들, 어디서 왔나

프놈펜 소재 한 고아원 원생들이 자원봉사자들이 제공한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프놈펜 소재 한 고아원 원생들이 자원봉사자들이 제공한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 박정연

관련사진보기


이렇듯 캄보디아에 가짜 고아들이 생기기 시작한 건 대략 2000년대 초중반부터다. 이 시기 유럽 관광객들 사이에선 고아원 방문 일정을 끼워 넣은 '볼런티어 관광'(Volunteer Tourism)이라 불리는 패키지 상품이 인기를 끌었다. 이 관광 상품의 인기와 더불어 캄보디아의 고아들도 늘어난 것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비즈니스형 고아원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고아 품귀 현상'마저 빚어지기 시작했다. 일부 고아원 운영자들은 가난한 부모들은 만나 '(아이에게)기본 의식주는 물론이고 교육까지 시켜주겠다'고 설득해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일부에서 자녀들의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내기도 했다. 부모들은 열악할 교육환경에 아이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보다 고아원에 보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고아원의 주거 환경은 대부분 부모들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심지어 일부 고아원들은 인권유린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도 하다. 지난해 씨엠립에 위치한 한 고아원에선 현지인 원장 A(36)씨가 11세와 12세 여자 원생들을 강제 성추행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호주 여성이 운영하던 한 고아원 역시, 수준 이하의 저급한 급식과 부실한 치료, 열악한 주거환경도 모자라 원생들을 구타한 혐의로 지난해 3월 강제 폐쇄조치를 받았다.

실제 고아원들의 상황은 이렇지만 아이를 고아원에 보낸 시골의 가난한 부모들은 대부분 하루 일해 하루 먹고 사는지라, 고아원 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조차 어렵다.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인권유린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 못한다.

단기 봉사자들의 질 낮은 수업, 도움 안 된다

캄보디아에서 20년 넘게 고아와 장애아들을 돌보는 복지사업을 해온 김정욱(68) 자비의 등불 대표는 현지 고아원을 찾은 봉사자들의 수업 프로그램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아원을 찾아 자원봉사를 하는 단체나 개인의 경우 대부분 봉사 시간이 일주일에서, 길어야 한 달을 넘지 못한다. 교육적 효과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교육전문가들도 아닌, 전공과 무관한 어린 대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체계적인 학습이 필요한 아이들에겐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

정식 교사 자격증도 없고 아동 교육 경험도 부족한 봉사자들이 미국이나 호주 등 영어권 국가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영어수업에 투입되는 경우도 이곳에선 매우 흔한 일이다. 따라서 애초 수업의 질은 기대하기 어렵다.

봉사자들 입장에선 수업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단기간에 아이들과 친해지는데 더 관심을 쏟게 되다보니, 시간 때우기식 미술 지도나 공놀이 수준의 체육수업 등 교육효과가 의심스러운 수업들로 채워지기 일쑤다.

지난 달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한 복지시설에선 한국의 한 대학교 봉사팀이 열흘간 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그 기간 동안  매일 한 시간씩 한국어 교육을 했지만, 교육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고아들이 느끼는 상실감, 트라우마 가능성 높여"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프렌즈 인터내셔널(FI) 캄보디아 지부는 유니세프와 함께 '반(反)볼런티어 관광'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어린이는 여행상품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캠페인은 서양 여행자들이 유리상자에 갇힌 제3세계 어린이들을 카메라로 찍고 있는 내용의 홍보사진을 앞세워 볼런티어 관광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프렌즈 인터내셔널(FI) 캄보디아 지부는 유니세프와 함께 '반(反)볼런티어 관광'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어린이는 여행상품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캠페인은 서양 여행자들이 유리상자에 갇힌 제3세계 어린이들을 카메라로 찍고 있는 내용의 홍보사진을 앞세워 볼런티어 관광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 프렌즈인터내셔널

관련사진보기


일부 전문가들은 봉사자들의 행동방식이 고아원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피력했다. 유엔아동기금 유니세프 소속 아동 전문가 욜란다 반 베스테링은 2011년 AFP통신과 한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클 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이 바뀜에 따라 반복되는 감성적 상실감 역시 '트라우마'를 일으키게 할 가능성을 높인다"며 "이력사항에 대한 검증을 받지 않은 단기봉사자들에게 아이들을 맡길 경우, 인권유린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연구전문사이트 '크메르의 세계'에서 정회원으로 활동하는 아이디 목수씨는 이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봉사 활동 때 만난 현지 아이들이 몇 차례 배신(?)을 당한 후 이제는 깊은 정을 주지 않으려 한다"며 "물질적 시간적 봉사활동이 절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국제 NGO단체가 운영하는 일부 고아원들은 담장 수리나 페인트칠 등 환경미화 활동에만 봉사자들은 받는다. 아이들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일부는 사진촬영조차 못 하게 한다.

어린 아이들의 정서 안정을 위해선 최소 수개월 이상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 봉사에 나서야 한다. 더불어 사전에 일정기간 이상 소양교육을 받는 것이 좋다. 특히 고아원은 가장 극단적인 경우에만 선택해야 하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한다.

유엔도 이런 문제점을 일찍이 간파해 이미 오래 전에 고아원 지원육성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최근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볼런티어 프로그램'에 신중히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에선 다양한 대안들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분위기이다.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프렌즈 인터내셔널(FI) 캄보디아 지부 역시 지난해부터 유엔아동기금 유니세프와 함께 '반(反)볼런티어 관광' 캠페인을 시작했다. '어린이는 여행상품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캠페인은 볼런티어 관광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현재 신문잡지 뿐만 아니라 툭툭(삼륜오토바이택시) 광고판에도 이 홍보물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선 여전히 팔리고 있는 '볼런티어 관광'

공부 대신 압사라 공연으로 하루를 보내는 고아원 소녀의 모습
 공부 대신 압사라 공연으로 하루를 보내는 고아원 소녀의 모습
ⓒ 박정연

관련사진보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국제사회의 이런 흐름과 반대로 한국에선 여전히 '볼런티어 관광'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아원 방문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사전교육이 부실하고 전문성마저 떨어지는 건 큰 문제다. 

씨엠립에서 10여년 동안 여행사를 운영하며 대학과 의료봉사팀 코디네이터로도 일하고 있는 김장수(46) 짠티투어 대표는 "고아원이나 기타 사회복지시설 방문 시, 봉사분야 전문가, 또는 아동전문가가 동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대부분 현지답사를 해본 적 있는 여행사 직원이 주관하는, 1시간 이내의 간단한 안내교육을 하는 게 고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가장 우려되는 건 고아원 방문상품을 만드는 여행사나 볼런티어 관광을 떠나는 이들 모두 고아원 방문이 아이들에게 어떤 피해를 줄지,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프놈펜에서 고아원 운영에 관여한 적이 있다고 밝힌 익명을 요구한 한국인 선교사는 볼런티어 관광의 허울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고아원 방문 관광 상품이 인기를 얻으면 얻을수록, 캄보디아처럼 가난한 제3세계 국가들에는 가짜 고아들이 더욱 넘쳐날 거다. 오직 돈벌이만 생각하는 사업가들의 주머니만 불려줄 것이다. 부모 밑에서 크지 못한 아이들 중 일부는 좋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 부메랑이 돼 돌아올 거다."


태그:#캄보디아, #가짜고아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