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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처음 이곳에 오니까 해서는 안 되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식전에 남의 집에 가면 안 되고, 아저씨들이 출근할 때 그 앞을 지나가도 안 되고, 특히 출근 버스 곁에는 얼씬도 하면 안 되는 기라. 출근하기 전에 남편을 기분 나쁘게 해서도 안 되고, 심지어 그릇을 깨도 재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 가지로 여자들은 재수가 없고, 부정을 타서 사고가 난다는 거지. (사북청년회의소 편 <탄광촌의 삶과 애환> 중에서)

탄광촌엔 금기가 참 많았다. 금기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을 회피하고 싶은 욕망에서 만들어진다. 뿐만 아니라 이미 닥친 재앙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시키려는 욕구도 내포되어 있다.

 사북 석탄유물전시회 전시물
 사북 석탄유물전시회 전시물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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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막장에서 탄을 캐다보면 인명사고가 빈번했다. 갱도 안에서는 갱의 낙반, 붕괴로 인한 매몰사고뿐 아니라 탄을 실어 나르는 광차의 탈선 등으로 발생하는 사고, 지하수나 가스로 인한 사고, 전기 누전 등으로 인한 화재 사고 등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부 정책으로 석탄 생산이 급격하게 증가했던 1970~1980년대 광산 사고 통계를 보면 이틀에 한 명 꼴로 사망자가 발생했고, 매일 15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1987년 전체 산업 노동자 중에서 탄광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1.5% 이하인 데 비해, 전체 산업 대비 광산 노동자 사상자 비율은 평균 14%에 이를 정도였다.

자고 일어나 탄광에 출근해보면 'ㅇㅇ가 죽었다'거나 'ㅇㅇ가 다쳤다'는 소식이 매일 들려올 만큼 많이도 죽어 나갔다. 앞장이 밀려나와 동발이 쏟아질 때 다치기도 하고, 또 위에서 짐을 받던 암벽이 쏟아져 내려 다치기도 한다. 한 번은 눈앞에서 쏟아져 내린 탄더미에 대여섯 명이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을 보았다. 그날은 혼이 나간 것처럼 세상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삼척시립박물관 편, <탄광촌 사람들의 삶과 문화> 중에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쉬고 매일 갱에 들어가 일을 했던 탄광 노동자들에게 죽거나 다치는 일은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보니 갱에 들어가 일하는 탄광 노동자들과 가족들에게 '오늘도 무사히'라는 구호는 그 어떤 말로 대신할 수 없는 절실함 그 자체였다. 탄광 노동자들의 출근길 발걸음은 천근 돌덩이였다.

 사북 석탄유물전시관 전시물
 사북 석탄유물전시관 전시물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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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하나 둘 금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탄광 노동자들이 출근할 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들이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출근 전 남편 앞에서 큰 소리를 내도, 그릇을 깨도 안 되었다. 출근길에 여자들이 앞을 지나가도 안 되고, 출근 버스 곁에 여자들이 얼씬거려도 안 되었다.

그런데 금기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대부분 여성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탄광일 자체가 위험해서 발생하는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여성들이 해서는 안 되는 금기들만 잔뜩 생겼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탄광촌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보면 1930년대 영국의 탄광촌에서도 광산 노동자들은 출근길에 여성들이 지나가면 출근을 포기했다는 내용이 있다. 갖가지 위험을 감수하면서 갱으로 출근하는 탄광노동자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려는 배려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하필이면 그 대상이 여성이 되어야 했을까?

여자들은 재수가 없고, 부정을 타서 사고가 난다는 거지. 사실은 탄광일이 위험해서 일어나는 사곤데, 모든 탓을 여자로 돌리더라고요. 이래저래 여자만 죽어나는 거지. 달리 방법이 없더라구요. (사북 청년회의소 편 <탄광촌의 삶과 애환> 중에서)

탄광 사고의 주요 원인이 여성들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탄광 사고가 터지면 주변 여자들의 부주의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의혹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탄광촌 여성들은 빈번한 사고로 인한 고통 외에 탄광 사고의 원인을 여성들에게서 찾으려는 금기에서 비롯되는 고통에 시달렸다.

 태백 장명사 - 희생된 탄광노동자들의 위폐를 모셔둔 사찰
 태백 장명사 - 희생된 탄광노동자들의 위폐를 모셔둔 사찰
ⓒ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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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80년대 탄광지역의 잦은 사고는 정부와 탄광업체가 탄광 노동자들의 안전보다는 '석탄 생산량 증가'에 주력하면서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부작용에서 비롯되었다. 광업주와 계약을 맺고 광구의 일부를 맡아 채광하는 덕대(개인탄광)에서는 노동력 부족을 이유로 안전교육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사고가 더욱 빈번했다.

'수출만이 살길'이란 구호 아래 생산성 향상 명분이 다른 모든 가치보다 우선했던 시기 수많은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수백 미터 지하 막장에서 검은 진주 탄을 캐던 탄광 노동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검은 석탄 가루와 함께 탄광촌을 떠돌던 수많은 금기는 인간다운 삶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탄광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굴곡진 삶을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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