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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는 고성주의 전안에서 안택굿이 열렸다
▲ 고성주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는 고성주의 전안에서 안택굿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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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건 어떻게 알았어?"
"너희 엄마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아냐. 심지어는 나한테도 돈 빌려주고 이자 받았어."
"그러니까 말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았데."
"그것뿐이 아냐. 돈 들어오는 날이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사무실에 와서 버티고 있다가 주판 들고 계산해서 다 들고 갔어."
"맞아, 그래서 금고도 커다란 것 마련했잖아."

부녀간의 대화다. 그런데 그냥 부녀의 대화가 아니다.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부녀간의 대화다.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현세에 살아있는 딸이 한 대화이기 때문에 듣고 있자니 소름이 끼친다.

안택굿 중에 조상거리를 고성주가 하고 있다
▲ 조상거리 안택굿 중에 조상거리를 고성주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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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판에서 만난 저승의 아버지와 이승의 딸

지난 22일 오전 10시부터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있는 고성주(남, 60)의 전안(무속인들이 신령을 모신 곳). 악사와 무녀 등 6명이 굿판에 앉았다. 제가(굿을 의뢰한 집) 집은 수원시 장안구 정자2동 두견마을에 거주하는 이아무개(남, 66)이다. 굿판에는 부인인 이아무개(여, 59세)가 함께 했다.

아침부터 시작한 굿은 부정, 천궁맞이, 산거리, 신장 대감 등을 거쳐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조상거리가 시작되었다. 당주(굿을 맡아 진행하는 무속인)인 고성주가 조상거리를 맡아 했다. 선대조상부터 고성주의 몸을 빌려 자손을 만나기 위해 현신한다.

안택굿은 경기도 지방에서 보이는 굿으로, 한 해 동안 가내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굿이다. 그래서 안택굿은 대개 음력 정월에 한다. 예전에는 집에서 했지만 지금은 대개 전문 굿당이나 무속인의 전안에서 이루어진다.

조상거리에서 저승의 아버지와 이승의 딸이 만났다. 아버지는 무당의 몸과  입을 빌려 현신한다
▲ 조상거리 조상거리에서 저승의 아버지와 이승의 딸이 만났다. 아버지는 무당의 몸과 입을 빌려 현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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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의 조상들이 먼저 현신을 하고 난 후, 친정 아버지가 고성주의 몸과 입을 빌려 현신을 했다. 처음부터 살아생전 부녀 사이를 알 수 있는 대화가 오고갔다. 아마도 부친이 살아생전에 2남 1녀인 맏이인 딸을 엄청 예뻐했던 것 같다. 부친이 세상을 뜬 지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무당을 통해 현신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대화 중에 그대로 나타난다.

굿판에서는 누구도 만날 수 있어

"아버지는 어떻게 엄마를 그렇게 잘 알아?"
"엄마가 얼마나 돈에 대해 지독한지 아냐. 그래도 그렇게 했으니까 너희들이 물질에 어려움 안 당하고 살고 있는 거야."
"그럼 뭐해. 아들만 알고 아들들한테만 재산을 주는데."
"너도 올 추석이 지나면 줄 거야, 걱정하지 마라."
"이건 녹음해 놓아야 되는데."
"내가 살아생전에 딱 한 번 바람을 피우다가 마누라한테 걸렸는데, 그때부터 쥐죽은 듯 살았다오."

조상거리에서는 조상들의 옷을 한 벌씩 들고 무당의 입을 빌려 현신을 한다
▲ 조상 옷 조상거리에서는 조상들의 옷을 한 벌씩 들고 무당의 입을 빌려 현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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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점점 흥미 있어진다. 무당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하는 망자는 평소에 술을 좋아했다고 하면서, 굿상에 놓인 술을 연신 마셔댄다. 살아생전에는 본인이 한량에다 잘 났다고 이야기를 한다. 망자를 만난 딸도 "맞다"고 맞장구를 친다. 한참이나 딸과 상면을 한 저승의 부친이 이제는 간다고 하니, 딸이 주머니에서 노자 돈을 하라고 돈을 꺼내 쥐어준다.

"그것 갖고 돼 아버지. 더 드릴까?"
"나야, 더 주면 좋지. 저승 가는 길에 막걸리도 한 잔 사먹고 목마르면 물도 사 마시고."

그 말에 주머니에서 얼마인가를 더 꺼내준다. 부녀간의 대화를 듣다가 보니 아버지가 환갑도 못 넘기도 돌아가셨단다. 그러니 맏이인 딸로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남다를 수밖에.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도 덩달아 웃다가 울다가 한다. 굿은 '열린축제'라고 한다. 누구나 굿판은 참여할 수가 있다. 아무도 굿판을 구경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죽은 아버지를 만난 딸은 울다가 웃다가 맺혀있던 말을 다 풀게 된다.
▲ 부녀 죽은 아버지를 만난 딸은 울다가 웃다가 맺혀있던 말을 다 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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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말도 굿판에서는 가능하다. 그리고 속에 품은 생각을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비록 무당의 입을 빌려 하는 말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딸은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굿을 하는 것인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와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안택굿, #고성주, #저승의 아버지, #이승의 딸, #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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